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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매스컴 말고도 내 소소한 일상 속에서 가끔 굉장히 인품 있고 훌륭한 분을 만난다.

12월에 우리 동네 내과 의사 선생님의 또 그런 면모를 봤다. 밥을 좀 먹으면 위가 아팠다. 위염과 위경련의 화려한 경력을 가진 나는 익숙한 아픔을 견뎌보려다가 곧 다가 올 연말연시를 대비해 병원에 가기로 했다.

먼저 온 아기와 아빠가 소파에 앉아 처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는 속이 불편한지 내내 울음을 냈고 아빠는 아가를 달래 보려 무릎을 흔들며 아내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때, 아무 징조도 없이 아기는 순식간에 토를 했다. 코를 찌르는 냄새와 함께 바닥이 엉망이 되었다. 접수하는 직원분이 달려와 티슈를 찾아왔고 뒤 이어 방에서 나오신 의사 선생님이 그 휴지를 대신 받아 들고 바닥과 의자를 닦기 시작했다. “괜찮습니다. 지금 이런 증상이 있을 법하죠.” 하며 아이에게 웃어 보이셨다. 아빠는 죄송한 얼굴로 아기를 닦았다. 선생님은 나를 먼 의자로 안내하시고 다시 병원 바닥을 닦으셨다. 접수하는 직원분께 소독 스프레이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 행동은 마치, 직원은 청소부가 아니고 여긴 제 병원이니까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한 바탕 소동이 끝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고 선생님은 재차 사과하시고 나는 우리 아들 어릴 때 자주 맡던 냄새라 하나도 신경 안 쓰였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선생님의 주특기, 치료 방침 함께 정하는 식 진료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이 차곡차곡 잘라놓은 이면지를 한 장 집어 드셨다.
며칠부터 증상이 시작되었고 경과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상세히 물어보셨다.
-그렇군요. 제가 보기에도 위산이 과다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드럭스토어에서 h2브로커 성분의 약을 드셔서 조금 나아졌다면 그 성분의 약을 조금 더 써 보도록 하죠. 현재 함유량 10을 드시고 계시다면 가장 쎄게 들어있는 것이 20이거든요? 이걸 먹어 보고 더불어 위의 점막을 보호해 주는 무코스타를 병행해 보는 건 어떨까요?
-H2브로커 함유량이 높아서 생기는 부작용은 있나요?
-거의 없습니다. 안전합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시면 증상이 호전되면 그건 멈추시고 대신 점막 보호하는 약은 증상이 끝나도 다 드시는 건 어떨까요?
-좋습니다!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그밖에도 그 약에 대해서, 증상이 더 심해질 경우에 대해서, 그 이유에 대해서 그동안의 식생활에 대해 정말 세심한 회의가 이어졌다.

마치 닥터 하우스랑 화이트 보드 앞에서 어떤 약을 얼마나 투여할 건지 함께 회의하는 의국 느낌. (선생님… 매디컬 드라마 좋아하는 전 이 시간이 너무 좋아요….)
이렇게까지 상세히 설명하고 내 걱정을 수렴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이 계셨던가… 작은 행동 하나하나 곱씹어 보면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일들이란 생각이 든다. 현명함? 정중함? 친절함? 선생님의 장점을 꼭 하나 짚어 표현할 수 없이 모든 방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씩 훌륭하다는 느낌이다. 이런 게 ‘인품’이라는 거겠지? 우리 동네엔 이런 내과 선생님이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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