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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쿠미한테 연락이 왔다. 아이들 방학하기 전에 빨리 날 잡아 만나자고. 정기적으로 만나자고 하는 멀리 사는 친구가 있다는 게 새삼 너무 행복했다. 사는 게 바쁘고 귀찮아서 이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안다. 이제 우리는 접점도 없는데 같이 있는 시간이 편하고 같이 가는 곳이 취저인 친구. 감사하다.

대학시절 사진 동아리에서 만났다. 같이 사진 찍으러 가고 동아리 방에서 수다를 떨다 보니 참 배려심 깊고 착한데 호기심이 많은 얘였다. 조용히 나한테 밥 먹으러 갈래? 쇼핑 같이 갈래? 먼저 권할 줄 아는 게 반전 매력이었다. 쇼핑을 같이 갔더니 얘는 색 조합을 기가 막히게 잘했다. 목소리랑 말투가 어른스러운 앵무새처럼 중독적인 구석이 있다. 블로그라서 들려줄 수 없는 게 애석하다.. 그래서 유머러스하진 않지만 아무리 긴 이야기라도 지루하지 않게 계속 들을 수 있다. 개그는 내가 치니까 우린 엄청 많이 웃는다 ㅎㅎㅎㅎ 나는 그때 26살 신입생이었고 이쿠미는 23살 졸업반이었다. 우리가 극과 극의 선후배 사이로 만나 학교에서는 금방 헤어졌다. 하지만 덕분에 우린 또래 친구로 남아 결혼도 육아도 비슷하게 하면서 더 오랫동안 친분을 쌓을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오늘은 롯뽄기에 있는 <국립 신미술관>의 리빙 모더니티 라는 건축 전시에 갔다.
이쿠미는 졸업 후 가구 회사에 입사했었다. 지금은 사는 집 주차장을 개조해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다. 패션, 인테리어, 잡화, 식기, 악세서리를 좋아하는 이쿠미.

오늘의 이쿠미

-뭐야~! 신발 너무 귀염둥이야!
-무지루시야~
나도 며칠 후에 베이지색으로 구입했다.
양말이랑 가방 끈을 깔맞춤하다닝. 귀염둥이야.

너 정말 마흔으로 안 보여.

수다 떠느라 좋은 배경이 많았는데 찍어달란 말을 잊어버림. 더벅머리 사진 하나만 있네요.
밥 먹을 곳을 고민하는데 이쿠미는 오다가 본 데가 있다면서 날 끌고 갔다.

-우리 저번에 시부야에서 팔라펠 먹었잖아.
-어어. 맛있었어.
-여기도 옆에 팔라펠 파는 데가 있더라고!
-그런 우연이!! 팔라펠이 있어?
쉽게 먹을 수 없는 메뉴라서 우린  직행했다.

아주 좁은 건물 2층에 작은 나무 문을 열었더니 바 같은 가게였다. (진짜 맞아?) 두근두근했는데 테이블에 주부로 보이는 손님 두 명이 먼저 와 있어서 약간 안심했다.  중년의 주부님들이 런치를 먹으러 온 데는 꽤 높은 확률로 맛있는 거다. 가능하면 내 손으로 못 만드는 음식을 먹고 싶음.

타블렛으로 메인 요리를 둘 다 팔라펠로 주문하고 계산하니까 접시에 팔라펠, 하얀 크림 소스?, 타이 라이스 같은 밥을 올려서 주셨다.
우리가 그리고요? 그리고요? 두리번대자
먼저 오신 어머님 두 분이
-그래가지고 요기 앞에 있는 요리를 먹고 싶은 대로 퍼 담아요.
-아~~ 이건 한 번만 먹을 수 있어요?
-또 갖다 먹어도 돼요.
-우와! 대박!
뷔페처럼 반찬들이 나와있었다.

그리고 보라색 비트가 들어있는 콩요리는 새콤하면서 너무 맛있고, 고구마인지 마인지 모르겠는 바나나 같은 샐러드는 너무 달콤하고 토마토랑 순무를 감칠맛 나게 익힌 조림이 고수까리 뿌려져서 너무 맛있었다.
하얀 크림 저거…. 저거… 꼬수하고 밀키하고… 너무 반해버려 사장님한테 물어봤다.
-이거 이름이 뭐예요?
-후무스라고 해요.
되게 유명한 중동 메뉴였다. 병아리 콩 갈아서 막 양념해서.. 만든 거래. 콩이라니. 외국사람이 콩비지 찌개 처음 먹고 이게 콩이라니. 하면서 이런 충격을 받지 않을까? 콩이 이렇게 맛있어질 수 있니? 우린 두 접시 퍼다 먹고 (중간에 또 새로운 반찬 해 주심)  연속으로 미술관 갔다가 팔라펠 먹는 상황을 웃었다. 도쿄에 있는 중동 음식 가게 도장 깨기 해 보자. 아 우리 중동에 가서 살 수 있을 거 같애. 나도.

집에 가는 길에 중동음식에 대해 찾아봤다. 후무스를 주로 먹는 나라가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다 전쟁지역이냐 왜… 이렇게 맛있고 건강한 음식 먹는데…ㅎㅎㅎ 블랙 코미디 같았다. 아무튼, 만든다고 설치다 재료 버리지 말고 수입 코너가 있으면 찾아봐야겠다.

가게이름 기록 : Feel good 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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