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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마셍… 스미마셍…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휴지가 없나?
만화나 영화에서 자주 봤던 장면인데 그러고 보니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인 거 같기도 하고… 내심 재밌다 생각하면서 얼마큼 휴지를 뜯어줘야 할지 걱정이 겹쳤다. 사람들은 한 번에 얼마나 쓰지?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 이 분은 어떤 경우에 처해 계실까. 짧은 시간 동안 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완전히 다른 경우셨다.
“구급차 좀 불러 주세요…”
깜짝 놀랐다.
“괜찮으세요!!? 자… 잠시만요…! “
나는 의도치 않게 목소리가 엄청 커졌다. 내 목소리에 내 귓청이 떨어질 거 같았다. (아 놔 아줌마처럼 왜 이러지) 망설임 없이 119에 전화를 걸었는데 신호음만 울리고 아무도 받지를 않았다. 상상했던 것보다 길게 울리는 신호음에 갑자기 나는 119가 아니라… 911인 게야!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나는 국민학생 때 미국 CBS가 만든 긴급구조 911 (Rescue 911) 재현 방송을 엄청 열심히 봤었다. 나중에 한국은 911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 좀 충격을 받을 정도로 뇌리에 박혀있었다. 진짜 긴급한 상황이 오니까 내 해마가 본능처럼 그 기억을 꺼내 긴급구조 911이야! 하고 속삭이는 것이다. 정말 다시 걸려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건너편에서 구조대원이 전화를 받았다.
바보 잔치를 할 뻔했네.
”역 앞 상가 건물 화장실인데 구급차를 보내주세요. “
”어떤 상태신가요? “
문이 잠겨있어서 똑똑 한 번 두드리고 그대로 말을 전했다.
”설사랑 구토를 하고 있어요…“
문을 살짝 열고 얼굴을 비친 여자가 힘겹게 설명했다. 입술이 하얗고 파리했다. 확실히 심각해 보였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구조대원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마흔셋이요…“
동갑이다… 갑자기 남 일 같이 않다…
그때, 병원 유니폼을 입고있는 체구가 작고 마른 여자분이 화장실로 들어오셨다. 옆 치과에서 오신 분이었다.
내가 너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동네방네 알리고 있어서 오신 게 아니라 여기가 원래 조용한 건물이길 바래본다.
치위생사인지 사무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상관도 없는 사람을 위해 한 걸음에 달려와 건물 경비원을 부르고 구급대원의 전화를 대신 맡아 지금 전화한 나는 지나가던 사람이고 자신은 여기 건물에서 일하고 있다는 설명을 하고 나를 집에 보내주셨다.
와… 의료 관계자는 정말 다르다. 치과 쉬는 시간이 그렇게 사라지는 건데 진짜 천사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남아있는 건 구경꾼으로 느껴질까봐 말씀대로 건물을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일 끝나고 우연히 같은 빌딩 화장실에 들렀다. (알고 보니 내 루틴이었다) 그리고 어제 고마웠던 치과 직원과 눈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다. 단순히 접수 창구에 가면 거기 앉아계실 거 같았다.
어? 오늘은 그분이 아니네?
”저… 어제 화장실에서 구급차 전화한 사람인데 혹시.. “
치과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는지
”어머 어머 네네. 잠시만요!”
라는 말을 남기고 종종종종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선생님 오실 거예요.”
“아…! 아… 어제 그분이 여기 선생님이셨어요?”
“네. 원장님이세요. 지금 치료 끝나고 오실 거예요.”
“아뇨. 아뇨. 바쁘시면 괜찮아요. 그냥 제가 인사만 드리려고.”
“아뇨. 아뇨. 잠깐 기다려주세요. 오신대요. 오신대요.”
밀당 아닌 밀당 후에 잠시 기다렸다.
으이구 여자라고 치위생사나 병원직원이겠지 생각한 내가 순간 부끄럽고 바쁜 선생님한테 너무 미안했다.
고글을 쓴 채로 원장님이 나오시며 말했다.
“어제는 너무 감사했어요~!!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
”아하하하하 아니요. 저야말로 바쁘신데 너무 죄송하고 어제 너무 감사했어요. 그냥 잘 병원에 가셨는지 궁금해서요. “
”그게…. 어제 그 여자분 말이에요. 그렇게 아파하시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이제 괜찮다면서 집에 가겠다는 거예요. “
”!!!!! 네에???!!! “
”구급차까지 왔는데. “
”그렇게 불러달라고 해 놓고요??“
”그러니까요. 그래도 왔으니까 타고 가시라고 그랬더니괜찮다면서. “
”그러고 진짜 집에 갔어요? “
”구급대원이 대화라도 나누자고 설득해서 잠깐 차에 타더라고요. 아마 병원은 안 갔을 거예요. “
”세상에… 너무 수고하셨네요. 거 참…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
”저야말로 유감스러운 소식을 전하게 돼서 미안해요. “
”유감스럽진 않지만 하하하하하하.”
“다행인지 유감인지 하하하하하하.”
좋은 일인지
안 좋은 일인지
의아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아무튼 나는 너무 좋은 선생님이라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럼 저 가 볼게요. 다음에 치과 진료받으러 올게요.”
“아하하하하 네. 꼭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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