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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이야기. (무섭다 아이 방학… 포스팅 할 시간이 없다. 아니 기력이 남지 않는다 ㅎㅎ)
추짱이랑 긴자에 맛있는 걸 먹으러 갔다. 예정된 곳과 달랐지만 왜냐면….
히비야 공원에서 만나기로 해놓고 내가 길을 잘 못찾아 지하철 출구를 대충 나왔다. 그 바람에 내가 있는데로 (마치 보호하러) 추짱이 찾아왔고 히비야 미드타운 건물 아래에서 날 줏은 김에 그냥 거기서 밥을 먹기로 계획이 바뀌었다.
길을 못찾는 거랑 지능이 낮은 거랑 다른 거라고 누군가 말해주세요.
그래도 여긴 도쿄! 어디나 찾아보면 지척에 맛집은 있으니까. 히비야 미드타운 안에 있는 맛있는 걸 먹으면 된다. 내가 스크랩 해 놓은 곳 중 한 군데를 가기로 했다. 리뷰 좋고 별점 높은 곳이 어딘지 늘 체크하는 취미 정도는 다들 있다고 누군가 말해주세요. 직업병일 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동투어 사장 노릇이 인생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중 ㅋㅋ)

히비야 미드타운 2층의 Varmen
스웨덴말로 ‘따뜻한 열’이라는 뜻의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런치 세트의 전채요리가 나오고

스테이크를 시켰다.
난 배고프면 고기시키더라. 본능에 충실해지나.


추짱의 인물사진에는 이런 소오름 포인트가 있다. 포크를 든 가녀린 손목이 그림자 알흠다운거 봐… 그런데 이게 다 계산이라는 것... 추짱은 정말 선을 예쁘게 찍어준다.

사진 잘 찍는 친구 만나다 헤어지면 한동안은 내가 사진 속 그 모습이라 착각해서 큰일이여… 실제로 절 만날 기회가 있으신 분들께 주의 말씀 드립니다. “사진 속 인물은 사실과 다르며 친구가 사진을 진짜 잘 찍는 겁니다.”

그나저나 큰 실수를 하고 말았네.
추짱이 시킨 해산물 파스타를 보고 아뿔사했다.
(작은 알갱이가 파스타였다.)
저거시, 저거시, 정답이어따…
분명히 메뉴 설명들을 때 내가 “해산물을 쓴 메뉴가 많네요?” 물었고, 직원이 “예 저희가 해산물 전문점이기 때문에”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귓등을 스쳐 어딘가 처박힌 채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홈페이지에 다시 들어가 봤더니 해산물 전문 프렌치라고도 써 있었다. 왜그랬어나.
내가 시킨 스테이크는 긴자 레벨로 평범했다. (맛이 없을 수는 없는 여러조건이 있어서?)
다음엔 해산물 메뉴를 꼭 시켜봐야지.

추짱이 너무 좋아해줬던 그 날의 코디.
우린 사실 전날 이런 대화를 했었다.
동: 내일 긴자? 뭐 입고 가지? (이런 사람 마니 귀찮아요?)
추: 그럼 동짱 지난번에 샀던 곤색 원피스 입고 와 한 번 밖에서 입은 거 보고 싶다.
동: 그럼 추짱도 뾰족구두에 여자여자 하고 오기다.
추: 하아… 없는데?
동: 하아… 나도 불편할거 같어.

만나서 밥을 먹으며 나만 뾰족구두 신고 원피스 입으면 재미없잖아. 추짱도 입으면 나도 입겠다! 장난 반 진심 반 던졌다. 그러다가 순간. 둘이 눈이 마주치며
어? 그거 좀, 재밌다?
파바바바박 오묘한 주파수가 맞았다.
우리가 평소 입을 일 없을 룩을 작정하고 입어보자는 것이다.
동 : 나는 핑크색에 레이스에 금방이라도 시집갈 준비가 되어 있는 아나운서 스타일 여직원 룩.
추 : 어? 그런거 생각했어? 나는 절대 평소 입을 일 없는 블랙의 되게 포멀한 정장스타일.
동 : 진심 입을 일 없는 룩이네. 뭔지 알겠어. 그럼 넌 영업부. 영업부는 취업생 처럼 입고 다녀야 하더라고. 나는 사무실에서 약간 루즈해도 되는 내근직 어때?
추 : 회사가 긴자라 점심 같이 먹는 거고?
동 : 꼭 사원증 매야 돼.
추 : 사원증 ???!!!! 대박. ㅋㅋㅋㅋㅋ
둘이 이게 뭐라고 점점 완벽에 가깝게 집착하는 중.
사원증을 무슨 디자인으로 할 건지 머릿속에 레이아웃까지 해 가며, 나는 사원증 이름이랑 ‘가와이 동’ 홍보팀으로 소속까지 정했고 여러 오피스가를 돌며 회사원 가와이 동짱이 출현하는 점심메뉴 시리즈가 막 여러개 구상되었다.
똘끼 아니고 만화 주인공 코스프레는 아니지만, 살짝 다른 내가 되어보는 로망이라고 해 주세요. ㅋㅋㅋㅋ
보통 이런 말 들으면 한 쪽이 쎄할텐데. 통하다니. 갑자기 너무 친해 진 느낌?
불편하고 답답한 뾰족구두에 원피스를 입게 만드는 이유를 지들끼리 만들어 냈다. 그런 옷을 입을 수 있게 된 것보다 정말 병맛이지만 그 병맛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 우린 너무 행복해졌다.

후식으로 고급 디저트 집에 들어갔다. 이탈리아인으로 보이는 중후한 아저씨 두 분이 양복입고 안내 해 주시는 비현실적인 곳이었다.


선들의 포착. (조용히 기립박수쳤다.짝.짝.짝.)
추짱은 선을 찍는 선신령인가. 선녀님인가.

우리는 제일 유명하다는 초코케잌을 나란히 시켰다.
정말 비싸서 매우 기대했는데 혀가 얼얼할 정도로 달았다. 도가 지나친 느낌 ㅎㅎㅎ
하지만 나중에 Cova 초콜렛에 대해 찾아보고 의미부여 확실히 됐다. 나폴레옹의 부하였던 코바씨가 이탈리아에 만든 디저트 가게에서 시작했으니 200년은 된 곳인데 우리가 먹은 초코가 여기서 제일 오래 된 레시피 그대로 사용한 꽤 뜻깊은 메뉴였다.
해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소설에도 이 집에서 초콜릿을 사는 장면이 묘사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예전 유럽인들이 먹었던 그 맛 그대로를 내가 맛 보았다는 사실. 크…가치 있어. 가치 있어.

언젠가 이탈리아 몬테나포레옹 거리에 있는 본점에 가서 얼마나 단지 각오하고 그 거리를 만끽하며 먹어 볼 수 있으면 꿈만 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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