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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온천물이 좋기로 소문나 100년 전부터 이용되어 왔고 호텔로 개업이 시작된 것은 1926년이라고 한다. 이후 4대째 이어져 많은 근대문학 문인들이 찾아 정보를 교환하는 살롱으로 유명한 역사가 있었다.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가 신혼여행지로 찾은 호텔이었다. 이것 때문에 찾아간 것은 아니고 갔다 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직 프런트도 도착 안 했는데 범상치 않은 앤틱가구에 광대가 들썩인다. 저렇게 오래된 게 깨끗하려면 비싸거나 소중히 관리된 거겠지?

로비에 들어와 어디부터 찍어야 할지 몰라 감탄만 하다 구석의 난로를 먼저 찍었다. 반짝반짝 광이 나는 다크 한 마룻바닥이 아름다운 보석처럼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난 어지러웠다. 겨울에 불길이 춤을 추는 난로가 있는 이곳 풍경은 얼마나 황홀할까.

서서히 시선을 바닥에서 위로 옮기며 구체적으로 로딩을 시작했다. 소파... 고져스. 미쳣스.

저런 소파가 한 둘이 아니었쓰.
온 벽에 빼곡히 화려한 책장들로 웅장했다. 조명도 예뻤지만 어디서나 광이 나는 바닥이 너무 밝고 영롱했다.

와.....

마스크 아래 너무 웃어서 침 흐르는 중

곰돌이도 뭔가 좋아 보였는지 엄청.. 막 엄청.. 크고 엄마 여기 좋은 데다~ "막 디게 엄청 좋다"고 해줬다.
러시아 직원분의 깍듯한 일본어 환영을 받으며 웰컴 드링크를 마시고 방으로 안내받았다.

복도, 엘리베이터 앞, 방 안, 여관 어디를 가도 책을 볼 수 있었다. 아무데서나 책을 꺼내 읽고 여기저기 입을 벌리고 있는 트렁크 가방 (클래식한 여행가방이었다)에 넣기만 하면 반납이 끝난다.

다자이 오사무 같은 근대문학도 있고 히가시 케이고 같은 현대 추리소설도 있고 장르 불문 시대 불문. 종류가 아주 많았다.

심플한 곳이었지만 고급 호텔의 장점은 청소상태가. 크읏... 흠잡을 데가 없다는 것.
가방을 들어다 주고 간 러시아 직원분이 더듬더듬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했다. 어떻게 타테시나까지 (타테시나가 대중교통 많고 상업시설 있는 도시는 아니라서) 취업을 하셨냐고 물었다. 이곳 사장님이 러시아에 관심이 많아서 자주 방문하고 여러 가지 교류도 좋아하고 그래서 일본에 관심 있는 러시아인 몇 명이 취업하게 되었다고. 청소, 벨보이, 그리고 식당, 프런트에 본인까지 총 4명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뭔지 너무 알겠다. 물건이나 사람이 아니라 어떤 나라에 입덕 하는 그 느낌. 나에겐 일본이 그랬고, 사실 타이완에 한 번 갔을 때도 너무 좋아서 타이완에 관계된 건 다 관심 생기고 열심히 찾아보고 그랬다. 타이완에 살짝 입덕 할 뻔함. 지금도 약간 생각하면 설레고 몽환적이긴 하다. 그냥 타이완 뒷골목 걸어 다니는데 더러운 것도 다 예쁘고 사람들이 조금만 친절해도 성인이나 현자를 만난 것처럼 감동적이었다. 잔뜩 한자로 쓰여 있던 과자나 학용품도 왜 죄다 이뻤다니.
사장님의 러시아 덕질. 응원합니다.

초록 초록한 바깥 뷰를 보며 하... 살짝 이 정서에 취해보고 싶지만

"엄마!! 이제 출발한다!! 타!! 탔어? 탔어? 이제 간다? 어? 어?"
비행기에 타야 한다. 헬리콥터도 아닌다 두두두두두두 날아가는 보잉기 소리도 들어야 한다. 되게 진지하게 타고 내리라고 시키면서 "하루야 엄마 멀미 날 거 같애 이제 내릴게." 나름 몰입해서 말해주면 "ㅋㅋㅋㅋㅋ 엄마. 이거 진짜루 타는 건 아니잖아. 멀미 안 하잖아." 급 매몰차다. 뭐야. 어느 장단이야.

갈색 옷은 어른용 잠옷, 베이지 옷은 아이용 유카타, 아래 감색 옷은 어른용 사무에.

매일 바꿔주는 과자. 이 날 먹었던 사과파이가... 너무 맛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안 주고 내가 다 먹었다.

잠깐 호텔 주변을 둘러볼 겸 나가기로 했다.

다시 1층에 내려오니 다른 한쪽에 책 읽기 좋은 책상이 풍경과 맞대고 있었다. 이런 데서 하루 종일 책 읽다 온천욕하고 책 읽다 밥 먹으라고 부르면 밥 먹고 책 읽다 누가 펴 준 이불에서 그대로 잠들....

정말 ... 블로그도 잘 써질 거 같은 자리다...

그림책 코너도 발견했다. 없는 게 없네.

산다는 것의 의미. 이런데선 이런 책 보면 딱인데

프런트 지나서 1층에 매점이 있구나. 집에 갈 때 여기서 뭐 사가야겠다.

바로 앞은 계곡물이 철철 흘렀다. 들어갈 수는 없지만 보기만 해도 청량하다.

으캬아~~

두어 번 뛰더니 벌레 있다고 쫓기듯이 돌아오는 너. 아니 우리 가족..
애미 애비가 이러니 아들한테 용감하라고 자연과 친해지라고 바랄 수가 없다. 미안해 아기야.

여관 모드로 갈아입고

하루는 유카타 불편하다고 해서 그냥 잠옷을 입고

봉산탈춤을 췄다.

뭘 가져온 거지? 빨대에 테이프로 봉지를 붙인 건가?
테이프가 어디서 났는지 물어봤더니 여행 중에 가지고 놀려고 집에서 제작해 온 거래. 설마... 그 가방에 저런 것들로 다 차 있는 거... 아니지? ;ㅂ; 이걸 바로 잡아주기엔 좀 기특하니까 냅두는데 칭찬까진 안 해도 되겠지? 너무 내 타입 아닌데.

셋이 조르르 가족들끼리 예약해서 갈 수 있는 온천탕에 들어갔다 왔다.
천연 온천이라 그런가 산 중턱? 바깥 길을 걸어야 도착하는 곳이라 귀찮기는 했다. 그래서 이후에는 그냥 엘리베이터만 타면 갈 수 있는 대중탕에 갔는데 아무도 없어서 늘 혼자 씻을 수 있었다.

지난번에 온천여행 갔을 때보다 한 뼘 더 컸는지 뜨거운 온천탕을 극복했다! "엄마 하루 어떻게 온천에 갈 수 있게 됐는지 알아?" 처음에만 뜨겁고 따갑지 몸을 쑤욱 집어넣고 조금 지나면 익숙해진다면서 무용담처럼 몇 번을 말해줬다.

그렇게 땀 쏙 빼고 개운한 맛을 알게 된 곰돌이. 외출하고 와서, 자기 전에, 아침 일찍. 하루 세 번 온천욕을 즐기는 곰돌이가 되었다.

가족탕에 클렌징 안 가져와서 몸만 닦은 나

게으른 나는 그 많고 귀한 책 중에 '사자에상' 만화를 골랐다. 초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무 수정 없고 개정 안 된 초판은 처음 봤다. 꽤 꽉 막히고 당 시대가 민감하게 반영돼 충격적인 내용도 많아서 볼만했다. 이제 밥을 먹으러 가야 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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