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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 8시부터 투어를 시작하는 날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라는 광범위한 산호초 일대가 유명한데 <그린 아일랜드>는 거기에서 가까운 섬이다. 배 타고 가서 수영도 하고 산책하고 스쿠버 다이빙, 스노클링 액티비티도 하며 하루 종일 노는 케언즈 대표 투어.

우리는 쌀쌀하니까 물놀이 관련 된 건 추가 안 하고 원래 투어에 포함 된 반 잠수함이랑 유리 보트만 타기로 했다.  

하루가 너무너무 기대하고 있던 투어였는데 .. 후…
결론을 말하자면 가족의 결속력을 다질 극기훈련을 아~주 잘하고 왔다. (맙소사 ‘ㅂ’)

배 갑판이 경치는 좋지만 살 홀랑 탑니다.
꼭 안으로 내려오세요.

극기 훈련 첫 번째 관문
80분 항해 중, 한 60분을 격한 배 멀미에 시달리게 된다. 여기서 탈락자가 무더기로 속출한다.ㅋㅋㅋㅋㅋ

가기 전에 이 배가 심상치 않게 흔들린다는 리뷰를 봐서 걱정이 태산이었다. 멀미에 약한 나랑 하루는 당연히 약을 먹고 평소 멀미를 모르는 케군도 30분 전에 약을 먹었다. 그리고 타자마자 잠을 청하기! 공복이 최악이니까 아침도 꼭 먹고 타기!!
왜 이렇게 멀미를 유발하냐면 그날도 엄청난 풍속의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여기선 흔한 날씨라 높은 확률로 배가 미친 듯이 흔들리는 악명 높은 노선이기 때문이라고.  

걱정이다 걱정이야..
특히 나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 활주로 잠깐 달리는 것도 멀미를 하는 최약체로서 (내 몸 왜 이러는지 누가 좀 알려주세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거 같았다. 바다 낚시하는 사람들이 쓰는 스킬 같은 거 없나 폭풍 서치를 하다가 전날 자기 전에 멀미약을 먹고 자는 게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었다. (책임지지 못하니까 개인이 판단하라고도 쓰여 있었음) 간절한 마음으로 전날 밤 멀미약을 먹고 잤다. 전날 밤도 먹고 + 당일에도 한 알 먹고.

그리고 배 타자마자 얼굴에 모자를 덮고 푹 잠에 빠졌다. 사진 찍고 풍경 보고 이러다가 나락 갑니다. 그냥 자세요.
거의 다 왔을 때 주변이 소란스러워서 살며시 눈을 떴더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여기저기서 종이봉투에 얼굴을 박고 게워내고 다들 삶은 콩나물처럼 맥아리 없이 쳐져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케군이랑 하루는 다행히도 조금 울렁거리기만 했는지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꿀팁의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혼자 너무 멀쩡해서 (살면서 나만 멀미 안 해 본 거 처음임)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그 꿀팁과 또 하나의 가능성은 일본에서 제일 강력하다는 멀미약을 먹어서 그런 것도 같단 생각도 했다. 다시 보니 그 멀미약상자 그림이 배 조타할 때 쓰는 그 핸들이다~! (지금껏 나침반인 줄 알았음. 좀 매사에 착각이 심한 편) 포장부터 배 멀미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네. 일본에서 제일 잘 듣는 멀미약 검색하면 랭킹 무조건 1위에 이게 있었다.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일본에서 멀미약 살 일이 있다면 에스에스 제약의 <아네론>을 사세요.

그린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다들 창백한 얼굴로 어기적 어기적 배에서 내리면 푸르른 바다를 감상할 틈도 없이 깨알 시련이 닥치는데 선착장에서 섬으로 이어진 저 다리에 강풍이!!!
왜 태풍 강도 실험하는 느낌으로 바람이 불었다.  소중한 하루 곰돌이가 한순간에 날아갈까 봐 너무 공포스러웠는데 섬과 배를 오갈 일이 많아 대여섯 번은 이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래서 시련이었다.

사진이 너무 말도 안 되게 평화롭다.  
유튜브의 예쁜 여행 영상을 다 믿으면 안 되겠다 결심하게 만드는 사진이다.. ‘ㅂ’ 이런 사진 영상들에 속아서 우리가 이 투어를 예약한 것도 있었겠지. 부들부들 ㅋㅋ

섬에 도착해서 작은 동물원에 가도 좋고 (별도 요금 필요함) 산책을 해도 되고 아무튼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여기서 두 번째 시련이
섬 입구에서 너무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 어떤 블로그에서도 거론하지 않았던 섬 냄새. 왜 이 진실을 숨기는 것인가.

원인은 이 새들로 추정.
으.. 닭장 냄새!! 배에서는 괜찮았던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도망치듯 섬 안 쪽으로 빠르게 걸었다.

악어 동물원은 패스했다. 입장료가 비싸고 먹이 주는 시간이 애매했다. 돌아서려는데 기념품만 둘러만 봐도 괜찮다며 일본인 점원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셨다.
-어머! 일본분이시네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귀찮아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이것저것 물어주셨다. 호주 여행은 어떤지, 음식은 먹을 만 한지, 일본은 어떤지. 유학을 오셨다가 현지인을 만나 결혼하고 사시는 분이었다.
-진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여기 출근하시려면 그… 그 배를 매일 타시는 거예요?
-네 ㅎㅎ 직원들 출퇴근용 배가 있어서 그거 타고 섬으로 와요.
-매일 타면 이제 멀미 안 하나요?
-네네 ㅎㅎ 지금은 거의 안 하는데 처음 출근 시작할 땐 매일 멀미하면서 출근했어요. 게다가 임신했을 땐 멀미에 입덧까지 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허걱…. 멀미에… 입덧까지.. 그걸 하루 두 번 겪으신 거예요?
-집에 갈 땐 해류가 반대라서 올 때만큼 심하진 않으니까 괜찮아요.

아이고…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 나았다.
난 입덧 때 가만히 누워있어도 멀미하는 느낌이었는데… 멀미에 입덧… 상상만 해도 내장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케언즈에 사는 (대단한) 일본 분을 만나고 섬 산책을 하다가

 

섬 안 쪽에는 냄새 안 나고 산림욕 됩니다~

다시 배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배 안에서 뷔페

소문대로 맛있었다. 케군이랑 하루는 특히 카레를 좋아했다.

덮하루라서 잘 안 보이지만 마빡 진짜 귀여버요

 
 

반 잠수함 스케줄 시간이 돼서 탑승했다.
길쭉한 필통에 촘촘히 앉아 물고기를 보는 투어.
이것이 세 번째 극기훈련 관문이 된다. ㅋㅋㅋㅋㅋ

바다 거북이도 보고, 상어도 봤다.

나는 바로 옆에 스텝 언니들이랑 같이 착석해서 바다는 안 보고 언니들을 감상했다. 얼굴은 작고 아이홀은 한 없이 그윽하고 다리의 시작점이 기이할 정도로 윗동네고 같은 인류가 맞는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호주에서 만난 현지인들이 20도 케언즈를 반바지 반팔로 다녀서 역시 서양인들은 추위에 강한가 보다 감탄하고 있었는데 언니들 팔다리에…  오돌토돌 닭살이 줄곧 있는 걸 발견했다.  ;ㅁ; 아.. 그냥 유니폼이 반팔 반바지 밖에 없구나… 집에… 그냥 긴바지가 없는 거구나… 맴이 아팠다.

그날 날씨는 때때로 폭풍우에 연신 파도가 쳤다. 배가 흔들릴 때 보다 좁고 꽉 막힌 잠수함이 흔들리니까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도망갈 데가 없는 거 같달까.

어른한테도 극기 훈련하는 거 같은데 애들은 말할 것도 없다. 3살 정도 된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다가 점점 격해지더니 급기야 악을 써서 너무너무 걱정이 되었다. 일본인 엄마가 유창한 영어로 잠수함 위로 가겠다고 부탁했다. (반 잠수함이라 완전히 잠기는 구조가 아니었다) 다들 흔쾌히 일어나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도미노처럼 앞사람이 일어나야 길이 터지는 정말 좁은 배기 때문에 엄마는 최대한 참아보려 했던 거 같다. 모두가 속으로 ‘아니에요~ ㅜㅜ 우린 이해하니까 나가셔도 돼요~’ 한 마음이었을 거다.

한편 나는 영어 열심히 해야겄네. 다시 결심을 했다. 서른여 명의 조용한 청중이 있는 가운데 영어로 무언가를 요청하는 그 일본 엄마가 너무 멋졌었던 것. 진정 용기가 필요한 분위기였다.

너무 심하게 흔들리고 난 후에 유리보트 탈 차례였는데 세 식구 모두 그냥 안 타기로 자연 합의 봤다. 그래서 겪어야 될 시련 하나를 줄였다.
리스트에 있는데 우리가 안 오면 걱정할까 봐 스텝에게 가서 We don’t need the glass boat. We’ll have some rest. 라고 전했다.  ( rest를 저럴 때 쓰는 게 맞는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은근히 네 번째 시련이었던 것은 이렇게 강풍이 부는 섬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돌아가는 배 시간은 정해져 있어서 꼼짝없이 섬에 갇힌 신세가 된 것. 진짜 온 가족 유배 당한 거 같았다ㅋㅋ

우리 가족들은 섬 주변에 어떻게든 재미를 찾아 돌아다녔다. 마지막에 숲 속 곳곳에 있던 설명들을 다 읽고 다국어 설명판을 돌려서 멈추는 외국어가 어디 외국어인지 맞추는 유치한 게임을 열정적으로 해대며 겨우겨우 시간을 때웠다.


악어 동물원 직원 분 말씀대로 돌아가는 배는 올 때만큼 흔들리지 않았다. 하루도 피곤했는지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 쉽게 섬을 나왔다.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식구는 무사히  섬에서 탈출 (?) 한 것을 자축하며 약간 실성한 얼굴로 손뼉 치며 자축했다. 여보야, 하루야 우리가 버텼어!! 엄마! 다행히 우리가 돌아왔어! ㅋㅋㅋㅋㅋㅋ

내가 너무 그린 아일랜드 투어에 대해 혹평하는 것 같지만  너무너무 대표적인 코스이기 때문에 케언즈를 가려는 모든 사람이 고려하니까 성향에 따라 안 맞을 수도 있다는 걸 알려야한다는 사명감이 막 생겨났다. 자주 바다가 흔들리고 잔잔한 날이 별로 없다는 점이 너무 치명적이다. 아무리 악천후라도 장비 착용하고 바닷속에 직접 들어가는 액티비티 정말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만 추천하고 싶다.

어디서 들은 개그인데 애 낳으면 힘들어서 미쳐버린다는 현실을  친구한테 얘기하지 않는 건 너도 낳아서 당해보라는 심보라더라 ㅋㅋㅋㅋ 아 진짜 케언즈 그린 아일랜드 투어에 대해 나는 말해야겠다. 저희는 너무너무 별로였습니다. 자연을 많이 마주치는 건 좋은데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게 아니라 막 자연에 맞서 싸워야 함.

돌아와서  <나이트 마켓>에 밥 먹으러 갔다.
양도 가격도 적당한 푸드 코트가 있는 곳이다. 진짜 다 맛있고 친절하고 깨끗하고 쾌적했다. 모든 여행객들이 한 번 이상은 이용할 듯. 여긴 너도 나도 가서 다 같이 행복해져랏!
하루는 여기서 영어를 시도했다.
플레인 우동이라고 말한 게 전부지만 카타카나식 ‘후레엔’ 우동 아니고 최대한 발음에 신경 써서 영어스럽게 플레인~ 이라고 했다. 파 빼 달라는 말을 영어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봐서 고민하다가 두 단어만 외우게 시켰다.
Toping, separate  토핑, 세퍼레이트
하루가 말하자 (다행히도 일본인 직원이 아니었다)
 Do you wanna toping separetely?
이런 느낌으로 확인하셨고
Yes. (하루, 무턱대고 예쓰)
마지막에 Anything else? 
여기서 무슨 벼락 맞은 듯 당황한 눈으로 날 찾길래
나: 아,,아,,, 다른 거 필요 없냐는 말이야.
하루: No.
이런 말이 오간 다음 주문에 성공했다.

얼쑤~ 하루랑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일본인 언니가 주문한 우동을 내줬다. 혹시 주인 언니?… 케언즈에서 우동가게… 멋지십니다.

다음은 중국 음식 사러 간 케군이 안 온다.
옆에 붙어서 뭐하는지 봤더니 뭔가 교통정리가 안 되고 있다. 음식을 담는 직원의 주걱이 멈추고 무언가 대답을 원하고 있다. 계산도 안 해주고 음식도 안 주고 뭘 묻는지 모르는 케군이 서 있다.

나: How many kind can he choose?
얘가 몇개나 고를 수 있나요? 를 이런 식으로 내가 물었다.
싸 갈 거면 뚜껑을 닫아야 하니까 더 고를 수 없고 여기 테이블에서 먹을 거면 위로 산더미처럼 담아줄 거니까 더 고르라는 친절함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케언즈 융통성 대박이네.. 같은 돈 주고 먹는데!!!
일본에선 볼 수 없는 융통성 서비스에 케군도 신나서 덩실덩실 이것저것 추가로 골랐다.

그리고 직원이 Anything else? 하자
케군이 벼락 맞은 듯 당황한 눈으로 나를 찾는다.
아,,아,, 他にいらないか聞いてるのよ。
똑같은 통역을 해 줬다.
애니띵엘스에서 벼락 맞는 거 왤케 웃기냐고 ㅋㅋㅋ

나는 이태리식 만두를 먹었다

나도 3년 전에 저 단순한 문장을 몰랐다. 저걸 몰랐다고? 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 정도로 난 영어를 몰랐다. 그리고 케군처럼 시험 때문에 배운 적 있었던 사람도 네이티브가 하는 발음으론 대부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런데 몇 년 영어를 열심히 배워보니 기본적인 영어가 트였다. 내가 하는 아웃풋은 중1 영어 수준이지만 듣는 것은 영어를 배우기 전의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까지 알아듣게 되었다. 

내가 이 나이에 영어를 배워 어디다 써. 내가 이제와 뭐가 될 것도 아니고. 어차피 지금부터 해도 쏼라쏼라 하지도 못할 거. 이런 생각으로 시작조차 하지 않는 많은 분들께. 이제부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외교관도 특파원도 해외 취업도 안 되는 거 맞다. 심지어  죽을 때까지 유창한 영어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간단하고 일상에 필요한 영어가 되면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나 인생이 풍요로워지더라는 것이다. 애니띵 엘스 알아듣는다고 인생이 뭐 그리 다르고, 솔직히 그거 몰라도 인생에 엄청 결핍 있고 빈곤한 거 아니지만 ㅎㅎㅎ (글이 항상 개오바로 넘어가는 경향이 많아서 브레이크를 좀 겁니다)

아무튼, 3년 공부해서 가장 좋았던 것은 Anything else처럼 툭하면 쓰는 일상 영어를 알게 되었다는 것. 이렇게 빈번하게 쓰이는 영어에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늦게라도 영어 해서 참 잘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정말 제로베이스에서 영어를 배워서 그런 것도 같다. 성장과 보람이 아주 시시 때때로 휘몰아쳐서 ㅋㅋㅋ

나이트 마켓에서 선물도 좀 구경하고 슈퍼에서 내일 먹을 빵이랑 커피를 샀다.

내 눈에 신기했던 딥스 코너. 찍어 먹는 소스로 코너를 이루다니. 문화 충격~ 다 사 먹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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