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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에서 돌아온 이틀 뒤 다시 비슷한 짐을 꾸려 닛꼬로 향했다. 시간이란 시간을 그러모아 여행으로 불살라버리겠다. 이번 여행은 하루와 단 둘이 떠나서 오목조목 혼자 하루를 곱씹고 성장을 자찬하고 구석구석 뜯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너무너무 기대된다.

하루가 가장 기대했던 것은 아사쿠사에서 <스페시아 엑스>를 타고 닛코로 가는 일이었다.

닛코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KTX랑 무궁화처럼 기차 종류가 있고 다양한 객실이 있었다. 한국 관광열차 중에 온돌방도 있던데 그런 서해나 남해를 달리는 특이한 객실도 꼭 가 보고 싶다. 앉아서 술 마시면서 좌식으로 타고 가는 거라던가 이동하는 순간부터 여행 느낌 폭발하니까.

우리가 추가요금 3000엔을 내고 예약한 객실은 라운지 칸이었다. 생맥 커피 아이스크림 과자 메뉴가 있었다. 먹거리보다도

분위기가 너무 카페 같잖아!

ㅇㅂㅇ 아악 가는 내내 카페 느낌이라니!!

완전 우리 아들 호텔 라운지 온 줄

콜라는 열차에서 사고 버거킹은 타기 전에 사 왔다. 버거킹에서 포장을 기다리는 동안 내 앞에 있던 젊은 아가씨 두 명이 생각난다. 한복 입고 유럽 가는 것이 한창 유행했던 거랑 같은 걸까? 베트남 전통 옷을 입고 일본 여행을 하고 있었다. 두리번거리고 있길래 내가 손짓 발짓으로 위에 자리 있으니까 먹고 가도 된다고 말해줬다. 아니 허우적 해줬다.

버거킹에 오면 또 생각나는 하루의 성장스토리가 있다. 좀 어렸던 하루는 어딘가에서 안 좋은 경험을 하면 그 자리나 그 상황 자체를 거부해 버렸다. 어떤 가게에서 혼이 나면 그때의 슬픈 기억이 떠올라 다시는 그 가게에 가지 않았다. 예전에 버거킹에서 시킨 메뉴가 번 뚜껑을 열어보니 이것저것 양파에 머스터드에 못 먹는 것 투성이었다. 원래 다 입맛대로 오더 할 수 있는데 키오스크 조작에 실패한 것이다. 저걸 받아서 어쩌려나 보고 있으니까 끙끙대면서 최대한 못 먹는 재료를 빼서 먹는다. 한참 오만상을 쓰고 자기 실수가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화가 나는데도 엄마한테 티 안 내려고 (하지만 너무 티는 많이 나고) 애쓰더라. 속으로 나는 기특은 하지만 다음부터 버거킹 가자는 소리는 안 하겠다 싶었는데 오늘 기차 타기 전에 버거킹에서 포장을 하자고 한다. 이번엔 완벽하게 잘할 수 있으니까 다시 도전하게 해 달라고. 정말 별 거 아닌데 작은 극복의 순간을 보는 기분이었다. 정크 푸드 먹으려고 계속 시도하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기특하던지. 결국 빵이랑 고기 치즈 가득한 버거킹 메뉴 시키는 데 성공했다.  

후식으로 스페시아 엑스 오리지널 버터 샌드와 커피

하루는 아이스크림.

노을 속을 달린다. 시간이란 정말 쏜살같다는 게 눈으로 보여서 이 순간이 아까웠다.

차장님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셨다.

이걸 들어보래.
아이폰을 빌려달래.
기념사진을 찍어주신다. ㅎㅎㅎ

우리는 잠시 손님도 별로 없는 거 같길래 제일 앞까지 구경을 가 보기로 했다. 우리를 따라서 차장님이 오시더니 말을 걸어주셨다.
“지금 승객 없는데 혹시 스위트 룸 보여드릴까요?”
“네!!!!!”
저희 어머님이 학실합니다!!!

진짜 씬나서 따라갔다.

여기는 2번째로 비싼 개인룸.
완전 해리포터잖아…

애기랑 여행 오는 가족들한테 딱이다.

대망의 스위트 룸.
기관실이 보인다는 게 킬 포인트다.
정상회담도 가능할 거 같은 분위기와 위치 세팅

슬리퍼 무료 제공

물 무료 제공
아니… 일본의 역무원들은 굉장히 샤이하고 부끄러움 많이 타는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 분은 사뭇 달랐다.

대통령처럼 사진 찍어주시는 센스

앉아보라며 사진 막 찍어주시고

잠깐 기다려보세용.
총총총 기관실에서 모자를 갖다 주신다.

기념사진을 찍어보세용.

저라도 괜찮으면 같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너무 유쾌해서 하루랑 내내 함박웃음을 지었다. 참 신기하게 아빠랑 같이 여행할 땐 이런 에피소드가 하나도 없을까. 사람들의 촉이란 대단한 것 같다. I에게 뿜어져 나오는 시그널을 수신받기라도 한 듯 케군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일이 없다. 하지만 E 모자가 가는 곳엔 이렇게 사람과 섞인다. 저희에겐 말 막 거셔도 괜찮습니다! 얼굴에 쓰여 있나 보다.

밤 7시에 도착한 닛꼬역.

싸게 예약한 역 앞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굉장히 오래된 호텔이었는데 역 바로 앞이어서 사실은 비싼 방이었다. 그런데 마침 일주일간 목욕탕이 수리에 들어갔고 온천탕 이용을 안 하는 대신 반 값에 팔리고 있었다. 하루 혼자 온천탕에 보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옳다구나 예약을 했다. 어쩜 호텔한테 손이 있었다면 하이파이브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닛코에 도착하자마자 하루와 내가 수도 없이 이 말을 반복했다.
공기가 상쾌해…
뭐지… 공기가 맑아.
아~ 너무 공기가 좋아.

온도가 낮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민트 씹어먹을 때 코가 뻥 뚫리는 듯 굉장히 신선한 공기가 폐에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이건 정말 유튜브를 아무리 재생해도 체감할 수 없는 여행의 진가다.

오잉 JR 닛코역이 이렇게 핑쿠하고 귀여웠다니.

유일하게 영업하고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하루는 우동

우리처럼 길에 다니던 모든 관광객이 거의 이 집에 들어왔다. 일본인은 온천 여관에서 저녁밥 포함한 여행을 하느라 안 보였고 다 외국인 손님이었는데 꼬깃한 앞치마에 꽃무늬 머릿수건을 두른 아줌마가 갑자기 유창한 영어로 주문을 받으셔서 깜짝 놀랐다. 영어 발음에 카타카나 스멜이 전혀 없었다. 미드 보고 공부하셨나? 유학파인가..?! 하루가 톡톡 손가락으로 날 두드리면서
“저 아줌마도 엄마처럼 노바 다니나 봐.”
ㅋㅋㅋㅋ 내가 다니는 영어회화 학원에 다니는 거 아니냐고 했다. 확실히 내가 다니는 영어회화의 낮 시간은 50대 이상의 시니어 학생들로 붐빈다. 정말 열심히 취미활동하는 일본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근처 슈퍼에 산책을 갔다.

슈퍼 앞에 코인 정미소가 있었다. (신기..)

호텔 앞에 있던 예쁜 카페에서 커피를 사 갔다. 수제 맥주를 만들어서 파는 가게였다. 직원 언니가 어찌나 친절한지 집에 갈 때 여기서 케군 맥주를 선물로 사 갔다.

하루가 파란색 봉투의 설탕을 신기해서 만지작 거리니까 그건 아이스 커피에도 녹는 특수한 설탕이라면서 선물로 주셨다. 정말 안 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아이들은 뭔가 갖고 싶을 때 얼굴이 참 뚜렷하다. 이거… 갖고 싶다… 음성지원이 될 것 같은 얼굴을 한다. 이럴때 부모들은 참 민망해죽겄다 이것들아 ㅋㅋㅋㅋ

이런 갬성 사진 찍어주는 우리 아들.

샤워하고 드러누워 슈퍼에서 산 양갱을 먹으며 티비를 봤다. 한국 <무궁화 반점>에서 먹방 대결하는 일본 방송이었다.

<무궁화 반점>가 보고 싶어지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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