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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되기 전 부랴부랴 예약한 피부과를 나오니 점심시간이었다. 그날 따라 아니 대부분의 날들이 그렇지만 생선 반찬이 먹고 싶었다. 魚글자에 이끌려 반가운 걸음을 재촉했지만 저녁 장사만 하는 집이었다.

긴자의 일식은 간소한 밥보다 화려한 저녁을 차리는 경우가 많아서 한참 골목을 헤매야했다.

사토우인지 무토우인지 아리송하게 흘려 쓴 이 집이 맘에 들었다. (흘려써서 그런 건 아니고) 친절히 나와있는 메뉴를 한참 보고 다 정해서 문을 열었더니 이미 만석이었다. 겉으로 봐선 참 알 수없는 긴자의 가게들이다.

기다리겠다고 해 놓고 생각을 바꿔 옆집으로 들어갔다. 얼추 비슷해보이기도 하고 당장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예상이 어긋나 갑자기 배가 고파 참을 수가 없었다.

옆집은 깊은 풍미의 미소시루, 달달한 조림하나, 톳나물하나, 츠케모노 하나 내 기분을 읽은 것처럼 맞추어 나왔다. 연세와 연륜이 엄청나 보이는 할아버지께서 주문을 받고 쟁반을 내 주셨다. 은퇴한 회장님 분위기를 뿜으셔서 내가 손님인 것도 잊고 연신 굽신거리며 주문을 했다.

식사가 끝나고 은빛 그릇에 곱게 깎은 감이 나왔다. 단감이 녹차와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카운터 옆 자리에 원톤으로 매치한 고급 정장을 입은 중후한 손님이 계셨다. 가슴 포켓에 행거치프를 꽂은 이 분도 못지않은 할아버지였는데 담소를 나누는 주인 할아버지에 비하면 마치 새내기처럼 풋풋해 보이셨다. 잘 먹었습니다. 다소곳하게 의자를 제자리에 넣고 또 머리를 조아리며 계산을 하고 나왔다.

버스 정류장 앞에 고양이 카페가 하나 있다. 지나갈 때면 버스 안으로 레이저를 쏘는 고양이들이 한번씩 보인다. 기다려…. 곧 갈게…

진보쵸 밤길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카페

언제쩍 은행잎이냐

긴자에서 일을 보고 난 다음엔 꼭 쌀밥을 찾았나보다. 이 날은 유락초를 지나 히비야 근처를 둘러보다 ‘샹떼’ 건물로 들어갔다. 저런 이름만 보면 웃음이 터진다. 예전에 메텔네 집에 더부살이를 하던 곳이 ‘상떼빌’이라는 세련된 이름의 아파트였는데 메텔 남친이 메텔이 바가지 긁을 때마다 썅데빌에 살아서 저렇다고 아파트 이름에 꼭 감정 넣어서 썅, 데빌이라고 곧잘 불렀다. 메텔이랑 내 지뢰여서 듣자마자 빵빵터졌었다.
이 썅.. 떼도 지하가 언제 이렇게 바뀌었나.

건강과 미용을 선전하는 밥 종류들만 모여서 여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작전이다. 음 나에게도 매우 먹히고 있어요. 잘 했다 이런 썅떼책임자들.

다음에는 샐러드 먹으러 여기도 와 봐야지

오늘은 ‘오곡’이 너로 정했다.

고등어랑 닭튀김? 정식을 시키고 얌전히 설명을 들었다.

-고객님 밥이 나오면 일단 솥밥을 한 번 섞어주세요

-그리고 모래시계를 뒤집어서 끝날때까지 기다립니다.

-그 다음에 드시면 돼요!

매번 탄수화물 줄이는 식단을 고수하는 유지어터인 나에게 이 고소한 솥밥은 아주 강적이었다.
야야!! 이런 곳이 있어!!! 싸고 너무 알차다! 추짱에게 메세지를 보내자마자 똑같은 거 시켜놓으란 지시를 받았다. 근처에서 일하다 오늘도 별 볼일없는 음식을 대충 떼워야하나 하던 추짱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별안간 친구랑 수다까지 떨 수 있었던 행복한 밥 시간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벤트가 한창이던 히비야 공원 안에 있는

도서관을 들렀다.
히비야 도서관 안에 있는 카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정작 도서관 열람실은 근처도 안가고 카페만 즐기다 왔다. 고도의 집중력을 유도하는 신비한 무드가 감돌았다.

긴자역까지 돌아 갈 필요도 없이 공원에서 조금만 걸으니 지하철역이 나왔다. 뭐야! 지금까지 멀리 긴자역에서 히비야 공원을 다녔네. 여기 Kasumigaseki역이 더 가까웠구나! 아까운 세월들 이라며 새로운 루트를 발견한 기쁨에 잠시 취했으나 지하철 출구는 지하로 그저 뚫린 입이었을 뿐 계단을 내려가고도 한참을 한참을 걸어서야 겨우 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의 지하 세계에서 10분은 걸었다. 이럴거면 긴자역에서 타는게 나았지.

마루노우치 표지판이 보이긴 하는데 화살표를 따라가도 따라가도 나오지 않아 중간에 단전에서 빡침이 올라왔었다. 하…이래서 이 역이름이 카스미가새끼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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