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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꽤 전부터 젊은층이 점점 자동차를 멀리하는 분위기가 짙었다. 若者の車離れ '와카모노노 구루마 바나레' 라고 많이 표현한다. 차 안사고, 집 안사고, 평생 직장 안 갖고. 큰 돈이 들어가거나 대출이나 긴 계약이 필요한 것들을 하지 않기로 한 요즘 사람들.
그런데 코로나가 조금 그 판을 바꿨다. 인적이 드문 곳에 텐트를 치고 해외 여행이 안 되니 국내 여행이라도 가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급등한 자동차 판매량이 일본도 늘었고 동시에 운전면허 취득 희망자가 폭발했다. 온라인 수업 이외에 할 게 없어진 대학생들은 이 참에 운전면허라도 따 놓기 딱 좋은 타이밍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지난 봄에 몇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운전에 도전해야지 결심했던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니 할 말은 없지만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도 너무 없다. 스쿨 안에 큰 코스를 가지고 있는 운전 교실은 이미 신규 가입자로 터질 거 같은지 접수를 중단했다. 그리고 나처럼 장롱 면허 (일본말론 '페이퍼 드라이버' )강습은 훨씬 저렴한 가격에 짧은 레슨이라 돈이 안 되니 처음부터 열외였다.
할 수 있는 곳이라곤 느닷없이 도로 주행을 가르쳐 주는 과외 뿐이었는데 이건 정말 왠만큼 기억이 날랑 말랑하는 사람이 대상이지 나처럼 백짓장 같은 사람이 가면 살인 무기가 돌아다니는 거 아니야? 덜컥 겁이 나 몇 달을 고민만했다.
그래도 해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법이지!!! 나는 용기를 냈다. 평판이 좋은 어느 드라이빙 스쿨에 연락을 해서 체험레슨을 예약했다. 내가 정말 아는게 없고 무서워하고 있다고 열심히 어필했더니 너무 익숙하다는 듯이 나를 타일러서 약속을 잡아주셨다. 핫핫;; 제 남친이신 줄. (여자 선생님이셨다ㅋ)

그리고 역시 일본. 가끔 정신병 걸릴 거처럼 메뉴얼 따지고 세세하다 못해 새가 되버릴거 같을 때도 있지만 이럴 땐 믿음 밖에 안 간다. 수업 전에 정말 초보적인 기초 지식이며 꼭 알아야 할 안전수칙과 표지판 정보를 파일로 보내주셨다. 먹구름 가득 낀 내 뇌 속이 서서히 클리어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냥 해 봅시다! 이러고 일단 행동부터 하는게 아니라 최악의 상황과 무조건 네거티브한 청사진을 그려놓고 어택보단 가드, 시험보단 방지하는 모드의 일본 스타일이 고맙게 느껴졌다.
나같이 갑자기 도로로 나가기 겁나는 사람들을 위해 좀 멀지만 코스를 빌려주는 연습장 레슨도 준비 되어있었다.

여기가 바로 내가 처음 일본에서 정식으로 운전대를 잡은 코스장. 작아도 있을 건 다 있었다. 동남아쪽 피부색의 학생들과 코치가 매우 많았다. 야매의 스멜이 좀 느껴졌지만 일본어로 배우는 것 보다 자국어로 배우는게 결과적으로는 안전성이 확보되니까 저게 맞다는 느낌이 든다.
선생님은 그야말로 성모 마리아 같았다. 쫄은 자에게 성장이란 없지 않은가. 다 잘했다고, 너무 훌륭하다고, 시킨걸 한 것 뿐인데 수업내내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아무것도 안 하고 빨간불에 숨만 쉬었는데 잘하고 있어요~ 너무 좋아요~ 칭찬 받았다. 이것이 영업이라도 상관없어요. 제 마음은 이제 당신 거예요.
역시, 뭐든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내가 그 큰 껍데기 (자동차)를 뒤집어 쓰고 요리 조리 방향을 조절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의외로 내가 틀면 트는 대로 내 의지를 따라오는 껍데기에 희열이 느껴지고, 그 끄는 기분이 뭐라 설명할 수 없는데 동화된 감각이었다. 얘가 이런 미세한 핸들링도 감지하고 따라오는구나 싶어 너무 감동적이었다.
길이 세 갈래로 나누어진 교차로에 차가 집중되자, 운전자를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차가 먼저 가면 된단다. 오!! 그냥 눈치 보면서 가는 게 아니었어? "아니 이건 누가 정했나요???" "도로 교통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걱정마세요! “ ㅋㅋㅋㅋㅋㅋ 이런 멍청한 질문에도 얼마나 진중하게 대답해 주시는지.

그리고 선생님이 이 정도면 도로연습을 해도 될 것 같다고 해서 다음 레슨은 바로 나카노역 진짜 사람과 차와 경찰과 신호가 있는 길 위에서 시작했다.
선생님 자리에 보조 브레이크가 있다는 것이 마치 나의 탯줄처럼 소중하고 의지됐다.
“무슨 일이 생겨도 구해줄거니까 안심하세요!”
언제나 수업 시작 전에 해 주시는 저 말 한마디가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꺼져버리는 내 자신감에 용기라는 기름이 되어 끝까지 불씨를 가지고 갈 수 있게 해 주셨다.
세번째 연수날, 여자 선생님이 아니라 남자 선생님이 맞이해주셨다.
“아이고 아버지가 와서 미안해요.”
‘아버지’라는 말을 아셨는데 우리 회사에 ‘아버지’가 두명있어요. 다음엔 다른 ‘아버지’가 올지도 몰라요. 문맥상 ‘아저씨’를 ‘아버지’로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았다.
나는 여자 선생님(알고보니 사장님이셨다)도 너무 상냥하다 생각했는데 ‘아버지’들은 더 하해와 같았다. “여자 선생님 무섭지 않았어요? 우리학교에선 제일 무서운 선생님이에요.”
네? 말이 빠르셔서 그렇지 무섭기는 커녕 은혜로웠는걸요. 허허허허. 겨우 좌회전 우회전을 배운 나는 세번째 날 트럭이 씽씽 달리는 도로에 나가 60킬로를 밟았다. 그러고나니 40도 속도제한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선생님이 수업 초반에 내가 18킬로로 달리더랜다.
ㅋㅋㅋ 몰랐어요. ㅋㅋㅋ 그래서 팍팍 밟을 수 있는 도로로 급 변경해서 데려가주셨던 것이었다.
그리고 다섯번째 수업에서 고속도로를 탔다. 나도 모르게 100킬로까지 밟았다. 선생님이 껄껄 웃으며 말해줘서 부리나케 속도 조절을 했다. 그리고 일반도로에 내려왔더니 온 세상이 굼벵이처럼 느리게 가는 듯하고 갑자기 여유가 미친듯이 우러나 막 단풍도 눈에 들어오고 앞만 보고 가기 바빴는데 수시로 백밀러, 사이드 밀러 확인하는 타이밍이 늘었다.
정말 사람은 뭐든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다. 그건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바로 ‘입장’이다. 걷는 사람의 입장, 자전거 운전자의 입장, 자동차 운전자의 입장. 되 보기 전까지 각자의 받고싶은 배려와 어려움을 상상할 수 없다.
처음 좌회전을 배울 때였다. 먼저 가장 왼쪽으로 차를 붙여 자전거가 끼어들지 못하도록 틈을 주지 말라고 하셨다. 파란색 자전거 전용도로에 자동차 바퀴가 올라갔다.
“어..어? 자전거 전용도로에 자동차가 침범하면 안되잖아요??”
“아니요. 오히려 여길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붙여야 해요. 차가 턴할때 사각지대가 생겨서 큰 사고가 나요. 여길 차가 온다고 욕하는 자전거 운전자가 있는데 그게 잘못된 상식이에요.”
“세상에.. 제가 그 자전거였습니다!!!!! “
맙소사. 자전거만 타고 다닐때는 몰랐다. 자동차에 대해 자전거가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배려없는지.
그리고 자동차를 내 멋대로 커다란 괴물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그 안엔 이렇게 예쁜 그냥 평범한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말이돠. 자동차라고 다 가장 편리하고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동차 운전자가 보행자나 자전거를 당연히 배려해야 하는 이미지지만 사실 잠깐 자전거나 보행자가 멈춰서서 자동차를 보내줘야 더 원활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제 안절부절 하는 내 초보운전을 떠올리며 주차장에 들어가고 싶은데 보행자가 많아서 어쩌지 못하는 차가 있으면 서서 보내드린다. 이거슨!! 내가 운전해보니 드디어 급기야 겨우 이제야 알게 된 사실.
“자 네비게이션을 보세요. vics라는 표시가 있죠? 인공위성으로 받는 도로 정보여서 리얼타임이 아니예요 여기 보면 5분 전이죠? 5분전 정보라는 뜻이에요.”
와… 얼마나 이 세상에 정보 통신 기술이 발전한거야. 나 모르게? (왜 나한테 보고해야 하는것 같니)
“신호등이란게 정말 치밀하게 계산 되 있네요. 이거.. 누가 해킹이라도 해서 다 엉망으로 만들면 도로에 있는 사람 다… 죽는거 아니에요?”
“맞아요. 이거 생명줄이에요 ㅋㅋ 그럼 이제 경찰들이 와서 수신호로 우릴 인도할거에요”
“그…그럼 우린 수신호를 알아들을 수 있어야겠네요?자신없어요 ㅋㅋ“ 와… 신호등 누가 만든거지. 언제부터 이런 머리 좋은 사회 시스템 안에 살고 있었지. 당연한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소름이네.
수 많은 사회공부를 했다. 엄청나게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표지판을 이해하고 신호를 아는 동시에 차간 거리를 유지하며 위험을 감지하는 좌뇌와 우뇌의 풀 가동이 필요한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이었다. 나는 왜 이제껏 못했나 후회보다 이제라도 하루빨리 시작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한 30년은 할 수 있을지 몰라.
그리고 사회와 더불어 인생을 공부했다.
“신중한 운전과 신경질적인 운전을 헷갈리면 안돼요.
그 차이는 브레이크를 언제든지 밟을 준비를 하고 상황 판단을 하는 것은 신중한 운전이고요.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바로 브레이크를 밟아서 급정지를 하는 건 신경질 적인 운전이에요.”
하아.. 언제나 마음의 준비를 하되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침착하게 판단하라는 말씀. 신중한 사람도 신경질 적인 사람도 둘 다 불안을 안고 있지만 (특히 나는 불안 덩어리지) 그 표현 방법이 전혀 다른 것을 말해주셨다. ‘아버지’.. 네. 저는 이제 그렇게 살겠습니다.
“차체가 가끔 흔들리시네요. 시선을 멀리 두고 운전하세요. 그럼 흔들리지 않아요.”
“인생이랑 똑같네요. 멀리 봐야 흔들리지 않는 거요.”
“ふかいですね!” (깊은 뜻이 있네요!) 껄껄껄껄
‘아버지’2 선생님이 엄청 좋아하셨다.
‘아버지’들의 개꿀팁.
1. 후진 할 때, 전진 하는 거랑 반대로 핸들을 조작해야 된다고 착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똑같아요. 내가 차 꽁무니를 오른쪽으로 가게하고 싶으면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고, 차 꽁무니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가게 하고 싶으면 왼쪽으로 틀면 돼요.
2. 핸들을 끝까지 돌린 후 똑바로 다시 돌리고 싶을 때 계산하는 법은 먼저 자동차에 타서 핸들을 돌려봐요. 한바퀴 하고 4분의 1 더 돌아가는 차랑 한바퀴 하고 2분의 1 더 돌아가는 차 종류가 있거든요. 반이나 반의 반 바퀴를 돌려놓고 그 다음 한~바퀴 하고 속으로 카운트 하면 되요. 이거 어디 표시 되는게 아니라서 바퀴 수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3. 내가 이 좁은 사이에 들어갈 수 있을지 어떨지 감이 안 올땐, 사이드 미러 끝이 닿나 안 닿나 보면 좋아요. 최악의 경우 사이드 미러가 옆 물건에 닿으면 못가는거죠. 대신 거기는 차는 아직 안 긁었으니까 세이프!
4. 왼쪽 차선에 공사하거나 주정차 한 차가 많으면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듯 운전하면 되는데 반대 차선 차도 그러면 자연스레 우릴 피해가요. 사람이 본능적으로 나한테 뭐가 다가온다 생각하면 (몸) 차체가 알아서 멀리 피하게 되어있어요.
5. 오전시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아요. 일어나서 병원에 가시는게 가장 중요한 일과죠. 근데 예약 시간이 늦을까봐 꽤 서두르시는 분이 많거든요. 어이쿠, 무단횡단하시네. 오전엔 이 분들을 조심해야 되요. 그리고 가게들이 즐비한 곳은 장사 시간 전에 납품 트럭이 많이 서서 피해가야해요.
6. 왼쪽에 자전거나 주정차가 있어서 피하고 싶으면 속도를 줄이고, 피하고자 하는 오른쪽을 확인하는게 먼저예요. 무섭다… 생각하면서 속도 안 줄이고 무서운데~ 하면서 가는 건 금물.
7. 차선변경할때 사이드 미러에 옆 차선 자동차가 보이고 그 자동차 주변에 여백이 있어야 차 한대 정도 이상의 거리가 떨어져 있다고 느끼면 돼요.
8. 차선변경할 때 속도를 줄이면 애써 양보해 준 옆차가 결국 바짝 거리가 좁아지니까 속도는 줄이지 않을 것. 응용해서 내 차선의 앞 차와의 간격을 오히려 띄우고 속도를 내서 옆차선 차와 거리를 둘 수 있게 내가 도망가는 방법도 가능하죠.
해 보지 않고는 모른다.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그리고 지난 주에 처음으로 혼자 차를 빌려 친구 집에 물건을 배달해줬다. 친구집 근처 코인파킹에 내 기념할 만한 내 첫 주차는

이따구였다 ㅋㅋㅋㅋㅋㅋ
보조석으로 내렸다. 와 너무 부끄러워서 머리에 김이 나올 것 같았지만 주변에 있던 일본사람들이 모르는 척 해줘서 진짜 고마웠다 ㅋㅋㅋ 나 투명인간인 줄

나는 옆 차주가 돌아오기 전에 얼릉 볼 일을 보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차를 반납할 때

요로케나 뿌듯하게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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