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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짱이 자기가 놀란만큼 날 놀라게 해 주려고 단단히 맘먹은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그거 알어? 탈북자 유튜브를 보는데 평양에선 설날에 만두를 빚는대. “
너무 놀랐다. 핀트는 다르지만 너무 놀랐다.
“설날엔… 원래 만두를 빚잖아.”
다시 부메랑 처럼 돌아온 충격에 추짱 얼굴은
‘이게 뭔 개소리지?’ 이렇게 내게 대답했다. (추짱이 말고 얼굴만)
동 : 설날엔 다 같이 모여 만두를 빚는 날이잖아. 만두 빚으려고 명절엔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추: 다 같이 뭘 해? (영혼이 현실을 부정하려고 탈출한듯)
동: 추석엔 송편을 빚으려고 모이고 설날엔 만두를 빚으려고 모이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사람 많고 북적이고 그런 거 아냐? 명절이란 게.
추: 소… 송편은 빚지. 빚는데 만두를 집에서 빚어?
동: 뭣??! (What!?의 느낌의 뭐!) 명절이 아니더라도 만두를 집에서 안 만든단 말이야?
추: 만두는 사 먹는 음식이야.
우린 둘 다 어딘가를 허우적대며 상황을 정리하려 애썼다. 아니, 아니 그러니까 아니, 명절엔, 아니 그니까 서울은 만두를 빚어서 먹고, 그러니까 부산은 아니 그러면 무슨 국을 먹어?
탕국!
응? 뭐라고?
탕국.
그래 전국 팔도 내가 안 들어 본 음식 이름이 한 두 개일까. 내가 모르는 한국음식은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서울 다음 가는 대도시인 부산에서 그것도 명절이라는 큰 절기에 먹는다는 대표적인 음식 이름이 너무나 생소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동: 나.. 탕국이란 말을 처음 들어 봐. 너네 집만 먹는 그런 거 아니고?
추: 그 단어 자체를 처음 듣는다고?
나는 탕국이 뭔지 검색해서 처음으로 사진을 봤다.
(설날인데… 소고기 뭇국을 먹네. 의외로 많이 간소하게 지내는구나.)
동: 근데 소고기 뭇국은 나박 썰기인가? 납작하게 썰잖아. 여긴 깍두기처럼 넣네?
추: 그치 차례 지내는 거니까 정성껏 반듯하게 모양을 내는 거지.
‘아.. 간소하게 만든다고 입 밖으로 안 낸 나 잘해따 위험해따’(두근두근)
이어서 ‘설날 만두’ 키워드를 검색한 결과를 추짱에게 보여줬다.
설날 만두 주문 광고 글. 설날 만두 빚는 법. 설날에 남은 만두 활용법. 설날엔 만두를 먹고 다니는 현실이 어딜 봐도 빼박이었다. 추짱 동공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속해서 흔들렸다.
그날 집에 갈 때까지 다른 서울 사람들한테 확인해야겠다고 끝까지 확신이 안 서는 눈치였다. (내가 ㅋㅋㅋ 뭣하러 그런 거짓말을 할까! 에라이! )
그리고 두 번째 깨달음을 얻은 자
장금이 언니.
동: 언니 부산에선 설날에 탕국을 먹는다면서요?
장: ???? (왜 넌 안 먹는 것처럼 얘기하는지 장금둥절.)
동: 서울에선 설날에 만두를 빚어요.
그리고 언니는 ‘이게 뭔 개소리야’ 얼굴을 했다.
괜찮아요. 전 두 번째니까요.
그리고 똑같은 전철을 밟아갔다.
부정기 - 검색기 -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기 - 놀란 가슴 진정하기
언니가 탕국에 악센트는 ‘탕’이 아니라 ‘꾹’에 있다고 부산 성조(?)를 고쳐주었다. 나도… 먹어보고 싶다. 탕꾹 발음도 잘할 수 있으니까.
우리만 발견한 일은 아닐 테고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관련 기사가 하나 있었다.
오오… 성동권 기자님 ‘만두 지도’까지 첨부해 주시다니. 윗 지방부터 온통 만두 문화이고 (그래서 황해도 보다 위인 중국인 전국적으로 만두를 먹나 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떡국 문화인데 중간에 낀 서울을 포함한 곳은 떡 만둣국이 가능! 그렇지. 떡만둣국 넘나 자연스러운 조합이지….
기자님은 설 명절이어도 그렇게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아래 지방은 보존 기간이 짧아서 명절 음식으로 정착되지 않았다고 정리하셨다. 고기랑 야채 속을 넣은 만두는 밖에 내놓으면 금방 쉬니까. 캬. 신기하네 작은 나라에서 식문화가 이렇게 다른 것.
부산 가면 먹어야 할 게 늘었다.
시장 떡볶이, 탕국. 또 뭐가 다를까.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이게 뭔 멍뭉이 소리지’ 얼굴을 하고 있는 분은 몇 명정도 될까. 궁금쓰.
오늘은 소고기 뭇국 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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