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오츠카 역은 집에서 가깝고 재개발이 한창이라 자주 가는 곳이다. 뭔가 재밌는 게 쑥쑥 많이 생기더라고.
일단 도덴(노면전철) 보유 동네기 때문에 너무 귀엽다. 댕댕댕 종을 울리며 마을을 돌아다니는 소리와 경치가 점수를 70점 먹고 들어간다.
역 앞에 깨끗한 호텔들이 생겨서 여기를 기점으로 도쿄 여행을 해도 너무 정겹지 않을까. (돈키호테, 대형 다이소, 슈퍼 다수, 유니끌로 있습니다. ) 게다가 야마노테센 정차역. 사람 사는 냄새도 맡고 되게 정겨우면서 이동도 편하다.
예전부터 볼수록 귀엽다 생각한 가게들이 있었다. 동그란 등불(쵸친)이 잔뜩 달린 저 가게.
근데 한 두 개가 아니다.
東京大塚のれん街 도쿄 오오츠카 노랭 가이 라는 이름의 무데기였다. 노랭은 일본 음식점 들어갈 때 입구에 드리워져있는 이것.
왜 심야식당에서 아저씨가 일 시작할 때 요거 밖에 걸잖아요? 그래서 “노랭을 냈다” 하면 가게를 시작했다. 이런 은유로도 쓰인다.
아무튼 먹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의 모든 가게가 흡연이 가능해서 담배 냄새가 너무 싫었는데 음식이 진짜 맛있고 알면 알수록 디자인도 창업의도도 너무 매력적인 거다. 그래서 싫어하기엔 아쉬운 가게라는 이야기. 날씨가 좋을 때 바깥 테이블에서 먹으면 딱 좋겠다. (야외 테이블이 조금 있었다.)
12개의 가게들 규모는 작지만 하나씩 약간의 특색이 있었는데
이 : 해산물 이자카야
로: 타코야끼
하: 고기 이자카야
니: 야키니꾸
호: 고기 미스트로
헤: 호르몬 (곱창) 야키니꾸
토: 구시야끼 (꼬치집)
치: 교자 (만두)
리: 스나크 (뭐라고 말해야 하지.. 술 마시며 오너랑 인생상담 가능한 바? 손님과 주인의 거리가 가깝다)
누: 장어 꼬치
루: 이자카야
골라먹는 재미…
근데 번호도 아니고 <아이우에오>도 아니고 <이로하니호헤토치리누루> 는 무어냐하면 작자미상의 아주 오래된 일본 시의 한 구절이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로하 우타 (노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얄리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같은 청산별곡 느낌이 아닐까 (혼자 빗댐ㅋㅋㅋ 근거 없고요) 이로하 노래를 넘버링하듯 쓰기 좋은 이유는 한번 쓴 히라가나는 다시 중복되지 않게 지은 시라서이다. 그래서 에도시대엔 아이들에게 히라가나를 가르치는 목적으로 외우게 했다고도 한다.
첫 문장에 해당되는 <이로하니호헤토치리누루>는 일본인에게도 거의 암호인데 한자를 섞어 근대 버전으로 만들자면 色は匂いへど散りぬるを 라고 한다. 이래도 외국인에겐 암호.
뜻을 찾아봤다. 의외로 희망적인 내용은 아니더라? 색과 향기가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결국은 진다네~ 뭐 이런 ‘ㅁ‘ (불교적 내용이라고)
우리는 장어 꼬치집에 들어갔다. 장어를 메인으로 술안주를 내는 이자카야 컨셉은 처음 본다. 무진장 맛있었다. 다 맛있었다. 아 왜 사진이 없는 거야. -ㅂ-
장어 뼈 튀김이랑
치즈 야끼오니기리 사진만 달랑이군요.
여기 오너는 누굴까? 이건 무슨 단체일까? 후벼 파보니 SPICE WORKS라는 회사가 기획한 프로젝트라고 한다. 대중을 사로잡을 요식업이 전문인 거 같은데 이 올망졸망 레트로한 분위기 그것도 노면전철이 다니는 오오츠카에. 로케이션이며 분위기가 너무 천재적이야.
인터뷰 기사를 찾아봤다. 재개발이라고 하면 높게 솟은 빌딩들이 번쩍번쩍 새로 생기는 것을 생각하지만 저희가 생각하는 마을 풍경이란 편리함뿐이 아닌 우리 마음 깊숙한 곳을 흔들 정서와 공기감이라고. 그래서 역세권이지만 100년이 넘은 주택을 부시지 않고 재구성했다고 한다.
맞다. 옛 것에는 불편하지만 일부러 만들래도 만들 수 없는 정서가 있다.
아니 다다를까 작년에 굿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1950년대부터 있었다는 굿 다지인 어워드에 내가 납득을 못한 게 없다. (뭣도 아닌 나 마음만은 심사위원 ㅋㅋ)
예를 들면,
톰보 지우개 껍데기를 샤프랑 샤프심 디자인으로.. 눈이 하트로 되잖아요? 지금 다른 노는 손으로 본인 눈을 만져보셔요. 하트 모양을 하고 있을 테니까.
자석이어서 현관에 붙여놨다가 택배 오면 바로 뚜껑 열고 박스 가를 수 있는 커터 칼.
이걸 메구상에게 선물했더니 진짜 좋아하심+아이디어에 감동하심. 메구상 집에 놀러 온 다른 언니도 어디서 났냐고 묻고 바로 구매하심.
그리고 100년째 봐도 봐도 귀여운 수세미의 정석 이 녀석도 수상작이다. 기능성도 절대적 기준이라는 게 (T라서 그런가) 나는 너무 맘에 드는 거.
내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이런 느낌 가게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종로 피맛골 골목을 밀어버렸을 때도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뭔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때도 이런 취향이 바닥에 있었던 듯.
뚬치 뚬치 두둠치~
'도쿄와 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시: From the depths of Ueno, a story begins―Tamana Araki (6) | 2023.11.05 |
---|---|
외식일기 (22) | 2023.09.12 |
바베큐 : 세계 요리 버전에 도전 (21) | 2023.08.09 |
8살의 기록 주말 나들이 : 도쿄대학/ 유통박물관/ 다카나와게이트웨이/ 히비야/ 유락초 (31) | 2023.07.22 |
일상이야기 = 외식 일기 (11) | 2023.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