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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자에 걸려 무대 뒤로 퇴장 한 케군을 대신해서 긴 연휴동안 풀 타임 육아를 뛴 나는 막바지에 골골대기 시작했다. 배가 아팠고 열도 났다. 아니... 이젠 옮기기까지 하다니 최소 이번 연휴, 케군 백해무익이 따로 없!!!! 단 소리를 꾹 참으며 검사를 받으러 갔다. 다행히 인플루엔자가 아니었다. 도움 안 된다고 입 밖으로 안 낸 과거의 나를 칭찬한다. 미안해 케군아~

입 안에 늘 상주하는 균들이 면역력이 떨어지면 폭주하는 바이러스 성 감기였다. (정확히는 성홍열) 사실 성홍열 자체는 하룻밤 파티를 벌이고 조용히 해산했다. 문제는 그 때 받은 항생제였다. 예전에도 위가 팽만해지는 부작용을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머리가 핑핑 돌면서 현기증 구토증을 느꼈다. 이시키들 하는 짓이 신선해서 설마 이게 부작용일 거라고 짐작을 못했고 나는 처방 받은 항생제는 성실히 다 꼬박꼬박 먹고 있었다.

몇 일을 자리에 누워지냈다. 하루는 같이 놀자고 조르는데 일어나기만 하면 토할 것 같고 배를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얼마나 아픈지 열심히 설명했다. 케군은 가뿐히 나아서 우리를 남겨두고 회사에 출근했다. (옆 방에 남자 하숙하고 있는 거 아님. 그 남자가 연휴 끝나고 출근한 거 아님.) 방학은 이틀이 더 남았다. 일단 아침을 먹여야 할 거 같은데 일어나는 게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는 사이에 시간은 계속 흐른다. 한참 혼자 테레비를 보던 하루가 까치발을 들어 냉동실 서랍을 열더니 소분해 놓은 밥을 꺼내 전자렌지에 넣었다. 위-잉. 전자음이 끝나면 일어나야지. 아.. 소리가 끝났는데 몸이 안 움직이네... 냉장실에서 가까스로 연어후레이크 병을 꺼내는 소리가 난다. 뚜껑을 열어 스뎅그릇에 넣고 밥을 섞어 참기름까지 야무지게 넣었다. 참기름 냄새가 살짝 났다. 세모 진 삼각김밥 틀에 비빈 밥을 넣고 눌러 찬장에 있던 김을 한 장 꺼내 돌돌 싼다. 그릇은 손이 안 닿아 아래에 있는 식기세척기에서 아무 그릇을 꺼낸 모양이다. 고개를 빼꼼 들어 보니 바로 보이는 식탁에서 와그작 삼각김밥을 먹고있는 게 보인다. (한 놈 더 하숙하고 있는 줄) 어쩜... 이걸 혼자 다 하네. 언제 이렇게 컸지... 아이 배에 뭐가 들어갔다 생각하니 너무 안심이 되서 다시 한 숨 잤다.

그 뒤로 한 동안 하숙집 남자가 편의점에서 종류별로 오니기리를 사다 놔서 나도 하루도 연명했다. 그리고 몸이 엉망인 채로 개학을 했다. 12층 윰코가 하루를 데리고 유치원 등원을 시켜주었다. 점점 머리까지 아파오는 고통에 케군이 조퇴하고 집으로 왔다. 오전에 하원하는 하루를 윰코가 우리집에 데려다 주면서 내 상태를 보고 안되겠는지 다시 자기 집으로 데려가 줬다. 그날 분명 윰코, 어디 간다고 들은 거 같은데 나 때문에 다 취소하고 아이를 봐 준 게 틀림없다.

포카리 스웨트에 에너지젤리, 사과를 깍아서 갖다 주었다. 내가 윰코네 집에 하숙을 하고 싶은 심정이야.... 고마워... 정말...

결국 나는 구급차를 불렀다. 병원에는 가야겠고 몸은 말을 안 듣고 머리가 너무 아파서 뇌 검사가 가능한 병원이 절실했다. 일본생활 13년만에 구급차를 경험... 나 토할 거 같은데 누워서 차로 이동하다 영혼 나갈 뻔했다. 우욱...

병원은 역시 차갑고 우울한 분위기였지만 이 아픔이 해결 될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안심되었다. 인플루엔자 검사를 또 하고 서둘러 뇌 CT사진을 찍고 채혈을 했다. 위로도 걱정도 서투른 케군은 어때? 지금은 어때? 어떠냐는 말을 한 열 번 넘게 한 거 같다. 애써 어떤 말을 하려고 하지마. 지금 난 네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고 든든해.

58세에 뇌출혈로 쓰러진 엄마가 늘 두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나는 CT사진에 이상이 없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왠지 한결 나은 기분이었다. 두통은 그대론데 아까보다 죽을 거 같지 않았다. ;ㅂ; 하핫. 여러가지 정황을 생각하다 선생님은 항생제 부작용인 거 같다는 결론을 내려주셨다. 피검사도 사진도 이상 없다니 응급실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순 없었다. 다른 종류의 항생제와 구토억제제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밤 아직 빙글빙글 한 몸으로 하루랑 같이 욕실에 들어갔다. 내 몸을 먼저 씻고 뜨끈하게 받아 놓은 욕조에 몸을 담갔다. 하루가 야무지게 거품을 내어 손 발이랑 몸을 닦고 양치를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제 샴푸 시켜줘야 할 차례다 싶어 일어나려고 했다.
-아냐, 엄마 가만히 있어. 하루가 할게.
동그란 샴푸캡에 머리를 끼워 넣는다. 무슨소리야. 눈에 물이 조금이라도 튀면 소리소리 지르는 애가. 절대 이건 혼자 못 할 거라고 확신하는 내가 어딘가 있었다. 하루는 샤워기 물을 틀어 물줄기 위치를 확인하고 고개를 숙여 마치 괴물이 사는 동굴로 들어가는 것 처럼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머리를 들이밀었다. 머리가 젖어간다. 하루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거품으로 머리를 문지르고 다시 거품과 물이 범벅이 될 미래에 과감하게 앞장서서 나갔다. 다시 한 번 물줄기로 머리를 들이미는데 이게 뭐라고 감동적이었다. 언제 이렇게 컸어. 거품하나 남기지 않고 야무지게도 헹궜다.

나는 그렇게 아프고 드디어 내 몸을 찾았다. 바깥 공기가 이렇게 신선했다니. 먹는 밥이 맛있고 머리가 가볍다. 감사합니다. 든든한 케군과 아픈 동안 씩씩해 준 하루야 너무 고마워. 예쁘다. 예쁘다. 우리 아기 참 예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분명 밥 해 먹고 혼자 씻던 하루는 다시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엄마가 해 줘. 하루 애기라서 못 해~~ 하는 입버릇은 다시 시작되었다. 허허.

그 때 그 하숙집 청년 다시 돌려주세요.

아팠더니 보이는 것들.
알고보니 뭐든지 잘 하는 5살
제일 내 편인 남자
12층 친정같던 이웃
건강한 건 정말 상쾌한 기분이라는 것.

남자인지

아기인지
헷갈리는 요즘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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