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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여자

하루 만 6살 9개월

Dong히 2022. 1. 9. 22:57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우리 집에 3D 사진으로 난자와 정자의 수정부터 태반의 형성 9개월간의 태아가 성장하는 사진이 실린 과학책이 있다. 내가 임신한 걸 알고 케군이 서점에서 (내 뱃속 상황이 너무 궁금해서) 구입한 책이었는데 하루는 자주 그 책을 들여다보곤 했다. 예전엔 아기의 손, 발, 통통한 배와 큰 머리를 관심 있게 봤는데 얼마 전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 아빠 거랑 엄마 알이 만나서 짠!!! 이렇게 된 건 알겠어. 근데 엄마 거랑 아빠 거는 둘이 어떻게 만난 거야??

오은영 선생님이 했던 말이었나? 어떤 육아책이었던가? (출처를 기억 못 하겠는데) 어떤 멘토가 그러셨다. 내가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고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작은 순간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처럼, 성 정체성도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남자고 너는 여자고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그래야 하고 이런 것들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알 기회를 주고 느끼게 해주고 하는 것이라고 읽었다.

또 덧셈 뺄셈을 어느 날 앉혀놓고 문제집을 풀면서 갑자기 하라고 하면 엄마 속도 터지고 애도 머리가 빠개지기 때문에 길가다 꽃이 몇 개고 나비가 몇 개고 여기서 하나가 떨어지면 몇 개가 남고, 먹던 과자가 3개에서 2개 더 먹으면 다해서 5개 먹었네. 이렇게 생활 속에서 알아가야 쉬운 것처럼, 성교육도 늘 생활 속에서 조금씩 여러 번 알려주고 건전한 가치관과 진정한 의미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자 이제 너희들은 13살이 되었으니 강당에 모여 생리대 회사 직원이 알려주는 성교육을 시작해 볼까? 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그래서 좋은 기회다 싶어 알려줬다. 우리가 가족 온천탕에서 전부 벗고 엄마 아빠의 몸을 관찰하도록 했던 경험도 있으니까 아빠랑 하루한테 있는 것의 모양과 엄마한테는 없고 그 자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줬고 마치 레고 블록을 딱 맞추는 것처럼 맞추면 되는 거라고.
-근데 하루야. 이건 무지무지 사랑해서 뽀뽀도 할 수 있고 결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랑만 해야 돼. 하루 이제 엄마가 입에 뽀뽀하면 싫지? 엄청 사랑하는데도 그건 싫다고 하잖아. 엄마도 다른 사람이 엄마한테 뽀뽀하면 진짜 싫은데 아빠만 괜찮아. 그러니까 엄청 엄청 사랑하지 않는데 이런 행동을 하면 아주 징그럽고 불쾌한 일이야. 알았지? 한 사람만 사랑해도 안되고 같이 사랑해야 하고 그런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거야.

여기까지 말했더니 하루가 조용히 말했다.
-엄마.... 사랑해도 그건 엄청 징그러울 거 같아.
푸하하하하 웃음이 터졌다. 그래, 호기심 넘치는 것보다 두려워하는 편이 오히려 안심된다.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친구 딸은 잘 다니던 학원을 몇 군데 그만뒀는데 엄마한테 솔직하게 털어 논 이유가 남자 선생님이 징그러워서 토할 거 같아서란다.  (気持ち悪くて吐きそう 키모치 와루쿠테 하키소우) 편의점 직원, 같은 반 남자애, 아무 죄도 없는 버스 옆자리 학생에게도. 하여간 요즘 키모치와루이 구간에 돌입했다고  (나도... 사춘기 때 그 경험 있었던 거 같다. 없이 지나가는 여자분들도 있으실까요? 아.. 남자들 잘못이 아닌데 ㅠㅠ 이것은 호르몬 문제.. )

하루의 수제 우표 제작 중. 뒤에 풀을 발라 말려놓으면 나중에 물만 묻혀 사용할 수 있다고 함. 그러나 저 우표를 이용하기 위해 매번 편지를 보내야 하는 울트라 번거로움 발생해서 다 못씀.

아이가 부모의 애정을 느끼게 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어릴 때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것이다. 지금 현재도 사랑스럽지만 네가 얼마나 작고 소중했는지 이야기해주면 그렇게 행복해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같이 하루가 아기였을 때 사진을 자주 본다.
-하루는 3210그램이었어. 게다가 1월 10일 1시 1분에 태어났다? 꼭 카운트다운하는 것처럼 쓰리 투 원 제로! 그램. 너무 쉽지? 진짜 귀엽지 않아? 이거 봐...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지어 보이는 사랑스러운 표정을 보면 하루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황홀해한다.

하루2호라는 미사일. 맨 위가 조종석에 연료탱크 발사기... 합체.. 그런 단어들을 요즘 좋아한다.

어딘가에 쓰려고 찍은 증명사진. 대외용 하루 얼굴

집에서만 보여주는 내수용 하루 얼굴. ㅋㅋ 학교에선 대외용으로 활동할 거 상상하니까 너무 우습다.

동네 구청 지하실에 뮤직 스튜디오를 빌릴 수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문화센터 같은 시설이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르지만 어디서 문센문센 이런 말 주워들음) 케군이 가르쳐 준 리듬을 쪼꼬만 게 더듬더듬 연습했다. 방을 빌리려면 단체 이름이 만들어서 신청해야 했다. 하루가 무슨 밴드명을 지었나 보니까

はる1BAND <하루이치밴드>
센스 나쁘지 않네!!!
로비 전광판에 위엄차게 새겨져 있어서 한참 웃었다.

아빠가 하는 건 다 해보고 싶은 여섯 살.
어린이 맥주를 사서 거품을 잔뜩 만들어 따른다.
맛은 사과주스 맛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타코야끼 팬에 팬케이크 만들기.

저녁 만들기 싫어서 둘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밥 먹기

뷔페 와서 좋은 하루.

슬슬 나오기 시작한 번화가의 문화 활동.

솜사탕 먹는 하루.
애가 먹을 때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아니지만 확실히 아이가 만족스럽게 먹고 있는 걸 보면 자꾸 기쁘고 안심이 돼서 행복해지는 것 같다. 셔터를 누른 순간들이 죄다... 그렇네.

정말 오랜만에 찾은 쿠시카츠 만들어 먹는 가게 '쿠시 모노 카타리'

-아기 때 몇 번 왔었는데 기억나?
-하루 애기 때 이 위험한 거 이렇게 튀겨서 먹었어?
냉정함과 이성적 판단 무엇 ㅋㅋ 이런데 애기를 데꼬 온 철없는 애미 됨.

오다이바 메가웹. 한쪽에 아이들이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자동차 체험이 아주 쏠쏠했었는데 2021년 연말 문을 닫았다.

-엄마 山은 왜 이런 모양 한자를 쓰는지 알아?
-엄마 그런 거 엄청 좋아하는데!! 상형문자라고 하거든 잠깐만~

도도도도 뛰어가 책꽂이에 있는 <한자 오디세이> 책 정보 를 가져왔다 한창 일본어 배울 때 한국에 있는 언니한테 부탁해서 받은 책이었다. 내가 한자 유래를 알 수 있는 책 있으면 보내달라고 했더니 마치 내 머릿속의 needs를 언니가 직접 편집하고 출판한 마냥 찰떡같은 책을 보내줬었다. 나는 그걸 보고 또 보고 감탄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엄청 재미있게 한자와 친해질 수 있었다.

-이건 한국 책인데 중국 한자 원래 모양을 보여주는 책이야 하루야 간다는 뜻의 行く 이렇게 쓰잖아. 가는 건 보통 길을 가지? 사거리가 이렇게 생겼잖아. 네이버 상형문자 行 참조 그래서 길 모양이 변해서 行가 된 거야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알기 쉬운 한자 하나를 설명했다.

-엄마 나 이 종이 학교에 가져가고 싶어.
-안돼~ 이거 (뒷 장에) 학원 종이잖아. 모든 친구들이 학원에 다닐 수 있는 거 아니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친구도 있어. 하루가 자랑하는 거 같이 보일 수도 있어.(애미가 착각오짐 늘 너무 앞서가서 주변사람 어이없어함 ㅋㅋ)
-아니.. 뒤엔 안 보여줄 건데..
-아 지금 이 길이 行く 된 과정을 친구들한테 말하고 싶구나?
-응
-하루가 이거 외워서 똑같이 그려줘
-에이 아니다. 어차피 애들은 뭘 말해도 거짓말이라 그래
-엥? 친구들이 하루가 하는 말 거짓말이라고 해?
-응 누가 뭐 신기한 거 말하면 우소다! 우소츠키! 에이!! 이래.
(아.. ㅋㅋㅋ 그 유치뽕짝 초딩 텐션!!)
-그렇구나. 그럼 소라 형아한테 말해 형아는 그런 말 안 하잖아
-형아는 같은 반 아니잖아. 타카시도 맨날 내가 뭐 말하면 거짓말~~ (우소~~~) 이래
-그건 좀 별로다~
-그치. 친구들은 좋은데 그런 건 귀찮아. 말 안 할래.
-하루야 지금은 1학년이라서 그런데 조금 참고 더 크면 하루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 진지하게 좋아해 주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대신 하루가 그런 친구를 만나면 먼저 그거 재밌구나! 와 신기하다! 이렇게 솔직하게 먼저 말하는 친구가 되면 돼.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미사일을 쏘기 위해 만든 컴퓨터. 12명까지 동료가 늘었다가 (다들 하루 컴퓨터를 샘플로 보고 집에서 그려와서 모였다고 함) 한 두 명씩 포켓몬을 손으로 만들어 대결하는 쪽으로 빠져나가 요즘은 두명만 미사일을 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요즘은 일하는 사람들 (미사일 쏘는 회사고 하루가 사장임)이 많이 없어져서 좀 일이 많아.
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1학년도 여러 가지 고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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