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러분들 덕분에 우울함이 증발했어요.

 

체력은 아직 회복이 덜 돼서 조금만 활동량이 많으면 저녁땐 허리가 끊어질 거 같고 헉헉대지만 정신적으론 뭐였지 싶을 정도로 굉장히 좋아졌다. 이제 스멀스멀 피식- 웃었던 일들이 많이 떠오른다.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이 날 좋았지. 따스했지. 행복했던 기분이 선명하게 떠올라 살 맛이 난다. 

하룻밤에 놀랍도록 많은 양의 술을 마실 수 있는 케군은 술과 함께 과식을 하고 꼭 걷자 한다. 그리곤 꼭 10여분 걷고 화장실을 찾아 쩔쩔맨다. 그날도 화장실 빌리려고 들어 온 신사에서 고요한 불빛을 사진에 담으며 기다렸다. 비싼 돈 주고 부은 걸 줄기차게 화장실에 내버리는 케군은 밑 빠진 독에 술을 붓는 느낌 아닐까? 술 못 마시는 나로선 신기하다 신기해.

사쿠라가 예뻐서 발길이 멈춘 공원이었다. 자세히보니 하루가 1살 때 한 번 온 적이 있었다. 바닥이 흙이 아닌 코르크 재질이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다 아장아장 걸었을 때 혼자 기어 다녔다. 머리는 다른 아이들보다 1.5배 컸다. 다리가 머리를 감당하지 못했던 게 분명하다. 8년 만에 찾은 그날 밤은 구경만 하던 미끄럼틀을 우다다닥 올라가 건강한 팔다리로 신나게 뛰었다. 장하다. 진심으로 건강하고 평범하게 커 준 구석구석이 구체적으로 다 감사했다. 

올해의 사쿠라 사진은 이게 전부가 되었다. 

한창 예쁘던 주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계속 불었다. 코로나를 경계하던 분위기가 잦아들고 드디어 꽃구경 판을 벌일 수 있는 해여서 다들 부릉부릉 시동을 걸고 있었는데 다 된 밥에 코가 빠졌다. 벚꽃을 올려다보며 모두 발을 동동 굴렀다.  인생의 재미하나가 올해엔 떠내려갔다. 

 

한국 가기 전에 '서울 아줌마'에게 연락을 했다. 엄마의 절친이자 내가 중학교 시절부터 우리의 보호자 같은 분이셨다. 엄마가 손이 크고 박력있고 대강대강 (?) 우릴 돌보는 아빠 역할이라면 아줌마는 조곤조곤 언니랑 내 고민을 들어주고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엄마 같은 역할이셨다. 말 그대로 엄마가 죽을 때까지 우릴 봐주고 엄마를 지켜주셨다. 평생 내가 다 갚을 수나 있을까 싶은 도움을 받았다. 메시지로 언제 만날 수 있는지 여쭈어봤다. 아줌마가 죽도에 놀러 와 계시다고 서울 가면 연락할게~ 답장이 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문득 다시 물어보기 망설여졌다. 내가 너무 질척였나. 이제 우리랑 인연을 끊고 싶은데 눈치없게 군 건 아닐까... 우리랑 더 알아봤자 아줌마 인생에 뭐가 편하고 좋으실까... 이런 종류의 생각이 물고 또 물었다. 조심스레 메시지를 남겼다.

 

-아줌마~ 혹시 바쁘시면 저 다음에 만나도 돼요. 부담갖지 마시고 제가 더 자주 올게요.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죠?

카톡인데 답장이 헐레벌떡 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고야! 내가 답을 안 했구나. 그래서 느이 엄마가 꿈에 나왔구나? 

-예?

-아니 느네 엄마가 오늘 꿈에 나와서 내 팔을 붙들고 가자고, 어딜 가자고 다짜고짜 잡고는 택시를 타잖아. 그리고 일어났더니 꿈이드라. 

-진짜요? ㅋㅋㅋㅋ 엄마.. 너무 웃긴다..

 

세상에.. 걱정하는 내가 안타까워 엄마가 나섰나보다.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데 눈엔 가득 물이 고였다. 엄마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엄마는 오히려 내가 다른 나라에 있어도 가뿐히 와서 늘 옆에 있었다.

네 등 뒤에 할머니 있다

 

반응형

'대화 하는 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과 적성 그리고 색맹  (24) 2023.08.02
계단 하나  (26) 2023.07.17
우울  (52) 2023.04.20
오늘을 사는 이야기 후편  (24) 2023.02.18
오늘을 사는 이야기 전편  (20) 2023.02.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