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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짱, 우리 살림 장만하러 가자.
시어머님이 건강하셨을 때 가르쳐주신 곳이 있다. 인근에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멀리 사는 사람들은 모르는 떨이 장사하는 가게. 차비가 좀 들긴하지만 파격적인 가격들을 보면 절약과 현명한 소비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건 일종의 희열을 느끼러 가는 유흥에 가깝다.

여기는 작은 도쿄의 동네 아카츠카.
가게이름은 노토야.

그냥 싼데서 살림 살이 사러 가자는 말에 시장 풍경 보러가자는 건지, 서민 정서 느끼러 관광가자는 건지. 알쏭달쏭 별 상상을 다 하며 따라 나온 추짱. 가게 앞에 놓인 300엔짜리 슬리퍼를 보고 바로 이해했다. 진짜 싼 물건 사러 온 거구나!!! ㅋㅋㅋㅋ

추짱이 벽에 걸린 바비인형 드레스 같은 핑크색 옷을 제발 한번만 이라고 간청해서 갈아 입어 봤다.

495엔 짜리 드레스가 얼마나 제 몸 값을 숨기고 어떤 값어치를 하는지 그 드라마틱한 순간을 체험해 보고 싶었던 추짱(ㅋㅋ 뭔지 알아 ㅋㅋ)
이거 쇼핑아니고 유흥 맞음.
옷 한 벌에 이삼백엔 짜리가 수두룩하니 갑자기 둘 다 정신이 이상해져서 어? 400엔? 좀 비싼데?가 되어버리는 희안한 곳. 결국 아디다스 배낭을 보고 한참 고민하다 아냐.. 너무 비싼거 같애 안사고 나왔다. 일반 아디다스 배낭에 비하면 하찮을 정도의 가격이었는데 말이다. ㅎㅎㅎ 사람이 이렇게 간사해요.
예전에 노토야 사장님이 사입하는 장면을 경제 다큐 프로에서 본 적이 있는데 품질 좋고 멀쩡한 제품들도 유통이나 마케팅 사정으로 버려지는게 그렇게 많다고 한다. 그런 것들을 인맥으로 영업력으로 하나하나 모아 정말 발로 뛰고 몸을 써서 데리고 온 제품들이라고. 그러니 가짜나 불량들이 아니다. 방송에서 본 사장님 경영철학이랑 정신력이 무지 굉장하고 존경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바비인형 드레스는 안 샀지만 곤색 원피스는 유행 상관없이 쓸 거 같아서 사 왔다.

585엔. 호텔에 밥 먹으러 가도 손색없어 보임!!
아… 돈을 쓰고 왔는데 왜 벌고 온 기분이지.

올 여름 하루한테 진짜 잘 입힌 89엔짜리 단색 티.
이거 흐느적하지 않고 탄탄한 면이었다.

우리 조카 줄 298엔 원피스. 재질이 유카타 느낌인데 입고 벗기기 넘 편해보인다.

이것도 조카 줄 티셔츠 285엔

하루 잠옷. 세트로 585엔

하루 반바지 398엔

이것도 이삼백엔 했던 거 같은데 추짱이랑 둘이 같이 산 면바지. 추짱이 인도면이라고 이거 좋을 거 같다고 발견했다. 아니 근데… 이건.. 더 사 왔어야 했어.
-동짱, 그 회색 바지 입어 봤어?
-맨날 입고 있지…
-와… 이거 내 피부가 되어가고 있어. 난 지금 입은 줄도 모르겠다!!!
너무 편해서 내가 바지를 입고 있단 걸 잊게 해주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첫 눈에 반해 데려 온 주방 매트가 785엔! 일미터도 넘는 길이에 디쟌 고급진거 봐. 심지어 바닥에 전부 고무처리 되서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후… 이렇게 흥분 속에 끝난 우리의 살림 장만.
어머님과의 추억도 많은 곳이다. 백화점에서 몇만엔짜리 옷도 턱턱 사시는 분이면서 저기만 가면 398엔? 가만있어 봐.. 하면서 고심하던 모습에 둘이 눈 마주치며 빵빵 웃었었다. 참 사람 이상하게 된다며 진짜 재미있게 쇼핑했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도 다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지가 생각해 놓고 자화자찬하는 살림 팁을 몇개 찍어 봤다.

쓰레기통 바닥에 교환용 쓰레기봉지 깔아두기.
쓰레기를 버리고 나면 바닥에서 또 한 장 뽑아

씌워둔다. 동선 제로. 쓰레기 터져서 물 새면 어떡하지 잠시 생각했는데 살면서 그런 적이 없었다. (뭐 새면… 그 날은 빅엿 하나 먹은 걸로…)
위에 건 큰 쓰레기통으로 주방 밖으로 나와 있지 않으니까 (수납장 안에 들어있다.) 그때 그때 버리는 작은 쓰레기통은 다 읽은 신문이나 전단지를 접어서

한 장씩 상자모양으로 펼쳐서 쓰고 있다.
여기에 다 차면 > 큰 쓰레기통으로.

작게 접어 서랍장에.

세면대 쪽은 무조건 자주 청소가 가능하도록 스탠바이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깔끔하고 예쁘게 살림하는 것도 바라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다 넣어두고 불편하게 사는 건 더 못참겠다.

바스켓 안에 전부 넣어 보이는 곳에 둔다. 그러면 매일 통째로 이동시켜 싹 속 시원하게 닦고 원상 복귀도 간단하기 때문이다.

제일 내가 진지하게 임하는 곳이 바로 빨래터.
나는 이 협소한 곳에서 널고 꺼내고 옮기고 하여간 자잘한 일이 많은 빨래작업에 최대한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도록 오랫동안 궁리해 왔다. 별로.. 좋아하는 가사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왁씨 지루해. 재미없어. 뭐가 이렇게 보람없는 움직임이 깨알같이 많고 양도 빈도도 많은것이냐! 인간은 똥 싸는 횟수보다 빨래 빠는 횟수가 더 많다.
그래서 최대한 작업에 원활함을 우선으로 했다. 안 움직이고 원스톱으로 끝내기 위해 세탁기 위에 아무것도 안 올려서 작업대를 확보했다. 빨래는 라운드리라고 써 있는 깊고 얇은 바스켓에 넣는다. 나처럼 저 틈새를 우습게 보지 않고 저런 모양의 바스켓을 만든 개발자에게 불공을 드리고 싶은 심정! 하는 일 마다 다 잘 되실겁니다!!! 복 받으실 분!!

그리고 8년 동안 매일같이 열일하던 드럼 세탁기가 얼마전에 고장이 나서 새로운 파트너가 입주를 했는데 얘가… 몸이 많이 두껍네.

손잡이에 부딪혀서 집에 있던 스폰지 (모서리용)를 붙였다. 빨래 작업하는데 누가 문 열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듦…ㅠㅠ 그래서 “엄마 지금 빨래 작업해~” 하며 잠궈버린다. (정말 좁지 않나요?)

그리고 여기 매달려 있는 건 하루의 천 마스크 넣는 곳.  지퍼만 잠궈 빨래망 채로 세탁기행.

얘는 위 서랍장을 부분에 끼워 넣을 수 있는 헹거를 사다가 (100엔) 강력한 자석 훅 (100엔)을 붙여 거기에 내가 끈을 달아 걸어 둔 녀석이다. 후… 살림의 맥가이버라고 불러주세요. 다시 말하지만 지가 생각해 놓고 지가 좋아하는 살림 포스팅이니까 비아냥 반사요 ㅋㅋ

세제 꺼낼 때마다 스트레스 받는 거 너무 싫으니까 파일 상자에 세제들을 쪼로로 꺼내서 밖에 두고 세탁기 끝에 배치.
세탁기 위에는 이렇듯 아무것도 없다. 이 위에 옷걸이들을 꺼내고 하나씩 널고 빨래 작업엔 내내 드라마나 예능이라도 보면서 무의 상태를 유지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단순노동을 하러 갈 의욕이 안 난다.

새로 바꾼 세탁기가 너무나 진화해줘서 그나마 요즘 조금 재밌어졌다.
큰 탱크에 세제 콸콸 넣어 놓으면 자동으로 투척해 준다. 일일이 세제 양 재고 넣지 않아도 되지 않아도 되는 것.  젖은 빨래들이 세탁통에 그대로 방치 되어 있는 시간들이 너무 싫어서 언제 세탁기가 끝나나 신경이 곤두서있었는데 아이폰이랑 연계되서 어플로 알려주니까 (심지어 애플 워치로도 알려줌) 금방 알 수 있다는 마음에 아주 평온해졌다. 그리고 온수기능 (이게 없었다!!!)이 생겨서 수건을 푹푹 삶을 수 있다. 그것도 ㅠㅠ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우앙.
아니… 나는 왜 이렇게 빨래에 진지한거야
빨래가 싫은 건지 좋은건지.
나도 내 맘을 알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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