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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노현 마츠모토 長野県 松本로 가는 여행

신주쿠를 출발해 마츠모토에 도착하는 특급열차 시간은 11시였다. 우리 집에서 신주쿠까지는 30분이면 도착하는데 9시 반에 서둘러 나가야 한다는 케군. 서두를 필요까지 있을까 갸우뚱했지만 집에서 나오고 5분 뒤 케군이 옳았다는 걸 직감했다.

가방에 걸어 둔 시계가 보기 힘들다고 하루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가방을 열어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고 물건들을 이리저리 꺼내고 떨어뜨리고 (지금 찾지 말래니까.. 진짜…) 금방이면 된다면서 또 줍고 또 떨어뜨리고 목적은 이루지 못하고…. 보다 못한 내가 ”장갑을 벗어 왜 지금부터 장갑까지 끼고 난리야 도쿄는 15도라고 한 개도 안 추워.” 화를 내니 아이 풀이 확 죽었다. (그렇다. 장갑 끼고 물건 찾고 있었다. 절대로 안 벗겠대 환장) 횡단보도까지 파란불로 바뀌었다. 일단 건너!!

지하철 안에서 천천히 시계 위치를 바꾸거나 핸드폰을 꺼내면 될 걸 그 짧은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애가 답답했고 하루는 걸으면서 으른처럼 촥촥 가방 소지품을 꺼낼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허둥댄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한 것이다. 기분이 가라앉은 하루는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역까지 도착하는데도 두 배 걸리게 생겼다. 케군 말이 맞았던 거다.

우리는 이렇게 싸우면 7:3 비율로 하루가 먼저 화해 무드를 꺼내는 경우가 많다. 애교 가득하게 엄마~ 하고 불러주면 나는 평소보다 더 달콤하게 응~~~? 하고 그 용기를 대견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하루가 훨씬 더 많이 화해의 용기를 내는 이유는 그건 98프로는 하루 잘못이 더 많기 때문임.

하지만 오늘은 서둘러야 하능겨. 먼저 가서 손을 잡고 ”하루는 애기니까 그런 건데 엄마가 다그친 거 같네. 원래 애기는 재빨리 꺼내고 그런 거 못해. 횡단보도까지 건너야 했고 하루한테는 너무 많은 일들이어서 어려웠겠지. 근데 다음엔 좀 참고 지하철 타고나서 해결하자. “
하루는 배시시 웃었다. 발걸음도 빨라졌다.

이좌식아.. 이렇게 먼저 말해주는 것도 가끔인 줄 알아라. 마음 읽어주기는 당연히 애 입장에선 기분 좋은 일이다. 그치만 매번 실수를 해도 잘못을 해도 상대방이 굽히고 들어와 알아서 트러블이 해결되면 결국 좋을 게 없어 보인다. 파트너 관계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용기와 왜 미안한지 자기 행동을 돌이켜보는 객관성이 필요하니까. 형제 없는 외동으로서 이런 순간에 보통의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응당 해야 되는 프로세서를 겪게 해 주고 싶다.

나는 어릴 때 솔직히 (눈 감아줄 만도 한 일임) 1미리라도 잘못하면 언니한테 해가 저물 때까지 물어뜯겼다. 야 니가 잘못했어? 안 했어? 인정해!!! 넌 진짜 짜증나!! 아아아!!! 귓가에 맴돈다.. 절레절레. 둘 다 배가 고파도 째려보면서 피 튀기는 신경전을 벌였었다. 결국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 거면서 나는 또 왜 그렇게 멍청하게 뻐댔는지.

몰라… 뭔가 억울했어… 뭔가 언니는 내 인생의 빌런 같았어… 그래도 덕분에 얻은 것도 있다. 난 진짜 분위기 파악 못하고 철딱서니 없었는데 언니가 세상 민감한 스타일이라 남한테 뭘 어떻게 하면 안 되는지 자알 배웠다.

지하철을 타고 상냥한 말투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엄마가 예전에 어떤 친구랑 여행을 갔는데 그 친구는 자기 생각하기 바쁜 거야. 가다가 멈추고 물건 정리하고 멈추고 쇼핑하고 개인행동을 많이 했어. 그 바람에 중요한 열차를 놓쳐버렸다니까? 너무 하지 않니? 여행 갈 땐 혼자가 아니니까 개인행동은 좀 참아야 즐거운 여행이 돼.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 돌려 까기 훈육이다.
의외로 이게 꽤 먹히는 느낌이라 상황에 따라 내 과거 친구들은 겁나 자랑질하는 애, 이간질하는 애, 대놓고 다른 아이 외모 흉보는 애, 사람을 놀리듯 농담을 하는 애 등등 참 다양한 싹바가지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솔직히 대부분 지난 내 자아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도 이불킥 할 만큼 창피한 일들을 내 아이는 되풀이하지 않길 바라며.

신주쿠역에 도착하니 서쪽 출구가 공사 중이라 가뜩이나 복잡한 곳인데 벽으로 콱콱 막혀 낯설고 더 어려워져 있었다. 미로에 갇힌 쥐새끼처럼 어찌어찌 도시락집을 찾고 멀미약을 사고 특급열차 티켓을 발권하고 마지막 음료수를 사서 겨우겨우 차에 올랐다. 분명히 여유 넘칠 줄 알았는데 출발까지는 고작 4분 남았다.

아이폰 14와 함께하는 첫 여행이 되겠군요.

이 여행의 목적은 마츠모토 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가 역사에 관심을 보이면서 특히 고성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지금 다운 받아서 틈틈이 하고 있는 전투 게임이 하루 마음에 불을 놓았다.

역 앞에 있는 호텔에 짐을 맡기고 곧바로 마츠모토 성으로 향했다.
1. 역이랑 가깝고
2. 신축에
3. 대중목욕탕 완비
4. 야식 있고 (공짜)
5. 조식 맛있었다!
たびのほてるlit松本 (타비노 호테루 리츠 마츠모토)
https://matsumoto.tabino-hotel.jp

松本市で大浴場のあるホテル|白樺の湯 たびのホテル lit 松本【公式】

駅チカ、街ナカ、大浴場。嬉しいが詰まった、心温かいホテル。当ホテルは松本市の中心に位置していることから、ビジネスでもレジャーでも利便性の高い「たびの拠点」として、お客様に

matsumoto.tabino-hotel.jp

오기 전까지 사실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다. 지난번 니가타현 시내에 갔을 때 셔터 내려진 가게들 사이에 단비처럼 생필품을 해결할 마트가 하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가노현 마츠모토시는 웬만한 도쿄 마이너 도시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빌딩도 높고 체인점도 많았다. 찾아보니 인구수 랭킹이 도쿄의 우리 동네랑 비슷했다. 여기선 살 수 있을 거 같아. 심지어 예쁜 카페도 많았다!

그리고 마을 풍광이 너무 예뻤다…. 마츠모토 성을 둘러싸고 동그랗게 강이 흐르는데 그 주변에 아기자기한 상권이 있어 구경거리가 많았다.

국보 마츠모토 성 입장.
일본 고성의 대부분은 흰 벽이지만 여기는 까만색이다. 시크하고 멋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안은 6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신발을 벗고 관람할 수 있다.

높은 분이 살았던 곳이라 그냥 봐도 뭔가 풍수지리 좋아 보이는 위치였다. 물에 강산에 서민들의 웃음소리 들려올 거 같은.

계단이 너무 가팔라서 기예를 하며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는데 입장객이 엄청 많고 그 와중에 서로서로 양보하며 교차해야 하는 게 꽤 어려웠다. 그 긴장감이 관람 내내 지루하지 않게 해 준다. ㅋㅋ 굴러 떨어지지 않아야 하는 미션 있음.

기준은 다양하지만 일본에서 유명하고 인기 있는 성 탑 5는 이렇게가 아닐까
마츠모토성, 오사카성, 히메지성, 나고야성, 고료카쿠(하코타테)  

성 안에 들어와서 재밌는 것도 있지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 긴장한 곰돌이 ㅋㅋㅋㅋㅋ 발 헛디디면 밑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같이 나락행.

여기는 계단이 살벌하다는 것을 모르고 오면 최악의 관광지가 될 것이다. 한 번 흐름을 타면 또 빼도 박도 못하고 올라가야 하니까 부디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무라이들은 불편한 옷 입고 어떻게 여길 뛰어다녔지?

정상에서 보는 바깥 풍경이 너무 영화같다

하루에게 뜻깊은 선물을 해 줬다.
御城印 고죠잉이라는 수집용 책이 있다. 전국의 성을 돌며 그곳에서만 파는 도장이나 발행물을 끼우는 덕질 아이템이다. 보통은 절이나 신사에서 발행하는 도장을 모으는 게 유명한데 이건 성 城 버전이 되는 셈이다. 이거 너무 좋은 관광 상품 아닙니까? 우리나라도 한국 국보, 보물 이런 데 방문 증명서 멋지게 발급해서 그거 모으러 다니는 사람 양산해 내면 너무 재미있을 듯. (벌써 있나요?)

-엄마 붕어빵!!!
-아직 밥 안 먹었잖아. 몇 시까지 하시는지 물어볼까?
-여섯시까지래.
-그럼, 어쩔 수 없이 오늘은 못 먹겠다.
-아…  그러네.
애석하지만 바로 이해하는 우리 애기. 너무 착하다. 육아방송을 많이 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우리 애가 얼마나 착한지 새삼 깨닫는다. 걍 다 감사해.

저녁밥은 리뷰가 상당히 좋았던 이자카야에 오픈 런을 했다.
馬肉バル 新三よし 松本本店
(신미요시 마츠모토 본점)

우선, 말 사시미를 시켰다.
영어 회화 선생님이 (캐나다 분이었나?) 지방 여행 가서 말고기 회 처음 먹고 감동했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육회 맛도 나고 생각보다 굉장히 익숙한 맛이었다. 진짜 맛있었다.

다음은 말고기 스키야끼.  스키야끼는 소고기로 먹는 게 나을 거 같다. 익으니까 육질이 질겨지더라고. 그런데 말고기가 훨씬 지방이 낮다. 맛도 훨씬 담백했다.

산조쿠야끼라고 하는 지방 음식인데 닭튀김이었다. 모든 튀김을 야끼 (구이)라고 부르더라?

아스파라거스 연어 야끼 (구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역시 튀김이었다. 굽다와 튀기다란 일본어가 애매한 포지션이었어? 왜 일본어가 전국적으로 통일 안 돼있지? 매우 신기했다.

호박 푸딩과 호우지차

서비스가 무지 빠르고 친절했다. 추천과 설명도 잘해 주셨다. 마츠모토 성 말고는 특별한 관광상품이 없는 지역이지만 한 명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라는 느낌으로 모두가 대접을 잘 받아서 관광하기 좋은 도시 같았다.

호텔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룸 웨어랑 몇 가지 어메니티(일회용 빗, 화장솜, 면도기)는 엘리베이터 옆에 비치되어 있고 소비가 많은 양치세트, 클렌징, 샴푸, 슬리퍼는 프런트에서 받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래… 견물생심이라고 칫솔, 슬리퍼 이런 거 아무도 안 보면 한 움큼 가져가는 사람도 있을 거야. 나는 성악설을 믿는 편이기 때문에 원가 비싼 물건들은 ‘딱 보고 있으니 말하면 준다’ 시스템이 똑똑해 보였다. 일본사람이라고 다 정직하지 않음. 안 보이는데서 슬쩍하고 새치기도 하고 얌체 짓 많이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로손에서 ‘밀크 피낭세 케이크’라는 걸 집어 왔는데 무악! 우악! 한 입 먹고 너무 맛있어서 기록용으로 찍었다.
가끔 로손은 사람이 소리 지를 만큼 맛있는 디저트를 만든단 말이지.

아이 사이즈의 유카타와 슬리퍼도 프런트에서 받으면 됩니다.

밤 9시 반이 되길 고대하면서 로비에 내려와 하루랑 시간을 보냈다.

왜냐면 오차즈케 무료 서비스가 있기 때문에. 이런 거 하나로 너무 설렜다.

라멘 주는 호텔은 몇 번 가 본 적 있는데  밤에… 라멘… 내 위장에게 못할 짓이다. 그런데 오챠주케 주는 호텔은 처음 봤다.
만드는 법 : 밥 넣고 원하는 건더기를 넣는다. 연어살, 채소절임, 다꽝, 매실장아찌 등등이 있음. 마지막에 육수 국물을 부어 말아먹는다.

케군은 결국 못 데려왔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시더니 (혼자 망년회 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 목욕하고 들어와 호텔 방에 붙어버렸다. 침대에 곯아떨이진 것도 아니고 소파에 붙어서 옴짝달싹 하지 않음. 의리로 데려가려고 하루랑 아무리 깨워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아빠는 오차즈케 팀에서 탈락했다. 쯪쯪.

무슨 일이야.
온 얼굴에 필러를 맞았나. 땡땡부었네.
지난밤 오챠즈케 언제 먹었냐 왜 나 안 먹였냐 난 뭐 했냐 되려 따지는 케군을 달래며 아침을 먹으러 갔다. 술이 니 기억을 앗아간 걸 안타까워해라.

여기 조식 잘 나왔다.
밥반찬도 좋고 카레도 맛있고 빵 코너에 프렌치토스트까지 있었다.

샐러드~

참, 마츠모토에서 먹은 튀김이 다 감동적이었다.
조식 뷔페에서까지 다 식은 텐푸라가 바삭바삭했다. 신선한 기름 고집하나? 튀김을 대하는 기본 개념이 매우 수준 높나?

새우튀김은 아닌데 새우 들어간 튀김 이거 참 맛있었음.

후식으로 한 판 더 갖다 먹었다.

마츠모토 역 근처에 있는 지역 박물관에 들렀다.

나가노현이 산으로 둘러싸여 기온이 뚝 떨어지면 정말 추운 곳이었다. 이 날은 갑자기 쌀쌀해져서 박물관 안이 고마웠다. 너무 춥지만 다시 한번 마츠모토 성에 가기로 했다. 하루가 인터넷에서 찾아본 사진 잘 받는 각도로 촬영을 못해 본 게 아쉽다고 했다.

바로 이 다리와의 투샷

마츠모토 성 내부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외관 구경은 공짜.  

마츠모토를 검색하면 뒤이어 소바가 유명하다고 좌르륵 나온다. 우리는 별점 높고 사람들 많이 간다던 어느 소바집에 줄을 섰다.

움…. 이거슨, 도쿄랑 뭐가 다른 거지?
푸드코트에 파는 소바와의 차이도 모르겠다.
케군도 갸우뚱했다. 그런데 역시 여기서도 같이 시킨 텐푸라가 푸르댕탱탱 바사사삭해서 너무 감동이었다. 튀김들이 한 톤씩 도쿄보다 밝은 색이다. 텐푸라는 정말 연 노랗다. 기름을 정말 자주 바꾸나 봐.

케군은 이 날 회의가 하나 있었다. 소바집에서부터 이어폰을 꽂고 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같은 팀원들은 멤버 하나가 사실은 200킬로 떨어진 곳에서 소바 먹으며 듣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겠지 ㅋㅋ

좀 시간이 걸릴 거 같아서 케군은 장소를 옮겨 혼자 있게 하고 하루랑 둘이 산책을 나섰다.

어! 그런데 다른 붕어빵집을 발견. 어제 못 먹은 속땅함을 보상해주고 싶어서 냉큼 사 줬다.

참고 인내하니 이렇게 좋은 날도 오는 것을 깨닫는 곰돌이 ㅋㅋㅋㅋ 붕어빵 엄마가 안 사주는 날도 있지만 하루가 맨날 이래 착하니까 또 먹는 날이 오는 거 아닐까 나도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착해 착해.

이 거리 참 예뻤는데 사진으로 많이 못 남겼다. 하루 유튜브 영상으로 보여드릴게요.

기대 없이 간 여행이었는데 의외로 볼거리가 많고 눈에 담고 싶은 곳이 많아서 엄청 추천하고 싶은 지방 도시가 되었다. 새로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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