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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한국여행기 Ver.7] 셋째날 서울랜드 눈썰매장 라바/ 쌈이맛 쌈집/ 칠프로 칠백식당 / 서래마을 maillet 마얘
Dong히 2023. 1. 16. 10:40하루는 어제 마트에서 물만 넣으면 누룽지탕을 만드는 즉석식품을 발견하고 한국 사람들은 천재라며 후루룩 아침밥으로 먹었다. 그냥 자기 맘에 들었다는 말 ㅎㅎ 근데 전자레인지 없이 물만 넣고 밥을 해 먹은 건 좀 천재. (햇반도 죽도 전자레인지는 필요하 자네요?) 나는 김밥하나 먹으며 준비를 했다.
문제는 케군이다.
아침을 전혀 안 먹는 케군은 커피 한 잔으로 다 괜찮다는 듯이 굴길래 우리 썰매장에서 한참 놀다 점심 먹을 건데 갑자기 배고파서 고약한 노인네 되지 말고 뭘 좀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내 성화에 못 이겨서 종각역 지하도에 호두과자집을 어슬렁 대는데 속에 아무것도 없는 플레인 맛은 없냐고 호두과자 속을 줄줄 읽게 했다. 크림치즈 땅콩쌀 팥 고구마... 우리가 우두커니 서서 대화하는 걸 들으며 아줌마는 한껏 기대하고 계신 눈친데 얘가 아침부터 그렇게 단 건 싫다며 옆에 빵 매대로 몸을 틀어서 소보루 빵을 달랜다. 소보루 빵도.. 단 거 아니냐..?라는 말은 삼키고 그냥 빨리 돈을 냈다.(호두과자 아주머니 죄송해요) 아침 8시 반엔 가게 문 여는데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출근길 아침밥 챙겨주는 가게들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그랬지 참. 나도 회사 다닐 때 좀 일찍 나가서 토스트 먹어야겠다, 스팸 김밥 사 가야겠다, 생각했었지.
그땐 아무 생각 없이 출근길의 일상처럼 사 먹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7시 반에 장사를 시작하셨을 뿐만 아니라 김밥까지 말았던 분들... (우리 회사는 8시 근무시작 5시 칼퇴근하는 타임 스케줄이어서 일찍 출근했다) 매일 몇 시에 일어나시는 걸까. 한국인의 근면함과 생활력은 일상에 아주 구석구석 스며져 있다. 스무 살 나는 어린것만 같고 힘도 없고 그냥 도망가고 싶도록 우울할 때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서 옷을 떼가는 상인들을 구경했다. 새벽 두세 시에도 마치 해가 중천인 사람들처럼 대봉을 옮기고 그 사람들 배를 채우려 철 쟁반에 밥을 나르고 짬나는 시간에 믹스 커피를 호로록하는 사람들을 한참 보다 보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생각을 시작으로 힘이 났다.
그런 에너지를 한국에만 가면 쉽게 발견한다. 언제나 동기부여를 해 주는 나만의 장면들.
어제는 케군의 날이었다면 오늘은 하루의 날!
-한국 가면 뭐 하고 싶어?
-눈 만지고 싶고! 눈 사람도 만들고 싶고!!
하루 소원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메텔이
언니 애들 눈썰매장 데려갈래요? 제안했다.
어머.. 하루 너무 좋아할 거야...
네 우리 허니도 좋아해요.
그렇군. 애들은 다 좋아하는구나!! ㅎㅎ
주차장에 얄팍하게 깔린 눈만 보고도 흥분한 하루.
-엄마!!! 세상이 다 하애!!
우리 것까지 철저하게 준비해 온 메텔. 든든하네!! 오는 내내 운전하는 메텔이 적응이 안되서 감탄하느라 아무 사진이 없다. 아이를 뒤에 태우고 30분 거리를 운전해서 혼자 오다니. 1분에 한 번씩 엄마를 불러대는 질문 공격을 이겨내며 왔을 거 아냐. 아직 내게 없는 경험이라 위대해 보임. 주차도 기가 막히게 잘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나서 바로 또 의기투합.
허니는 사실 경계심이 많아서 유치원에서도 일방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친구들이 너무 급하게 오면 방어적으로 대응하기도 하는데 (특히 스킨십을 거부함) 하루한테는 만지고 손 잡고 먼저 다가가서 정말 상대를 맘에 들어하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것인가 ㅋㅋ
하루도 경계심 가득이거든.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눈썰매장에 입장했다.
하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었다면서 아빠랑 한번 타더니 알아서 혼자 올라가 척척 탔다.
케군은 어슬렁어슬렁 혼자 산책을 했고 메텔과 허니가 함께 하는 동안 나는 어른 슬로프에 올라가 봤다.
이 과정이 살짝 귀찮을 수 있지만
구경만 해도 스펙터클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떨려!!! 떨려!!!
끼야아아아아아아!!!! 내적 비명을 지르며 내려왔다. 스릴만점이었다. 뭐가 스릴이었냐면 썰매 방향 조절이 서툴러서 옆 사람하고 충돌할까 봐 심장이 쫄깃했다! 이런 속도에서 방향 전환이 가능하긴 한 거야?
진짜 엄청난 박력과 용기가 필요했다. 쫄보인 나는 한 번으로 충분했다. 생각보다 시시하지 않아요.
소원대로 눈 놀이 실컷 하고
허니가 좋아한다는 착각의 방을 하루도 엄청나게 좋아해서 둘이 엔드레스로 입장하고
메텔의 추천으로 ‘쌈이맛’ 식당에 갔다.
서울랜드 안에 있는 곳인데 메뉴도 좋고 자리도 좋고 번잡하지도 않고 맛있었다.
밥, 야채, 밑반찬 무제한으로 갖다 먹으며 비빔밥 가능.
제육볶음이랑 불고기를 골고루 시켰다.
그냥 보리밥에 쌈 싸 먹고 오이 장아찌만 먹는데도 제대로군. 행복하군!! 마지막에 칼국수도 나온다. 버섯향이 솔솔 나는 국물이었다.
세계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디즈니랜드에 가도 거지 같은 패스트푸드랑 영양가 하나 없는 피자, 아이스크림, 이런 거밖에 못 먹는 게 유원지라는 곳 아닌가. 하지만 밥 한 끼 한 끼가 매우 중요한 한국은 서울랜드 안에 한식 파는 <장터>, <초당 순두부>도 있었고 우리가 간 <쌈이맛> 같이 제대로 끼니 챙겨 먹을 수 있는 밥집도 있어서 너무 만족스러웠다. 감동… 이 날 점심은 애들을 위해 유원지에서 노는 걸 우선 삼고 맛있는 건 내심 포기했었는데 반전.
사람 없는 놀이기구도 두어 개 타고
바로 옆 <국립 과천과학관>도 갔다.
우어우어 여기 진짜 좋다~
예전에 하루 데리고 <고양 어린이 박물관>에 갔을 때도 느낀 건데 관공서가 하는 박물관이 너무 잘 되있다. 일본은 기업이 만든 과학관이나 박물관이 좋은 이미지고 나라에서 운영하는 건 구식에 연식이 오래되고 업데이트가 안돼서 별로인 적이 많아서 의외였다.
메텔은 장단점이 있는 게 코로나로 여기 문 다 닫았을 때 이거 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건데 직원 월급이랑 유지비는 계속 나가니까 말이 많았다고 한다. 오호.
하루는 잠수함, 공군 체험, 로봇, 머신을 좋아하는데 허니는 그런 쪽엔 관심이 없어서 따로 다님.
알고 보니 허니는 인체와 질병 마니아였다!!
치매를 치료할 수도 있는 미래 이야기 전시 앞에서 다른 애들은 “아빠 치매가 뭐야?” 하는데 허니는 이미 줄줄 꿰고 나한테 뇌세포는 한번 다치면 다시 회복할 수 없다며 이 치료법의 위대함을 막 다 아는 눈으로 초롱초롱 몇 번이고 재생했다. ㅋㅋㅋㅋ 당뇨 인플루 혈관 이런 종류 키워드로 이야기하면 대화가 꽃을 피움 ㅋㅋㅋ 노장년층이 즐겨보는 질병이나 건강 프로그램을 그렇게 즐겨본다고 한다. 와!! 허니, 최소 제약회사 연구원감 아니야???? 이렇게 확실한 아이는 쉽다. 밀어주고 응원하는 게 정말 신난다. 다음에 허니가 좋아할 만한 청진기랑 책을 좀 사가지고 가야겠다. 유치하지 않지만 쉬운 질병 관련 책 있으면 (생각해 보니 인체보다 질병에 관심 많음) 추천부탁합니다.
마지막에 불을 피워 지구에 물을 만들고 모래 길을 터서 물길을 만드는 작업을 수십 번 하고 폐장시간이 되었다. 후.. 허리가 아프군.
-엄마!! 지금 빨리 불 피워! 증기를 만들어!
열심히 불 피우는 뽐뿌질을 엄청 해야 했음.
다음은 퇴근한 웅이와 합류하러 강남으로 운전해서 왔다. 메텔의 남편이자 고등학생시절부터 내 친구 웅이. 게다가 웅이는 케군이랑 같은 업계라 둘이 말도 안 통하면서 업계 용어 말하며 아! 그거. 아! 그거. 이러면서 웃기게 뭔가 통한다. 그리고 둘 다 술, 고기 마니아. 이 술이 몇 도네, 저 고기가 몇 등급이네 하며 둘이 그렇게 좋아한다.
게다가 이렇게 죽이 잘 맞는 아들을 하나씩 낳았으니 이번에 다녀오면서 또 한 번 느낀 건데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남편들은 남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이처럼 잘 지내는 가족사이가 있을까. 평생 갈 거야. 진짜 소중해.
고기가 나올 때쯤 웅이가 왔다.
웅이가 오자마자 하루종일 그렇게 든든했던 메텔 표정이 확 누그러지며 내가 알던 베이비가 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 책임감에 정신 줄 엄청 잡고 있었구나. 근데 오빠 보자마자 저전력 모드로 돌아서는 느낌. 아 ㅋㅋㅋ 수고했어 메텔.
여기 고기도 맛있었지만 ’ 장아찌국수‘라는 이름의 냉면을 시켰는데 아주 좋았다. 애들이 후루룩 다 먹어서 사진도 없다. 안 맵고 안 짜고 달달 시원. 애미들은 어이없어하며 한 그릇 더 시켰다.
나는 그날, 끙끙하던 고민도 많이 털어놓았다. 나이 때문에 책임감 때문에 사회 구조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케군이 우울했다고. 그래서 막막했고 가족 모두 힘든 시간이 있었다고. 같은 업계이면서도 다른 사회에 사는 웅이는 그 동안 여러번 이직에 성공했고 지금은 전보다는 훨씬 만족하면서 다니는 모습이라 부러웠다. 케군에게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기획되었었다. 지난 해, 15년 넘게 함께 하는 동안 그렇게 힘들어 하는 케군을 본 건 처음이라 나도 무서웠다. 그리고 연말에 드디어 숨통이 트인 케군을 위해 만든 한국 여행이었다. 케군을 알고 케군의 업계를 아는 웅이한테, 일본과 나를 아는 메텔한테 여러가지 털어놓을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밤이었다.
이대로 아쉽다며 근처에 정말 맛있는 케이크 집에 데려가겠다고 메텔이 그랬다.
아니, 그 동안 운전도 배우고 신내림도 받았나. 케군이 술 마시면 단 거 먹고 싶어 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나는 쌍수를 들며 환영했고 방배동 길을 굽이굽이 들어가 그 집을 찾았다.
-언니 내가 임신했을 때 너무 단 게 먹고 싶어서 오빠가 검색해서 데려가 준 데거든요. 원래 오빠도 엄마도 단 거 안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셋이서 케이크 다섯 개를 먹었다니까요. 여기 오너 부부 중에 한 명이 프랑스 분이래요.
이쁘고 맛있는 집이었다.
오빠 와서 긴장 풀린 눈으로 피곤함이 확 밀려온 듯했는데도 메텔은 끝까지 우리 가족 좋은 구경 맛있는 거 행복한 추억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 근데 나는 정신없는 한국 신호와 내비게이션에 제대로 보조석 역할을 못해서 매우 미안했던 날. 나 때문에 한 1미터 역주행했었거든 ㅋㅋㅋㅋㅋㅋㅋ와 진짜
조금 지나서 케군한테
先、やばかったよね?아까 식겁했지? 물었더니
うん。やばかった… 야바캈다… 대박 무서워써..
심장을 쓸어내리는 말투로 실토해서 진짜 웃었다.
담엔 나도 운전 더 익혀서 좋은 조수가 되겠음.
계속 차 뒷자리에 앉아있던 케군에게 한국의 자랑 '엉따 버튼'을 가르쳐줬다. 일본에는 없는 옵션이다. 좡난 아니지? 한국말로 "엉! はお尻の엉덩이 따は温かいっていう따뜻해で、略して엉따って言うの" 케군한테 열심히 엉따의 어원을 설명하니까 내 진지함에 "설명 엄청 친절햌ㅋㅋㅋㅋㅋ "하며 터졌다. 그렇게 고속버스터미널 역에서 우린 헤어졌고 12월 31일 금요일 밤 강남 한복판을 운전하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해 준 메텔에게 몸 둘 바를 몰랐다. 사랑한다 ;ㅁ;
어제 산 누룽지 컵 사러 온 하루. 일본에 돌아와서도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마트에서 봤다며 <누룽지 사탕>이란 걸 내가 봤는데 한 번만 사서 맛보고 싶다고 고백했다. ㅋㅋㅋ 아 진짜 그건 언제 봤대. 조만간 한국 슈퍼에 누룽지 사탕 사러 마실 가기로. 조금만 넣어서 팔지 사탕이 한 봉지에 너무 많이 들어있는 게 좀 맘이 안 든단 말이지.. 누룽지 사랑은 언제까지 갈련지.
내내 행복한 일정을 마치고 아침부터 밤까지 최고였다는 하루
까불다가 침대와 침대 사이에 덜 떨어진 모습으로 이도저도 못하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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