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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점으로 팬케잌과 분위기를 먹으며 제한 된 시간 안에 브리핑을 마쳐야 할 것 마냥 두두두두도도도도도 쏟아냈다. 코운이가 중간에 빵 터져서 찰싹찰싹 제 정신을 차리게 하기도 하며 팬 케잌을 연료삼아 에너지는 대게 입을 통해 연소되었다.
떼 쓰는 것이 일과의 전부인 두 살 아이를 키우는 코운이는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안에 홀로 남겨진 기분으로 육아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걸 나라고 왜 모르겠니. 힘들긴 커녕 두세살이야말로 제일 귀여운 때지~ 라는 성모마리아 스타일 엄마도 있겠지만 하루는 미국 아동학자에 의해 유명해 진 아이 기질 세 가지, 순한아이/까다로운 아이/느린 아이 중 안타깝게도 까다롭고 느린 아이에 심지어 나란 여자는 겁나 불행하게도 개또라이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순한아이는 적응도 잘 하고 혼자 잘 놀고 손이 많이 안 가고 암튼 형제 많은 집 막내 스타일이라고 하다면 예민하고 작은 변화에도 두려움이 많고 경계심이 하늘을 찔러서 뭐든지 집사 혹은 하녀처럼 엄마가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관여와 도움과 응원 박수 갈채 등등이 필요한 아이다. 게다가 스스로 무언가 하기 위해선 상당히 많은 시간 상황을 둘러보고 예습하고 복습해야 비로소 행동으로 옮기려는 느린아이였다. 그러니 엄마엄마 불러대는 건 똥을 쌀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벗어날 수 없었고 잘 안되면 울고 설명할 수 없어 울고 외로워서 울고 가려워서 울고 징징의 결정체였다.
근데 나는 “아이란 원래 그런 존재야~” 모든 걸 포용해 주는 성모마리아 같을 때도 있다가 수 틀리면 (수면부족, 당분 부족, 돈과 명예 등등 부족) 예고도 없이 버럭!!! 하곤 잔소리가 봇물 터지면 아주 홍수를 이루는 개또라이 스타일이 되기도 하는 엄마였다. (한 마디로 기분파 인내력 없음. 극단적이고 자기 컨트롤 못 함.)
이 모든 기질은 아이도 태어나 봐야 알지만 참 충격적이게 애미도 애미가 되 봐야 자기가 어떤 기질의 엄마인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그래 맞다. 같은 인간인데도 단순한 여자일 때와 엄마일 때의 자신은 완전한 별 개체였다. 나도 내가 이런 엄마일 줄 몰랐던 것. 왜냐면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에 몰려 본 적이 처음이라 어떤 엄마가 될 거라곤 당췌 짐작이 불가능한 영역이었던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말해 둔다. 회사에서 일 하는 건 안 맞아도 아이 낳아 키우는 건 기쁨과 감동밖에 없다고 즐기는 엄마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깨달음 아닌 깨달음을 대충 눈치챘을 때 그래, 노력으로 오은영선생님 흉내라도 내야겠다. 안되면 노력하자. 라고 (기분이 좋을 때만이라도) 결심을 하게 된다. 꼭 오은영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사랑으로 수용하면서 안돼는 일을 멋지게 가르치는 애미 스타일을 목표했다고나 할까.
세 살 막바지, 만 4살 쯤 되었을 때. 징징의 원인을 하나씩 꺼 보기로 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버럭 화를 내게 되는 징징은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약속 게시판을 만들어봤다.
1. 반찬만 홀랑 먹고 밥만 남아서 맛 없다고 깨작깨작 대기 시작하면 싸움이 시작된다.
2. 국물음식 (유일한 야채영양소)을 남기면 화가났다.
3. 소파에서 뛰면 열받는 나를 발견
4. 이런 것도 요구하면 되려나 실험적으로 넣어 본 또박또박 말하기 항목.
5. 유치원 갔다 와서 손 씻으라고 5번 타이르다 한 6번쯤 되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불을 뿜더라.
6. 인사하는 연습을 시켜보자.
이거 하나로 하루의 반응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렇게 까지 좋아질 수가. 하루는 경계심 많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매우 불안해지는 까다로운 아이인 만큼 정해진 룰을 지키기 좋아하고 매뉴얼이 있다면 오히려 안심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빈 공간을 가르키며
-엄마, 엄마도 약속 해.
-어떤 약속?
-엄마도 화 안내기로 약속 해.
나한테 화 내지 않는 엄마 모습을 그리게 시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는 안 화내요. 쓰래 ㅋㅋ
그래! 나도 지켜야지!!!!!
이 중에서 아직도 잘 안 지켜지는 게 몇가지 있는데, 반찬이랑 밥을 번갈아 먹는 건 역시 밥만 마지막에 몰아서 먹고 있다. 근데 엄마의 의도를 알게되고 나선
-엄마, 하루는 이제 밥만 먹어도 맛있어. 이거 장난 안치고 서둘러서 먹으면 되는거지?
-어 맞아. 하루가 맛있게 다 먹기만 하면 돼.
이렇게 근본적인 해결은 되었다.
그리고 울지않고 말하기는 컨디션에 따라 안 될 때도 있지만 잘 하고 있는 것이 훨씬 많으니까 그 점에 주목해야 하겠지. 안 될 줄 알았던 인사하기를 이렇게 잘 하니까!! 소심한 하루가 큰소리로 언제나 씩씩하게!!
그래도 키우다보면 매일매일 또 싸움거리는 생긴다. 훈육의 모든 것을 깨우쳤다해도 과언이 아닌 “찹쌀떡 가루”님의 떡육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dbwlsl0307)에서 스티커를 붙여서 포상해 주는 것보다 스티커를 하나씩 떼어 보는 방법을 보게되었다.
그렇다. 내일 간식을 볼모로 세 번의 기회만이 제공되는 시스템. 이게 은근히 백 마디의 잔소리보다 유효하다. 이 전에 하루가 밤에도 낮에도 수건을 물고 다니는 습관을 고친 경험이 있다. 어릴 때 부터 수건을 좋아해서 집에 오면 일단 타올을 꺼내 물면서 놀고 물면서 테레비젼을 보고 일과를 보냈다. 근데 그 축축한 수건을 걸어 두어야 할 데에 걸지 않고 여기저기 나뒹굴게 해 엄청 싸워댔다. 그리고 아무데나 있는 축축한 타올을 내가 볼 때마다 스티커를 하나 씩 떼는 일을 시작했는데 단 하루도 세 장 다 스티커가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한 개 떨어지면 모든 신경이 스티커에 가 있었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하게 되나보다. 그러더니 날짜까지 선명히 기억하는 8월 5일 하루가 말했다.
-엄마, 이제 하루 수건 안 할래. 그리고 이 스티커는 이제 필요없으니까 떼자.
스스로 수건을 돌려주고 벽에 있던 스티커들을 떼어 버리더니 거짓말처럼 그 날 이후로 낮에 수건을 가져 와 물지 않았다.
-엄마, 근데 잘 땐 줘야 돼.
-응. 잘 땐 줄게. 밤에도 하기 싫어지면 그때 하루가 그만 하면 돼.
밤에는 수건이랑 잠들고 싶다고 한다. ㅋㅋㅋ 그 날 일은 기특하고 귀엽고 감동적이여서 잊을 수가 없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등을 돌려 가위로 서걱서걱 꼬깃꼬꼬깃 뭔가를 자르고
약속 게시판에 이런 걸 붙여놨더랬다.
-하루야 엄마 따라한거야? ㅋㅋㅋ 이거 뭐야?
-응. 엄마가 화 내면 하나씩 떼는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치겠다. 4살은 이런 생각도 가능하구나.
-엄마가 ㅋㅋㅋㅋㅋㅋ 하루에 세 번 화내서 이거 다 떨어지면 어떡해?
- 음.... 엄마는 이제 다른 집에 가서 살아야 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다고 한다. 근데 너무 감사하게고 신기하게도 내가 하루에 세번이나 개또라이짓을 해서 이게 다 떼어진 일은 없었다. 개또라이 엄마에게 잘 맞는 우리 아이네.
그런데 너무 재밌는 일은 엄마가 꼭지 돌아 막 하루한테 집요하게 퍼 붓고 있는 와 중에는 하루가 듣고 있기만 하다가 (막 달려가서 바로 저걸 뗄 거 같은데) 가만히 모든 상황이 다 끝나고 일상으로 되돌아 오면 슬쩍 떼러 간다. ㅋㅋㅋ 도중에 떼면 엄마 화를 돋우는 일이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건지. 기본적으로 사람 엿을 먹이려면 몰래 해야한다는걸 아는 건지 ㅋㅋㅋㅋㅋ암튼, 하루 재우고 나서 돌아보면 어?????!!!! 이게 언제!!!!하나 떨어져있어서 소름돋곤 한다. (볼때마다 빵터짐)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유치원 가려는 준비가 세월이 네월이 되어도 안 끝나는 시기가 계속됬다. 아니 왜 니가 옷을 고르냐고. 줄무늬 옷은 여자 옷 같아서 못 입겠다고 하고, 이제 호빵맨 양말은 유치해서 못 신겟다고 하고 백 번 양보해서 옷을 서너 번 다시 꺼내주면 밥을 느릿느릿. 어서 먹으라니 어서가 얼마나 빠른 건지 모르겠다 양치하자니까 색종이 하나만 접겠다!!!!!!!!!!!!야!!!!!!!!!!!
이래선 안되겠다. 단전에서 부터 오은영슨생님의 영혼을 끌어모아야겠다.
아직 시간을 못 읽는 하루를 위해 시계 사진을 찍어서 타임 스케쥴을 붙여줬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부터 밥 먹는 식탁 위에 시계를 올려줬더니 몰라보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엄마 지금 하치지(8시)욘쥬고훈(45분)인거야?
-어어!! 맞아. 그렇게 읽는거야.
-그럼 빨리 먹어야겠네!
시녀처럼 내가 거의 옷도 입혀줬었는데 그림에 나온대로 혼자서 옷을 다 입고는
시간보다 일찍 준비를 끝냈다. 부라보!!!!!! 할렐루야!!
이 유치원 타임스케쥴은 여전히 잘 진행 중이다. 물론 폭풍칭찬도 잊지 않았다. 시계를 좀 읽을 줄 알게 된건 덤.
그렇게 우리는 타협점을 찾아가며 육아를 하는 듯 하지만 사실 부모가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있노라고 코운이와의 수다를 끝냈다.
언니, 이거 블로그에 다 올려주고 저 그림 다운로드 할 수있게 파일 첨부해달라는ㅋㅋㅋㅋ 네 요구는 못 들어주겠다. ;ㅋ; (그림 매우 부끄럽...)
하루야, 항상 엄마보다 나은 사람이어서 자랑스럽고 고맙다. 엄마가 오은영선생님이 아니라 넘 미안해.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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