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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하루가 학교에 간 사이 긴자에 가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틈틈이 만나줍니다.
알바하러 가면 매일 볼 수 있던 서로가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이가 된 것을 깨닫게 된 어른이 되었을 때 촘 슬펐는데 코로나로 그 마저도 못 보게 되니 우리에게 남은 기회가 평생에 걸쳐 얼마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성큼 다가와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

아이한테 일본 카이세키 요리 (일식 전통 코스요리)를 체험시켜 주고 싶다는 멋진 메텔. 난 이런 생각 해 본 적이 없네.. 너무 좋다.

<大志満>이라고 쓰고 <오오시마>라고 읽는 곳이었다.
긴자 CORE 쇼핑몰 9층에 있었다.
마지막 남은 자리를 전화로 예약 성공해쓰! 예쓰!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서 급하게 전철 안 차량과 차량 사이에서 양쪽 문을 닫고 전화했다. (그 왜 아코디언처럼 쭈글쭈글한 연결고리 있는 칸과 칸 사이의 공간이요) 원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거의 통화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일본이지만 이럴 때 내가 쓰는 필살기가 있다. 연신 고개를 꾸벅꾸벅 조아리면서 전화하는 척하면 '아 되게 중요한 비즈니스 콜'이구나 이러면서 전철 안 승객들도 이해해주는 너낌이 만연함.
살아보니까 공공시설에서 매너 지키는 것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회사에 목숨 걸고 개인이 희생하는 자세가 한 수 더 우위에 있다고 느껴진다. 전철 안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 사람이 씨잘데기 없는 수다를 떨고 있으면 눈총을 받지만 모우시와케 아리마셍!!! (정말 죄송합니다!!!) 사죄 모드로 사무적인 대화를 하면 단체로 이해하는 게 국룰 ㅋㅋㅋㅋㅋㅋ

레스토랑 정보 https://www.ginza-core.co.jp/shops/gourmet/gourmet_07.html

銀座 大志満 | 銀座コア|ギンザコア GINZA CORE

銀座5丁目にオープンして50年。

www.ginza-core.co.jp

아크릴 가림판 때문에 면회 느낌 좀 납니다.

아무리 봐도 정신병동에 있는 날 면회 온 듯함.

허니는 무슨 다섯 살 아이가 어찌나 음식을 음미하면서 잘 먹는지 편식의 대가를 키우는 애미로선 신기방기 해 죽겠다. 허니는 처음 먹는 음식인데도 자신의 취향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하고 조금 쓰고 낯선 맛이 나도 거부하지도 골라내지도 않았고 비싼 재료는 귀신같이 맘에 들어했다.

신기하게 튀김은 별로라는 천부적으로 건강한 입맛… 디저트로 나온 무화과를 알려나? 싶었는데 이모, 저 무화과 좋아해서 자주 먹어요. ’ㅂ‘ 우앙…
평소 얼마나 다양한 음식과 새로운 음식을 접하게 해 주는지 가정 분위기가 느껴졌다. 부럽당…

하루 형아는 고칼로리에 영양가 없는 음식들만 받아들이거든… 우리 형아는 어떻게 하면 좋을 거 같니 허니얌..

잠깐 집으로 가서 학교 마치고 온 하루를 데리고 다시 만났다. 저녁 메인이벤트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 공원을 걸었다. 밤 공원에 흥분한 두 사람 ㅎㅎ

요트가 정박 중이던 공원

가로등 불에 모델 같은 메텔.

나의 패셔니스타 너..너무이뻐…그거아니?

셔틀버스를 타고 예약한 ‘야카타부네’ 승선장으로 갔다. 통통배 타면서 도쿄 야경을 구경할 수 있는 동시에 철판에 오코노미야끼 야키소바 등등을 해 먹을 수 있는 코스였다.

-나 아까 하루 데리러 집에 갔을 때 케이타가 야카타 부네 몇 시냐고 그러더라고.
-아. 형부 집에 있었어요?
-어 오늘 재택근무하는 날이라서. 그래서 7시라고 그랬더니 갑자기.. 가만가만… 일이 여섯 시에 끝나면… 신바시까지 가면… 음.  아슬아슬하겠는데? 갑자기 자기가 스케줄에 맞출 수 있는지 막 계산을 하기 시작하는 거야. 아니.. 애초에 케군 자리는 예약을 안 했는데…
-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요? ㅋㅋㅋㅋ
-… 기리기리 다요네.. (너무 아슬아슬하지?) 이게 우리가.. 여섯 시 반엔 그… 신바시 역에서 셔틀버스가 떠나가지고… 배가 그 자리에 있으면 늦게라도 오라고 하겠는데 이게… 배가.. 출발을 하면.. 아 헤엄쳐서 올 수도 없고.. 참.. 곤란하게 됐네… 이람서…토닥토닥…되게 아쉬운 사람처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꺽꺽)
둘이 배 잡고 웃었다. 정말.. 배가 떠나지만 않았으면 오라고 했을 거야. 케군 미앙해. 갑자기 시간 계산하기 시작해서 진심 당황했다 ㅋㅋ

대합실 모습

에도시대와 스모우에 관한 작은 전시 공간도 있었다.

관광상품으로 매우 훌륭함!

포토존에서 까불이는 이렇게 사진을 찍었다.

엄마가 하루 따라해볼까?
하루 이랬어
진짜 이래써

허니는 하루 엄마는 웃긴 엄마라며 디스 같은 칭찬을 해줬다. 내게 있어서는 백 프로 칭찬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허점이 많았다. 항상 빨리빨리 하라며 재촉하고 엄마 생각대로 안되면 자주 욱하고 가끔 우리한테 하지 말라는 일을 엄마는 당당히 해서 되게 모순적이었다. 앞뒤 듣지도 않고 혼내고 나중에 사과도 없었다. 그런데도 엄마가 밉지 않았던 건 엄마가 웃겨서였다. 엄마는 우리 집 최고의 코미디언이었다. 어찌나 시니컬하고 웃긴 말을 잘하는지. 엄마가 요즘 사람이었다면 댓글만 달면 아마 늘 베스트로 올라갔을 거다. 지금은 다 잊어버렸는데 엄마의 일상을 인터넷에 올렸다면 인스타에 짤이 돌고 돌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엄마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고 좀 억울하다가도 엄마가 웃겨주면 그냥 어이없이 언니도 나도 웃어버렸다. 언니랑 둘이 “아.. 진짜 웃기니까 용서해 준다.. ” 이 말이 단골 멘트였다. 엄마 본인도 알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완벽하지 못한 모습을 개그로 커버 친 고수였을 수도 있다. 나는 아이를 낳고 그게 얼마나 유용한 스킬인지 기억해 냈다. 그래서 하루를 키우면서 수많은 구멍을 개그로 덮을 때가 많다. 어느 날 하루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쫌 나쁘긴 나쁜데 웃긴 거 같애. 다른 엄마들 보다 웃겨서 좋아.”
하루에게 들은 말 중에 가장 좋았던 말이었다.
“엄마가 실수할 때가 많아서 미안해. 엄마가 더 노력할게. ”
“하루한테 화 안 내고 잘 키우는 거?”
“아니 웃기는 거”
하루는 또 빵 터져줬다.

승선시간이 되었습니다.

언제 봐도 스물다섯 그때 그 느낌.

메텔이 몬쟈야끼를 좋아해서 철판 코스로 했는데 사실 나 몬쟈야끼… 별로 안 좋아해 ㅠㅠ 야끼소바 먹어야겠다. 이런 이야기를 분명 우리가 나눴는디?

여기 명란 (멘타이코) 통통한 거 보래? 엄청 맛있는 명란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가… 뭐지?
-메텔아 내가 몬쟈야끼 싫어한다 그랜니?
-네. 왜요?
-나 자식 거짓말했네…
-맛있어요? ㅋㅋㅋㅋㅋㅋ
-와 이거 뭐야? ㅋㅋㅋ 나 몬쟈 좋아하네!! 멘타이코 너무 맛있다.
몬쟈에 눈을 떠따!!!

야채 범벅 요리라 한 입도 안 먹은 주제에 아는 척과 설레발의 하루는 팔 걷고 나서서 다 만들어줬다.

여기가 도쿄의 어디쯤인지 가이드해 주시고.
서로 만들겠다고 다투려나 싶었는데 허니는 신중한 타입.. ㅋㅋㅋㅋㅋ 이 처음 보는 음식과 체험을 끝까지 관찰하지 않는 한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아이들마다 참 다르다.
나중에 들었는데 허니는 또 9시면 꿈나라로 칼퇴하는 새나라의 어린이라 사실 살짝 졸렸다고도 한다. 아우.. 귀여워 ㅋㅋㅋㅋ

이쪽 모자가 문제. 내가 알아서 해 주겠다는데 하루는 자기가 (일본 사람이니까 일본음식을) 더 잘 안다며 (이 멘트가 ㅋㅋㅋ 너무 재수 없는 거라 ㅋㅋㅋ) 엄만 지금 다 틀렸다며 아니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 내 입맛에 맞게 하겠다는데. 하루는 또 스텝이 말해준 대로 아님 쓰여 있는 대로 하지 않으면 그건 틀린 거고 세상 잘못된 거라 지적할 게 너무 많아서 미친 답답해하고 나는 그 꼴이 너무 봬기 싫어서 ㅋㅋㅋ 투닥거리고 있었더니 메텔이
-언니 싸우지 마여..
이래서 아 이 상황에서 금쪽이는 나구나 깨닫고 부끄러워땈ㅋㅋㅋ 아 근데 하루가 저러는 거 나 왤케 싫었을까.

그래 김볶밥은 (김치볶음밥이 메뉴에 있었다) 니가 해라. 하아.. 김치볶음밥은 한국음식이니까 내가 더 좔 안다고!!! 되갚아줄까 하다 참아따.. (수준 똑같음)

졸려서 몽롱한 허니랑 야행성이라 흥 폭발한 하루

바쁜 워킹맘으로 항상 허니한테 미안하다는 메텔이 안쓰러웠다. 같은 엄마지만 내가 모르는 또 엄마의 심정이 있다. 내가 막연히 상상하는 것보다 메텔은 허니에게 더더 안타까워 하는 거 같았다.

둘만의 여행이 메텔에게 많이 부족한 조각을 채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나는 허니에게 엄마란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 엄마가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허니를 채워주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워킹맘이 아니니까 내 말은 별로 와닿지 않을 거 같아서 주제넘게 말 못 했다. 엄마라고 부를 수 있고 갑자기 꼭 안겨도 뿌리치지 않는 ‘엄마’가 되어 주고 있다면 너무 충분하다고 생각해… (지금 쓰면서도 내 생각이 주제넘어서 망설여지지만..) 워킹맘을 가진 허니는 지금 행복하니까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우는 메텔이 조금도 미안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야말로… 엄만 갈 데 없어? 엄만 직업 없어? 엄마처럼 알바나 하면서 살면 되겠다. 엄마는 사회생활 제대로 안 해 봐서 말이 안 통해. 이런 말 들을까 봐 걱정이야… 전업주부에게는 또 아이가 크면 하루하루 다가오는 자립의 압박. 이게 인생에서 도대체 몇 번째 자립인지 모르겠어. 고졸 후 취업, 대학 졸업 후 취업, 일본 와서 아이 성장 후… 또 시작된 그 고통. 난 뭘 할 수 있지. 난 뭘 좋아하지. 뭘 잘하지. 끝없는 자아발견 지긋지긋 한 그거.  처지가 다른 엄마의 고민이 조금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파이팅하자. 우리는 각자의 길에서 제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모두가 똑같은 엄마가 없을 뿐이지!!!

아프지 않고 잘 여행하고 간 허니에게 너무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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