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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점심시간에 스파게티 집 아르바이트를 한다. 벌써 6년째가 되어버렸다. 처음 시작할 때 일을 가르쳐주던 주부 아르바이트 선배가 8년째 일하고 있다는 얘길 듣고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1년이 그냥 한 달처럼 지난다. 일주일은 몇 번 밥 해 먹고 치우고 개키고 했더니 벌써 지나있다.  

나보다 스무 살은 어린 점장님이 나한테 뭘 잘못한 게 있어서 서로 껄끄럽게 일을 한 다음 날. 출근해 보니 은행 업무 파일에 이런 한국말 메모를 남겨놓았다. 와- 진짜 노력이 가상해서 봐준다. 꼭 아들 같기도 한 마음이 들어 그냥 맘이 풀어졌다.
점장은 극도로 내향형이다. 서비스업이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주방에서 보내니까 업무 내용은 잘 맞는 것 같은데 종업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부분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결정이 필요할 때 이 좌식이 아무 대답을 안 해주는 바람에 속이 터진다. 가장 친한 타무라상이 저게 바로 ‘코뮤쇼’ (커뮤니케이션 증후군)이라고 가르쳐줬다. 얼마나 많고 심하면 유행어처럼 말이 다 있대. 하나의 병이나 현상으로 저걸 정의하니까 내가 이해해야 할 것만 같고 쉽게 받아들여지긴 하다.

코뮤쇼를 가진 일본 MZ들의 특징은 그냥 사람하고 소통 자체를 못한다. 전화가 오면 아예 받지를 못한다. 메신저 자기소개 란에 [답장 못 합니다]라고 써 붙여 놓는다고. 인스타는 한다. 시간차를 두고 댓글을 쓰는 건 괜찮은데 즉각 반응해야 하는 메신저는 할 수 없다고. 이 할미는 문화차이에 세대차이에 허리가 굽는구먼요. 에구에구.

내가 신비롭게 생각하는 나가하라 상은 가끔 롯데 신상품을 가져와서 사람들에게 나눠주신다. 왜 나가하라상이 신비하냐면 정말 햇빛에 말린 노가리처럼 깡마리고 자글자글한 체구로 일을 기가 막히게 빨리해서다. 팔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똑 부러질 거 같은데 엄청난 중량을 번쩍번쩍 들어버린다. 같이 일하다 보면 내가 잔뜩 게으름 피우고 있는 사람 같아서 분발하게 된다. 집에 가는 길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다. 불법 약물이라도 하시는 거 아닐까. 어떻게 그 연세에 그런 힘이 나오지? 거기다가 말도 2배속으로 하시고 항상 판단이 빠르다. 참 납득이 가는 결단을 한다. 집에서도 어떨지 상상이 간다. 딸 둘이 일본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학교에 다녔다. 그것도 중학교가 아닌 초등학교 입시를 했다. 한국으로 치면 특목고에 초 1부터 넣어 둘째는 지금 대학생에 첫째는 무려 롯데 연구원이다.
나가하라상한테 맨날 뭘 어쨌길래 애들이 그렇게 공부를 잘했냐고 물었는데 의외로 아-무것도 안 하셨단다. 자기들끼리 경쟁하더니 언니 이겨먹으려고 둘째가 더 좋은 학교에 가고 언니는 더 좋은데 취업하고 저러더란다. 딸들도 나처럼 엄마랑 같이 살다 보면 괜히 분발하게 된 거 아니야?  아님 셋 다 그냥 신비한 사람들이거나.

어느 주말 산책삼아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이 가 봤다. 한 5년 만에 온 거 같다. 전 세계 연예인 같은 사람들이 전부 있어서 눈이 즐거웠다.

근데 층별 안내에 너무 낯선 표현들이 즐비해서 깜짝 놀랐다. 더듬더듬 카타카나를 열심히 읽었다. 18년을 살았지만 저렇게 카타카나로 칠갑을 해 놓으면 더듬더듬 읽어야 한다.

인터내셔널 러그 주얼리… (아아 그래 이 정도는 알겠어)
리 스타일? (가 보니 리사이클 명품 매장이었다. 이세탄이… 중고를 파네? )
마 란제리… (이건 영어도 아니야)
콘템포라리.. (컨템퍼러리 현대적인 브랜드라는 뜻이랜다)
토라스토 스타이루? (이건 또 뭐야 Trad 스타일. 클래식 스타일을 말한단다.)

아오-진짜 영어로 써 놓지. 영어로도 어려운 말을 카타카나로 왜 해 놓는 거야. 외국인도 일본인도 못 알아먹겠다.  

이세탄 디저트 층에서 내 생일 때 받고 싶은 케이크 발견했다. 5200엔짜리 바스크 치즈케이크! 저걸로 하겠음.

홋카이도 버터 치즈샌드를 딱 하나 사서 밖에서 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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