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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의 구석구석이 좋았지만 최고로 좋았던 곳은 넷째날 갔던 다이아몬드 헤드 산책이었다. 참고로 케군과 하루의 원픽은 지난 포스팅의 쿠알로아 랜치. 항상 둘은 뭐가 제일 맛있었냐랑 어디가 제일 좋았냐 대답이 똑같다. 그럴때마다 내가 남편을 낳은 거 같아 소름 돋는다. 

다이아몬드 헤드는 방문 날짜랑 시간대를 예약하고 미리 결제 해 놓았다. 공원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방문객을 제한하기 때문에 예약이 필요하다. 검색하면 이름이 똑같은 레스토랑이나 이상한 홈피가 앞다투어 나오니까 오피셜 홈피를 잘 찾아가서 예약해야한다. ESTA 비자 신청할 때도 전혀 상관없는 그럴싸한 홈피가 클릭하길 기다리며 계속 검색 됐었다. 결제가 필요한 홈피는 정말 잘 보고 들어가야 함. 딴소리지만 요즘에 부킹닷컴이란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호텔쪽 계정을 해킹) 호텔인 척 빨리 선입금하라고 안 그러면 예약한 호텔 취소하겠다는 피싱도 있다고. 나중에 당한 사실을 알고 부킹닷컴에 연락하니 사이트 측 아무 조치가 없어서 숙박비는 현지에서 또 내게 생겼다는 피해자 글을 봤다. 상상만해도 황망하다. 무슨 기분을 가지고 그 여행을 가야돼….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한 택시를 타고 비지터 센터까지 이동했다. 이번엔 처음으로 일본 아저씨 기사분이었는데 여기서 태어나서 일본어를 거의 못하셨다. 그리고 우리 혼남ㅋㅋ. 케군이 인터넷 예약 페이지에 너무나 당당하게 일본말로
 
출발지: 쉐라통 와이키키 호테루
목적지: 다이아몬도헷또 라고 적어놓은 것
 
기사님: 아니 제가 부모님이 일본인이라 겨우 가타카나는 읽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더듬더듬 읽고 찾아온 거예요. 
나: 아~ 너무 죄송해요. 사이트가 전부 일본어로 되어있어서 요청도 일본어로 하면 되는 줄 알았대요. (우리의 대화는 영어)
전날 문자로 시간과 출발지 확인문자가 왔었다. 맞으면 예, 아니오로 답장 주세요라는 간편한 메시지와 함께. 내가 보낸 YES를 믿고 데리러 오셨다고. 
 
그리고 기사님의 와이프는 한국인이셨다. 아들은 한국말도 잘하고 일본어도 배워서 하와이 맞춤형 인간이라며 자랑스러워하셨다. 하루가 한국어도 하고 일본어 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엄청 좋아하시며 빨리 영어만 배워서 하와이에 오라신다 ㅎㅎㅎ He can get a job in Hawaii? 하고 물으니 "Perfect!"라고 하셨다. 덧붙여 기사님 아들은 엔지니어라고 하심. 관광업계가 아닌데 3개 국어랑 상관있나 의아했는데 어느 업종이든 영어, 일어, 한국어는 하와이에서 최강이라고. 매우 한정적인 지역이지만 내 자슥이 밝은 미래라고 하니 둑은둑은했다. 

그날 아침의 날씨는 그 중에 최상으로 좋았다. 매일 아침마다 느끼는 게 날씨 좋다였다. 날씨가 좋은 건 질리지도 않더군. 

마치 맞춘 듯 나랑 하루 패션이 주황과 하늘색 조합. 
아무 생각 없이 들고 온 에코백이 노란색인 것과 하루가 갖고 있던 아이스 목젤리 (물에 담그면 젤리가 팽창함)가 하늘색인 것조차 너무 맘에 드는 사진이다. 어쩜 호텔 룸키도 저런 하늘색이대? 나는 좀 채도 다운이고 하루는 비비드 컬러인 것도 어쩜 저래 찰떡쿵이래?  심지어 다이아몬드 헤드 간판도 노란 포인트 컬러. 다른 것보다 색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나에게 이 사진이야말로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생사진이었다. 

 

사진에 안 보이지만 비 내리기 시작

화장실도 들르고 물도 사고 예약 페이지도 확인받고 준비를 끝냈는데 툭툭 떨어지더니 갑자기 폭우처럼 비가 쏟아졌다. 오... 지붕있는 건물이 바로 옆에 있는 타이밍에 말이다. 별게 다 잘 풀린다. 이렇게 좋은 여행이 있나. 먹고 싶어서 시킨 메뉴가 그날 반값 이벤트 하는 기분이었다. 10분쯤 시원한 소리를 듣고 나니 이제 됐다는 듯 울음을 뚝 그쳤다. 이렇게 착한 날씨를 봤나. 

기분 좋게 하이킹 입구로 들어섰다. 
다이아몬드 헤드는 순한 맛이다. 한국에서 뒷산 하나쯤 가지고 있는 동네에 살아봤다면 그 뒷산 정도도 못하는 작은 산이었다. 나는 어릴 때 밥 먹듯 가던 곳이 아차산이었는데 (병아리도 묻어주고 금붕어도 묻어주고... 암튼 옛날엔 키우던 건 다 거기에 묻었지.. 병아리 이름은 다 얄리. 굿바이~ 얄리~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한국과 일본 산과는 다른 자연이 있어서 산에서 조차 이국적인 느낌을 받아 신기했다.

이런 영문 표지판이 많은 지분을 차지하지만 화산 분화구 같은 지형, 돌, 흙색도 좀 이국적이지 않나요.

중간 중간 나오는 포토 스팟

앞에 일본 여대생 두 명을 수십장 찍어주고 그분들이 우리도 찍어주셨다. 내가 어디가서 사진 좀 찍는다고 명함내밀 사람은 아닌데 그래도 한국인 기본 평타는 쳤는지 스고이!! 스고이!! 메챠 키레이! 야바이! 다리 길어보여! 엄청 예뻐! 뒤에도 다 나와! 둘이 사진을 보며 감탄을 막 해 주셨다. 일단 살짝 밑 각도로 찍고 머리 정돈하는 순간 등등 자연스러운 표정까지 담을 수 있게 계속 마구 찍어주거든요. 질보다 양으로라도 승부하는 느낌도 다소 있어요. 그리고 요즘 카메라는 역광이라는 역경을 디바이스가 극복해주기 때문에 굉장히 사진찍기 쉬워졌다. 게다가 우리 한국인은 싸이월드 시절부터 일본애들 멸시를 당하면서도 꿋꿋히 셀카를 찍어 온 역사가 있거든 ㅋ 이건 개인적인 경험인데 일본에 워홀로 갔을 때 한국에서 하두리와 더불어 디카, 셀카 붐인 것과 달리 일본애들은 셀카가 오글거린다며 세상 쿨한척 질색팔색했었다. 한국 중국 유학생들이 셀카를 찍고 있으면 自分すきだよね 자기 얼굴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비웃음 작렬) 어찌나 핵무시를 하던지. 미래에서 내가 말해주마. 너네들은 이로서 문화 보급의 후발자가 되는 거야. 한국의 K드라마, K POP 뮤비부터 소소하게는 인스타의 일반인 피드가 전세계에 사랑받는 이유는 사진에 대한 관심과 영상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몫했을거야. 아주 없진 않을 걸.

정상에 올라왔어요!
특히 다이아몬드 헤드의 소프트한 바람이 시원하고 청량하고 부드러웠다.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느낌. 하드 한 코스가 아니었다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이 완벽했다.

오르내리는데 1시간 조금 걸렸던 것 같다.

하지만 여기부터 동상이몽 하루의 이야기.
첫 번째 포토스팟을 지나올 때쯤 하루가 어… 엄마… 하며 급똥을 호소했다. 뙇아? 여기… 화… 화장실 없는데? 아이는 안절부절 어디 숨어서라도.. 이런 눈치를 보내는데 다이아몬드 헤드는 철저하게 그런 산이 아니다. 양쪽이 펜스로 막혀있고 관광객이 개미줄처럼 끊임없이 이동하는 루트만이 존재하는 곳. 아이고.. 케군과 나는 이제라도 내려가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또 올라갈 수 있을 거 같다고 그래서 또 올라가면 아니 이번엔 장난 아닌 게 왔다고 그래서 철렁하면 아.. 잠깐.. 진정됐다며 ㅋㅋㅋㅋ 우릴 들었다놨다 들었다놨다. 잊을만하면 오는 빚쟁이처럼 들이닥쳤지만 하루는 다 참아내고 등산로 입구까지 돌아왔다!!! 지금까지 중에 내 새끼가 제일 기특해 보였다. 다 컸네.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냈어 ㅋㅋ

그리고 드디어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멋쩍은 얼굴로 다시 나타나더니.
-엄마.. 들어가 버렸네? 안 나와.라는 게 아닌가.
ㅋㅋㅋㅋㅋㅋ 지금까지 맴졸인 나랑 케군은 허무하면서도 황당했다. 뭐 그래도 본인이 제일 지옥 같은 시간이었을 텐데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싶어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도착…

하자마자!!!! 엄마!! 엄마 왔어!!!
아빠랑 같이 방으로 뛰어 들어가 무사히 채무를 갚았다. 해피엔딩.

그래서 내가 하와이를 추억하며 다이아몬드 헤드 너무 좋았네, 제일 좋았네. 어쩌구 하면 세트처럼 응가의 기억만 가득한 하루가 절레절레 진저리를 쳤다. 내 아름다운 추억이 이런 식으로 망가지다닠ㅋㅋ

그리고 주차장에 서 있는 택시 기사님께 …available? (주어 몰라서 못 씀) 하고 물었더니 예쓰! 하고 대답해 주셔서 그 차를 타고 돌아왔다.
저건 <블링블링 엠파이어 뉴욕> 편에서 도로시가 (블링블링 엠파이어 중에 나의 최애 출연자였다) 뉴욕에서 택시 잡을 때 썼던 말이다. Are you라고 했는지 Is it이라고 했는지는 가물가물치지만 available를 저럴 때도 쓸 수 있구나 신기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진짜 통하네. 근데 말해놓고 이건 로스앤젤레스 말투일지도 몰라. 도로시처럼 돈 많은 사람이 거드름 피우며 쓰는 말일까? 아니야 도로시는 겸손한 부자라 예쁜 말투 썼을 거야. 도로시는 기사 딸린 엘에이에서 처음 혼자 살러 뉴욕에 왔으니 택시 잡아 본 적도 없어서 저게 평범하지 않은 말일 수도 있어 등등 (잘 모름) 수많은 잡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십년감수하고 홀가분히 점심을 먹으러 가는 곰돌이
STIX ASIA라는 식당가에 한국, 중국, 일본 음식이 사이좋게 모여있었다. 이쯤 되니 일본음식을 먹고 싶다고.. 아.. 그러십니까. 나는 해외에서 며칠 지나면 컵라면과 김치가 너무 땡긴다는 느낌을 공감해 본 적이 없다. 물론 나도 먹으면 맛있기야 하겠지만 내 기준은 외국생활 한 석 달 있으면 많이 먹고 싶어질 듯?

마루카메 우동이 유명하던데 줄이 엄청났다. 마루카메는 우리집 앞에 있기도해서 아쉬움 없이 <우동야마>에서 사 먹었다. 일본에서 먹었던 우동 면발이었다. 탱글탱글했다. 국물도 일본 맛이었다. 여기 가세요. 사람 없어요.

나는 텐푸라 튀김은 소금찍어 먹는 파.
(보통은 소스나 우동에 담가 먹어요)

굶은 애처럼 우동을 먹는 아이.
너무 맛있어하니까 온 보람은 있었다.

벽에 다다미를 붙인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서는 본 적없는 쓰임새. 어떻게든 일본 분위기를 전면적으로 내겠다는 의지가 보임.

밥 먹고 나왔더니 두번째 소나기가 내렸다.

갓 구운 마라사다스를 하나씩 사 먹었다.
위험할 정도로 뜨거운 도넛이었다.
맛은 환상적이고 가격은 절망적이었다. 3개에 2천엔 가까이했다. 참고로 우리가 모르는 맛은 아니에요. 여기 직원분이 계속 미소짓고 있어서 정말 기분 좋았다. 같은 말도 상냥하게 들렸던 게 기억난다.

해변가의 유명한 이 나무까지 걸어봤는데 하와이에서 유일하게 악취를 맡은 곳이었다. 닭똥 냄새가 진동했다. 나무 틈 사이사이에서 야생의 스멜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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