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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하다… 전철을 타고 의자에 앉은 순간부터 고문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보낸담. 내 손톱을 찬찬히 훑어보고 손의 주름과 패인 손금을 다 읽은 후에 아주 예전에 난 상처흔적을 찾았다. 이렇게 많은 시간 내 손을 다 본 후에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다. 막막하다.
눈을 감고 한참 있다가 떴더니 안구 혈액 순환도 되고 촉촉해져서 초점이 또렸해졌다. 어느 때보다도 작은 글씨를 잘 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는데 핸드폰이 없을 수가. 옆자리 아저씨가 뉴스를 검색하는 게 참 부럽다. 좋겠다… 지금 이 순간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세상 모든 이가 부럽다.
피부과에 도착했다. 걸어가는 동안 애플워치가 핸드폰이 없어도 교통카드가 되는 게 계속 신기했다. 통신이 안되는데 왜 교통카드 결제는 되는 걸까. 이럴 걸 이해 못 하는 내가 젊은 사람들은 할머니처럼 느껴질까? 레이저랑 보톡스 결제를 하고 대기실에서 또 기다림이 시작됐다. 번호가 불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매번 영겁 같이 길다. 창 밖에 보이는 긴자 거리는 연말 분위기가 풍겨 너무 예뻤다. 그리고 다시 안타까워졌다. 저걸 찍고 싶은데 핸드폰이 없어… 얼른 시술하고 집에 가야지.
간호사가 마취크림 바르는 법을 친절히 안내해 주고 20분 있다 오겠다고 했다. 아차차차 그랬지. 시간 묵혀야 되는 거였다. 최대한 천천히 발랐지만 10분이나 나는 허공에 버려졌다. 어디 기댈 곳도 없는 공간이었다. 벽지를 꼼꼼히 살펴보다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내 담당 간호사 신발인지 아닌지 감별해 보려고 노력했다. 집 지키는 개가 된 기분이 들었다. 약속한 20분이 지나고 1분씩 넘어갈 때마다 훅훅 지쳐갔다. 약속했잖아요. 왜 3분이나 늦게 왔어요. 핸드폰 없었을 때 도대체 어떻게 살았던 걸까.
오늘은 실펌 엑스 레이저를 세 번째 하기로 한 날. 처음 이 시술을 받았을 때는 악몽 그 자체였다. 조금 아플 거라던 의사의 말과 달리 죽다 살았다. 조금의 뜻을 저 의사는 모르나? 모국어가 일본어가 아닌 거야? 고통에 대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주관적인 걸까. 내가 엄살이 심한 타입인가. 전생의 업보? 끝나고 두 번 다시 이 시술은 하지 않기로 다짐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홍조와 여드름 흉터, 모공을 보완하고 가격이 이만한 레이저가 없다. 그리고 아프면 아플수록 이 레이저는 좋은 레이저겠다 싶은 양가감정이 드는 건 뭘까…. 내 경험상 솔직히 아픈 게 제일 효과는 확실했다.
두 번째 했던 날은 다른 지점이었는데 마취크림 없이 했었다고 하니까 아이쿠 이걸… 마취 없이요? 하면서 놀라셨다. 내가 그렇게 엄살쟁이는 아닌가 같아 매우 큰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마취 크림을 추가했다. 다만 마취크림 바르고도 눈에서 눈물이 쥘쥘 흘렸다. 간호사가 고멘나사이네…. 고멘나사이네…. 사죄를 하시면서 시술하고 나는 아니요… 제가 죄송해요… 저도 고멘… 제가 더 고멘… 이런 대환장의 날이었다. 근데 어이없게 또 그 아픔을 딛고 세 번째 도전을 하려는 나.
오늘은 줄곧 궁금했던 웃음가스 옵션을 추가했다. 산소랑 이산화질소 혼합물을 들이마시면 사람이 몽롱해지는데 약간 술에 취한 상태와 비슷해진다고 한다. 술 마실 때 처 맞으면 별로 안 아프다대? 케군도 지지난주에 술을 엄청 마시고 의자에서 넘어졌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앉길래 안 아픈 줄 알았다. 이틀 뒤 허벅지에 어마어마하게 큰 멍이 들어있었다. 와… 술이란 건 대단하구나. 그 일을 계기로 웃음가스를 도전하는 게 좀 웃기긴 하지만 평생 술 먹고 기분 좋아본 경험이 없어서 이것도 궁금했다.
코 튜브로 기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신이 아직 또렷하고 내가 아는 나 그대로였다가 어느 순간 어..? 하고 둥실 하늘을 날았다. 이건가? 이거 맞아요? 약간 날고 있는데 맞나요? 네. 그거 맞으실 거예요. 너무 날면 농도 조절할게요. (ㅋㅋㅋㅋ 얼마나 나는지 알려달래서 웃겼다.) 이번 실펌 레이저는 진짜 대성공이었다. 마지막 이마랑 코는 좀 아팠지만 거의 느낌 없이 끝났다. 마취제랑 너무 잘 맞으셔서 성공적이신 거 같다며 우리끼리 자축을 했다. 간이 술을 해독 못하는데 그거랑은 상관없나 봐요.라는 무식한 말에도 친절하게 웃으면서 맞장구쳐주셨다.
아직 마취크림 때문에 치약 바른 것처럼 시리고 상쾌한 얼굴로 밖을 나왔다. 유락초 역 앞에 장승처럼 서 있는 중국집에 들어갔다. 도쿄 생활 20년이 되어가지만 들어가 보는 건 처음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본 배경 같은 가게라서 먹어 볼 생각조차 안 들었던 곳이다. 마치 70년대로 타입 슬립 한 것처럼 레트로한 의자와 테이블, 포스터, 벽지였다. 주변의 모든 것이 바뀌었는데 심지어 유락초 역조차도. 이 몫 좋은 가게를 팔라고 얼마나 많은 부동산이 꼬드겼을까. 이 집주인은 누굴까. 예쁘고 촌스러운 빨간 의자를 찍어두고 싶은데 씨앙 핸드폰이 없다고 나는…. 주먹을 입에 물고 웁니다.
새우볶음밥은 적당히 심심한 맛이 나서 되게 좋았다. 그래야 식사 끄트머리엔 참 맛있었다는 인상이 남는다. 간간히 라유를 뿌려 먹었다. 짭조름한 스프랑 궁합이 좋았다. 라유를 볼 때마다 경민이 생각이 난다.
스물두 살 때 백수였던 나랑 경먀는 느닷없이 일본 여행을 결심한다. 돈이 없는데 해외여행을 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우리는 으뜸으로 철없고 최고로 한심했다. 카드로 빚을 긁어모아 결행을 한다. 가기 한 달 전부터 국제 메신저에 일본에 사는 또래 사람들한테 채팅으로 말을 걸었다. 그중에 같이 놀아준다는 동갑내기를 만났고 도쿄에서 한국 유학생 남자 둘과 번개를 했다. 우리는 서로 꽤 마음에 들어서 신주쿠부터 시부야까지 오래 놀았다. 그때 같이 나왔던 남자애가 경미니었다. 얘는 당시 일본 요리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같이 사는 하숙집 메이트가 한국 여자애 둘이랑 놀건데 학교 끝나고 오라는 간단한 말에 따라 나왔다. 남자들도 우리가 나쁘지 않았던 만큼 나랑 경먀도 그랬다. 하나는 얼굴이 잘 생겼고 하나는 너무 스타일이 간지나서 일본 여행을 온 건지 남자를 만나러 온 건지 헷갈릴 정도로 엄청 재미있게 놀았다. 꽃미남은 호주에서 마델남은 뉴질랜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한영일 삼개국어를 하는 또래 남자를 보는 건 처음이라서 우린 굉장한 컬처쇼크를 받았었다.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마지막에 중국 음식집 테이블에 있던 라유를 먹어보라며 경미니가 가르쳐줬다. 아무 데나 다 뿌려먹으면 진짜 맛있다고 이게 고추기름인데… 고추인데… 기름이야… 라며 초딩같은 설명을 길게 했던 게 기억난다. 지금 나도 온갖 데에 다 뿌려먹는 라유. 먹을 때마다 그날의 경미니가 생각난다. 핸드폰이 없는 오늘은 정말 생생하게 생각났다. 아주 오랫동안 추억했다. 경미니는 무사히 살찌고 평범한 아저씨가 되어 딸을 낳고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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