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여행] part.9 비에이美瑛, 아사히가와旭川 비에이 팜/ 라멘무라/ 아사히야마 동물원

여행 이틀째까지는 갈 길이 먼 느낌이었는데 중반부터 갑자기 쏜살같이 시간이 흐르더니 어느덧 마지막 조식을 먹으러 왔다. 갑자기 현실을 부정하고파.
조식은 오늘도 너무 훌륭했다. 특히나 수프가. 국물 내는 장인이 계시는 게 틀림없다.

홋카이도 수프 카레!!
내내 그 유명한 수프 카레를 못 먹어서 아쉬웠었다. 매운맛이 많은 이미지라 수프 카레 전문점에 하루를 데려가길 포기하고 있었는데 닭고기 살이 흐드러지듯 푹 고아 나온 진국 중의 진국을 조식에서 만나다니…(게다가 매콤했다. 그래서 더 행복했다는) 우리 사정 꿰뚫은 신내림 받은 국물 장인이심미까. 퍼 먹고 또 갖다 먹고 밥 말아먹고 한을 풀었다.

급한 시그널을 받고 호텔 방으로 뛰어 간 케군의 빈자리. 시원하고 쾌적한 하루를 시작하겠군 녀석.

부어서 니모같은 하루

체크아웃을 하고 어젯밤 저녁식사 때 추천받은 곳을 찾아갔다.
비에이 팜 美瑛ファーム https://biei-farm.co.jp/

美瑛ファーム

구글 지도 : https://goo.gl/maps/tUAH6Ykhx36ERdzu9

美瑛放牧酪農場 · 平和-5235 Shinsei, Biei, Kamikawa District, Hokkaido 071-0473

여기는 요즘 뜨고 있는 곳이라 전국적으로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한국 블로거 분들에게는 더더욱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구글 맵이랑 홈페이지도 열심히 링크를 걸어 놓았어요.

온리 소 농장만 운영하는 곳이라 메뉴는 모두 유제품.
위에서부터 소프트크림 / 살균 우유/ 마시는 요거트/ 유염 버터
옆 메뉴판은 라크렛토 드 비에이 (이 농장에서 나는 우유로 만든 3개월 이상 숙성시킨 치즈) / 후로마쥬 드 비에이 (10개월 숙성짜리) / 큐브 (후로마쥬의 작은 버전)/ 후로마쥬 브랑 (치즈에 꿀 얹음) /라크렛토 토스트

어제 여길 추천해준 분이 그랬다. "제 친구가 비에이 농장 아이스크림이 진짜 맛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먹으러 갔더니 와- 진짜 맛있더라고요!!" 나는 북해도 사람이 북해도 사람한테 아이스크림 맛있다고 추천받았는데 추천받은 사람도 인정했다는 이야길 들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무데서나 먹어도 북해도 바닐라는 클라쓰가 다르던데.. 심지어 그들이 인정한 건 대체 어떤 어나더 레벨일까.

많은 사람들은 메뉴 마지막에 쓰여 있는 <라크렛토 토스트>를 먹기 위해 온 것 같았다. 사진처럼 뜨겁게 달군 쇠방망이?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치즈를 갓 구운 빵 위에 받은 심플한 메뉴였는데 이 과정의 비주얼이 매우 좋네... 아... 아이스크림 이야기만 들어서 조식을 빵빵하게 먹는 바람에 토스트는 패스했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눈앞에서 보면 훨씬 더 먹음직스럽다. 아주 그냥 치즈 이불을 덮어주는데 탐스럽더라.

응헝헝헝 ㅎㅇㅎㅇㅎㅎㅎ

어디 어디... 먹어볼까.
오오.... 진하다...맛있네ㅋㅋㅋㅋ마시따 ㅋㅋ 웃음 나는 맛이다. ㅋㅋㅋㅋ 비웃는 게 아니다. 글로 표현하는 게 너무 역부족이라 ㅋㅋㅋ 이러고 있는 것이다. 공장에서 찍어낸 편의점 맛이 아니라. 정말 농장의 맛이었다. 분위기에 취해 맛을 왜곡해서 기억하는 것도 아니라 이건 정말 확실한 퀄리티!!

그리고 여기가 너무 좋았던 것은

산책로 입구에 있는 박스의 뚜껑을 열고 양 발을 번갈아 밟아 소독 가루를 묻힌 후

완만한 언덕을 오르면

얼룩소 누렁소들이 푸른 언덕에서 어슬렁 거리는 그림을 넋 놓고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소를 처음 보는 건 아니지만 악취와 스트레스가 느껴지는 모습이 아니라 누가 꼭 상상해서 그린 것 같은 이상적인 들판 위의 소들이었다. 상상은 쉽게 할 수 있었으면서도 실제로 보고 있으니 참 놀라웠다.

소와 소들의 거리감이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여기서 태어나 이렇게 자란 소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소들을 아는 나는 대신해서 안도감과 부러움을 느껴주었다. 소 입장에선 부탁한 적 없는 오지랖.

살포시 나도 이 그림에 끼어 그림 같은 모습을 남기고 싶었으나 케군은 날 합성처럼 넣어 놓았다. 모든 것이 따로 놀고 있어.. 아.. 오히려 내추럴한가. 그래 좋게 생각하게씀미다.

이건 또 소들 어디다 짤라먹었어

아무튼, 마음속에 인생 샷을 잘 남겼으니 평화로운 들판을 마지막으로 후라노와 비에이 지역을 떠나게 돼서 이 보다 더 좋은 마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40분 차를 달려 <아사히가와> 지역으로 왔다. 오늘은 마지막이라고 케군이 거의 모든 운전을 내게 맡겼다. 이제 같이 죽자 이건가. 이판 사판이야? ㅎㅎ 아사히카와에서의 운전은 좀 어려웠다. 급 도심이 되기도 했고 급 북해도산 친절 모드가 파사삭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가 잘못했지만 몇 번 욕 대신 크락션 소리도 듣고 주차 땐 눈을 흘기던 분도 있었다. 도쿄로 돌아가기 전에 워밍업 한다 생각하고 다시 "너는 너, 나는 나. 우리 서로 민폐 노노" 필터로 갈아낄 때가 됐군 직감했다.

점심으로 <라멘 무라> 라는 유명 라멘 체인점 총집합된 곳에 섰다. 그래 봤자 한 7 점포 정도 영업 중이었는데 아사히카와에 왔다면 버터랑 옥수수가 듬뿍 들어간 게 제일 유명해서 그걸 먹고 싶었지만 줄이 너무 길었다.

결국, 잘 모르는 사람 없는 곳에 들어갔다. <사이죠우> 라는 꽤 옛날부터 있던 곳이었다. 그 말인즉슨,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데. 한쪽은 심플하고 예전에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맛이 그저 발전 안 했다는 말이거나, 다른 한쪽은 심플하고 전통적인데 너무나 중독적이어서 지금까지 사랑받았다는 말이거나.

내 입맛에는 전자 쪽이었다. 무지하게 평범했다.

교자도 평범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지.

오!! 언제 이런사진을.. 우리하루기특하다.

저녁 비행시간까지 아사히가와에서 할 일은 이거밖에 없다. 라멘 먹고 동물원 가는 일. 몇 년 전 케군과 둘이 홋카이도 첫 여행하기 전에 <아사히야마 동물원 이야기 : 펭귄이 하늘을 날다> 영화를 보고 왔었다. 그 감동이 식기 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 그 흥분을 잊을 수 없다. 하루에게도 체험시켜 주고 싶었는데…가입된 OTT 서비스엔 없었고 유료로 결제하려고 했는데 어영부영하다 보니 흑흑 못 보고 왔다. 다 무너져가는 동물원 운영을 동물과 관람객 모두를 생각한 아이디어로 기사회생한 실화를 그린 영화였다. (소소히 넘나 감동적이랍니다. ) 영화 내용은 살짝 기억에서 잊히려고 하지만 그때 느낀 내적 친밀감은 다시 솟았다.

음? 뭘 하시는 거지? 30년 전 어린이 대공원 옆에서 자란 나는 동물원 앞에선 번데기 파는 게 국룰이었는데 (아 죄송 ㅋㅋㅋㅋㅋ 너무 제가 오래됐죠?)

일본 할아버지는 사탕으로 깜찍한 동물을 수작업하심;;; 와... 심지어 그 자리에서 리퀘스트받아서 뭐든지 뚝딱뚝딱 만드셨다. 근데 한 개에 700엔. 캔디가 아니라 아트를 파시니까.. 가격은 납득하게씀.. 하지만 하나에 칠천 원짜리 사탕을 애한테 사 줄 갑부도 아트를 이해하는 인텔리도 아니라 지갑이 열리지 않았다.

백곰.. 질리지 않는다.

맘 속으로 함께 입 벌려 웃음

온천목욕 하고 있음

호랑이가 되게 충격적이었다. 왜 이렇게 말랐어? 호랑이 몸이 저렇게 길다고? 반죽하다 만 것 같은 허리였다.

그리고 표범이 빨래처럼 걸려있었다.

ㅋㅋㅋㅋ 편해?

하루는 사실 동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아이인데 아사히야마 동물원 특유의 전시방법을 재밌어했다.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인 관찰이 가능하도록 의도한 것이 많은데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재기에 성공한 이뉴이기도 하다. 요즘은 이케부꾸로의 선샤인 시티 수족관도 펭귄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것 같은 연출을 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지만 모든 시작은 여기였다는 것.

사람 머리로 점프해 올까 봐 촘 무서웠던 염소들을 끝으로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두 시간이나 남았다. 작은 공항이라 할 게 없군요. 하지만 우리 부부는 둘 다 늦어서 당황하고 서두르다 스트레스받느니 지루해도 정말 일찍 가서 안전하게 이동하자는 의견으로 예전부터 투합되어있었다. 합의할 것도 없이 처음부터 너무 똑같은 의견이라 참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부분.

공항 기프트 가게에서 과자를 조금 사고

하루는 일단 해 보다가 멋모르는 사이 끝나버린 시뮬레이터 게임

아.. 아빠 이거 착륙만 하는 건 가봐.
그래서 다시 두 번째 시도한 시뮬레이터 게임.

노을이 내려온다.
언제나 탑승할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은 설레고 묘하다. 원거리 연애할 때 매번 눈물바람으로 헤어져야 해서 생각만 해도 슬펐던 것도 잠시. 이제 그 기억을 다 덮을 만큼 또 우리의 새로운 가족들은 공항에서 많은 추억을 다시 쌓은 거 같다.

아사히카와 공항 푸드코트는 상당히 괜찮았다.

국내선은 기내식이 없으니 먹고 갑시다~

인도나 네팔 쪽 느낌 카레 (와- 진짜 맛있!!)

여기서 먹은 옥수수랑 버터 들어 간 라멘

전망대 구경

우선 도착해서 코로나 증세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무사 패스해줘서 너무 감사했고 비행기의 이착륙, 호텔 체크인, 식사 예약이 전부 예정대로 진행돼서 감사했다.

그리고 북해도 여러분들의 따뜻한 친절함이 매우 매우 감사한 여행이었다.

이런 것도 비행기 안에서 먹었다고 함
맛이 평범했나 보다 기억이 안 난다.

드디어 하네다에 도착!
내리자마자 공기 중에 습기가 우릴 덮쳤다.
오랜만에 땀을 흘리며 집으로 왔다.

진짜 마지막으로
지갑과 아이폰을 넣고 다닌 이 작은 가방에게 감사!!!

바로바로 꺼내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스트레스 제로였다. 나의 오랜 여행 메이트가 될 것 같은 예감.

긴 여행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