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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우리가 마스크를 하기 시작한지도 상당히 지난 것 같다. 이런 슬픈 일상도 익숙해져간다. 감옥도 전쟁도 코로나도 항상 사람은 적응해 왔겠지.

동: 아이가 손 소독제 쓰려고 슉 눌렀더니 생각해봐, 애들한텐 소독제가 항상 좀 위에 있잖아. 눈에 튀어서 각막에 화상입었대. 하루가 소독제 누르려고 할 때 꼭 눈 감으라고 해. 안 감으면 손으로 눈을 가려줘!
하고 다급하게 톡을 했다. 내가 너무 다급하게 보냈는지 케군은 병원은 갔냐고 (회사에선 왠만하면 답장 안하는데) 답톡이 왔다. 아- 얼마나 놀랬을까.
동: 아, 하루 얘기가 아니야. 미안해. 뉴스에서 봤어.

놀라게해서 미안해. ㅎㅂㅎ

행복이 어디있는지 요즘은 알 것 같다. 우리집 행복은 자주 바뀌지만 당분간은 서랍 속에 있다. 하루 파자마를 넣어두는 제일 아랫 칸 서랍이랑 주방 식수저를 넣어두는 서랍이랑 필요한 것들로 채워진 여러가지 서랍들. 막상 더 이상 필요한 게 없는 우리집 서랍 속에 있다.

산책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국 화장품 샵에서 우연히 사고 너무 좋았던 마스크팩. 이게 또 필요해졌네. 막상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없는데 이 팩은 마지막으로 필요하다. 아주 마지막으로.

이제껏 책임감이라고 하면 제 시간에 출근하고 약속시간에 맞추는 것으로 다 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하루를 뒤에 태우고 짐을 가득 실은 전동자전거로 언덕을 오를 때, 부들부들 떨며 한 발 한 발 힘겨운 페달을 밟으면서 책임감이 턱 밑까지 오르는 걸 느낀다. 도저히 그만 둘 수 없는 길 위의 작은 아이와 나. 땀이 흐르고 배가 고파도 내가 끌어야 할 무게를 받아들이는데 덤덤해진 내 모습이 가끔 신기하다.

먼저 가는 아저씨~
케군아. 사랑한다.

20대에 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15년쯤 지나 다시 봤다. 그땐 그림이 섬세했고 움직임이 정교했던 기억 뿐이었는데 다시 본 그 영화에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치히로 엄마였다.
아이가 무섭다며 터널은 가지 말자는데 한 번도 보듬어 주지않고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잔소리만 했다. 아이는 갑자기 살던데서 이사가고 친구들과 헤어져 전학가는게 슬프고 싫어서 계속 우울해했다. 근데 엄마는 -오늘은 이사가는 날이라 바쁘니까 좀 가만히 있어. 채근하지마. 아유 더워 붙지마. 좀 떨어져걸어. 빨리 좀 와. 이리 와. 뭐하니?
말투에 찬 바람이 계속 불었다. 치히로는 돼지가 된 엄마 아빠를 살리려고 지독한 모험을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할 일이 산더미 같은 이사하는 날, 그냥 빨리 가자니까 남편은 귓등으로도 안듣고 모르는 길을 냅다 달리고 있으니 모든게 내 맘같지 않은 날이라 아이가 치근치근 들러붙는 것도 얼마나 힘겨웠을까. 나도 그런 날이 있지....
영화의 감상평이 이렇게까지 달라지다니. 철학자 칸트는 여행 한 번 하지 않고 같은 동네에서 매일 같은 행동을 하며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면 같은 것을 봐도 다른 것이 보일테니 칸트 같은 삶이어도 사람은 지루할 수 없을 것 같다.

 과학 박물관 한 켠에 졸음과 싸우고 있는 여느 아버지의 모습이 된 케군. 안쓰랑스러어. 안쓰럽고사랑스러운 그런 느낌?

하하
마무리는 그냥 웃으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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