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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탕이 수리 중이라 아무도 안 오는 온천 호텔에 달랑 우리만 체크인을 했나 보다. 조식 회장이 텅 비었다. 우리가 예약을 안 했으면… 오히려 이 음식들을 세이브하고 돈이 굳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려고 한다.



진짜 맛있었던 조식.
제발 우리 말고 손님 있어라 ㅋㅋㅋ




또 나오나자마 신선한 공기가 덮쳐온다. 정말 세포 하나하나 다 맑아지는 기분이다. 저기 저 산은 혹시 알프스가 아닐까. 어딘가에서 요들송도 들려올 거 같애. 공기 하나로 사람 기분이 신날수가.

어제 잠시 스쳐간 핑크 닛코역을 자세히 보러 갔다.
나는 너무 마음에 들어 하는데 하루는 엄청 시큰둥하고 그래? 음… 그래? 그 정도야? 영혼 없는 맞장구를 쳐 준다. 뭐 그렇게 맘에 들면 사진을 찍어줄게 정도의 텐션으로 사진 찍어주고 다 봤으면 빨리 가잰다. 핑크에 반응하는 여자와 핑크에 절대 마음을 뺏기지 않는 남자는 본능적으로 유전자에 각인이 되어 있는 걸까? 나처럼 메마른 여자도 이렇게 역 전부가 핑크면 … 좀 귀여운데? 남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니 신기한 일이다.
이걸 AI에 물어봤더니 학습된 후천적 영향이 크지만 또 하나의 가설로 이런 얘기를 했다. 남자들은 고기를 사냥했고 여자들은 과일이나 열매를 땄기 때문에 붉은색에 반응한다고. 상당히 설득력 있다. 그럴 수 있지 그래서 과일이면서 빨간 딸기를 보면 여자들은 제일 환장하는 걸까. 딸기 철이 되면 일본의 디저트 업계는 저세상 레벨로 딸기 칠갑을 한다. 제일 여자들이 열광하는 디저트가 딸기 파르페인 줄 아는데… 맞을지도 모른다.



닛코 역 2층엔 아무것도 없었다.
무도회를 열어야 될 것 같음.


걷다가 가고 싶었던 카페가 나타났다.
아! 여기 구글 맵에서 깃발 꽂았던 곳인데! (그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오래된 가옥을 개조한 카페가 닛코에는 여러 군데 있었지만 여기가 가장 줄이 길고 유명하다고 했다. 평일 아침이라 아무도 없는 맛집을 지나칠 수 없지.




하루 : 아빠가 같이 왔었으면 조식 먹을 때 커피 마셔놓고 또 카페 안 오려고 했을 거야.
엄마: 그치? 엄마는 근데 커피 말고 이 분위기를 여행하는 거잖아.
하루: 나도 좋아.
엄마: 그런 하루랑 와서 너무 좋앙.

이런 여자들끼리 하는 여행을 아들이랑 할 수 있는 게 너무 좋다고 한참 꽁냥 대고 나왔다.

주문한 대로 갬성 사진도 불평 없이 찍어준다.

나는 하루가 가고 싶다던 역사 유적지를 군말 없이 따라간다. 우리의 상호 거래는 이렇게 평화롭게 여행 내내 이어졌다. 여기는 <닛코 타보자와 고요우테이> 라는 곳이었다. 日光田保沢 닛코 타보자와라는 지역에 있는 御用邸 고요우테는 천황이 살았던 저택이나 별장 같은 데에 붙이는 이름이었다.

이게 왜 이렇게 보존되어 있냐면 못 하나 박지 않고 나무를 이어 붙인 장인의 건축물이기 때문이었다. 다다미 한 땀, 벽지며 문지방까지 모든 것이 전통적이고 최고급 소재와 기술로 만들어졌다.




특히 이 방은 다다미 사이의 하얀 띠들을 절대 밟으면 안 됐다. 실크 소재라서 올 풀린다고… 밟을 수 없는 방바닥… 다 뭔 소용인가… 싶지만 천황만은 밟고 댕겼겠지. 다행히 이 방만 그랬다. 겅중겅중 금 밟지 않고 땅따먹기 한 판 하고 나옴.


눈 쌓인 풍경을 살면서 거의 본 적 없는 도쿄 태생 아이는 이 정도 빈약한 눈 밭도 감동을 하며 손으로 훑고 다녔다. 서울에 매년 펑펑 눈이 쏟아지면 차가 막혀서 짜증이 솟구치던 서울 여자는 가소로워 웃음이 났다. 언젠가 눈이 소복이 쌓인 곳을 꼭 가보고 싶단다.
하루: 엄마 한국엔 첫눈이 오면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만난다며?
엄마: 어떻게 알았어?
하루: 드라마에서 봤어.
엄마: 맞아. 로맨틱하지?
하루: 아니? 이해가 안 가. 약속도 안 하고 그렇게 만나? 서로 뭐 하고 있을 줄 알고?
엄마: 그러니까 로맨틱하지?
하루: 잘 모르겠네.
눈을 보면 무조건 설레면서 그건 또 이해가 안 간대. 감수성이 풍부한 건지 냉랭한 건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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