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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와 여자

내가 너랑 놀아줄게

Dong히 2026. 5. 11. 15:21

하루가 6학년이 되고 가장 큰 변화는 토요일에도 학원에 간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어 수업이 끝나면 혼자 밥도 먹고 네일도 하러 가고 깨알같이 잘 지낼 수 있지만 매주 하루랑 둘이 시아버님 댁에 가던 케군은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저렇게 큰 녀석이 둥둥 혼자 떠다니는 것이 어찌나 처량하던지. 나는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주기로 했다.

먼저 탄탄면에 환장하는 케군을 위해 중국집 한 번 뿌셔준다. 나는 탄탄면이 참 별로다. 땅콩을 으깨서 텁텁하게 만든 국물에 알싸한 향료가 끝맛으로 남는 게 어디 하나 맘에 들지 않는다. 마라탕도 어렵다. 원래 태생이 맵찔이라서 스파이스에 약하지만 그나마 고추장은 고향의 맛이라 좋아했던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다른 어느 나라 스파이스 중 새롭게 좋아하게 된 건 없다. 그래서 매운 게 거의 없는 일본에 잘 적응해서 살았던 게 아닐까. 심지어 이 나라에서 제일 매운 게 고작 와사비인데 얘는 아직까지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반대로 나는 신맛에 환장을 한다. 중국집에 가면 산라탕을 시키고 타이요리 집에 가면 똠양꿍, 일본 라멘을 먹을 때도 식초를 팍팍 넣는다. 그냥 처음 먹는 다른 나라 음식도 시면 10점 중 7점을 주고 시작한다.  괌에서 먹은 필리핀 향토음식 시니강을 먹었을 때도 그 생소한 음식에서 신 맛이 나는 것만으로 너무 맛있게 싹싹 먹었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건 케군이 신맛을 싫어한다는 것. 김치를 반으로 나눠 하나는 상온에 숙성시키고 하나는 일찌감치 겉절이 상태로 케군한테 먹인다.

중국 음식 먹고 친구가 가르쳐 준 카구라자카 도너츠 집에 갔다. 브리오슈 반죽으로만 만든 도너츠 집.

여기서도 또 푹신한 도너츠는 내가 좋아하고
딱딱한 캐러멜 코팅 도너츠는 케군이 좋아한다.
달라 달라 ~ 너무 달라~

그다음 주는 이탈리안에 데려갔다.

항상 우리 둘이 가면 되게 조그만 2인용 테이블에 안내받는다. 뭐 가게가 어디나 코딱지만 해서 당연한 거긴 한데 여러분 우리 케군을 과소 평가하시면 안 돼요.

얘는 정말 진공청소기처럼 먹는 아이입니다.
전채요리 세트를 늘 배 터지게 먹고

와인도 꼭 한 병씩 따고

입가심 피자랑

탄수화물 부족해 부족해. 파스타까지 풀 코스로 시킨다.

기분 좋아져서 사진 찍어주는 줄 알았더니

뭐여 이게.
촤라라라락 이상한 사진이 사진첩에 가득했다.

아니 또 골든위크에는 하루가 골든 위크 특강을 들으러 매일 같이 학원에 갔다. 여행을 못 가는 건 예상하고 있었는데 아침 9시부터 밤 5시까지 집을 비웠다. 다시 또 덜렁 남은 나와 케군. 나는 드라마 보면서 뒹굴어야지 하고 있었더니 옷 입고 어디 나가재. 그러면 도쿄대학교 안에 새로 생긴 <사루다히코> 카페라도 갈까?

요즘 커피 원두에 지대한 관심이 생긴 케군은 한 잔에 1200엔이 넘는 희귀 커피를 마셨다. 후르츠 향이 난다더니 정말 주스 같은 커피여서 깜짝 놀랐다.

이렇게 액자 같은 풍경 속에서 소설을 읽으며 나는 엄청 기분이 좋았다.

와…. 이 카페 맘에 들어…

케군은 옆에서 주식 동영상을 보다가 주섬주섬 부스럭부스럭 뭐가 아주 바쁘다. 여러분 O형 피를 모기가 엄청 좋아하는 거 아세요? AB형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O형 케군의 팔다리에 모기들이 회식을 하고 갔다. 아주 3차까지 즐긴 느낌이었다.  결국 중간에 일어나서 케군 혼자 모기약을 사러 편의점에 다녀왔다.

잘 다녀와.

좀 웃어보랬더니 얼굴 소름 끼쳐.
아저씨 다 된 거 봐… 너를 기억하는 우리 구독자들이 매년 얼마나 놀라는지 모르지… 그때의 너로 돌아오지 않아도 되니까 오래오래 건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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