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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국 SBS 뉴스에서 정말 멋진 보도를 봤다. 길거리 CCTV 영상에 한 남자가 쓰러진 것이 찍혔다. 뒤이어 어떤 여성이 뛰어와 망설임 없이 심장을 누르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몇 분 후 도착한 구급대원이 바통을 이어받았고 그 여성은 금세 횡단보도를 건너 사라졌다. 나중에 전화연결로 매우 건강한 목소리의 남자가 덕분에 살았습니다! 하며 뉴스를 탔다. 보도진은 그 여성을 취재하는데도 성공했다. 그분 집으로 카메라와 함께 찾아갔는데 세 아이의 엄마이자 전업주부였다. 의료관계자가 아니라는 것이 너무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런 건 간호사, 의사, 구급대원, 공직에 있는 사람들만 배우는 줄 알았다. 인터뷰 내용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이,
“세 아이 키우면서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배웠어요. 그 날 하원 시간이라 데리러 가는 길이었는데 쓰러지신 분을 본 거죠. 할 줄 아니까 실행에 옮겼어요.”
….아….. 내가 매일 하루한테 입버릇처럼 하던 말
“우리 쪼꼬만애기 엄마가 꼭 지켜줄게.” 난 맨날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했을까. 할 줄 아는 건 쥐뿔도 없이.

조금만 알아보니 지진과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은 소방서에서 1년 내내 구명강습이 있었다. (한국은 잘 모르겠다.) 사람들 관심도 진짜 높아서 도쿄의 경우 경쟁률이 치열했다. 강습비는 교재비용으로 2800엔. 예약은 그냥 되는 줄 알고 쉽게 봤다가 몇 번 광탈을 했다. 어느 날 아주 작정을 하고 예약 가능 시간이 되자마자 핵 광클로 (입력 정보 메모장에 타이핑 해 놓고 복붙!!) 드디어 성공했다. 3개월 후에 있을 수업을 맘 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그러니까 내가 수업을 예약한 것이 2019년 연말이었던 것이다.
수업 연기 - 정원 축소 - 예약 순서 기다림 등등 우여곡절 끝에 2021년 여름 드디어 강습을 받았다. 후… 몇 번이나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이렇게 치열하다니 아 왜 뭔데 사람 은근히 기대하게 만드네. (이와중에대중심리 ㅋ)

당일 아침 8시 반. 내 기준 꼭두새벽부터 어느 소방서 교육실에 모였다. 앞에는 1인당 한 세트씩 마네킹들이 누워있었다. 수강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었다. 연령이 10대부터 70대까지. 우리는 지금부터 장장 8시간 (점심시간 1시간)의 수업을 듣는 코스였다.

하루 종일 수업을 듣는 건 고등학교 이후 (대학 때도 그렇게 빼곡히 수강신청 안 함) 처음이라 자신이 없었다. 나는 백 프로 졸다 나오겠지. 반쯤 영혼이 나가겠지. 얼마나 어렵게 잡은 기회인데 자기혐오 오지게 하며 이 방을 나가는 건 아닐까 벌써부터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아니 그런데 왠걸!!! 정신을 차려보니 순식간에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호다닥 근처 파스타집에서 밥을 해결하며 흥분을 가라앉혀야 했다.

오전부터 너무나 스펙터클했기 때문이다. 파스타를 씹으면서 다시 과정을 복습했다.
1. 쓰러진 사람을 발견한다.
2. 의식을 확인한다 말을 걸어본다.
모두 진심을 다해 마네킹을 필사적으로 두드렸다. 자꾸 케군이 쓰러졌다는 상상이 가서 동요됐다.
3. 주변 사람에게 지시한다. 구급차를 불러줄 것. AED를 갖다 달라고 부탁할 것.
4. 얼굴에서 45도 각도로 가슴팍이 부풀며 호흡을 하는지 확인한다. (나는 냉정할 수 있을까!!)
5. 가슴팍 가운데 늑골을 두 손을 포개 있는 힘껏 펌핑 시작. 30회. 마네킹 가슴이 5센티 움푹 파이도록.
6. 턱을 들어 기도 확보하기.
7. 코를 잡고 막는다.
8. 입을 포개 크게 인공호흡을 두 번 숨을 불어넣는다.
9. 다시 틈을 주지 않고 흉부압박 30회.
10. 다시 인공호흡.

자, AED가 왔다.
기계를 열어서 전원을 켠다.
이제부터는 이 정밀 기계가 하라는 대로 한다.
1. 가슴 한쪽 옆구리 한쪽에 파스처럼 생긴 시트를 붙인다.
2. 아무도 만지지 않게 환자에게서 전부 떨어진다.
3. 기계는 쇼크가 필요한지 진단하고 만약 필요하다면
4. 쇼크 버튼을 누른다.
5. 다시 흉부 압박을 재개한다.

상대는 마네킹인데 너무 긴박해서 무아지경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몇 십분이나 심폐소생을 하고 있었다. 살짝 팔 근육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힘을 썼다. 마네킨이 제대로 심장에 닿을 때마다 딸깍 딸깍하고 소리를 내서 그 소리를 확인하려면 온 힘을 써야한다는 걸 체득했다. (이건 절대 글로 못 배울 영역이다) 마네킹가지고 이런데 진짜 사람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돌아가서 어린이 심폐소생술을 배웠다. 어린이의 흉부압박은 한 손으로. 성인 마네킹 케군같아서 울컥했는데 아이 마네킹 나 어땠겠음. 이런 주책은 왜 생기는 거지? 진짜 남 일 같지 않다는 게 그날 받은 교육의 가장 큰 소감이었다. 그리고 신생아 심폐소생은 두 손가락이었다. 그리고 특이점은 인공호흡 때 코를 막지 않고 입으로 애기 입과 코까지 다 덮은 다음에 호흡을 불어넣으면 된다. 아기도 AED를 쓸 수 있었다. 애기 버튼이 따로 있었다. 대신 몸에 붙이는 시트는 한 장만 가슴 가운데에 붙인다. (아우 상상만 해도 싫다!!! 아기한테!!!)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이걸 언제 쓴다고 배워라고 생각하지 말고 쓸 일이 안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배우자고 했다. " 문법적으로 상당히 아무 말인데 매우 감동적이었다. 

자격증도 주셨다. <상급 구명 기능 인증서> 오... 정말 오랜만에 잿밥이 아니라 염불에 맘이 있는 짓을 했다. (나답지 않아.. ) 집에 가는 길에 이 말이 떠올랐다. 아는 것이 힘이구나... 내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작은 힘이 생겼다. 몰랐다면 절대 하지 않을 작지만 엄청난 행동. 꼭 쥔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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