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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챙겨 먹고 오늘은 자연과 함께하는 북해도 관광을 테마 삼았다. 사실 우리 가족이 진짜 못하는 분야. 느긋하게 누구 하나 멍 때릴 줄 아는 사람이 없다. 케군이 그런 쪽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최소한으로 몸을 움직이는 연비 좋은 타입일 뿐 머릿속에선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스케줄이 없으면 불안해하고 가이드라인에 따라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뭐, 걱정이 많은 덕분에 5년 계획 10년 계획이 철저한 (플러스 미리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은 덤) 메리트는 있음.
반면에 나는 진짜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데 소득이 없는 타입. 어차피 또 할 거 모아서 하면 될 일을 또 하고 또 해대는 비효율 인간이다. 심각한 건 금방 지루함을 느끼고 가만히 있으면 몸이 간질간질한 성인 ADHD에 가깝다. 여유를 즐긴다는 말이랑 여운을 느낀다는 감각을 솔직히 잘 모른다.

하루는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여느 평범한 만 7 살 같다. 뭐, 가만있진 않는다는 이야기. 하지만 같은 나이의 나랑 비교하면 한참 얌전하다. 엄마가 내 어릴 적 모습을 회상하면 늘 ‘지랄염병’이었다 그랬으니까. 그런 아이를 키우시는 어머님들 계시면 용기를 드리자면 본인은 자신이 했던 염병적 지랄의 과거를 다 잊고 사회 구성원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잊었다는 것은 별로 위로가 안되실지도?ㅋ)

그런 우리도 대자연을 누비면서 우아! 우아! 좋다 좋다! 연발을 하며 재미있게 시작을 했다.

그리고 오전에 후라노와 비에이 지역의 ‘메다마’ 관광지에 도착했다. 메다마는 目玉 눈알을 한자 표기한 것인데 계란후라이의 노른자를 그렇게 표현한다. 한마디로 붕어빵의 앙금처럼 주역이자 메인이라는 말을 할 때 자주 쓴다. 덧붙여 계란후라이를 目玉焼き🍳 메다마 야끼라고 부른다. 계란과 구이를 붙여 ‘타마고 야끼’라고 말하고 싶어 지지만 그건 ‘계란말이’라는 뜻이 돼버린다. 이자까야에서 보통 주문할 수 있는 건 ‘타마고 야끼’ 계란말이. 호텔 조식에서 볼 수 있는 건 ‘메다마 야끼’ 계란 후라이. (요즘 영어 공부를 어원으로도 하니까 이런 썰 나오면 좋드라고요. ㅋㅋㅋ 그래서 갑분 일본 문화 특파원 중 )

도착한 곳은 바로 이 지역의 ‘메다마’ 나도 가장 가 보고 싶었던 곳. 青い池! 아오이 이케. 이름 그대로 <푸른 호수> 약 10년 전 mac북 바탕화면인가 스크린세이버인가에 나와 글로벌하게 알려졌다고 한다. 어쨌든 보정한 것처럼 너무 신비롭게 빛나는 호수였다. 이건 프로가 찍지 않아도 그냥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아무 데나 너무 퐌타스틱…

그냥 막 아무렇게나…
오호….
아름다워요…
워낙 유명하고 사람이 많이 오는 곳이라 힘들다 별로다 생각보다 작다 복잡하다 고생이다 이런 리뷰를 좀 봤는데 사람들이 밀집되어도

이렇게 사진 찍을 곳은 다 있었고

아무리 붐벼도 일본인 관광객 틈에서 존재하는 그 무언의 룰과 배려로 전혀 불쾌함 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빨리 찍고 빠져주고 살짝 비켜주고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서로서로의 작은 순간들.

근데 사진 좀 찍어 주세요는 미안해서 말을 못 하게 씀
일본인한테 찍어드릴까요? 하면 부탁도 안 했는데 웬 간섭? 이럴까 봐 찍어주겠다는 말도 못 함. ㅋㅋㅋ 배려를 너무 하는 사회에서 살다 보면 생기는 부작용입니다.

호수를 다 보고 나서 차에 타니까 갑자기 발 등에 불이 떨어진 느낌이 났다. 큰일 났다. 이제 갈 데가 없다…? 아직 11신데? 근데 이게 왜 큰일이지? 분명 우리는 정처 없는 여행. 마음 가는 대로 여행. 이런 테마였는데 … 안 맞아 안 맞아. ㅋㅋㅋ 제발 누가 우리에게 스케줄을 주세요… 케군이 구글로 (열심히) 찾아 폭포를 보러 갔다. 아니 왜… 열심히 찾아 ㅋㅋㅋ

여기는 화산 분화로 생긴 폭포인데 아까 본 푸른 호수의 상류이고 원천이었다. 알루미늄 성분이 많이 들어서 그렇게 푸른빛을 띠는 거라고 한다.

폭포를 본다.

그리고 다 봤다.
음… 또 이제 어쩐다? ㅋㅋㅋㅋㅋㅋㅋ
무계획 여행 아… 어떻게 하는 거야!!

배는 특별히 안 고픈데 저녁시간까진 뭘 먹어 둬야 할 거 같아서 일단 밥집을 찾았다.
생햄이랑 소시지 직접 만든다는 <호빗또> 에 왔다. 여기도 근방에선 상당히 유명 집이었지만 하필이면 휴일이었다. 후라노랑 비에이는 보통 가게들이 런치만 하고 문을 닫는 곳이 많아서 저녁밥은 미리 알아두고 예약하거나 사 온 음식을 호텔에서 먹는 걸 추천한다. 그리고 런치만 하는 가게들도 목요일에 쉬는 가게가 많았다. 우리가 간 날도 목요일.

그래서 또 보이는 곳이 있으면 들어가려고 했던 계획을 접고 구글로 열심히 찾아본 우리. ㅋㅋㅋ 엄청 외딴 오두막 느낌의 샌드위치 가게를 찾았다.

음? 신발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하네? 앗… 살짝 거부감이 들었지만 내부가 산장같이 특이해서 일단 슬리퍼는 타협하며 들어갔다.

오.. 우리 팀 밖에 없어. 아기자기 귀엽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서 운영하시는 모양이었다.

나무로 만든 메뉴판
하루는 토스트를 시키고
나는 함박 스테이크 오픈 샌드위치.
케군은 카레 오픈 샌드위치를 하나씩 시켰다.

다시 한번 리마인드 하겠다.
하루는 ‘토스트’를 시켰다.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시켜도 식빵 같은 특징 없는 빵에 버터나 잼 나오는 것 말고 무엇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게 나왔다!!!!!!!
자…. 잠시만요…
호박, 콩, 옥수수, 건포도 팍팍 박힌 플레인도 섞인 작은 모닝빵이 산 같이 나왔다. 전부 수제 같아 보였고, 소시지 (엄청 큼!) 두 개에 버터랑 호박 페스트도 곁들여져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리마인드를 하겠다.
우리가 시킨 건 오픈 샌드위치였다.
샌드위치였다! 여러분은 샌드위치를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으십니까? 얼마나 많은 범위까지 샌드위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런 게 나왔다!!!!
잠깐만요!!! 할아버지!!!! (케군이 음식 앞에서 왜소해 보이는 거 신선하다..)
미키마우스 모양 빵이 (분명 수제임) 거대하게 펑퍼져있고 두툼한 엉덩이 부분을 잘라 그 안에 지금이라도 터질 듯한 카레가 넘실거렸다. 네네… 카레… 오픈 샌드 위치를 시킨 게 맞긴 맞아요.. 카레고… 확실히 위에 오픈… 모든 게 샌드 되어 있고…
하아… 내 거가 기대 (걱정)된다…..

맙소사… 내 오픈 샌드위치는 (드디어 이제 좀 예상 가능) 함박 스테이크가 가득했다.. 치즈 맛있는데 왜 이렇게 많은 건데… 난 미키 마우스의 귀때기 빵만 뜯어먹었는데도 이미 포만감 오고 말았다.

빵 귀때기 뜯어먹고 난 후
우린 너무 이상해서 메뉴판을 다시 봤다.

함바그 오픈 산도 500엔임!!!
카레- 오픈 산도 확실히 500엔임!!
누가 500엔 내고 저런 비주얼이 나올 거라 상상하겠나. 이건 북해도에서도 매우 특이하다 본다.

미안하지만 케군이랑 난 많이 남겼고
하루 빵은 봉지에 넣어서 반 넘게 싸 왔다.

이렇게 앙증맞은 오두막에서 폭식 메뉴 만드니 조심하세요. 알고 갔다면 하나 시켜서 오손도손 맛있게 나눠먹었을 텐데 시키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거지… 빵도 정말 맛있고 모든 재료가 다 정성스러웠으니 비난받을 가게는 아니다. 오히려 정말 죄송했습니다.
LA MARTA (라 마르타) 가게 정보 여기.

ラマルタ - Google 検索

住所, 北海道上川郡美瑛町美馬牛北3丁目. アクセス, JR美馬牛駅より徒歩5分. 駐車場, 有り/無料. 電話, 0166-95-2923. ウェブサイト. 料金. 営業期間, 通年。

www.google.co.jp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홋카이도는 이렇게 큰 오토바이로 여행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이 분들이 자주 가는.. 아주 볼륨 있는 것이 자랑인.. 그런 가게가 아니었을까? 할아버지 할머니도 잘 못 먹는 비실한 가족이 갑자기 와서 서로의 바램에 맞지 않았던 어색한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미리 도쿄에서 계획했다면 리뷰 꼼꼼히 봤을 텐데. ㅎㅎ
무계획 여행.. 아 안 맞아 안 맞아

밥 먹고 <롤러 코스트 길>이란 곳에 갔다. 저 앞에 보이는 길이 마치 급 경사진 롤러 코스트 같다고 해서 붙여진 관광명소인데 정말 순식간에 지나감.
그리고 막상 차로 가면 어… 잘 모르겠음.
(내려서 사진 찍기에도 위험해 보여서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케군의 제안으로 와이너리 구경을 갔다. 얘 또 모르는 새 엄청 열심히 구글링 했음.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이 운영하는 와이너리였다. 북해도에는 간간히 이런 소규모의 와이너리가 꽤 눈에 띄었다. 이탈리아 배경의 영화에서 막 몇만 평짜리 포도밭에 끝이 안 보이는 나무통 창고. 이런 것만 와이너리라고 상상했는데 작아도 되는 거였구나.

내부 구경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의외의 꿀잼이 기다리고 있었다. 염소를 키우는 포도밭이었다. 염소들이 배설물과 운동으로 흙을 건강하게 하면 맛있는 포도가 자라는 선순환이 돼서 이렇게 공존하는 거라고 한다.

한쪽엔 블루베리 따기 체험도 가능
우리 집엔 블루베리 좋아하는 자가 없어서 패스했다.

250엔에 먹이주기 체험을 했다. 아까 그 오픈 샌드위치를 500엔에 먹었는데… 250엔에 사료 한 줌 받아오니… 복잡한 심경 ㅋㅋ ‘ㅂ’

하루는 처음엔 잔뜩 겁을 먹고 가까이도 못 가서 주춤주춤 하는데 염소들은 밥 달라고!!! 달라고!!! 구멍 사이사이에서 간절한 얼굴을 했다. 하루는 뒷걸음질 치고 염소들은 구멍으로 있는 힘껏 목을 빼고 하루는 그게 더 무섭고 ㅋㅋ 이게뭐얔. 순간 사료를 향해 목을 쭉 빼는 염소들 목이 찢어질까 봐 헉했다. 하루야!!! 제발 가까이 가서 줘! 케군이랑 내가 막무가내로 하루 손을 당겨서 염소들 목 건강을 챙겼다. 휴…

목 재질 고무 아님

드디어 친해진 녀석들

주떼요 주떼요

가디마떼요

다녀와서도 이 염소 사진을 보고 또 보고 귀여워.. 귀여워… 몇 번이나 회상했다.

사료는 진작에 다 먹어치웠고 무심코 하루가 바닥에 풀때기를 뜯어서 줬는데 냠냠 맛있게 받아먹는 게 아닌가.
-엄마 250엔 괜히 냈네. 우리 이걸로 무료 체험할 수 있었어. 봐봐! 엄청 맛있게 먹어!
ㅋㅋㅋㅋ 진짜 충분히 귀엽게 잘 먹더라.

하루는 여기서 2시간 가까이 놀았다. 대충 나름… 무계획 여행 성공…?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ㅋㅋ

참, 케군도 상당히 즐겼다. 와인 무료 시음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컵을 대고 은색 버튼을 누르면 나오는데 저 컵에 가득 차는 게 아니라 깜짝 놀랄 정도로 째끔씩 나와서 놀랐다. (알콜 시음기는 원래 그런 건가요. 모르겠다) 침 뱉는 거처럼 퉤! 나오니 양을 기대하지 마시길 ㅎㅎ 동전 넣는 구멍에 앞쪽에 준비되어 있는 전용 코인을 넣으면 된다.

으ㅓ!!!!워!!! 뭐 하는 거래!!!
섬뜩한 장난을 하고 있어… 언능 끌어내렸다. 서까래에서 끼익 끼익 무서운 소리가 났어 방금….

뭔가 여러 가지 하고 왔네. ㅎㅎ
여기 카페에서 밥도 먹을 수 있으니까 점심 먹을 곳 찾으신다면 여기도 추천이요.

오늘은
핑크바지/ 흰색 민소매/ 긴팔 셔츠

케군이 마음에 든 와인과 시아버님께 선물할 와인도 사서 도쿄까지 택배로 부쳤다. 세네 병쯤 사면 무료배송 대상이었다. 공항에서 안 사도 되니 이런 꿀 루트!!

이너리 정보 Domain Raison (ドメーヌレゾン) 일본어 발음으로는 ‘도메-누 레존’

자, 이제 저녁시간엔 짜 놓은 계획이 있다! 야호!
계속 징징댔는데 사실 무계획 여행 반나절이 전부였다는 반전. 염소 보면서 꾸벅꾸벅 졸다가 다음 스케줄 할 시간이 다가오자 눈이 번쩍 뜨이며 갑자기 힘이 솟아 시음한 케군을 대신해 룰루랄라 운전대를 잡고 출발했다. 파하하 무계획 여행 안 맞아.. 안 맞아… 즐기는 방법 아시는 분 전수 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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