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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의 존재는 위대하다. 초등학생의 인생을 좌우한다.
하루가 지금 행복한 초등학생인 이유는 유마라는 절친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루는 유마를 만날 수 있어서 매일매일 학교에 가는 게 즐겁고 토요일마다 유마랑 놀기 위해 숙제하고 밥 먹고 잘 자고 잘 씻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 사소한 모든 것을 공유하는데 나까지 유마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유마의 입맛, 취향, 성격, 특기를 파악해 버렸다.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 착하고 좋은 아이가 절친이 되어서 참 다행이었다.
얼마나 좋은 아이냐면 한 번은 둘의 담임선생님이 유마랑 하루가 같이 노는 모습을 보고 "하루는 좋겠다. 선생님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유마처럼 착한 친구랑 친했으면 참 좋았겠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하루랑 친구가 된 이후로 유마는 엄마한테 한글 책을 사달라고 부탁해서 조금씩 공부도 했다. 어느 날 하루한테 한국어로 편지를 써 줬다. 하루보다 내가 더 감동을 받았다.

(편지가 찢어진 건 하루 가방 속이 혼돈 그 차체기 때문이다. 한 번 들어가면 멀쩡히 돌아온 게 없다.) 내용은 그렇다치고 정성이 갸륵해서 간질간질했다.
이렇게 이쁜 녀석 둘이 만나서 놀던 어느 토요일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알아서 아침밥을 챙겨 먹고 8시부터 놀았단다. 점심때 배 고파진 하루가 집에 가서 밥 먹고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별로 배고프지도 않고 하루랑 헤어지기 싫었던 유마는 그럼 밥 먹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현관까지 왔다. (사귄 지 3일 된 사이냐고)
빨래를 널고 있다가 하루가 들어오는 걸 봤다. 그리고 그 뒤에 빼꼼히 유마의 얼굴이 보였다.
“엄마 나 배고파서 온 거야. 밥 먹고 다시 나갈 거야.”
"어~ 그랬구나. 유마도 들어와. "
그랬더니 쭈뼜쭈뼜 괜찮다고 현관에서 기다리겠다는 거다. 그게 뭐야~ 우리 애가 밥 먹는 동안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루한테 한국어로 말했다.
"하루야 엄마는 그거 너무 이상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유마한테 괜찮으니까 들어오라고 해." 하루까지 가세시켜 유마를 거실로 오게 했다. 그런데도 계속 뻣뻣히 서 있어서 또 한 번 의자에 앉으라고 권하자 10살 쪼끄만 아이가 하는 말이 이랬다.
"놀이터에서 많이 놀아서 엉덩이가 더럽거든요. 의자에 모래 묻을 거 같아요..."
아이고...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론 저런 섬세한 배려를 하기까지 겪었을 문화 차이가 나와 사뭇 달라서 조금 충격이었다. 고작 10년을 산 아이가 이런데 나와 20년, 30년 달리 산 일본인과 나는 죽을 때까지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 10살 아이도 일본인은 일본인이구나 신기하더라.
의자는 닦으면 되니까 엉댕이 신경 쓰지 말라고 아이를 앉히고 냉장고를 뒤져 찐만두랑 몇 가지 반찬으로 밥을 차려줬다. 유마는 밥이라니... 가당치도 않는다는 듯이 계속 거절하는 거다. 웃겨 죽겠다. 정말.
"어린이들은 배고프면 안 되는 거야. 어서 먹어~"
마지못해 유마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비비고의 찐만두를 한 입 먹고 '우마!' 맛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때마침 유마 핸드폰으로 유마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유마는 혼날까 봐 미리 쉴드치느라 받자마자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어, 어, 지금 하루네 엄마가 밥을 줘가지고,그게 애들은 배고프면 안 된다고 밥을 먹어야 된다고 (버벅 버벅) "
남의 집에 약속도 없이 가서 밥까지 얻어먹은 건 일본인 사회에서 초대박 사건인 것이다. 예전에 하루가 학교 끝나고 유마군 집에 놀러 가면 그 집은 딱 현관까지만 가야 되는 암묵적 룰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분위기가 그렇다고) 화장실도 쓰지 말라고 한 건 아닌데 쓰기 좀 그래서 참다 참다 집에 돌아와 볼일 보고 다시 간 적이 있단다. 그런 문화를 모르는 게 아닌지라 궁지에 몰린 유마를 위해 전화기를 달라고 손짓했다.
"유마 어머님~ 저예요. 진짜 별 거 아니고 집에 있는 거에 밥만 펐어요. 뭐든지 잘 먹어서 너무 이쁘네요. "
어머님은 걸걸한 목소리로 유마한테 너 왜 거기서 그러고 있냐고 따다다다닥 잔소리를 쏟다가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어머!!!! 꾀꼬리 톤으로 연신 죄송하다 사과했다. 미안함 보다는 그런 대단한 일을 우리 아들에게 해 주신 거냐고 감동한 눈치였다.
"유마한테 밥 먹고 집에 가서 숙제 가지고 오라고 할게요. 같이 저희 집에서 숙제시켜도 되죠?" 헤어지기 싫어하는 둘을 갈라놓기 안쓰러워 좀 더 있으라고 숙제를 챙겼다.
유마 어머님은 "정말 그래도 돼요? 너무 감사해요!!" 몇 번이나 죄송하다 감사하다 인사를 했다.
공부 끝내고 유마가 집에 간 다음 하루가 말했다.
"엄마... 유마한테 밥 줘서 너무 고마워. 너무 좋았어."
"엄마 어렸을 땐 모든 친구 집에 가도 되는 건 아닌데 아무 때나 놀러 가서 놀다가 배고프면 거기 있는 어른들이 먹을 걸 챙겨주는 그런 친구가 꼭 한 두 명은 있었어. 근데 일본 사람들은 아예 그런 경험을 못한 사람들이 참 많은 거 같더라. 점점 그런 세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엄마는 어렸을 때 그런 걸 받아봐서 아직 엄마 감각으론 이렇게 해 주는 게 그냥 당연한 거 같아."
참고로 유마한테 우리 집에 오면 허락 안 받고 똥도 싸도 된다고 누누이 말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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