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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아직 친구가 남아있는 이유는 내가 먼저 만나자는 말은 잘 못해도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꼬리 치며 바로 뛰어가기 때문인 것 같다. 반드시 언제 만날 수 있는지 빈 스케줄 보내서 고르게 만든다. 처음엔 빈말로 연락했는데 진짜 나는 만나러 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란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신중하고 섬세한 미니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이 조용한 친구가 나를 간택해서 정기적으로 만나자고 해 주는 것이 너무나 고마울따름. 내가 먼저 만나자고 안 하는 건 주말 평일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승무원이 당연히 훨씬 바쁘겠지 싶어 잠자코 기다리는 것이다.
 
많이 수다떨고 싶으니까 아침 일찍 불렀다. 미니가 알려 준 카구라자카의 새 도넛 집에서 만났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다. 

저 수레째 끌고 가고 싶네. 

다음엔 계란 올라간 도넛 꼭 다시 먹으러 가야겠다. 

피스타치오 크림 너도 다음 희생양이다. 
神楽坂 d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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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cō?神楽坂 · 일본 Tokyo, Shinjuku City, Kagurazaka, 6 Chome−67-1 1F

3.7 ⭐ · 제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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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내가 종종 사람들을 데려가는 카구라자카 일식집으로 갔다.

ゆか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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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kawa · 3 Chome-1 Kagurazaka, Shinjuku City, Tokyo, 일본

4.2 ⭐ · 가이세키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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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네 새 집에서 집들이 겸 만난 날 직장에 대한 미니의 깊은 고민을 함께 나눴었다. 지금까지 다른 해외 항공사에서는 천직이라 생각할 정도로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늘 즐겁게 해 왔는데 일본 항공사에 가자마자 삶의 질이 바스러지는 경험을 했다. 아프고 힘들게 퇴사하고 그래도 다시 또 돌아간 승무원. 그런데 이번 항공사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기업은 다 이 지랄인가... 아니면 내가 엄살인가. 상담을 할 자격은 없지만 이런 물음에 아냐... 이건 심해... 너무 했네 공감 백배 해줬다. 그날 나는 승무원이 아닌 사람으로 그녀가 살 수 있을지. 아니면 아무리 험준해도 하고 싶은 일을 붙잡을 건지. 무엇을 잃는 것이 더 괴롭지 않을지 더하기 빼기를 해 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만나고 오는 길에 사실 생각했다. 자기 직업에 그렇게 만족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일을 계속하지 않을까. 조직이 거지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둬야 하는 타협은 진짜 견디기 힘들 거라고.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환하게 웃으며 미니가 일을 때려치우고 왔다. 어릴 때부터 꿈꾸고 또 이루고 오랫동안 해 왔던 일을 놓은 후 허탈하고 안타까울 줄 알았더니 오히려 그렇게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해 볼 건 다 해보고 안간힘을 다 써 봐서 손톱만큼의 미련도 남지 않은 느낌이었다. 정말 후련해 보였다. 미니를 보며 인생이 하나의 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또 생각한다. 한 길만 가는 게 아까울 정도다. 매일매일 지금과는 다른 일상을 보내며 재밌어하는 미니를 보니까 정말 크게 안심되고 나까지 행복했다. 

코-히칸 珈琲館 에 또 커피를 마시러 가서 수다를 떨었다. 여기저기 있는 체인점인데 이런 팬케이크 집 처음 와 본다며 신기해한다. 미니가 앞으로 알아가야 할 작고 소소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메꿔줘야 할지 내 머릿속이 바빠진다. 알바도 하고 산책도 하고 관광도 하고 외식도 하고 도서관도 다니고 아 지금 봐야 할 추천 영화 리스트가 한 트럭... ㅎㅂㅎ
너에게 열릴 새로운 챕터가 너무 희망차다.
 
 
그리고 이쿠미도 만났다.
6개월 만에 만난 이쿠미는 깜짝 놀랄 정도로 흰머리가 많이 늘었다. 친구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건 참 묘한 기분이 든다. 어렸을 때의 생기 있고 찰랑했던 모습을 아니까 친구의 과거도 현재도 앞으로의 미래까지 아련하고 애달파진다. 존재나 생명 자체에 대한 애정이 솟는다고 해야 하나. 많이 만나고 많이 아끼고 많이 위해주고 싶은 기분. 얘가 겪고 있는 고민이나 문제도 진짜 내 일처럼 속상하고 잘하고 있는 일들은 내 일처럼 기쁘고... 
둘이 한국 여행을 했던 일을 얘기했다. 다시 또 우리 둘이 가는 걸 고대하고 있다고 했다. 나도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아! 하고 미안했다. 나... 난 그냥 집에 가는 기분이라. ㅎㅎㅎㅎ 같이 가기 싫다는 말이 아니야. 이쿠미랑 다시 한국에 가면 뭘 할까. 이제 명동, 삼청동 이런데 말고 기차를 태워 저 밑에 바다를 보러 가고 엄청 자유로운 시장통에서 떡볶이랑 국수를 먹으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아 또 나한테 반하겠네. 

 
30대까지 친구를 만나면 스킬 얘기, 취업 얘기, 남자 얘기가 절반이었다. 더 이상 불안한 미래와 막막한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해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하구나. 20대 그렇게 바라던 순간이 아마 지금일지도 몰라. 조금만 더 있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질병 호환 마마 내과 외과 부문별로 건강이야기를 하겠지만 그전까지 소소한 행복들을 나열하며 누려야겠다... 그래야겠다...
 
동네 빵집에 가면 아침 7시부터 삼삼오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출근도장 찍으시는데 앉자마자 집에 가시는 순간까지 건강이야기를 하심. ㅎㅎㅎㅎ 어느 병원 어디 선생님이 뭘 그렇게 잘 보시는지. 매우 전문적이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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