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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결이 득음을 한 일화를 기록해 본다.

오랫동안 소녀도 아닌데 단발로 살았던 나는 마흔이 넘어서 장발을 시도하다 깨달았다. 내가 단발로 매번 돌아갔던 이유를. 너무 개털인 것이다. 보기 좋지도 않은 머리가 길기까지 하니까 오히려 드러워 보여서 슬프다...

하지만 이번에는 포기하기 싫었다. 이제 나는 점점 흰 머리가 자라고 머리숱이 빠지고 지금 같은 검은 흑발을 길게 늘여뜨릴 기회는 없지 않을까.

그래서 진지하게 내 머릿결을 고민해 보기로 했다. 먼저 비싸고 유명하다는 트리트먼트를 하나씩 더해 봤다. 엘라스틴 살롱 버전도 써 보고 시세이도도 써 봤다. 왠지 점점 좋아지고 있는 거 같은데? 욕심내서 ㅁㅈㅅ 라인 중에 제일 리치해 보이는 보라색 트리트먼트를 써 봤다. 오. 뭔가 다른데? 리치한데...?

그런데 이거 맞나...? 머리가 리치...헤비.. 꾸덕..해? 아냐. 너가 좋은 머릿결을 알아? 머릿결이 좋은 기분을 아냐구. 이게 머릿결이 좋은 사람들의 느낌일 거야. 최소한 퍼석하고 빗자루 같지는 않잖아...

하지만 난 버티고 버티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머리를 감자마자 다시 감고 싶어!!! 나 내 머리 만지기도 싫어!!! 기름져 더러워 마요네즈를 뒤집어 쓴 기분이야!!!

다시 폭풍 검색하기 시작했다. 원인인 ㅁㅈㅅ을 중심으로 검색하니까 유사 케이스가 쏟아졌다. 이게 유막이 생긴 거래. 평생 처음 듣는 말이다. 여러가지 해결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 계속 거론된 게 베이비 오일을 듬뿍 발라 씻어내는 거였다. 믿고 싶지 않다. 기름을 기름으로 씻어내는 거 이론상 맞다는 걸 알지만 너무 하기 싫다... 그래서 다시 검색해보니까 식초 관리법이 있었다.  

프랑스 제품
이브로쉐 아시나요?
이거 너무 좋았다. 조금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속이 시원하진 않았다.

그리고 또 열심히 검색해보니까
나처럼 유막 생겨서 징징거리는 긴 글 밑에 짧은 댓글이 연달아 달렸다.

-논 실리콘 샴푸 쓰세요.
-- 나도 그 말 2222
--- 그 말 하려고 옴 3333

말투에서 엄청난 확신이 느껴졌다. 당장 모든 헤어제품을 중단하고 논실리콘 샴푸를 머리에 며칠 감았다.

결론은,
기름 다 씻겨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내 머릿결을 경험했다. 보들보들.... 찰랑찰랑.... 와오... 하지메마시떼

난 평생 기름기에 고통 받아왔었다. 비듬이 생길까 조마조마했고 그래서 벅벅 세정력 강한 걸 써 왔는데 오히려 건조함을 커버치려 반나절만 지나면 기름을 막 쏟아냈던 것 같다. 실리콘 프리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걸 막은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진짜 혁명적이었다. 미친... 이걸 이제 알다니...

그리고 조금씩 나한테 맞는 트리트먼트 찾기 시작했다. 시중에 나온 흔한 제품들은 다 유막을 만들거나 하나 마나 한 제품들이었고 딱 2개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았다.


카즈하가 광고하는 아도르 퍼펙트 헤어 필업.
이건 머리결 정말 물미역 되는데 사용법이 까다롭다. 정석대로라면 찬물에 이걸 섞어 거품을 낸 다음에 머리에 발라야한다. 근데... 우리 못 하잖아요. 우리가 스킨 케어 할 줄 몰라서 피부 안 좋은 게 아니다. 귀찮고 너무 번거로워서 루틴으로 자리잡지 못하니까 연예인같이 안돼는 거.

그래서 난 편법으로 찬물로 머리를 적신 다음 머리카락에 직접 발라 비빈다. 최대의 결과를 끌어내진 못했겠지만 아무튼 물미역은 됩니다.

근데 또 한가지 큰 벽은 냄새가... 지독하다.
미용실 독한 파마약 냄새랑 똑같다. 나는 이상하게 그 냄새 맡으면 머리가 아파.... 10년 전쯤 생리전에(이때 냄새에 예민해 짐) 파마하다 실신하는 줄 알았다. 얼굴 하얗게 질려서 집에 온 뒤 몇시간 동안 누워있었다. 그런 기억이 되살아나려고 하는 냄시임.
그래서 아주 가끔 해 준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나의 인생 헤어팩을 찾았으니까!!! 그 다음 만난 것이 아누코였다. 예뻐서 샀는데 맙소사 요물이 따로 없다. 머릿결이 진짜 딱 내가 원하던 텍스쳐가 된다.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다. 기름지지도 건조하지도 않고 자꾸 손이 가.

마른 머리에 트리트먼트 -> 샴푸 -> 트리트먼트 이런 순서로도 써 보고 (트샴트 기법 매우 유명했음) 여러가지 시도를 해 봤는데 너무 트리트먼트를 헤프게 쓰는 것도 경제적으로 부담되서 이렇게 정리됐다.

실리콘 프리 샴푸를 2번. 애벌샴푸 후 다시 감고
머리를 꾹꾹 짠다. 진짜 꾹꾹 (원래 타올로 짜기도 한다는데 귀찮아서 못함) 그 다음에 두피에 묻지 않게 아누코를 발라 방치. 몸 씻고, 클렌징하고 헹궈낸다.

나 이런 루틴 실천하다가 미용실 갔는데 미용사한테 칭찬받았다. 관리 어떻게 하신 거예요??? 평소 뭐 하세요??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었다. 논실리콘 샴푸로 바꿨다 했더니 미용사는 바로 납득했다.
논실리콘...너... 그 정도였어. 나만 몰랐네 나만 몰랐어.



아누코가 딱 한가지 아쉬운 건. 하아...
왜 단지형이냐고.
단지를 사랑하는 건 H.O.T 뿐이라고.
미끌미끌한 손으로 뚜껑 열고 닫을 때마다 진짜 뚜껑 열려... 그래서 나의 살림템 다시 등장했다. 100엔샵에서 오코노미야끼용 마요네즈 용기를 사다가 푹푹 퍼서 담아쓰고 있다.

이런 거.
양 조절 어마어마하게 잘 되서 헤어팩 절약되는 효과도 있다.

아마 다른 논실리콘 샴푸들도 다 좋겠지만 내가 일본에서 정착한 샴푸들은 두개.

무인양품 약용 스카르프 샴푸.
근데 이건 400밀리에 1400엔이고


이 쪽이 저렴하다.
데오우 샴푸.
남자샴푸라서 두피 냄새 관리까지 된다.
320밀리에 약 800엔.

두피 타입에 따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없고 사람 수 많큼 세상에 많은 미용법이 있으니까 장담할 수 없지만 기름은 많은데 머리결은 푸석한 분들 실리콘 프리 샴푸 한 번 써 보시길. 마흔 넘어 알게 된 게 너무 억울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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