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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밥 해 주신 지인을 집으로 초대했다. 아무리 예의상 본인이 좋아서 밥 해 주신거라고 하지만 받은 호의만큼 꼭꼭 성의를 보답해 드리기로 결심한 까닭이다. 이런 당연한 일을 깨닫는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40대가 되기 전에 알게되서 다행이야.
애매하게 사춘기 때 일본으로 이민을 온 언니는 재일교포라기도 뭐하고 유학생이라기도 뭐한 한국인인데 (뉴커머라고 요즘은 부른다.) 이미 일본어가 편하다며 일본어로 TMI를 엄청나게 많이 쏟아내고 갔다. 성격은 영락없는 한국사람 ㅋ 나보다 수다스러운 사람 만나면 마음이 편하다. 투머치 한 내 수다가 안 미안하게 만들고 스스로 날 닥치게 하면서 자기 타이밍을 잡으니까 잘 할 줄도 모르는데 서툴게 배려 할 필요가 없다.
일본은 재첩이 미소시루 단골 건더기라 1년 내내 쉽게 살 수 있다. 잔뜩 넣고 끓여 탈탈 털어 껍질을 벗기고 시원한 국물에 조갯살을 다시 넣고 소금으로 간단하게 간을 맞춘 국물을 감동스럽게 먹어주었다. 재첩국 처음 먹는다고 그랬는데 역시 뭐든지 심플한 것이 감동적이다.
코마츠나(소송채)로 김치를 담군 게 대 성공을 거둬서 자신감 상승 해 오이소박이도 해 봤다. 신나서 매실청 너무 넣었는지 심하게 달았지만 그게 일본친구들 입맛에 쫙쫙 잘 맞았다. 얼떨결에 줏어먹은 포인트.
그리고 자신감은 화산처럼 폭발 해 인생 첫 깍두기를 버무렸다. 그런데 다음 날 섬뜩한 기분이 들어서 다시 레시피를 봤더니 오마이갓!!!! 소금을 한 두세 배는 더 넣은 것 같다. 보다못한 깍두기 신령님이 내 귀에 왔다 가셨나보다. 아니나 다를까 한 입 먹어보고 싱크대에 퉤! 도로 쏘았다. 이 소금지옥을 어쩌지... 고민하다가 양념을 싹 씻어서 다시 버무렸다. 아니 처음 하면서 이 양 좀 보소. 다행히 익긴 있었다. 여전히 짭짤하게 ㅋㅋㅋ 하지만 나는 양파를 잔뜩 넣고 설탕을 살살 뿌려 볶아냈다. 이거슨, 밥도둑이 되었다. 깍두기가 익은 후부터 한 1주일 간 우리집 쌀이 정신없이 줄었다. 그래도 이제야 김치자신감은 겸손해졌다.
팽이버섯 있는데 또 샀다. (장 보고 와서 냉장고 열어보고 으악! ) 오양맛살이랑 잘게 잘라 계란에 부쳤더니 두 세 접시나 나왔다. 한 접시는 우리집. 한 접시는 시어머니. 한 접시는 12층 윰코네 나눠줬다. 그 집 아이들이 맨 손으로 집어먹는 바람에 윰코는 맛도 못봤다고 미안해했다. 원래 전은 상차리기도 전에 손으로 낼름 낼름 집어먹는 게 맞지. 일본애들인데 어떻게 알았대? ㅋ
-윰코야, 내가 외국인의 시선을 발휘해서 꽤 괜찮은 생각을 해 냈어. 들어볼래?
-어어. 뭔데 뭔데?
-혹시말이야. 샴푸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린스나 컨디셔너 쓸 때 왜 이럴때 없어? 막 다 써 가면 너무 꾸덕해서 펌프질 해도 잘 안나오고 결국 뚜껑열어서 손바닥에 탁탁 털어쓰다가 마지막 날엔 물 섞어서 쉐켓쉬키야이시키.
-아.. 알지! 알지! 거꾸로 세워도 두는데 펌프라서 잘 서지도 않잖아.
-맞아. 난 그게 너무 스트레스더라고. 그래서 뭐 좋은 방법 없나 늘 고민했었는데 내가 100엔샵에서 대박템을 찾았어.
-뭔데 뭔데!! 100엔에 해결했다니 완전 궁금해.
-왜 오코노미야끼 만들 때 위에 뿌리는 마요네즈 통 있지.
-어!!!! 거꾸로 세우는거!!! 외국 케찹통처럼??? 대박
-어어. 그렇치!! 근데 그게 거꾸로 세우지만 특이하게 쪼꼬만 구멍이 여러개 뚫려있잖아. 그래서 이게 샴푸도 안 새더라고 구멍이 너무 작아서.
-넌 천재야.... 아니 근데 진짜 일본사람은 생각 못했을같애. 그게 마요네즈 통으로밖에 안보이니까 샴푸를 넣을 생각을 어떻게 하겠냐고!! 낼 당장 사러 간다.
오코노미야끼를 먹을 때 만!!! 쓰는 전용 마요네즈 통이다. 그런게 왜 필요하겠냐먄은 오코노미야끼 마요네즈로 아트도 하고 ㅋㅋㅋ 암튼 옛날부터 오코노미야끼는 위에는 이렇게 여러 라인이 나오는 마요네즈가 스탠다드이다. 하긴 한국사람이 장독대에 김치나 간장 말고 다른 거 담기란 잘 떠오르지 않는 발상일 것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특이한 케이스가 이미 서양사람들 사이에선 좀 인기라 외국인들이 많이 사 간다고 한다.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케이스라는 이야기.
린스 나올 때마다 몽블랑 만드는 기분이라 재밌는 건 덤. 요즘 한 점도 남기지않고 끝까지 샴푸 린스를 깨끗하게 싹싹 쓰고 있다. 미용실가서 머리해 주고 계실 때 이 얘기했더니 미용사도 대박이라며 엄청나게 반응 좋았던 외국인의 아이디어.
마마토모들 우리집에 놀러 온 날 아주 간단한 점심을 차렸다.
간단하게 차린 이유는 방송에 나왔던 유명한 빵집 빵을 저렇게 많이 사 와서 ㅋ
뭘 해줄까 하다가 콩비지찌개를 해 줬다. 40대 내 친구들에겐 만루홈런이었다. 새로운 식감!!! 절묘한 맛!!!! 한국요리의 신세계라며 이게 이렇게까지 흥분할 일인가 싶을 정도로 계속 셋이서 진심으로 극찬했다. 처음엔 아니라며 민망해하다 그러기도 힘들어져 맞다며 한국음식이 이렇다며 이런게 사실 한 두개가 아니라고 다 알려면 평생이 걸린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미역줄기볶음 처음 먹은 (대부분 먹어본 적 없고 미역의 줄기는 버리는지 일본에서 구하기도 힘들다) 친구들은 한 입먹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허... 이거 참 이제야 해 줘서 미안해질려고하네.
근데 일본은 또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맛들이 있어. 특히 빵. 그 날 친구들이 사 온 빵도 그렇다. 밥 대신 먹어도 든든할 만큼 야키소바 넣은 빵 (괴식 같지만 먹어본 사람들은 안다. 중독된다) 치킨 끼워 넣은 빵. 바게트도 프랑스 안가도 될 정도로 왠만한 집은 다 맛있다.
반찬빵 (짭짤계를 오카즈(반찬)빵 이라고 많이 부른다) 도 좋지만 스위트 빵 분야도 소름돋지.
동네에 외관이 너무 예쁜 케잌집이 있어서 사 들고 왔다가 한 입먹고 쓰러진 몽블랑과
치즈케잌.. 난 간식으로 과자 대신 만두먹고 사탕 껌 초콜렛은 평생 안 먹어도 안 아쉬운 사람인데 일본와서 가끔 케잌이 먹고 싶은 사람이 되었으니 말 다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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