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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길었던 하루의 봄 방학이 끝나고 (너에겐 짧았고 나에겐 길었지…’ㅂ’) 영어 회화 레슨을 예약했다. 오랫동안 내 시간을 못 가져서 이왕이면 긴자 학원으로 가는 나의 가벼운 발걸음!
일찍 나와 학원 근처를 둘러보다 SONOKO CAFE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소노코상은 창백한 얼굴에 새빨간 립, 한 줄로 그은 눈썹에 스모키 화장 (이라기 보단 매직으로 눈 윤곽을 따라 그림?) 이 강렬한 유명인이다.
이미 돌아가신 분인데 유명해진 이유가 ‘건강식’으로 다이어트를 권하는 ‘날씬해지고 싶다면 먹어라!’라는 책 출판이 시작이라고.
전반적인 미용에 관심이 많은지 그 이후로 제작한 미백 화장품도 유명하다. 근데… 얼굴이 하얀 건 인정하겠는데 너무나 부자연스러워서 무섭게 하얗다..
아무튼 그분이 만든 레시피 (혹은 기업이념으로) 만든 음식을 파는 카페였다.
카페는 이런 모습.
한쪽에는 냉동식품이나 반찬도 판매하고 2층엔 조미료 화장품도 판매 중.
나는 양배추 롤 정식을 시켰다.
하나하나 직원분이 어떤 소스,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샐러드가 정말 맘에 들었다. 데친 유채꽃줄기에 새콤 달콤한 겨자 드레싱이었다. 뭐가 막 씨앗이 씹혔는데 생소한 재료라 기억 안 난다. 양배추 롤도 간이 세지 않지만 고기 육즙이 너무 맛있어서 너무 좋았다.
카운터 자리에 앉아 음미하며 먹고 있는 내 옆자리에 여자 손님이 와서 앉았다.
직원은 메뉴를 가져다주고 자리를 피했고 여자는 한 동안 고심하다 손을 들어 “스미마셍~” 하고 불렀다. 그렇게 작은 소리도 아니었다. 평범한 콜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렇게 바쁜 시간도 아니었다. 여자는 기웃기웃 몸을 흔들더니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손님을 안내했으니 이제 슬슬 알겠지… 5분? 6분? 아니 8분쯤 흘렀다. 가게에 입장해서 주문하려는 사람에게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게다가 12시 언저리 직장인에게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지 않았을까?
갑자기 가방과 핸드폰을 챙기고 높은 의자에서 내리는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순간 직원도 아닌데 내 심장이 살짝 철렁했다. 얇은 봄 코트를 집어 들고 입구로 향하는 손님에게 직원은 결정타를 날렸다.
“손님~ 계산은 뒤쪽입니다.”
순간 난 직원도 아닌데 망했다.. 끝이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여자 손님은 낮은 목소리로 볼륨 있게 말했다.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아무도 주문받으러 오지 않더군요.” 불쾌함이 묵직하게 전해졌다.
직원은 계속 허리 숙여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고 여자는 그대로 나갔다.
아 나는 일할 때 저러지 말아야지. 내가 파스타집에서 일할 땐 어땠지? 저런 상황이면 난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이런 있었던 일들을 그날 화상 영어 수업에 필리핀 트레이너에게 열심히 이야기했는데 수업이 끝나고 나서 갑자기 엄청난 후회가 밀려와 식겁했다.
영어로 설명하다 예전 일을 다시 떠올린 것이다.
10년도 전쯤의 일이다.
나는 20대 유학생이었다. 한국에서 미니 언니가 놀러 왔었다. 우리는 신주쿠, 시부야를 구경했고 어느 날은 하라주쿠에 갔다가 오모테산도 지하철 역 안의 soup & stock 가게에 갔었다. 먼저 쟁반을 챙겨 카운터에서 주문하고 음식을 받아 계산한 다음 비어있는 자리에 앉아 먹는 곳이었다. 매장은 살짝 혼잡했다. 테이블은 다 찼지만 4인용석에 2명이 앉아 있거나 해서 빈 의자도 있었다.
어느 외국인이 음식을 사서 계산을 마치고 쟁반을 든 채로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는 눈치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먼저 직원이 “자리는 확보되셨나요?” 묻고 음식을 팔았어야 했다. 그런데 직원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그 남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았다.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느낌이 그랬다.) 손님도 도쿄 사람들은 닝겐을 투명하게 보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마치 없는 사람인 듯 바쁘게 스푼을 움직이며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언니 어떻게…저 사람 자리가 없어서 저기 서 계시는 거 같은데…
-어 그러네. 먼저 자리를 잡는 걸 몰랐나부다.
-직원들은 왜 안내를 안 해? 세상에… 저렇게 서 있는데..
그때 외국 남자는 큰 한숨을 쉬고 식판을 가까운 카운터에 쎄게 내려놓고 가게를 나가버렸다.
가게 안에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 찼지만 모두 표정이 없었다.
그때 내가 얼마나 분했는지 기억났다. 내가 조금만 영어를 할 수 있었으면 다가가서 말을 걸었을 텐데 나라고 저 사람들과 하등 다를 것 없이 눈을 피하고 전전긍긍한 사람이란 사실이 창피하고 화가 났었다.
내게 그 장면은 언제든지 꺼내 생생히 리플레이할 수 있을 정도로 뇌리에 박혀있다. 그래서 늘 영어 공부를 할 때마다 곤란한 외국인한테 이 표현은 쓰면 좋겠다. 이 표현은 더욱 상냥하겠다. “곤란한 외국인” 설정이 꼭 있었다.
근데. 난 글러먹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 전부터 난 글러먹었따.
내가 영어를 공부하고 싶었던 수많은 이유 중의 하나였던 그 일이 쭈그려 앉아 있다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조명 앞으로 나와 나를 혼냈다.
“이거랑 그거는 똑같은 일이야.”
나는 외국인을 영어로 도와주면서 자기만족에 취할 생각을 할 게 아니라 소노코 카페 옆자리의 여자분이 나를 의식해 부끄러워했던 걸 수도 있으니 말을 걸며 직원 부르는 걸 도와줘야 했다.
“どうして来ないんですかね?忙しくもないのに。すみませ、こちら、呼んでますよ?“
아니 왜 안 오는 걸까요? 별로 바빠 보이지도 않는데? 스미마셍~ 여기 손님이 불러요~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정도가 아니라 난 오지게 잘하는데 말이다. 내가 원한 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데 말이다.
지금 숩 앤 스톡에서 그 외국인을 만난다면 다시 말해주고 싶다.
We can share the table with you. Would you like to use that chair?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그날의 소노코 카페로.
그날의 숩 앤 스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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