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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온 엄마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레이카는 성인이 될 때까지 한국어를 못하다가 한국에 유학 가서 스스로 배웠다. 나는 단순히 가족의 교육관이 일본말만 쓰기로 정해서 그런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레이카의 엄마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아서 한국말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었다. 레이카는 항상 신경질적이고 불안하고 위태로운 엄마를 보며 자랐다. 일본말을 전혀 못하는 엄마는 집 밖에 나가지 않았고 일이 바쁜 아빠를 향해 늘 공격하고 악을 썼다. 레이카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달려가야 했다. 조금이라도 귀가 시간이 늦으면 폭력으로 화를 내는 엄마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그 흔한 방과 후 동아리를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빠는 출장이 많았고 야근도 잦았다. 일이 늦게 끝나서 집에 들어오면 곤두서 있는 아내와 싸워야 했고 아내는 이내 집 전화기를 박살 내 새로 바꾼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너가 미국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중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한국에서 이렇게 유창하게 말을 배워왔는데 항상 못한다고 아무것도 못한다고 말하는 게 신기했어. 나라면 온 세상에 떠벌리며 자랑을 하고 다녔을걸!?
-자랑을 한다구요? ㅋㅋㅋ 모르겠어요. 전 너무 자신이 없고 제가 부끄러워요. 못하는 거 같아요.
레이카의 그런 성품에 엄마가 얼마나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유년 시절을 들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한 번도 자기 일을 칭찬해 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때가 있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남편이 "왜 보듬어 주지 않아? 자기는 왜 아이를 안아주지 않아?" 하고 가끔 물어오면 그제야 눈을 휘둥그레 뜨고 심장이 철렁했다. 원래 그럴 땐 안아주는 거였구나. "오빠 나는 애를 낳으면 안 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오빠 품에 울었던 밤도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엄마 욕을 해줬다. "진짜 나빴다. 너 억울해하고 원망하고 화내도 돼. 생물학적 부모라고 다 네가 고마워해야하는 존재는 아니야. 만나지 마." 리카는 다행히 지금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거 같았다.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맞아요. 어른이 돼서 왜 어릴 때 날 그렇게 때렸냐고 화를 냈어요. 그랬더니 너는 책을 좋아해서 그런 생각을 했었구나? 뭐 이런 동문서답을 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이 사람이랑은 진짜 말이 안 통하는구나 싶었어요. 지금도 엄마한테 전화가 오면 빨리 받아야 될 거같아서 심장이 마구 뛰는데 진짜 스트레스거든요. 근데 얼마 전부터 받고 나서 바쁘면 바쁘다고 내가 먼저 짜증 내요. 엄마가 어떻게 나오든지 말든지." 너무 고마웠다. 내 친구가 자신을 지킬 힘이 있는 똑 부러진 사람이라서. 그녀의 어린 시절은 너무 약하고 아프고 가엾지만 지금의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
그녀의 곁엔 훌륭한 아빠가 있었다. 아빠는 레이카의 진정한 보호자였다. 정신적으로 정말 많은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레이카는 아빠에게 엄마와 제발 헤어지라고 몇번이나 말했다. 하지만 아빠는 한국에서 잘 살고 있던 엄마를 데려와서 결혼하고 낯선 곳에 살게 한 건 아빠 탓이라며 아빠는 죽을 때까지 그런 엄마를 책임질 거라고 타이르며 그 오랜 결혼생활을 하셨다.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가 더 잘하겠다 약속하셨고 늘 지켜주셨다. 레이카는 "아빠가 없었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3녀 중 첫째인 레이카와 둘째는 엄마의 무시와 폭력 속에 컸지만 막내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애기~ 우리 애기~ 이러는데 너무 미웠어요. 그래서 제가 엄마한테 맞은 것처럼 막내를 많이 때렸어요.
그랬구나...
막내가 나 결혼하기 전에 언니 왜 날 그렇게 때렸냐고 울었어요.. 전 정말 미안하다고 처음으로 속 이야기하면서 진짜 많이 사과했어요.
그랬구나...
지금도 전 너무 괴로워요. 동생은 여전히 날 싫어해요. 우린 서먹하고요.
그랬구나...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이 맞는데 왜 레이카 엄만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해도 후회하고 미안해하지 않는지 너무 화가 났다. 그녀는 자신이 '엄마' 같지 않고 '엄마'일 줄 모르고 잘 '엄마'를 못하는 것 같아 힘들어 했다. 나는 레이카의 좋은 점을 말해줬다.
"나는 너처럼 겸손하고 상냥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나보다 어린데도 어른스럽고 침착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쁜 짓 안 하고 이렇게 잘 컸잖아. 게다가 영어도 해, 운전도 해, 중국어도 해 (미친 존경)"
"그런 네가 이렇게 되기까지 너를 이룬 사람들이 많았을거야. 아빠, 그리고 사랑 많은 오빠, 친구들, 네 삶에서 만났던 많은 다정한 사람들. 그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해 봐. 그리고 네가 정말 좋은 엄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 너는 누구보다도 어떤 '엄마'가 나쁜 엄마인지 잘 알잖아. 어떤 게 아이를 아프게 하는지 알잖아."
"네.. 맞아요. 저한테도 좋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아침 10시에 만나 귀여운 카페에서 둘이 코가 시뻘개져 눈물을 흘리며 디저트를 하나씩 더 시켰다.

-그나저나, 아니 아빠는 대체 어떻게 엄마랑 결혼을 하셨대????
-그게요. 아빠 지인이 한국에서 결혼을 했는데 그때 결혼식장에서 엄마를 본 거예요.
-아... 엄마가 이뻤구나?
-네. 그래서 아빠가 쫒아다녀서 한 삼 개월 연애를 했는데
-말이 안 통하는데??
-되더래요. 연애가. 그땐 엄마가 세상 조신하고 현모양처인 것처럼 물건도 검소히 쓰고 항상 사양하고 손수건으로 입 닦고 조심조심해서 그 모습에 반했대요.
-그 길로 일본에 데려오셨다고???
후..... 연애는 좀 오래해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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