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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GOTO 트라벨’ 여행 장려 캠페인이 시작되고 우리도 (안 가면 바보 되는) 이 혜택을 누리기로 했다.

11월 초에 다녀 온 여행


동물원으로 유명한 우에노답게 동물산타들 ‘ㅂ’

‘에키벤’ 도시락을 신중하게 고른다.
케군이 도시락을 천천히 고르고 싶어서 집에서 얼마나 일찍 나왔는지....몇 바퀴를 돌며 세상 심각한 케군의 등 뒤에서 나랑 하루는 ‘그냥 아무거나 좀 사라...’의 레이저를 발사했지만 아무도 그걸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왠지 이 분에겐 인생의 중요한 아니 적어도 이 여행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식인 것 같아서.

니가타를 향해 가는 신칸센이 홈에 들어왔다. 우리는 니가타현으로 넘어가기 바로 전 역, 군마현의 끄트머리가 목적지였다.


나는 이렇게 가장 ‘에키벤’다운 도시락 하나면 대만족!그리고 오늘부터 1박 2일은 다이어트며 유지며 식단이고 양조절이고 이런거 일절없는 치팅데이!
저는 여행 중 먹방하려고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 아니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두겠습니다.

그래서 고르고 고른 케군은 뭘 샀나 ...
보고는 소름돋았다.
하루가 오니기리 가게를 보자마자 “엄마!! 돈카츠 들어간 오니기리 두개 사줘!” 5초만에 결정했는데

몇 바퀴를 둘러보고 케군이 고른 건 ‘마이센’의 돈카츠 샌드위치였다....
너희들 뱃속엔 탄수화물+돈카츠의 똑같은 조합이 들어간 거 알고 있니? 그리고 넌 맨날 여행갈때 ‘마이센’의 돈카츠 샌드위치를 고른다는 거 알고있니?
어차피 그걸 먹을거면서 제발 일찍가서 고르는 이 미칭짓좀 그만두지 않을래???? 라고 속삭였더니. 이거 보다 더 맛있는게 있는지 없는지 보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사실, 벤또를 고르는 설레임도 케군에겐 여행의 중요한 재미니까 나도 그걸 뺏을 생각은 없지만.

내가 신칸센에서 먹을 후식을 고르는 재미를 아니까 말이다. 평소 안 먹는 엿가득한 고구마 맛탕을 탐욕스럽게 우걱우걱 먹었다.
오랜만에 배불리 엿을 먹으니 황홀했다.

도쿄보다 훨씬 차가운 공기가 목뒷덜미로 스며들었다.
도쿄에서 보통 열차를 타고 열심히 1시간을 가면 기껏해야 요코하마나 사이타마 정도인데 같은 1시간을 타서 신칸센이라면 군마현에 도착하다니 돈이 좋다. (우에노에서 군마현까지 성인 1인당 편도 8만원 요금이었다) 이제 이동에는 시간보다는 돈이 문제다. 기술이란 정말 대단하다...

안녕 그림책에서만 보던 신칸센
하루에겐 연예인 느낌.

우리는 ‘죠모우코겐’이라는 역에서 내려


기념 스탬프를 찍었다.
(늘 간수하지 못해 좀 있다 항상 사라짐)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타니가와’라는 산이 동네 자랑인데 등산을 하거나 스키를 즐기러 많이 찾는다고 한다.

여기서 가려는 미나카미 마을은 유명 온천지도 아니고 가게들도 적은 아주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그래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기에는 좀 힘들어 보였다. 버스가 1시간에 한대씩..... 놓치면 그날의 스케쥴은 폭망

마눌 여행사는 미리 역 앞에서 렌트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게다가 우리는 고투 트라벨 캠페인으로
숙박요금의 35프로를 할인받고 + 지역에서 쓸 수 있는 전자 쿠폰 5000엔을 받았기 때문에 24시간 렌트비용 8000엔 중 3000엔만 내면 되었다.


집에 자가용 없는 애들의 특징. 차 타면 무지 흥분함.

엄마... 나 지금 너무 설레.



파랗고 넓고 깨끗하고 포근한 가을.

이렇다 할 관광지는 없지만 탈 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하루에게 딱인 시설이 있었다.
타니카와 산의 로프웨이.

왕복권을 사고



금방 탔습니다. 아무도 없군!


15분간 산 정상을 오르며 경치를 구경했다.

아... 너무 좋았던 이 그림같은 순간들



좀 흔들릴때마다 엄청 좋아함.


너무 좋다. 가을 여행!!!

인 줄 알았는데 점점 겨울여행도 느껴짐!
일석이조!!!

이 호빵은 뭐야!!!

로프웨이 안의 장면들 만으로도 너무 아름답고 행복했는데

정상에 내리자

뭐 이런 시베리아!!!
새 하얀 눈벌판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었다.

안녕. 군마현 마스코트구나 너.

케군은 하루랑 리프트까지 타고 더 올라가보자 했고

난 그냥 아래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여기저기 눈을 밟으며 보들보들하고 간지러운 눈들을 더더 만끽하고 싶었다.

근데 한 가지 문제는 너무 눈이 부셔서 눈알을 뽑고 싶었다. 뜰 수가 없어.

제가 밟았어요.
‘ㅂ’
10센치씩 발이 쑥쑥 들어가서 너무 근사했다.

눈으로 스탠드를 만들어서 셀카도 찍었다.
정말 어디서든 살아갈 년 아닌가요.



저기서 엄마를 보자마자
“엄마. 9ㄱ94ㅕㅗㅑㅐ갸43^%%4*” 계속 말하면서 오는 하루.
엄마는 들리지 않아..좀 가까이 오면 말해줄래? 엄마 얼굴만 보이면 너는 말을 하는구나.. 엄마한테는 정말 그렇게 할 말이 많은거야? 갑자기 너무 우습고 귀여웠다.
“엄마 하나도 안 들렸어. 뭐라고 하면서 온 거야?”
“어. 엄마 저기 위에 가서 엄마한테 문자 보냈는데 혹시 읽었어? 내가 사진 찍어서 아빠 핸드폰으로 보냈는데 봤어?”
내가 봤나 안 봤나 얼마나 궁금했을까 ㅋㅋㅋ
엄마는 네 예상대로 못 봤어~ 엄만 혼자 있을 때 자식 생각보다 내 생각을 더 많이 하거든 :) 미안해.


휴게소에 잠시 몸을 녹이려 들어갔다.
몸 좀 녹이랬더니 하루는 아이스크림을 시켰고..(야..)
케군은 느닷없이 카레를 시켜서 밥을 먹었다. (야...)

나만 따뜻한 홍차를 시켜 몸을 녹였다.
신칸센에서 다 못 먹은 맛탕은 여기서 마저 먹었다.

계속 말하는 중. 무조건 엄마에게만. 할 말이 아주 많음

하루가 아빠랑 엄마에게 사정사정해서 조수석에 앉게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쥬니어 시트 위에 앉는 건 교통법규로 정해졌지만 조수석이 특별히 금지 된 사항은 아니란걸 찾아보고 케군이 허락해줬다. (하지만 권장할 수 없음. 혹시 사고나서 에어백이 튀어나오면 아이들은 오히려 매우 위험하다고 한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시골길을 천천히 영화처럼 달렸다.



그냥 내가 여행 온 사실 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좋아.
그리고 지금 갈 온천 여관이 진짜 내 맘에 쏙 드는 곳이라 기대가 컸다.
마눌여행사가 고르고 골라 찾아 낸 숙소는

MICASA 라는 이름의 아담한 온천여관.

깔끔하고 군더더기없는 분위기가 외관이며 실내며 전부 맘에 들었다!


로비에 화려한 결혼식용 기모노가 몇 벌 보였다.
사쿠라 스티커를 붙인 네일을 하고 있는 젊은 남자 두명이 체크인을 해 줬다.

우리는 계단을 하나 오른 2층 방


방이 하나 더 있네

여기서 아무리 어지르고 뒹굴어도

잘 땐 여기로 오면 되니까 너무 좋다!!!

아무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예쁘지.
아무것도 없어서 이렇게 예쁜가.

엄마, 여기 안 찍었잖아
하면서 세면대도 찍어 준 내 조수.

우리 셋은 짐을 내려놓자 마자 복도를 알뜰하게 식당으로 만든 공간을 지나 온천탕으로 향했다.

시간예약을 하고 가족끼리만 쓸 수 있는 가족탕이었다. 엄마랑 아빠랑 하루랑 같이 목욕을 해야 하는 건 처음인데... 어....
와.... 하나도 안 이상하네
아무렇지도 않게 후떡 벗고 씻고 있는 우리 셋
엄마는 아빠한테 궁디를 흔들면서 까부니까 하루도 아빠한테 궁디를 흔들었다.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우리는 정말 가족이구나.

군마현의 천연온천은 매우 뜨거웠다. 열심히 엄마와 아빠가 찬물을 섞어 온도를 맞춰보려 했는데 결국 하루는 발만 담가야했다.
근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내가 달라졌다.
나는 한국 찜질방이나 사우나에서도 한증막에 들어가는 서녕언니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에도사람들은 뜨거운 탕을 즐긴다며 도쿄 목욕탕이 보통 43도 정도로 설정되어 있는 것을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3초도 견딜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흔의 나는 달라져 있었다. 몸이 따끔거릴 정도로 아프던 물에 점점 익숙해지더니 보이지 않은 산을 넘어가자 그토록 아늑할 수가 없었다. 아니... 뼛 속까지 닿는 이 든든한 따스함을.... 지금껏 모르고 살았다니 어허..... 아하.... 으허... 계속 감격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내가 나이 든 사람들이 한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신세계가 무척 맘에 들었다.

가족끼리 다 함께 목욕하니까 되게 정답네..


화장 지운 얼굴 자체 모자이크 ㅋ

케군이 맥주 병을 하나를 따는 동안

나는 코디샷을 찍었다.
오늘은 미니멀한 여관의 사무에 룩.
(옛 일본인들이 작업복으로 쓰던 바지와 윗옷)

한텐 (추울 때 겉에 입는 실내복) 마저도 이렇게 이쁘다.

천연온천이 좋긴 좋았나보다.
그 날 화장지워도 얼굴에 광이 났다. 막 탱탱이 탱탱!!

하루도 여기가 맘에 든다고 아주 덩실덩실

엄마도 해보래서

덩실덩실

덩시리덩실
엄마!! 밑에 뭐 있는지 보러가자!

(방을 나갈 땐 마스크 착용)
조명이며 벽, 계단이 너무 깔끔했다.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
마눌 여행사가 여기를 고른 이유 중에 하나가
인테리어도 좋았고 조용한 동네분위기도 좋았지만
스페인 사람과 일본인이 함께 만든 여관이라는 점이었다. MICASA라는 여관 이름은 스페인어로 ‘나의 집’이란 뜻. 파란 눈의 쉐프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일본요리를 어떤 맛일까!!!! 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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