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하루의 공부 루틴이 다 깨져버려 엄청 후회했던 온천 여행. 하지만 우린 희미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무릅쓰고 갔다 왔다. 이놈의 여행병... 나랑 기질이 참 다른 남편이지만 정말 잘 맞는다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놀랍도록 우린 둘 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시어머님은 짐 싸고 푸는 게 너무 귀찮아서 아무 데도 안 가시는 분이었다는데 늦바람이 무섭다고 20대 중반부터 나랑 다니던 여행을 시작으로 케군은 지금 완전한 여행자가 되었다. 아마... 짐을 내가 싸고 풀어주니까 가능했던 거 같기도 하다.
키누가와 온천은 지난번 하루랑 내가 둘이 갔던 닛코 바로 옆에 있는 온천지역이다. 그래서 그때 탔던 스페시아 엑스 열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 하루는 아빠한테도 그 멋진 열차를 꼭 소개해 주고 싶다며 (누가 들으면 거기 주식이라도 보유한 줄) 제발 아빠를 데리고 닛코 쪽을 한번 더 가길 희망했다. 아니 그런데 운명처럼 우리가 아직 안 쓰고 남겨둔 주주우대 할인권을 검색해보니 딱 키누가와에 알맞은 여관도 있었다. 우주가 우리를 키누가와로 보내고 있어.
하루랑 케군은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포장하러 갔고 나는 바로 건너편 케밥집에서 브리또를 주문했다.


비프랑, 치킨, 비프 치킨 믹스 중에 뭘로 하실래요? 물으셔서 믹스로 주세요. 했더니 치킨이 아직 덜 구워져서 지금 당장은 비프 밖에 안 된다고 하신다. 그러면... 왜 저에게 선택지를 주셨을까요. 이런 잠깐의 실수로 그분을 판단하지 말자... 비프로 포장을 했다. 요구르트 맛나는 사워크림이랑 매콤한 소스랑 섞인 소스로 골랐다. 엑스트라 피클 가능하면 무조건 플리즈. 아침시간이라 잠시 스위치가 늦게 켜지셨나 봐. 나머지 음식은 호로록 촤차착 너무 프로페셔널하게 만들어 주셨다. 사실 일잘러 셨음. 아사쿠사 역 앞 사거리에 있는 이 집. 다시 꼭 가서 먹어야겠다.


우리는 아빠 찬스를 써서 지난번 카페 분위기의 라운지 시트보다 좀 더 고가의 개인룸을 예약했다. 알람 맞춰놓고 내가 집에서 광클해서 겨우 성공했다. 한번 튕겨서 혼자 소리 지르고 하마터면 못할 뻔. 그날 모든 스페셜 룸이 다 예약이 찼다. 스위트 룸까지 예약된 걸 보고 그런 곳은 누가 타는 걸까 궁금해서 살짝 엿보니 휠체어 탄 분을 포함한 대가족이었다. 아... 그런 분들에게 이런 서비스가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정말 편하게 갈 수 있겠네.


하루랑 둘이 구경왔을 때는 매우 으리으리하고 되게 커다란 방이었는데... 세상 모든 것은 다 상대적인 것이었다. 왜 케군이 들어오니까 비좁고 협소한 걸까. 이렇게 작았나...? 갑자기 되게 쪼꼬매 보이네 ㅋㅋ

선물로 물티슈를 받음

어김없이 토부 전철 역무원이 오셔서 기념사진을 찍어주셨다. 생각해 보니 다른 전철 기업보다 비교적으로 토부 전철 직원들은 하나같이 사교성이 좋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높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업 특징인가 보다.

햄버거랑 브리또를 먹고 하루가 챙겨 온 보드 게임을 했다. 역사 인물 설명 듣고 이름 맞추기 게임도 했는데 일본 위인에 대해 내가 아는 게 없으니 당연히 꼴등이었지만 근대사가 나오면 무조건 '이토 히로부미!!'를 외쳐서 하나 맞추는 데는 성공했다. 하루가 도대체 왜 이토 히로부미는 잘 아냐길래 우리가 얼마나 안중근을 중요하게 배웠는지 알려줬다. 하루도 이미 학원에서 배워서 안중근을 알고 있었다. 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살인자로 가르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살인의 대한 이야기보다 조선의 해방의식을 싹 틔운 의미 있는 인물로 꽤 영웅적인 표현 하더라.
가끔 하루가 역사 공부를 하다가 이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달려와서 알려주기도 한다.
-엄마 사이고 다카모리는 좋은 사람이었대.
-어떤 사람인데?
-한국을 식민지화 하는 걸 반대하고 정부를 떠난 사람이래.
-와.. 좋은사람이다.
하루가 일본인보다 한국인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고 전쟁이나 무력을 쓰는 집단에 대한 혐오가 있어서 그런 기준으로 선과 악을 나누는 거라고 한다. 한국 남자들이 누구나 군대에 간다는 것도 무섭고 안쓰럽게 생각하는 걸 보면 확실히 한국에 특별한 애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듯. 한국과 일본을 비교불가하게 똑같이 사랑하는 아이.




떠나는 스페시아 엑스를 쓸쓸히 배웅하는 하루

시모이마이치 역에서 하차했다.

플랫폼에 있는 세면대의 용도는 무엇일까.
시원하게 등목이라도?


여기는 증기기관차를 탈 수 있는 역이다.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석탄 태우는 증기 기관차.
이것도 같은 날 광클하면서 미친 듯이 예약했는데 의외로 표가 많이 남았음 ㅋㅋ 서두르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그림책에서나 보던 증기 기관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저 멀리에서 오는 걸 봤다. 산업 혁명이 일어날 때 촌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실제로 보고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건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너무 새까맣던 것이랑 어질어질하게 진동하는 연료냄새였다.

세상에... 이동네 사는 사람들 빨래는 괜찮은가.
저거 마시면서 일하면 수명 단축되는 거 아니야.


그나저나 토마스 만화 안에 들어온 거 같은 이 비현실적인 느낌. 관광 텐션 엄청 오른다.

기관차가 방향 바꾸는 동안 사람들이 숨죽여 지켜봤다.

아들까지 제치고 일렬에서 케군이 제일 좋아했다. 이자슥아 아들을 가까이 보여주라고.

자꾸 손을 흔들며 자기 주장하는 하루. 알아봐달라는 건지 뭔지. ㅎㅎ 귀여워 죽겠네.

근엄하다.


한참 박물관도 구경하고

기차 시간까지 잠깐 역에서 나와 동네 슈퍼 구경 갔다. 이 지역은 딸기가 특산품이라 질 좋은 딸기가 박힌 크레이프도 있었다. 슈퍼에서 크레이프... 생딸기까지... 신박하다.

우리가 탈 증기 기관차가 들어왔다.

플랫폼에서 가까이 보니까 어마어마하게 중압감이 느껴졌다.

옆에 꼬맹이는 모자까지 쓰고 조기 교육받은 귀욤이. 이미 취향이 확실하구나.

눈이 초롱초롱하다. 흥분해서 강아지처럼 난리가 났다.

내부가 굉장히 레트로 했다. 가는 내내 차창 밖이 검은 연기 필터가 씌워져서 선명하게 풍경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것 또 이상하게 낭만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곳마다 손을 흔들어 주었다.
토부 전철과 힙을 합쳐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 증기 기관차가 지나가는 걸 목격하면 마을 사람들이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모두 다 그걸 찬성하진 않았을 텐데 대부분 흔들었다. 빨래 널던 아줌마도 농사일하던 아저씨도 갑자기 허리를 펴고 손을 흔들었다. 사람들 참 착하네...ㅠㅠ 도시였으면 또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권리와 자유가 있다고 시끄러웠을 거다. 그래서 결국 대도시에서는 모두가 함께 뭘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모두가 함께 뭘 안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


키누가와 온천 역에 도착!
'여행 하는 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코네] 스포츠카 타고 부부여행 (19) | 2026.07.05 |
|---|---|
| [키누가와] 후편 : 카페 <코코아>/ 로프웨이 / 키누타테이와 다리 (7) | 2026.06.08 |
| [닛코 여행] 토쇼구 東照宮/ 메이지관/ 혼구 카페 (10) | 2026.03.20 |
| [닛코 여행] 닛코 커피 / 타보자와 고요우테이 (4) | 2026.03.19 |
| [닛코 여행] 스페시아 엑스 라운지 객실/ 닛코 스테이션 호텔 클래식 (14) | 2026.03.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