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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지금 테레비 뭐라고 하는 거야 뉴토리노가 뭐야?
과학 다큐를 보고 있던 하루가 초조하게 물었는데 엄마도 그걸 알리가 없잖아…
-엄마도 모르지…
-그니까 빨리 지금 인터넷에 찾아봐달라고
-아니 이걸 찾아서 읽는다고 하루가 알…
일단 시키는대로 위키피디아를 열었지만 읽을 엄두가 안 나서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읽는 게 양심에 걸림) 얼어있었더니 화면을 제 쪽으로 당겨보곤
- 아!! 츄우세이시! (중성자) 하루 알아. 그게 뉴트리노구나?
라는 게 아닌가!!

한글로 찾아봤는데도 못 알아듣는 건 매한가지. 그냥 내 정신 줄이 우주로 갔고 멘탈이 베타 붕괴했다.
-하루는 이걸 어디서 봤어? 어떻게 알아?
<초등학생 도감>을 꺼내오더니

-이 쪼매난 거 이게 츄우세이시야.
페이지를 펴 든다. 맨날 팔락 팔락 빠르게도 넘기길래 그림만 보는 줄 알았더니 뭔가 머리에 기억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엄마의 어리둥절해하는 멍청한 눈을 보더니

직접 그림을 그리며 설명에 나선다.
그렇다. 여섯 살 하루는 요즘 똘똘이똘똘이 나는 팔불출 화산 폭발이다. 아들 잘난 거 자랑질이라고 욕해도 좋다. 나는 어렸을 때 정말 둔하고 세상에 관심이 없던 촌스럽고 흔해빠진 아이였다. 그런 내 속에서 이런 아이가 나왔다는 것이 매일매일 신비로워 기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하루 엄마라는 이유로 겸손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니라 하루라는 사람이 그렇다는 거지 그게 멋지면 멋지다고 칭찬해도 되는 거 아닐까? 자주 주변인 이야기를 블로그에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의 한 주변인으로서. 물론 어릴 때부터 영재 천재 엄청난 아이들이 많고 그런 아이들에 비하면 너무 별거 아니란 걸 알지만 난 이런 일상도 순수하게 놀랍고 여섯 살이 이런 생각과 말을 한다는 그 자체가 진지하게 경이로워서 가감 없이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 진다. 있었던 일 그대로. 내가 느낀 그대로를.

학교 끝나고 방과 후 놀이방 (학교 안에 있는 무료 돌봄이라고 해야 하나?) 에서 선생님이랑 스노우돔을 만들어 왔다.

유리병 뚜껑에 장식을 하고 물을 넣어 실리콘으로 뚜껑을 막았다. 좋은 아이디어라 공유.

내가 어렸을 때 한 달 다니다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선생님이 너무 무섭고… 마치 서당의 훈장 선생님 같았다) 그만두었던 주판. 하루는 몇 달 전부터 두 자릿수 더하기 빼기를 배워와 엄마한테 가르쳐준다.
하나 알 때마다 너무 신기해서 같이 막 춤을 추면서 좋아한다. 왜냐면 주판이란 건 그냥 미쳤다. 이 알들로 방대한 계산을 할 수 있는 메커니즘. 이걸 하고 있으면 중국의 놀라운 문명과 아시아 문화의 우월함이 물 밀듯이 밀려온다. 어릴 땐 이게 그렇게 대단한지 몰랐지 뭐야.. 안타깝기 그지없다.

얼마 전에 근처 쇼핑몰에 프로모션이 있었다. 기간 동안 쓴 영수증을 모아 오면 5000엔당 1번 추첨을 할 수 있었다. 10개 가까이 영수증을 모았다.
행사 텐트에 가서 곱슬머리에 안경 쓴 홀쭉한 남자 스텝에게 확인해 달라고 내밀었다.
남자는 한 장 한장 슥슥 눈으로 확인했다. 날짜를 확인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계산기에 손을 대길래 이제부터 계산을 시작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22540. 숫자를 찍더니
-다해서 이 금액이니까 4번 참가하실 수 있겠어요. 참 그리고 이 한 장은 1300엔짜리니까 혹시 더 쇼핑하실 거면 다시 모아서 한번 더 추첨하실 수 있고요.
-우아아아아아아!!!!!!!
깜짝 놀라서 소리소리를 질렀다.
-아니 지금 눈으로 계산 끝나신 거예요? 으아아아!!! 전 지금부터 하시는 줄 알고 우아아아아아!!여보야? 봤어? 지금 계산 다 끝나신 거래! 하루야 형아 봤어? 어?

하루는 뭔 일이 있었는지 영문을 몰라해서 다시 설명해야 했고 (완전 순식간) 케군은 나처럼 너무 재밌어서 마스크 안에서 실실 쪼갰고 스텝은 기분이 너무 좋았는지 어렸을 때 몇 살부터 몇 살까지 주산학원에 다녔고 대학에 와서는 계산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얘기하면서 “어? 너도 주산 배우니? 엄청 좋아!! 계속 열심히 하렴” 하루에게 응원도 해줬다.
곱슬거리던 머리는 프랑스 인형처럼 고상해 보였고 그의 안경이 교회 오빠처럼 지적였으며 방금보다 키가 5센티는 더 커 보이는 인상을 받았다. 감사했어요.. 당신의 초능력을 보여줘서...

우리 똘똘이곰돌이 이번에는 자기가 맨날 하는 학습지를 따라 해서 엄마한테 학습지를 만들어 줬다. 일명 ‘하루 워크’ 첫 문제는 오른쪽 그림을 보고 왼쪽을 완성하는 거. 하아… 귀여워… 가슴 터져.

다이소 스티커를 차곡차곡 모아 받은 곰돌이 인형에게 ‘고마’ (곰아~) 라는 이름을 지어놓고 어느 날 갑자기 칠판에 써냈다!
머릿속의 음절을!! 처음이다!! 따라 그리지 않은 한글은. 엄청나게 칭찬해줬다.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모르겠어. 머릿속에서 생각이 났어.
엄마 감동해또 ;ㅁ;

우유팩을 던져주면 악어를 만들고

젓가락을 던져주면 비닐하우스를 만든다.
다 가지고 있을 순 없어서 사진 찍고 좀 지나면 처분한다.(아무리 감동할 거 다해도 인정머리 없는 엄마)

대신 그 사진을 모아서 설명과 함께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야 내 아이폰 사진첩에서도 지울 수 있으니까요 ;ㅂ;

인간적으로 이걸 다 가지고 지낼 순 없잖아요.

엄마랑 같이 잔 날.

하루가 이렇게 하고 잤다고 사진 보여주니 엄청 좋아한다. 가끔 의외의 타이밍, 생각지도 못한 에피소드에서 엄마의 애정을 느끼는 것 같다. 내가 좋아서 찍은 사진인데 자는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는 엄마를 상상했던 걸까?

시댁 근처에 있는 중국 요릿집.
우리 시아버지가 점심때 자주 만두를 포장해 가는 집이었다. 가게 주인아저씨가 아들 가족임을 알아보시고 계속해서 서비스를 주셨다. 시아버지에게 드리고 싶었는데 아버님이 먹을 사람 없다고 한사코 거절하셔서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으셨단다. 중국분이라 그러신 지 서비스 통이.. 커도 너무 크시다. 샤오롱빠오, 오징어 무슨 볶음, 닭튀김, 매운탕.. 시킨 거보다 서비스가 더 나왔다. (허… 너무 좋은데.. 배가 터질 거..)
근데 서비스라니까 한번 맛보고 싶었는지 처음으로 샤오롱빠오를 먹어보고 맘에 든 하루! 야호. 먹을 수 있는 게 늘었다!!!

다음날도 자기가 자는 모습을 찍어달라며 엄마 침대로 비집고 들어온다.

오늘의 미션 사진을 찍으려는데

왘!

킥 당했다. 길쭉하고 힘이 세서 너무 아퐈…;ㅂ;

(집안일) 땡땡이치고 같이 빵집에서 저녁 먹은 날.
도넛이랑 소시지 빵 저녁으로 준 애미 ‘ㅂ’
-하루야 뒤에 와이파이 이름 봐봐
wifi : pansuki
password : yakitate
-판…스키..? 야키타테? (빵 조아/갓 구웠어) 저게 와이파이 비밀번호래? 진짜 귀엽다. 여기 사장님.
하아.. 영어 파닉스도 거의 완성되어가서 알파벳 보면 소리를 알고 읽는다. 나의 여섯 살 땐 상상도 못 했던 일. 어떻게 이걸 읽지? 너무 엄마는 네가 신기해.

영어 파닉스가 살짝 이해가 가니까 한글도 더 진도가 나갔다. ‘가’ 를 が 라고 이미지 하지 않고 한글이 자음 모음 분리되는 것이 꼭 K는 ‘ㄱ ‘A는 ‘ㅏ’ 영어 같아서 드디어 어딘가 납득이 갔나 보다.
외국에서 이중언어 하는 아이들은 영어를 먼저 배우고 한글을 떼는 게 지름길일지도 모르겠다.

주말 아침 나한테 티켓을 준다. 일단 공짜라니까 받아본다. 하루 방으로 이끌려갔다. <입장 무료 하루 박물관에 어서 오세요> '모형은 만져도 됩니다' 안내문이 나왔다. 푸학

바닥에 보는 방향 화살표가 친절하게 붙어있다.

설명들이 너무 욱겨.

'고장 난 레고 발명품'

'돌 컬렉션'
주말에 일찍 일어나서 혼자 이걸 만들고 있었을 거 생각하니까 너무 귀엽다..

2021년 12월 아주아주 끄트머리 라면을 반개 끓여서 잘 익은 김치랑

새로 산 아마존 파이어 스틱과 영화를 봤다.

디즈니 영화 '루카'를 보고 있는 하루.
-엄마... 이제 너무 무서워서 못 보겠어.
-왜? 루카는 바다괴물 아니야. 우리랑 같은 친구야
-아니 그게 아니고. 루카가 사람들한테 괴물인 거 들켜서 나쁜 일 당할까 봐 너무 무서워. 못 보겠어.
어..? 'ㅂ' 영화에 무조건 있는 기승전결의 승,전이 너무 무서워서 결과를 열어볼 수가 없다니 겁이 많아도 이거 너무 쫄보 아니냐? 옆에서 몇 번이나 나중에 다 해피엔딩이 될 거라고 계속 달래가면서 겨우 다 봤다. ㅋㅋㅋ 근데 하루야 엄마도 비가 온 뒤의 무지개가 피건 말건 비 오고 아픈 장면 못 봐서 시리어스 한 영화 싫어해.

내 기준 엄청 말끔하고 귀여웠던 어느 날의 얼굴.

이 날은 게거품을 물면서 자더라고.

1월 1일에는 시댁에 가서 가족들 모두랑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서방님이 구워 준 떡이...너무 맛있었다. 내가 아는 그 떡이 맞나요.

같이 자면 귀에 피날 정도로 계속 떠들어서 아... 후회가 밀려오다가도

레드썬! 하고 훅 잠이 드는 걸 보고 있으면 깨우고 싶도록 아쉽다 ㅋㅋㅋ

연말에 내내 같이 자는 게 좁았던 나. 이번엔 거실에 이불을 펴서 넓게 잤다.

귀여운 걸 보면 다 찍어달라는 애교쟁이

케군 출근하고 우린 뭐할까 하다가 동네에 있는 한국 카페에 가서 한국 팥빙수랑

호떡을 시켜 먹었다.

그리고 하루가 보고 싶다던 ‘라이온 킹'을 보러 갔다. 워낙 고정 팬들이 많아 1달 반 전에 예약할 당시, 이미 자리가 엄청 팔려있었다. 이게 한두 푼도 아닌데 뮤지컬 덕질하시는 분들 보면 와... 어떻게 감당하시는 걸까 궁금...

세 시간짜리 뮤지컬을 잘 즐길 수 있을까. 두근두근

의외로 하루는 나보다 집중하면서 졸지도 않고 초롱초롱하게 보고 나왔다. (내가 중간에 살짝 졸았음 ㅋㅋ) 주인공 라이온의 아빠가 죽었을 때 뛰쳐나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엄마가 죽는 내용은 못 보면서 아빠라 그런가 별로 슬프지 않았다고 한다. (이거 왜 이렇게 웃기지. 케군한테는 비밀로 했다)

애미는 12월에 코- 자는 하루 사진이 사진첩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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