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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어에 재미를 느낀 나는 스카이프로 필리핀 선생님과 하는 화상영어에 등록했다. 후아유도 바로 안 나오는 실력이지만 어쨌든 영어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나는 일부러 하루가 집에 있는 시간에 수업을 하는데
1. 엄마도 못하는 게 많고 그래서 늘 공부를 하고 있어. 2. 영어 스피커와 말 하는건 무서운 일이 아니야.
3. 집에서 컴퓨터를 통해 공부를 할 수도 있단다. 등등 여러가지를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가 영어 공부를 하는 동안에 하루가 얌전히 엄마를 기다려주고 괜히 한번씩 얼굴을 보여주며 선생님들이 큐트~ 하이~ 왓츄어 네임? 하고 물어보면 나름 쭈뼛거리면서도 아임 하루. 씩스 이얼즈 올드. 대답도 하는 기특한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날도 낮 시간에 화상영어를 하고 있었다. 때마침 하루가 학교에서 집에왔고 그날따라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지 갑자기 흥분해서 수다를 떨길래 하루야..쉿 쉿... 조용히 시키고 다시 수업에 집중하려는데 하루의 담임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처음으로 하는 통화. 옴마야... 나 학부형이었어. 떨려!!!) 필리핀 선생님한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이 무슨 서류가 안보여서 어쩌구 저쩌구 말씀을 하셔서 초 집중... 하고 싶은 내 옆에서 하루가 계속 엄마!!! 오늘 난요우비? (무슨 요일이야?) 낭요우비? 나니? 난요우비?? 계속 치근덕 치근덕 집요하게 무슨 요일이냐고!! 대체 뭔 요일이냐고. 하필 지금. 나한테 왜이러는 거냐고.
필리핀 선생님은 기다리고 있고, 담임선생님과 통화중이고 하루는 나한테 계속 집요하게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질문을 해대고 그 짧은 순간에 내가 받은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나는 손바닥으로 하루의 머리를 후려쳤다. 하루는 후엥!! 울음소리와 조용해졌고 손으로 머릴 치고 째려보는 내 모습이 카메라를 통해 그대로 필리핀 선생님한테 보여졌고, 정황상 담임선생님은 비디오 보듯 뻔하게 알았을 것이다.
근데 이 모든 상황 옆에 케군이 서 있었다.
왓더.....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이라도 갔을까? 내가 전화를 끊고 아무 집중도 못하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며 무슨 정신인지 모르게 화상영어를 끝내고 나니까 나한테 와서 왜 애를 때리냐고. 애 때리면 안된다고 이따구 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포효를 했다.내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건 니 때문이자나!!!! 니가 나랑 같은 이 애의 부모면, 애를 조용히 시키던가 담임의 전화를 받아주던가 뭐라도 했어야 됬던거 아니야???얘가 무슨 요일이냐고 난요우비! 일본어로 하는 걸 들었으면서 그걸 대답해 주는 게 그렇게 어려웠냐고!! 나를 왜 그런 극한 스트레스로 몰아넣었어? 너는 내가 이러는 동안 도데체 뭘했어!!!!!!!야!! 냉장고처럼 서있을거면 그런건 아무나 다해!!! 애만 낳으면 뭘하냐고 넌 냉장고나 다름없는데!!!!!야 이 냉장고새끼야!! 냉장고는 쓸데없는 말이라도 안하지. 뭐?? 애는 때리면 안 된다고??? 그걸 누가 몰라서 이래!!!!!???
한바탕 이런일이 있어도 애 영어 학원에 데려가는 건 내 몫이다. 거지같은 기분을 끌고 하루를 학원에 데려다주는 그 길이 처참하고 지옥같아서 견딜수가 없었다.

개비싼 카페에 가서 개비싼 케이크를 먹을거야.
예쁜 카페에 앉아마자 괌친이 (괌에사는 내친구) 혀니한테 카톡이 왔다.
-언니 뭐해요?
-나 지금 눈물을 참으며 비싼 케이크 먹고 있어
-악 소리 나는 곳인가요?
-아니 진짜 너무 서럽고 슬픈일이 있어서
-무슨 일 있었어요?
(상황설명 중략)
-왜 나만 그런 스트레스 속에 있어야 햇지? 왜 이 놈은 애를 조용히 시키지 않아? 그러고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동영상을 보내주셨는데 (항상 수업 동영상을 피드백과 함께 보내줌) 거기 다 찍힌거야. 몇번을 돌려보며 내가 얼마나 눈물이 차오르고 억울하던지.
거기다 덤으로 애를 구석에 몰아넣고 얼마나 잡았는지 몰라. 너는 꼭 오늘 무슨 요일인지 엄마 입으로 들어야했냐고 너는 왜 그랬는지 말해보라고 그 이유 말 할때까지 엄마도 집요하게 물어볼까? 어? 이러면서. 그리고 우는 애를 영어 보내놓고... 나는 케잌집에서 눈 시벌개져서 이렇게 처음으로 오늘 나에게 상냥하게 해준 사람과 이야기 하고 있는거야.. 나 너무 눈물나... 그 동영상을 볼 때마다 비참해. 난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그 필리핀 선생님은 날 얼마나 미친여자로 심한 엄마로 봤을까.
예쁜 카페에서 커피가 식은 줄도 모르고, 입도 안 댄 케이크를 앞에 두고 계속 카톡만 쳐다봤다. 마스크 안이 눈물로 범벅이 됬고 코가 벌겋게 부어오른게 느껴졌다.
-에휴 가마니 같은 남자랑 살면 그렇죠. 우리 남편도 비슷해요.. 그리고 언니 필리핀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 안할거에요. 필리핀, 가정 내 처벌이 엄청나거든요.
-진짜...?
이런 작은 기적이... 괌친이 남편은 필리핀 사람이다. 필리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가 어쩜 그 시간에 나에게 딱 카톡을 할 수 있을까. 그게 또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왈칵 나왔다.
-우리 남편도 부처같은데 필리핀 도착하자마자 애가 짜증내면 너 여기서 그렇게 버릇없이 하면 바로 맞을거야. 여기 미국아니야! 하면서 훈육했어요.
-(너무 이상한 상황인데 이런 말 바람직하지 않지만) 나지금... 너무 위로가 되... 나 오늘 하루한테도 케군한테도 진짜 아무말도 안할거야... 정말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았던 적이 없었던거 같애.. 너무 힘들어. 자기는 “일” 하고 있으니까 집에 있지만 집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라면서 엄청 강조해. 돈만 벌면 단 줄 알아.
그렇게 타이밍 예술로 친구에게 위로를 받아서 지옥같은 기분보단 나아졌지만 케군에게는 도무지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거의 일주일 내내 무슨 말만 하면.
-후.... 니가 하는 게 뭐야?? 냉장고야? 애를 그렇게 몰라. 내 맘도 몰라.. 쯪쯪... 애는... 애는 항상 나 혼자 키우지...
이 말을 달고 살았다. 일명 ‘애는 혼자 키우네 주간’
그 때 하루가 우리집 룰 이라고 종이에 뭘 크게 썼는데 내용이 ‘냉장고처럼 서 있지 말기” 였다. ㅇㅂㅇ;;;;;
하지만 애는 혼자 키우네 주간은 극적으로 끝났다. 돈만 벌면 단 줄 아는 케군은 자신의 특기를 살려 애플워치를 시킨 것이다.


와... 이시키바라...

하 놔.. 내가 뭐 이런거에 나 참. 헐

아... 진짜... 실내에서도 실외에서도 이쁘네...

참 나...
-야..... 내가 진짜 이런 걸로 맘이 풀릴 거 같애? 근데 진짜 신기하게 와.. 눈 녹듯 녹는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진짜...
케군은 드디어 환하게 웃었다.
그래도..그러지말자. 넌 냉장고가 아니라 남편이잖아. 우리 같이 부모잖아. 서로의 스트레스를 나눠야 하는 거라고 진지하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머리 때려서 미안하다고 하루한테도 진심으로 사과했다. 참지 못한 엄마 때문에, 하루가 나빠서가 아니라 엄마가 나빠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라고. (엄마 그렇게 잘못하지 않았어. 엄마가 좀 나쁜엄마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가 엄마였으면 좋겠어라고 하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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