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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다닌 유치원을 졸업했다.
맨 처음 입학식 때 엉덩이를 쭉 빼고 울듯말듯 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주던 날 내심 ‘몇달간 아침마다 난 죽었구나’ 예감하며 입술이 바짝 말랐었는데.

걱정과는 달리 젊고 상냥한 담임선생님을 확인하고 다음날 부터 명랑하게 등원하던 하루. 경계심이 너무 많아 4살이 넘도록 손을 잡아줘야 미끄럼틀을 탈 수 있고 거의 18개월까지 잘 걷지 않았다. 두 발을 떼고 점프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고 남들은 애가 손을 자꾸 뿌리치고 혼자 내달려 가슴이 조마조마하다던데 하루는 내 손을 놓칠세라 하도 쥐어잡고 다녀 난 항상 삐딱하게 한 쪽을 낮춰 걸어야했다.

하루 유치원은 어느정도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터프한 곳이었다. 중재는 해주지만 엄하지 않았고 못마땅한 사람 눈으로 보면 해이하다고 많이들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때 임기응변이랑 여러모로 강하게 단련할 수 있는 이 환경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뭐가됐든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큰 유치원이었다.

제일 형아인 6살 반에 올라가고 얼마 안 있을 때였다.일주일에 두 번있는 급식시간에 하루가 시금치를 한조각 물고 크게 숨을 쉬며 꿀꺽 삼켰다고 그랬다. 그 이야기를 나한테 해주는데 나는 너무 기특해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왜냐면 하루는 처음 입학해서 거의 1년동안 급식시간엔 흰 밥만 먹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반찬이거나 어디 채소가 씹힐까봐 겁이나서 말이다. 그러다가 그 다음해엔 고기반찬을 먹고 왔다. 그리고 마지막 해엔 어린 친구들이 보고있으니까라며 채소반찬도 노력하는 거란다.
하루가 시금치를 한 입 물고 고난과 맞서 싸우듯 목구멍으로 꿀꺽 넘겼을 때 옆에 계시던 모리 선생님이 외쳤다.
“하루쿤!!! 스고이!!! 하루쿤 노력했어요? 정말 장해요. 선생님 너무 놀랐어요. 세상에... 하루가 시금치를 노력했구나... 진짜 기특하고 멋지다. “
-엄마, 모리선생님이 그렇게 말해줘서 하루 너무 기분이 좋았어.
라고 하는데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선생님은 3년동안 한 번도 한 입만 먹어봐라는 말을 안하고 남겨도 남긴 음식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고 그냥 지켜보기만 했었다. 그런데 모리선생님은.. 한 번도 우리 하루의 담임이신 적도 없었던 분이다. 때문에 나는 모리선생님을 알지만 말해본 적도 없었다. 그 곳 선생님 모두가 모든 아이들의 이름과 성격과 습관을 알고 있다는게 그리고 부모처럼 아이의 성장을 기뻐해주셨다는게 너무 감사해 (하루도 담임선생님 아닌 모리선생님이 칭찬해주신게 놀랍고 기뻤을 것이다) 눈물이 줄줄났다.

하루야 엄마는 하루가 여기서 친구들이랑 싸우고 화해하는 법도 배우고 바지에 오줌을 쌌을 때 창피하지만 그걸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곤란할 때 선생님을 부르고 체육복 잊어버리고 왔을 때 능청스럽게 죄송하다고 말할 수 있는 법을 배워서 너무 좋았어.

어디서나 잘 할 아이란 걸 믿을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3년이었다.

꼬꼬마 만 3살의 신입생 시절.

내 허리에도 못 오던 아이였는데

은근 애미쪽을주목해보세요(before)
(after)살빠진애미때매 놀란분 손

내 갈비뼈까지 자란 우리 아들...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여러분?

+ 졸업식 그 후 이야기

하루가 늘 말하는 예쁜 아이가 있다.
아오짱.
-하루야, 유치원 여자애들 중에 누가 젤 귀여워?
-없는데? 그런 애 없는데?
-그럼 아오짱은? 하루 아오짱 좋아하잖아.
-아오짱은 안 귀여워.
-아 안 귀여워?
-응 아오짱은 예쁜거야.

아~~~~~~(깊은 깨달음)

어느 날 종알종알 유치원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을 때였다.
-유치원에서 오늘 그런 걸 했구나. 재밌었겠네. 그때 아오짱은 뭐하고 있었어?
-아오짱은 아무것도 안하고 예쁘게 있었어.

아~~~~~~(깊은 깨달음2)

아무것도 하지않아도 ‘예쁨’을 계속 할 수 있구나.
예쁘면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란 말이 이거싱가.
나도... 남자에게 이런 말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ㅋㅋㅋ

3년 내내 같은 반에 늘 짝사랑이라고 생각하던 그녀가 졸업식날 이렇게 말했다.

-하루야, 졸업식 끝나고 우리 같이 밥 먹을래?
하루는 당연히
-그래!! 또 누구누구 와?
라고 물었고
-너만.
이라고 하는 아오짱 말에 하루 광대가 진짜 천국으로 승천하는 모습을 나는 봤다.
-그래???? 아 그래???? 알았어!!!!

왠일이니.
둘이 마지막의 아쉬움을 나누고있어.

아오짱 엄마가 아오에게 마지막으로 같이 밥 먹고 싶은 친구 있냐고 물었더니 아오는 망설임 없이 하루라고 대답했단다.
나는 또 이런 인연이 신기했다. 왜냐면 내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어색하기만 하던 첫 유치원 소풍날, 소심하게 걷고 있었더니 아오짱 엄마가 먼저 다가와서 같이 점심먹을래요? 하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 누구누구 엄마와 처음으로 밥을 함께 먹은 것도 아오짱네 가족이고 마지막으로 같이 함께 하는 것도 아오짱네 가족이 되었다. 사실 정말 조용한 이 모녀는 어디 길가에 피어난 꽃으로 위장도 가능할 정도로 조심스럽고 겸손한 성격이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아오짱 엄마에게 여기가자, 어디가자, 같이 하자, 여기 같이 앉자. 재잘재잘 자주, 먼저, 아주, 많이, 내가, 거의, 신경을 써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하고 가장 결정적일 땐 항상 아오엄마가 먼저 생각해 준 거 같다. 진짜 좋은 사람...

그리고 아오랑 하는 데이트에 저세상 텐션이 된 너

광대 승천

기쁨의 흰자

환희의 머리칼

아주 뒤집힘

아오야... 이런 애도 괜찮아? (상견례 아님)

그래도 여전히 옆을 지켜주던 그녀.

초등학교는 각자 다른 곳을 가지만 ㅠ..ㅠ 우리 꼭 계속 이렇게 만나자. 아오가 몸서리치며 싫다할때까지 우리 모자는 찝쩍댈꼬야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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