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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구상과의 한국어 수업을 재개한 것은 작년 말쯤이었다. 한 달에 두어 번 메구상 집에서 편하게 점심을 먹으며 모든 대화를 한국어로 하고 공부하다 모르는 것을 알려드리고 약간의 수업료를 받았다. 먼지가 없고 빛이 잘 드는 집이라 매우 쾌적했는데 자주 가다 보니 살짝 궁금한 점이 생겼다. 

-메구상.. 바닥에 물건이 많이 있으면 청소할 때마다 위로 올리거나 들어야 해서 번거롭지 않아요?

-그렇죠. 근데 혼자 사는 집이라 좁아서.

-메구상, 바닥에 이 세제들 여기 옆구리 수납을 만들어 끼워 넣으면 어떨까요? (모든 세제와 세탁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과 입욕제들이 전부 바닥에 있는 상황. 바닥을 찍는 걸 잊어버림 ) 

-헤에.... 어떻게요? 그게 돼요?

-메구상. 수건을 헹거에 걸어서 지금 문이나 복도에 걸어 두셨는데 (방 곳곳에 오징어처럼 수건들이 대롱대롱 걸려있음) 세탁기가 드럼이 아니니까 여기 자석이 붙잖아요. 요즘에 자석으로 수건걸이를 세탁기에 장착할 수 있는 게 있어요.

-헤에..... 저도 이거 대롱대롱 집 안에 수건 걸어 놓는 거 추잡해서 하기 싫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메구상. 그냥 단순한 궁금증이고 전혀 깊은 뜻이 없는데요. 

-네네. 센세. 허심탄회하게 도우죠 도우죠.

-그.. 책꽂이 앞에 옷 서랍이 있고 그 앞에 다림질 판이 있으면 제일 안 쪽에 있는 책은 꺼낼 수가 없지 않아요?

-그래서. 잘 안 꺼내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둘이 빵)

-그리고 여행가방은 여행 갈 때만 쓰시니까 안방 클로젯에 넣어두는 건 어떨까요? 

-오호.. 그런 방법이 

-ㅋㅋㅋㅋㅋ 아니 보통은 그런 방법을 씁니다. 

-ㅋㅋㅋㅋㅋ (둘이 빵)

-그리고 메구상.. 메구상 책상은 책이 잔뜩 올라와서 결국 저 책상을 쓸 수가 없는 상태네요. 

-네. 한국어 시험 보기 전에 매일 저기서 공부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한국어 시험 못 보고 물건을 일단 저기 올리다 보니 어느새...

-메구상 저 옷들 아래는 의자 아니에요?

-맞아요 ㅋㅋㅋ 저거 의자예요. 

-ㅋㅋㅋㅋㅋ (빵) 

-메구상! 엄청 단순한 일이에요 이건

-뭐가요?

-책꽂이는 두 개밖에 없는데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책을 가지고 계신 거예요. 이건 책꽂이를 사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먼저 책상을 접어버리는 건 어떨까요? (책상이 접이식이었음)

-오오!!! 저에게 필요한 건 가구였군요!

-메구상. 아주 이건 사소한 건데요. 현관이 깨끗하긴 한데 자잘한 물건들 모두 어딘가에 올릴 수 있거든요. 그럼 자리도 넓어지고... 아.. 메구상 집에 없는 게 뭔지 또 발견했어요.

-뭔데요?

-큰 쓰레기통이요.

-오!!!!

-작은 쓰레기통은 많지만 지금 그걸 저 큰 비닐봉지에 모아놓기만 하고 있잖아요? 큰 쓰레기통을 현관에 두면 극적으로 편해질 거예요.

-오... 센세 놀라워요.

(무엇이요?ㅋㅋ)

-메구상 우산을 저 자리에 두면 신발장을 열 수가 없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원래 있는 가구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건 큰 손해예요. 물건들에겐 모두 '제자리'라는 게 필요하거든요. 근데 그 자리를 붙박지 장이 제공하고 있고요. 제자리가 있어야 쉽게 찾을 수 있고 제자리를 찾은 물건들이 바닥에 나올 필요가 없으니 청소가 쉬워져요. 정리의 목적은 청소하기 쉬우라는 것도 있거든요. 

-자 보세요. 우산 때문에 열고 닫기 어려워진 신발장은 결국 잊힌 물건들로 가득 차게 돼요.

-아... 다 이제 거의 안 신는 물건들 뿐이에요. 

-버릴 수 있어요?

-뭐를요?

-같이 도와줄게요. 물건을 비우고 제자리 찾는 거! 

-오...센세 ㅠㅠㅠㅠㅠ 진짜요???? 엄청 부끄럽고 고맙고 ㅠㅠㅠ

-일본 친구 집 치워 준 적 예전에도 있는데 그 친구도 이런 더러운 집 보여주기 창피하다 그러대요? 전 전혀 비난하거나 비웃을 마음이 없는데.

-일본 사람들은 개인적인 살림을 오픈하지도 않지만 더욱이 이런 게으른 모습 보여주는 거 너무 부끄러워요.

-메구상..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 지금... 너무 피가 끓어요....

-왜요? ㅋㅋㅋㅋ

-우리 집은 이제 더 이상 할 게 없으니까요... 내 앞에 먹이가 있는 듯이 너무... 심장이 나대고 있어요. 제발 저에게 이걸 시켜주시라고요!! 

-ㅋㅋㅋㅋ 아 센세 ㅋㅋㅋ 정말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메구상 집에 들러 몇시간씩 집 청소를 하며 가구를 들이고 물건을 버리고 옮겼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존중해 드렸지만 버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내 말에 동의해주며 조금씩 조금씩 미련을 비우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준 메구상 덕분에 우리는 진짜 놀라운 스피드로 집을 바꿔나갔다. 

-메구상의 소중한 엑소들도 (엑소 팬이심) 이 참에 벽에 못을 박아 걸어 주는 건 어때요? 요즘에 구멍이 작은 압정 모양으로 나온 걸이들도 많거든요.

-저 아마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살 거니까 벽걸이도 괜찮을 거 같아요. 오호.. 센세 그런 생각을 다 하다니.. 전 귀찮아서 못하고 있었는데 

-아! 귀찮아서 못하는 패턴도 있겠구나. 의외로 작은 발상의 전환, 아이디어가 필요한 일뿐이라고 생각했는데 행동력도 추가해야겠군요. 

-메구상, 작은 싱크대에 거치대? 철제로 된 설거지 선반이 있는데 그거 하나만 설치해도 드라마틱하게 자리가 늘어나거든요? 그러면 빨간 저 의자 위에 있는 전기 포트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거 정말 눈엣 가시였는데.

-제가 니토리에서 (저렴이 가구매장) 사 올게요. 메구상은 사이즈 틀릴 수도 있으니까 사지 말고 제가 사 올게요.

-나중에 한꺼번에 청구하세요. 맡기겠습니다!

-미슙니까?

-믿쓥니다!

-할렐루야

 

어떤 날은 메구상이 혼자 책상을 접어 봤다고 사진이 왔다.

-센세.. 도와주세요. 책상을 접었는데 그 위에 물건들을 내려놓기만 했더니 물건이 너무 많아요.  도와주세요..

-ㅋㅋㅋㅋ 잘했어요!! 잘했어요!! 물건이 많다는 걸 인식한 것부터 너무 큰 발전이시고요! 우리가 얼마나 수납이 필요한지 대충 알겠어요.

콘도 마리에 넷플릭스 시리즈를 열심히 봐서 그런가 어디서 들어본 듯한 말들이 술술 나왔다.

 

-자 우리의 첫 번째 계획은 모든 벽면에 수납 가구를 들이는 것이에요. 

-마지막으로 가구를 사 본 기억이 너무 가물가물해요 ㅋㅋ 물건은 늘어났는데 수납이 전혀 없었네요. 생각도 못했어요.

-세탁기 주변도 개선이 필요하겠어요. 웬만한 건 백엔샵에서 다 해결 가능해요.

-100엔 샵이요? 헤에.........!!!

나는 이제 집에 있어도 밖에 있어도 메구상 프로젝트로 머릿 속이 가득찬 4개월을 보냈다. 내가 생각해도 정신병자 같았지만 귀찮기는 커녕 너무 재미지는 일이었다. 사진을 보고 또 보고 

얘는 여기로 가고 얘는 저기로 보내고 

마치 테트리스를 하듯 머릿 속 메구상 퍼즐이 중독적으로 떠나지 않았다. 

-메구상, 아주 의외로 메구상이 쓰는 저 하늘색 수납 중에 시계가 차지하는 지분이 아주 많거든요? 시계를 소파 옆에 붙이는 선반을 만들어서 옮기면 다른 물건들을 더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시계를 위해 시계만을 위한 선반이 필요하군요.

-가끔 딱 한 가지의 기능을 위한 가구도 필요하더라고요.

메구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방 안에 물건들이 이렇게 많으니 클로젯 안은 더 엄청난 양의 물건들로 가득할 거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는 것이다. 방 안에 원래 달려있던 붙박이 장안엔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막 이사를 온 사람 같이 몇 개의 잡동사니들만 굴러다녔다. 그나마의 것들도 기억 속에서 잊혔거나 쓸모 없어진 것들이었다. 

-메구상, 저 뭔가 깨달았어요.

-뭔데요?

-메구상 타입의 분들은 클로젯 문을 열고 무언가를 꺼내는 것은 진짜 필요한 걸 꺼내는 일이 아니면 불가능한 거 같아요. 

-예를 들면요?

-바지가 몇 장 거실에 나와있다면 귀찮게 클로젯 안에 있는 바지를 찾을 것 없이 보이는 바지를 입으면 그만인 것이죠. 결국 클로젯 안의 바지들은 잊히고요. 하지만 정말 꼭 여기밖에 없는 것. 없으면 안 되는 것들을 클로젯 안에 수납하면 귀찮아도 억지로 문을 열겠죠. 휴지나 마스크 같은 거요. 떨어지면 여기를 억지로라도 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전이요. 그러면 드디어 이 클로젯도 기능을 할 거예요.

 

 

그래서 일단 거실 클로젯은 매달아 쓰는 수납 헝겊을 이용해서 물티슈, 휴지, 마스크를 넣어드렸다. 

-센세! 일주일 이렇게 써 봤는데 보기에도 쉽고 정말 휴지가 떨어지면 이 문을 일부러 열 수밖에 없더라고요! 너무 좋아요!!! 

우리는 둘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메구상의 서식환경을 이해한 것이 나는 제일 기뻤다.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메구상 옷장 문은 밖을 쓰는 게 아니라 이렇게 안을 쓰는 게 보기 좋아요. (바깥에 주렁주렁 물건들이 많이 달려있었다) 

-오오... 센세 요즘은 이런 가방 걸이가 나오는군요.

-네네! (요즘 나온 건 아니랍니다... 10년 전부터 저희 집은 쓰고 있어요 ㅋㅋ)

거실 옷장은 안 쓰는 여름 가방 여름 모자들을 맨 위에,

아래에 요즘 계절에 쓰는 가방들, 오른쪽에 생필품 수납

아래에는 안 쓰는 선반을 퍼즐처럼 맞춰놓고 

왼쪽에 중고거래에 내놓은 물건들을 수납했다. 

중고거래에 보낼 물건들은 '임시로' '잠깐만' 가지고 있을 물건이니까 여기저기 널브러지기 쉬운데 사실 물건들이 바뀔 뿐이지 계속해서 중고 사이트에 나갈 물건들은 나오고 또 나오니 그냥 작업대 하나를 정해 수납할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깔끔하다. 그리고 중고 사이트 물건이 팔리면 일부러 문을 열고 귀찮아도 꺼내게 되겠지라는 게 나의 의도. 

-메구상 저 냉장고 위 공간을 좀 쓸 수 있을 거 같아요. 여기 손 닿는지 해 보세요.

-충분히 닿아요!

-그러면 지금 마시는 물 빼고 음료나 조미료들은 저 위에 수납해볼까요?

-오오... 센세... 공간을 발견하는 능력이 엄청나요.

그렇게 주방의 한켠이 정리되었다. 드디어 전기포트가 자기 집을 찾았다. 전기포트 뒤에는 큰 바스켓에 티백, 커피 종류를 모아드렸더니 새로 눈을 뜬 분처럼 좋아하셨다. ㅋㅋㅋ 매번 차 마실 때 커피 마실 때 여기저기 뒤져가며 쓰셨다고.

그리고 저렴하게 사 온 니토리의 설거지 선반. 양 옆에 칼 꽂이, 컵 꽂이는 옵션으로 알아서 사 왔다.

-센세!!!! 제가 지금까지 왜 물 뚝뚝 떨어뜨리며 멀리 떨어진 선반에 그릇을 널었나 싶어요. 너무 쓰기 편해요!

그리고 사실 세탁기 옆구리를 개조하려고 100엔 샵에서 사 온 바구니는 사이즈가 안 맞았다. 

-메구상 이 클립 써도 돼요? 

-네네 얼마든지 쓰세요.

클립을 환풍기 틀에 꽂으니 그물 바스켓이 단단히 걸렸다. 

-여기에 작은 물건들 수납하면 되겠어요. 

-센세!!!!! (울고 있음 ㅋㅋㅋㅋㅋ)

자 이렇게 주방 마무리

그리고 아마존에서 주문한 종이 박스로 된 쓰레기통이 두 개 도착했고 강력한 자석으로 된 우산 꽂이도 함께 왔다.

-메구상 집안에 자석이 붙는 장소가 있다는 건 보물과도 같은 곳이에요.

-우산도 꽂고 수납 헝겊도 걸어놓고 여기에 열쇠랑 마스크랑 나갈 때 챙기는 물건들을 넣어두세요.

-이렇게 귀여운 수납 헝겊은 어디서 샀어요?

-백엔샵이죵

-헉.... 센세... (일본 백엔샵에 감격하신 일본인)

신발장 안도 고심 고심해서 버릴 것은 버려주시고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책상이 치워져서 의자가 갈 곳을 잃었지만 첫눈에 반해 가구점에서 비싸게 구입하신 의자라 마음이 간다고 하셔서 (스웨이드 재질의 정말 예쁜 의자임) 그러면 이 친구의 자리를 다음에 잘 생각해 보자고 결론 냈다. 

자, 다음 침실 붙박이 장. 아무것도 없었던 문제의 그 장소. 

모든 계절 옷을 정리하고 안 쓰는 계절 가구들을 틈새 없이 수납했다.

예전에는 저 투명 서랍들이 모두 방 밖에 나와있었다.

윗부분에는 가끔만 보는 서류들이나 책, 기모노, 수영복, 운동복 등. 

아래의 헝겊 수납은 (다이소에서 400엔) 침대 시트 베개 등등. 자주 꺼내는 종류.

여기는 주방 옆 키친용품들인데 조금만 더 살림을 줄이거나 재고해보면 이 선반은 없애도 되는데...라는 욕심을 버리고 늘 쓰시는 물건들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냉장고 옆 식료품들로 가득했던 선반은 진짜 방 안에서 필요한 문구, 잡화, 화장품들을 놓았다. 음식은 주방에, 방은 생활잡화, 책은 책상 옆. 

-메구상 동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셔야 생활이 편하고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지지 않아요. 

-와... 책에서 본 거 티비에서 들었던 말인데 진짜 제 생활에 적용되는 걸 보는 거 처음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 (둘이 빵)

그리고 정말 오랜 시간 공들인 세탁기 주변!

왜 여기가 오래 걸렸냐면 나도 세탁기 주변에 물건들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건을 줄일 수는 없었지만 열심히 고민한 끝에 모든 물건을 철제 수납장이 모두 끌어안고 바닥에 나오지 않게는 성공했다. 

-메구상, 전 팬티를 옷장 서랍에 넣지 않고 목욕탕 앞에 넣거든요? 왜냐면 팬티만은 아침에 옷 갈아입을 때 꺼내는 게 아니라 샤워하고 밤에 파자마 입기 전에 새 걸 꺼내지 않아요?

-오.... 생각해보니 저도 그래요.

-그리고 세탁기 철제 수납 이건 정말 활용도가 높은 거 잘 사셨네요.  빨래집게 헹거 (문어발처럼 생겨서 빨래집게가 마구 달린 거) 세 개나 있는데 이건 옆에 걸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렇게요.

-헉!!! 센세!!!! 엄청난 발견이에요!!!!! 이거 맨 위에 올리는 거 매번 스트레스였어요

그렇게 맨 위에 가끔 쓰는 청소 도구들

두 번째 칸에 팬티 (우드 바스켓) 타월들

세 번째에 봉을 설치해서 옷걸이 수납

양 옆구리에 세제들 (바스켓 다시 사 와서 달아놓음) 

세탁기 앞면에 자석으로 큰 타월 걸이 설치.

오른쪽 벽에 압정으로 수납장 만들어서 세탁망.

 

-아래에 돌돌이들이랑 걸레들은 다음에 벽에 걸 수 있는 거 사 올게요.

-벽 어디요?

-세면대 옆에 여기 어때요?

-ㅋㅋㅋㅋ 센세... 이런 데에 벽이.. 참 안 쓰는 공간이 없달까 쓰는 공간이 다르네요.

-그런가요? ㅋㅋㅋㅋ

그리고 우리가 주문한 벽장이 차례로 왔고 

왼쪽부터 엑소 전용 수납장 (제일 기뻐하심)

원래 있던 낮은 티비 선반을 처분하고 아래에 옷장

세 번째도 서랍 옷장, 마지막은 원래 가지고 계시던 양말 서랍장이 쏘옥 들어갔다. 

그리고 선물로 드린 벽에 붙이는 선반. 

-센세.. 제가 돈을 드려야 하는데 왜 선물을 주세요 흑흑

-아니에요. 갑자기 메구상 너무 가구 사는데 한꺼번에 돈을 쓰셨어요. 그리고 정말 싫은 내색 없이 다 요구 들어주셔서 저 너무 수월하게 착착 진행해서 좋았어요 ㅠㅠ 쉽지 않으셨을 텐데..

진심이었다. 남이 자꾸 버리라는 듯 언제 쓰는지 필요한지 재차 묻는 건 되게 기분 나빴을 텐데 메구상은 시종일관 긍정적으로 대해주셨다. 쉽지 않다. 

-메구상 시계 옆에 뭐 장식해도 좋을 거 같아요.

-장식이요??? 세상에 우리 집에 장식품을 놓을 자리가 생길 줄이야. 너무 좋아요 흑흑. 센세 이거 모노 컬렉션이라고 아세요? 

-어? 이거 저도 친구한테 보자기 같은 거 선물 받고 너무 이뻐서 집 복도에 걸어두었는데!

-네네 그거 센세 집에서 봤어요. 그 정도 크기면 아마 20만원은 넘을 걸요?

-네에???? 저도 한국 갔을 때 여기서 물고기를 두 마리 샀는데 진짜 큰 맘먹고 산 거였거든요. 그런데도 둘 곳이 없어서 어디 구석에 박아두었는데 어디더라...

-저 그거 뭔지 알 거 같아요.

나는 도도도도 침실 옷장을 열고 냉큼 찾아왔다. 이미 메구상 집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 속속들이 알게 된 것이다 ㅋㅋㅋ 둘이 한참 웃으면서 메구상이 이제 제가 갑자기 치매가 와도 되겠는데요 웃을 수 없는 농담을 했다. 

비싼 모노 컬렉션의 물고기들도 드디어 빛을 보았다. 

그리고 원래 가지고 계시던 무지루시 책꽂이가 다행히 아직 똑같은 게 생산 중이라 하나 더 들였다. 같은 가구로 통일해야 제일 깔끔하니까!

-메구상 이거 다른 데서 책꽂이 사도 되긴 하는데 그럼 미묘하게 높낮이나 크기가 다르잖아요? 그럼 좀 볼 때마다 찜찜할 거잖아요.

-아... 그런 건 찜찜하군요.

-오... 그런 걸 봐도 안 찜찜하군요...?

-아... 우리는 그런 차이가 있었군요.

호오... 호오 하며 찜찜하지 않으신데 그래도 내 말에 납득해 준 메구상은ㅋㅋ 당장 (다른 걸 고민하는 게 더 귀찮으시다며 ) 무지루시 책꽂이를 구입하셨다. 

근데 사실, 난 책꽂이를 하나 더 살 생각이 없었다. 위에서 벽 한편을 차지한 책꽂이가 있으면 될 줄 알았다. (엑소 전용 수납장) 근데 먼저, DVD랑 CD를 정리해보기로 하니 이것도 엑소.. 그럼 여기.. 이것도 엑소.. 그럼 같이.. 이것도... 엑소.. 계속 계속 어딘가에서 엑소가 계속 나오는 거시다!!! 

-센세 맞다! 여기 이 쇼핑백 다 엑소.

ㅋㅋㅋㅋㅋㅋㅋ 정리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엑소의 양 때문에 결국 수납장은 엑소 차지가 되었고 갈 곳을 잃은 책을 위해 다시 가구가 필요하게 됐다. 아무튼 그래도 팬심을 존중해서 엑소 전용 스페이스를 만들어 드린 덕분에 메구상은 이번 프로젝트 중에 제일 맘에 드는 부분이 되었다. 

 

그렇게 즐거운 메구상 프로젝트 중 굵직한 것들은 마무리되었다.

-센세...저 물건을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었네요...

-뭐 좋아하는 물건들만 가지고 계신 거니까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이렇게 삶이 편해질 수 있는 거군요.

-우리가 어차피 밖에서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살잖아요. 그러니까 없앨 수 있는 작은 스트레스들은 바로바로 없애버리자고요.

-그렇네요.. 왜 힘들다 생각하면서 그러고 있었을까요? ㅋ

-지금 제일 좋은 게 뭐예요?

-밤에 화장실 가다가 물건에 차여서 아프지 않은 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둘이 빵) 

아 맞다, 매일매일 이거 폈다 접었다 하지 마시고 

운동 매트 그냥 여기다 펴고 사세요. 뭐 어때요.

그건 게으른 게 아니라 효율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메구상은 나의 작은 착상에 하나하나 놀라주시고 기뻐하셨다. 그거에 흥이 돋아 나도 더 신이났던 거 같다. 이제 한국어 수업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사부작 사부작 갈 때마다 계절 옷 바꿔드리고 불편한 점 개선해드리고 메구상 프로젝트는 영원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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