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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와 여자

3월 일상과 카페

Dong히 2022. 4. 14. 12:27

반응이 좋아서 다시 모아 본 월간 카페 시리즈 3월호!
영어 수업을 예약한 이케부쿠로에서 전부터 궁금했던 클래식 커피점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좀 마음먹을 필요가 있는 고급 커피집. 왜냐면 커피값이 라멘 한 그릇 값에 맞먹기 때문이다. 기본 라멘도 아니고 챠슈랑 계란 막 토핑 한 가격.
珈琲茶館 集 (코-히- 사칸 슈)

곳곳에 레드 컬러가 희끗희끗 보이는 게 포인트였다.

오 샹들리에…

반딱반딱 광택도 광택이지만 청소해서 나는 빛은 사람을 정말 기분 좋게 만든다. 비품들이 전부 각 잡혀있다.

어서 와. 여기 앉아.
요즘 드라마 뭐 보세요? 저는 애나만들기 보고 있는데 실화를 드라마로 만든 거래요. 이제 거의 막바지라 너무 아쉬워요. 다음 미드는 가볍고 상콤한 거 보고 싶은데 지난번에 ‘굿 플레이스’에 데어서 시작이 망설여지네요. 시즌1까지 정말 재밌게 봤거든요? 근데 시즌2에서 아주 막장, 그냥 대충 갈긴, 우격다짐, 개연성 제로, 억지 스토리로 흘러가서 중간에 내렸어요. 거기다가… 착각해서 ‘Haters back off (악플러는 꺼져주세요)’ 를 1편 보고 기겁했거든요. 주인공 여자 이름이 미란다로 나오길래 그 유명한 영드 ‘ 미란다’인 줄 알고!!! 악 내 눈!!! 정말 그런 구토유발 드라마가 있다니 절대 절대 보지 말라고 널리 알리고 싶은 드라마예요. 그리고 ‘미란다’는 아직 넷플에 없고 볼 수 있는 곳이 없더라고요. (한국에서 보신 분들 주소를 보내주셔도 해외 이용자는 안 된다는 메시지만 보인답니다 ㅠㅠ)
저도 구독자님들이랑 카페에 간 상상 중 ㅋㅋ

자, 이제 다음 카페로 이동해 볼까.

토요일 반나절은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운동 부족으로 갑갑해서 무작정 걸으러 나섰다가 진보쵸 쪽에 괜찮은 카페를 발견했다.
きっさこ (킷사코)

가게 문 앞에서 파란 문이 나 있는 이 벽면에 홀딱 반해 한참을 지그시 봤다. 안이 외관만 하지 못하면 어쩌지. 이게 다면 실망인데.

실망할 각오로 문을 열었지만 재즈 한 곡처럼 세련되고 어딘가 차분한 분위기에 미소가 씨익 나왔다.

특히 이 쪽 풍경이

가게 안에 거대한 스피커로 나는 알 길이 없는 멋진 음악이 흘러나왔다. 매우 좋은 음악일 것이다.

라떼도 맛있었다. 이것도 분명 매우 좋은 커피콩일 것이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여기저기 매장을 많이 처분한 산마르크 카페가 요즘 새단장을 해서 로고도 바뀌고 카페에 점심밥이 될 만한 푸드도 많이 선보이고 못 보던 디저트도 생겼다. 어디 어디 먹어볼까? 디저트는 상당히 맛있었다. 역시 초콜릿 크로와상으로 매출을 이어가는 체인점다웠다. 아니 그런데 카페라떼는 도대체 예전이나 지금이나 왜 이렇게 맛이 없을까.

다른 지점에서 먹어 본 슈크림 (생크림과 커스터드 크림 반반) 엄청 뫗있돠.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카페라떼가 맛없는 거야.
대체 언제까지 나는 덧없는 기대를 하며 산마르크 카페라떼를 살 작정인 거야…
サンマルクカフェ(산마루쿠 카페) 어느 한 지점.
생 마르크지만 자꾸 산마루쿠라고 부르다 보면 그 발음도 나름 정든다.

우리의 영원한 믿는 구석 스타벅스.
어느새 사쿠라 컵 차례가 돌아와 있었다.

어느 화요일이었다. 하루 영어 수업은 사실 수요일이라 이 부근은 수요일마다 찾는 곳인데 그때마다 골목에 쏘옥 숨어 있는 여기는 쉬는 날이었다. 워낙 책과 커피가 넘치는 대학가라 아쉬울 일은 아니지만 여기 문 열려있는 걸 보니 다시없는 기회인 것 같아 들어가 봤다.
本郷カフェ (홍고 카페)
들어가자마자 쇼케이스에 영롱한 녀석들이 누워있었다. 후르츠 샌드였다. 눈길을 확 사로잡는 얘들은 액세서리 집 귀걸이 같기도 하고 문구 집 새로 나온 편지지들 같기도 했다. 보통 음식 맛을 상상하며 고르는데 이번에는 무슨 색으로 할지 고민하며 골랐다. 꼭 먹어보고 싶단기분보다 이거 꼭 가져보고 싶은 기분.
이렇게 예쁜데 기절하게 비싸면 난 소유욕이 확 사라지는 편이라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가격이 없다.
그때, 할머니가 들어오시면서 정겹게 아이구 어서 오세요. 하신다. 잘하고 있었슈? 카운터를 보고 있는 할아버지를 향해 대답을 재촉하셨다. (사투리로 말하신 건 아닌데 말투와 상황이 이런 느낌이었음)

할아버지께 후르츠 샌드위치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얼마예요?
안경 쓴 할아버지가 주춤주춤 음… 하시더니
-음…. 300엔?
음… 은 뭐고 300엔 끝은 왜 올라가실까? ㅋㅋㅋㅋ
옆에 있는 할머니가 마치 나 대신 말하셨다.
-300엔이유? 이거 가격 정했슈? 오매.. 300엔이라네유.
난 고맙다 절을 해야 할 마당에 할머니랑 일심동체가 되어서 동감해버렸다. 오매… 300엔이라고라?

할아버지가 오랜 시험작 끝에 처음으로 오늘 내놓으신 후르츠 샌드위치였다. 이미 낙장불입. 입에서 나온 가격을 다시 주워 담을 순 없고 손님인 주제에 무슨 동정하듯 더 내겠다는 것도 웃기고 카페라떼와 후르츠 샌드 위치를 시켰다.
-커피콩은 뭘로 하실래요? 여기서 골라봐요.
-아 저는… 잘 몰라서 그냥 시고 쓴 건 잘 못 마셔요.
-그럼 부라질로다가 해유
-그치 브라질이..
-아 그럼 전 브라질로다가.
할머니 할아버지랑 귀여운 합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게 바로 70은 넘어 보이시는 할아버지가 몇 달 동안 반복된 제작과 시식 끝에 처음 팔린 후르츠 샌드위치. 봉투를 뜯을 때도
-잘 뜯어져요? 괜찮아요? 뜯을 수 있겠어요?
한 입 먹을 때도
-어떻게 칼이 나으려나?
씹는 동안에도 돌아 앉으신 할머니 할아버지 등에서 조차 시선이 느껴졌다. 아 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처음 받아 봤을 때 싸여 있던 포장 봉지.

칼이랑 쿠키도 주심.
피드백을 해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나가기 전에 시간을 내 말을 걸었다.
-너무 예쁘고 맛있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알록달록 예쁘게 만드셨어요? 너무 이뻐서라도 다시 먹고 싶어요.
-아유 이 양반이 뭐 블루베리, 키위, 파인애플 맨날 과일 사다 안 해 본 게 없어요.
-아이 뭘,,참 (이 할망구가 라는 말투면서 싫지 않으신 눈치) 내가 그레이프 후르츠도 빨간 게 있고 노란 게 있잖아요? 그거 반씩 잘라서 요래 요래 이렇게 붙여도 봤어요.
-어 와~ 그 아이디어도 너무 괜찮은데요? 그리고 포장도 나쁘진 않은데 테이크 아웃용으로만 싸고 매장에서 먹는 사람들은 그냥 주셔도 괜찮을 거 같아요.
-아유 이 양반이 이런 거 이런 거 (주섬 주섬 카운터에서 각종 사이즈의 박스가 나온다) 많이도 사다가 다 해봤어요.
-아냐 그 상자는 내가 만든 거야~
-당신이 만들었슈?
-아.. 여러 가지 해 보셨구나. 맞아요. 이게 가져가다가 망가지면 너무 아쉬울 거 같아요. 그리고 이거 빵 호두? 잡곡 같은 거 씹히던데 식감도 좋고 맛있었어요!!
-아하하하하하 그쵸? 우리 집은 일반 샌드위치도 흰 빵 안 써요. 글루텐 뭐 당분 그런 게 너무 많아서 건강한 빵 쓰려고 해요.
-와 그러시구나. 그리고 생크림이 살짝만 묻어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저도 후르츠샌드 좋아하는데 다들 요즘 엄청 크고 터질 것처럼 만들잖아요. 그냥 배부르지 않고 조금 상큼한 거 살짝만 입에 넣고 싶거든요. 근데 너무 크니까 그냥 포기하고 안 먹게 돼요. 그래서 이거 사이즈도 내용물도 너무 좋았어요.
-생크림 막 엄청 듬뿍듬뿍 넣는 거 못써요 못써. 그쵸??
내 맘이 그 맘이라는 듯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환하게 웃으셨다.
-근데… 300엔은 좀 너무 싼 거 같아요. 과일이 비싸잖아요.
-아가씨도 그렇게 생각하쥬? 내가 까암짝 놀랐네 우리 둘이 한 번 다시 상의를 해 볼게유.
-허허허 내가 다음에 또 여러 가지 생각해 논게 있어요. 또 신작 먹으러 와요.
-네, 꼭 올게요. 감사합니다.

가슴이 따뜻함으로 가득 차서 문을 닫고 나오는데
‘아! 나 원래 수요일만 와서 이제 못 오는지 참…’

그게 이제야 생각이 났다.
하아.. 내가 이렇다. 이렇게 머리가 나쁜 탓에 가끔 사람을 서운하게 한다.

잘 팔렸으면 좋겠다. 할아버지의 후르츠 샌드.
결국 얼마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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