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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말이었다고 한다. 잊어버려서 사진첩을 뒤적여 언제 적 일이었는지 찾아냈다. 포스팅이 하얗게 비워진 공간만큼 내 인생이 지워져 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급했지만 계속 시간이 안 났다. (블로그의 부작용인가 그만둘까) 겨우 자리 잡고 쓰려는데 까맣게 기억이 안 난다. 날 '도리'라고 불러야겠다. 도리는 니모를 찾아서의 니모 친구 생선이다. 뒤돌아서면 깡그리 잊어버리는 그 단기 기억상실증 물고기.

장금이 언니가 이번에는 키치죠지로 안내했다. 도리도리 따라 간 그 곳. 四歩 네 걸음이라 쓰고 '십뽀' 라고 읽었다. 밥 집이었는데 잡화도 파는 곳이었다.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쓰고 자연스럽게 구경을 했다.

마치 강가에 고기잡이 하러 온 아이들 물장구에 아무 생각 없이 그물로 흘러들어 가는 송사리 떼 마냥. 쉭쉭쉭 들어갔다.

민폐 안 끼치고 오늘의 코디 컷도 찍어주는 장금이 언니. 브이로그의 장인답다. 일행1, 일행 2의 얼굴을 하고 구독자 천 명을 향하는 유툽 동영상을 찍고 있는 줄 아무도 몰랐을 듯.

우린 나란히 그릇을 한 장씩 샀다. 송사리들는 그렇게 밥 집이 그린 빅픽쳐 떡밥을 여지없이 물어주시고.

계산하면서 가게 언니한테
-왜, 이름이 십뽀예요? (네 걸음은 '욘뽀'라고 읽어야 한다)
물어봤더니 잠시만요~ 웃으면서 파닥파닥 안 쪽으로 손짓을 했다.
아니 그런데 40대...?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말랐지만 부드러운 턱살이 있는 남자분이 나오셨다. 작은 눈이 서글하게 웃는상이었다. 김구 안경이 오버스럽지 않았다. 검정색도 아니고 먹색도 아닌 폴라로이드 속에서 나온 것 같은 어두운 색 반팔 티셔츠에 어떤 스타일이라고 정의하기도 애매한 짧은 머리인데도 헤어 스타일이 멋지게 느껴졌다. 세련됨을 일부러 계랑이라도 한 듯 잘 덜어낸 사람이었다. 이성이라서 매력적이었던 것 보다 이렇게나 깊은 센스를 가진 인간에 대한 감탄이 나왔다.
-아... 저희가 실은 다른 사업으로 시작을 했는데요.
(와...)
이유를 듣기도 전에 오랜만에 현실 심쿵을 맞았다. 목소리가 지하 꿀 단지였다. 저음인데 스윗하다. 어절 사이사이 시간차까지 급하지도 둔하지도 않다. 조각같은 미남은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훈훈하고 빈틈없이 세련됐는데 어딜 가도 어울리게 과하지 않았다.
- 이 가게가 네 번째 프로젝트랄까 네 번째 단계라서 '네 걸음'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근데 평범하면 기억을 못하시니까 좀 특이하게 '십뽀'라고 지어봤습니다.
다시 들려 온 대화에 집중하려 애를 쓰며
-아.. 십뽀가.. 어감이 귀엽기도 하고 좋은 거 같아요.
용케 대화를 끝맺는데 성공했다.

돌아서서 언니한테 호들호들호들갑을 떨면서
-언니!!! 네번째 프로젝트라서 네 걸음이래요!!!! 십뽀는 귀여워서 그랬대요!!!!!
하는데 이미 벌써 내 표정과 텐션이 (저 남자 미친 봤어요!!!!???) 만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심이는 벌써 전심이였다. 언니랑 오랜만에 만난 현실 매력 사람을 속사포로 칭찬하다 둘 다 입에 침이 싹 다 말랐다. 인간으로서 너무 매력적이었다. 여전히 가시지 않은 여운. 꾸안꾸라기보다는 훨씬 더 예리한 절제미와 클래식 하지만 트렌디했다. (뭐래. 느낀 거 다 말하니까 아무 말 같네) 결론은...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

헤헤, 오늘의 메뉴는 고등어 튀김 정식.
그 날의 쫀득하고 탱탱하던 현미밥. 어떻게 했지...


언니가 코로나지만 사진은 웃는 얼굴이 제일이라며 사람 없는 곳에 기다렸다 찍어줬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2년간 웃는 얼굴로 찍은 사진이 인생에서 급감했을 것 같다. 여행 가서 왕창 사진 찍고 인생 샷 찍고 그래야 될 모두의 순간들인데.

후식 먹으러 간 곳은

그림책 속 다락방에 올라가

L4번 테이블에서

캬라멜 시퐁 케이크를 먹었다.
시폰 케이크 주위에 캬라멜로 블랙홀을 두르고 달달한 휘핑크림을 덮고 마지막에 아그작 아그작 씹히는 달고나 조각들을 얹은 지상 최고의 디저트였다. 설탕의 다채로운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한 접시.

넓고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이 때다 하고 나는 언니 얼굴에 눈화장을 해 줬다. (보통사람의 이때다와 많이 다른가ㅋ) 작년부터 색조 메이크업 유툽 보는 재미에 빠진 나는 100엔 샵에서 브러시도 왕창 사고 난생처음 10 컬러 아이쉐도우 팔레트도 샀었다. 막상 내 상판에 적용할 수 있는 건 몇 개 없다는 걸 직시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진짜 하라는 대로 했더니 되는 것도 있어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구나. 하며 느꼈던 그 감정을 언니에게 살짝 전파해봤다. 작은 삶의 계단을 살포시 올라보는 느낌이랄까요? 함께 해요.

그날 굉장히 뜻깊은 대화를 많이 했는데 언니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올릴 수가 없고 (그나마 그걸 기억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구나 도리야) 나머지는 잘 기억이 안 나서 쓸 수가 없다. 부지런히... 포스팅 그때그때 해야겠다.
같은 날 다른 시선, 소장금 브이로그
https://youtu.be/IESbZh9Us8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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