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예전같으면 당일날 약속 취소란 낭패가 아닐 수 없었는데 MBTI도 바뀌는 건가 요즘은 이것도 꿀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다른 데 놀러 가면 그만인 것. (절대 집에 있을 생각은 없음)

가 보고 싶었던 이케부쿠로의 브런치 집에 왔다.

하지만 예약을 안 하면 먹을 수가 없었다.
일본사람들은 압도적으로 J가 많을 거야…
근데 몇 번을 해도 나 역시 ESFJ다. 계획 없이 친구 없이 살 수 없다.

내가 먹고 싶었던 런치.. (모르는 사람 테이블)

그래서 다른 카페로 갔다.
여기도 잠들기 전 구글맵으로 다 본 카페. 이미 사진으로 잔뜩 들러놓고 실제로 가면 뭐가 재미있을까 싶지만 몰라… 그냥 갈 계획을 세우는 그 순간이 즐겁고 그 계획이 이루어지는 이 순간이 즐거운가 봐.

실제로 보면 사진보다 배로 예쁘다. 사진에 담을 수 없는 것들도 몇 가지 있지 않던가. 천장 높이에 따른 아늑함이나 웅장함. 비지엠마다 다른 힙한 정도, 아이폰이 멋대로 조율한 색감이 아니라 진짜 조명의 분위기.  저 카페도 그레이가 감도는 바닥과 아이언 소재들이 사진보다 훨씬 모던했다.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켜고 일주일을 정리한다. 또 남기고 싶었던 말들을 기록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날달걀인데 점점 삶아져서 단단해지는 느낌이 든다. 아니면 파란 과일인데 영글면서 당도가 높아지는 느낌이 든다. 아.. 인생까진 아니지만 이번 주가 이번 달이 여무는 기분.

얼마 전 책에서 미국의 소설가 엔다퍼버의 말을 인용한 문구를 읽었다.
‘인생은 글쓰기를 사랑하는 자를 결코 진정으로 좌절시킬 수 없다고, 글을 쓴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삶 자체를 연인으로 두는 일이라고’
비록 맞춤법도 엉망이고 비속어에 잘못된 정보 가득한 블로그지만 쓰는 동안 나를 하나 떼어내서 앞에 앉혀놓은 기분이 든다. 내 생각을 말하는 장소가 있어서, 일상 중에 어딘가에 쓰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철이 없으면 없는대로 그냥 솔직하게. 그게 ‘연인’의 느낌인지는 몰랐지만 저 글을 읽고 내 얘기를 쓰다 보면 내가 나를 미워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지긴 했다는 점에서 공감이 갔다.

어제는 <메모습관의 힘>의 저자 신정철 작가의 세바시 영상을 보는데 맛집가고 여행가고 출사하고 재밌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했던 30대까지의 삶에 허무함이 찾아왔고 느낌표만 있는 인생은 행복하지 않구나. 소비하기만 하는 삶은 부족하구나. (정확히는 남궁연씨의 말이라고 함) 자신의 축적된 무언가로 생산하는 것을 결심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언제부턴지 블로그가 내 인생에서 큰 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그 이유를 알겠다.
물론 책을 써내고 기똥찬 히트 상품을 내놓고 센세이션을 일으킬 인플루언서가 돼서 진짜 세상에 무언가를 생산해 낸다면 행복하고 뿌듯하겠지만 그렇게는 아니더라도 소소히 블로그를 통해 찔끔찔끔 여러 가지 세상에 내고 있었을지도.

사몬 오픈토스트 : 먹기엔 좀 불편함

小台 오다이라는 작은 노면전차역 근처의 카페를 눈여겨 봤었다. 메구상이랑 한국어 수업을 하는 날은 이 역에서 내리기 때문이다.

넓고 깔끔하고 무엇보다 분위기가 침착한 가게였다. 일반 원목보다 몇 배로 두꺼운 테이블이 두둥하고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데 테이블 두께 때문에 전체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들 수 있단 걸 처음 알았다.

할아버지가 주문을 받고 할머니가 커피를 내려주셨다. 눈이 안 보이시는지 두분 다 뭘 확인하실 때마다 손에 든 종이에서 얼굴을 멀찌감치 뒤로 밀어 미간을 찡그리셨다.

정갈한데 큰 딸기 케이크가 탐스러워 안 살 수가 없었다. 메구상네 도착해서 싸 온 케이크와 커피를 풀며 이 집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는지 종알 종알 보고하자 얼마 전 까지만해도 노인정 대신해서 동네 어르신들이 하루종일 계시는 다방이었다고 알려주셨다. 내가 갔을 때도 아침부터 와 계시는 듯한 할머니 할아버님들이 많았다. 서로 막내 딸이며 조카 안부를 물으시는 게 친척 바이브였다.

그대로도 나쁘지 않을 장사였을텐데 큰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다시 하고 가게를 리뉴얼 한 용기와 결심이 어디에서 나오셨을까 너무 궁금했다. 가게 컵, 포장지, 숍카드도 참 차분하고 예뻤는데 그 연세에도 그런 센스를 썩히시기엔 견딜 수 없으셨을까. 나이가 얼마여도 ‘생산’하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욕구는 다 있지만 행동하는 건 쉽지 않은데 정말 대단하다. 마흔에도 많은 걸 포기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아니까 더욱 존경스럽다..

六原珈琲 ROKUHARA COFFEE
https://g.co/kgs/aLS4P1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