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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면 일본은 밤타령이 시작된다.
밤과자, 밤떡, 밤빵, 밤밥, 밤케이크
한국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일본은 절기마다 꼬박꼬박 챙겨야 하는 아이템처럼 제철 음식으로 어떻게든 매상을 올리려 열심이다. 그리고 잘 먹힌다. 가는 곳곳마다 고구마랑 밤 제품이 지금 아니면 못 먹을 것처럼 기간한정을 앞세우면 다음 해에 내가 살아있을지 장담은 못하니 꼭 먹어야 할 거 같다.
밤 타령이 시작되면 (다른 건 안 그럽니다.) 난 혼자 머릿속으로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연평바다에 어얼싸 돈바람 분다. 진짜 밤타령을 한다. 이해받지 못할 똘짓거리를 말할 데가 있어서 참 좋구나.
밤 가공된 음식 별로 안 좋아하지만 어쩐지 몽블랑 케이크는 매년 한 두 번 시험해 보게 된다. 비주얼에 끌려서. 하지만 늘 지나치게 달아서 실패했다. 실패의 단 맛?
올해엔 처음으로 성공했다. 동네에 믿고 먹는 파티쉐리 집에 뚜껑 덮은 몽블랑이 있었다. 밤 크림이 정말 고소했다.
긴자에 간 날. 점심밥 대신 케이크를 먹기로 했다. 그냥 크리스마스 전이라 케이크가 많이 먹고 싶었다. 밥 값이다 생각하고 1500엔짜리 너로 정했다.
Cafe Comme Ca 카페 꼼사 긴자
모노드라마가 곧 시작될 것 같은 실내분위기에 테이블은 제사를 지내도 될 만큼 크지만 의외로 나 말고도 혼자 온 손님이 많았다. 당당히 주문! 십여 년 전에 딱 한 번 와 봤었는데 정말 충격적으로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공작새 날개처럼 화려하게 수놓은 케이크 모습에 감탄을.... 하다가.. 뭐지?
왜 이렇게 수척해? 얄팍해도 너무 얄팍한 거 아닌가? 이걸 무너뜨리지 않고 잘라 낸 기술이 놀랍다.... 사무라이야? 내가 살찔까 봐... 칼로리 조절해 준 거시냐. 난 오늘 밥을 건너뛰고 왔는데.. 왠지 맛을 느끼기도 전에 끝나버린 한 접시는 눈에 띄게 단가가 오른 거 같아서 (원래 이랬나?) 다시 못 가겠다. 반 값으로 더 인심 좋은 키르훼봉을 추천합니다.
크리스마스 포장지를 사러 긴자 '이토야'에도 들렀다. 문구 덕후지만 일본 문구의 유명점 '이토야'에 안 가는 이유는 건물이 너무 좁고 길쭉해서이다. 한 층 조금 보고 계단을 미친 듯이 올라야 해. 복서들이 좋아할 거 같은 문구점입니다. 확실히 크리스마스 포장지랑 카드 종류가 압도적으로 많고 예뻤다.
불가리 외벽이..
어으 무서워!!!
대단히 크고 징그러운 걸 만들어 놨다. 미안해요. 난 잘 모르겠어...
항상 사람이 너무 많아서 구경하기도 어려웠던 버터 가게가 휑했다.
이 때다!! 뭐지!!! 뭘 사야 하지??? 뭔지도 모르고 일단 왔다가 비주얼이 내 스타일 일 거 같은 버터 쿠키로 정했다. 근데 가격. 헉!
-두 개만 싸 주세요.
주방에 번갈아서 쪼그려 앉아서 하루 몰래 ㅋㅋㅋ 케군이랑 하나 씩 나눠먹었다. 막상 사 왔는데 하루는 별로라고 하면 너무 돈이 아까울 거 같았다. 내가 한 입 먹고 천국을 맛 봤다. 다음 케군이 한 입에 쏙 넣고 엄지를 마구 들었다.
하나에 367엔이었다.
이케부쿠로에 <시아와세 팡-케키> 가 있었던가?
들어가 보고 자리 있으면 먹어야겠다.
입구를 못 찾아서 뱅글뱅글 돌다가 계단으로 일단 올라갔는데 비상문만 나왔다. 뜬금없는 문을 열고 입점해 버렸다. 직원이 잠시 이럇샤이마세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길치들은 다 그런가. 나는 길도 못 찾지만 문도 잘 못 찾는 편이다. 유명한 <시아와세 팡케키>는 처음이었다. 하.. 진짜 맛있네. 비주얼만큼이나 보도라운~~ 느낌이었다. 거품계란을 머금는 느낌. 액체로 된 팬케이크에 가깝다.
근데 맛은 비슷하면서 쫀득함이 더해져서 아니 보드라운데 쫀득해. 아무튼 더 감동의 팬케이크를 찾았다. 새해 연휴에 우리 가족이 두 번이나 사 먹은 <타이완 카스텔라>
하루가 너무 마음에 들어 해서 할아버지한테 받은 새해 용돈을 털어 엄마 아빠 것도 사 줬다. 왜 이게 한국에선 망했지. 영화 기생충에 대만 카스텔라 하다 망했다는 송강호 대사가 있었다.
중독적이야.
긴자에서 빵을 샀다. 안 우울했지만 빵을 샀다.
참, 하루한테도 실험해 봤다.
-엄마 너무 속상해서 빵 샀어.
하루는 눈썹을 있는 힘껏 八자로 늘어뜨리고
-왜!!!! 왜 엄마 속상했어??? 뭐 때매????
즉답을 했다. 이대로만 커주라.
참고로 케군은
- 어디 빵? 새로 생긴 거기?
City bakery는 뉴욕 맛이었다. 뉴욕 맛 모르지만 아무튼 빵 좀 먹어 본 일본 거주자에게도 매우 다른 차원의 대존맛이었다.
내가 산 건
버터밀크 비스킷이랑
간판메뉴 프레첼 크로와상.
버터를 들이부어놔서 이성을 잃고 먹었다.
잘라서 내일도 먹으려고 했는데 손에 있던 게 다 사라져 버렸어... 버터가 치사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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