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여행의 첫 시작은 작년에 함께 본 한 만화부터였다. 직역하면 ‘나 홀로 여행 1학년생’ 이란 제목이다. 하루가 빌려달라며 도서관에서 골라 왔다. 본인이 1학년이니 진짜 초1이 주인공인 줄 알고 재밌어 보였던 것이다. 한국에도 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림이 몽실몽실해서 너무너무 추천하는 책. 혼자 여행 가는 일이 처음인 주인공이 여행 홀로서기하는 과정이 위트 있고 어찌나 섬세하게 그려져 있는지 신이 된 기분으로 (전능하진 않고 보고만 있어야 하니 무능함이 느껴지지만)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함께 여행하는 착각에 빠진다. 혼자 간 가마쿠라 편이었던가? 밥 집에 들어갈 용기가 안 나서 결국 편의점 음식을 싸 들고 호텔에서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엥?? 그게 용기가 안 난다고? 엄마는 좀 이해가 안..

요즘은 마음이 삭막해서 찍은 사진이 적다. 삭막한 마음은 삭막한 풍경만 보여서 남기고 싶은 게 없었다. 제일 큰 영향은 뉴스다. 코로나는 다시 번지고 러시아가 일으킨 이기적인 전쟁은 아직도 계속이다. 전쟁이 일어난 사실보다 이제껏 아무도 그걸 막지 못하고 지켜만 봐야한다는 사실이 절망적이었다.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한 것이 한국에서 만든 통일교가 얽혀있다는 뉴스도 마음을 어둡게 만들었다. 유럽은 40도가 넘는 극고온으로 산불이 번지고 미국도 일본도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지금 지구상에 희망이 있는 나라가 과연 존재할까? 만약 우리 아이들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난 어느 나라가 좋다고 해줘야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작은 나의 지구에 집중하는 노력 중이다. 처음부터 선택할 수 없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주말을 보내게 된다는 사실을 슬슬 깨달은 케군은 사부작사부작 전시 티켓을 준비했다. 팀랩에서 하는 오다이바 전시는 가 본 적 있었지만 토요스는 처음이었다. 입장하기 전에 줄 서고 있을 때 큰 영어가 도배된 벽면이 보였다. 예전엔 멋있으라고 썼겠거니하고 지나쳤지만 지금은 그 뜻이 매우 궁금해졌다. 이… 미… 지가 아니네? immerse? 찾아보니 액체에 담근다고? 누가? 누굴? 담가? 그제야 난 토요스 팀랩 전시를 살짝 찾아봤고 여긴 물을 테마로 하는 곳이란 걸 알았다. -여보야, 여기 양말 벗고 물에 발 담그는 데래. -엑????? 진짜? 이분도 한 번 가 봤다고 별생각 없이 비슷할 줄 알고 오셨네 ㅋㅋ 좀 찝찝하지만 에잉, 여기까지 왔는데 모르겠다. 사실 ..

케군이랑 마지막으로 단 둘이 시부야에 왔었던 기억을 더듬어 봤다. 마지막이 언제더라.... 그래도 단편적인 추억이 많이 떠올랐다. 맛집에 줄 섰던 기억, 옷 쇼핑, 늦게까지 헤어지기 싫어서 밍기적댔던 밤거리. 딱히 시부야가 아니면 안 될일은 단 한 개도 없었지만 젊으니까 우린 이 동네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왠지 또래끼리 있으면 손 잡고 커플이란 걸 드러내도 뽐내는 것처럼 안 보이고 오히려 자연스럽다 느꼈나보다. 아이와 함께 시부야를 왔을 때 어색했던 느낌도 기억난다. 모든 것이 위험천만해 보이는 경계태세의 우리와 아이를 보는 불편한 시선들과 아니, 사람들이 불편해 하고 있다고 지레짐작한 우리의 걱정. 이렇게 할 게없는 동네였던가 새삼 놀랐었다. 하루가 영어학원 소풍을 간 반나절. 둘이서 뭔가를 하자! ..

고령의 어느 부인께서 멋지게 옷깃을 세우고 영어권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심플하고 간결하고 머뭇머뭇하지 않았다. 어려운 단어 쓰지 않아도 원어민 같은 유창한 문장이 아니어도 너무 멋지다…. 영어회화 학원은 온라인과 또 다른 맛이 있다. 신기하게도 온라인도 저 너머에 움직이는 튜터가 있는 건데 살짝 편지를 쓰는 것 같은 부끄러움과 어딘가 인간미가 덜 느껴지는 기분이 있다. 또 뭐랄까 닥치지 않았다는 미묘한 느슨함? 도 있다. 그런데 진짜 Face to face 수업은 창피함도 잊고 손짓 발짓 어떻게든 내 의사를 전달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피어난다. 그래서 더 의사소통에 성공하는 확률이 높다. 하루는 호주에서 오신 튜터가 자기 소개할 때 어디 사는지는 말하지 마세요 1. 자기를 어떻게 불러줬으면 좋을지..

영국 대사관을 지나가면서 그냥 찍었는데 이제 보니 조명이 유크레인을 상징하는 색이었구나. 주말에 시댁에 가면 가끔 동서네 가족이 와 있어서 이쁜 조카를 볼 수 있다. 남의 자식이 처음으로 예뻐 죽는 경험을 하게 해 준 조카. 내 아이처럼 더러워도 침을 흘려도 나한테 눈을 흘겨도 앵겨도 졸라도 너무 귀엽다. 내 자식이 아닌데 이럴 수 있구나. 이유를 모르겠다. 케짱도 내가 자기를 이뻐하는 걸 아는지 말이 느린 아이였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말 오픈하기 전에 엄마 아빠 다음으로 나한테 조잘조잘 말해줬다. 요즘엔 다 같이 밥 먹으러 가면 한 손은 우리 서방님 (케짱 아빠) 한 손은 내 손을 잡는다고 해서 서방님과 내가 부부처럼 보이는 요상한 그림이 된다. 서방님이랑 난 어색해 죽음. 나중에 크면 외국의 '대모' ..

한동안 모아뒀던 음식 사진을 풀어볼까요 행동력 넘치는 마마토모가 몇 있다. 그중 야이짱이 우리끼리 코스트코에 가 보자고 했다. 야이짱이 운전 연습에 매진하고 있어서 우리는 응원차 차에 올랐다. 야이짱이 친구 두명이랑 코스트코 갈 거라고 남편한테 말했더니 남편이 -道連れか… (미치즈레까…) 이랬다고 한다. 저승길 같이 가는 친구라는 뜻이 있닼ㅋㅋㅋㅋ 아 진짴ㅋㅋ 눈물지리게 웃었다. 나는 개그 스타일이 구차하게 여러말하는 스탈인데 이렇게 한 마디로 압승해버리는 타입 사람들 진짜 부러어죽겠다ㅋㅋㅋ 아무튼 출발한 우리. 든든한 애리가 조수석에 탔다. 여유 넘치는 애리만이 우리의 목숨줄이었다. 수도 고속도로 타 본 적 없는 제일 병아리인 나는 뒷좌석에서 동태를 살폈다. 잘 가다가 미사토로 빠지는 갈림길을 놓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