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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킁 큼큼
-또또 여보짱 냄새 맡고있다. 혹시 개코라고 알아? 한국에서는 냄새 잘 맡는 사람을 개코라고 해.
-에어컨 좀 냄새 나는거 같은데?... 청소 불러야겠어.
우리집 케군은 개코다. 냉방을 가동하기 시작 한 에어컨에서 어김없이 냄새를 감지했다. 각 방방마다 총 4대 30만원 견적이 나왔지만 이런데에 개코는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게임 아이템에 아낌없는 남자들도 많다던데... 후...과거의 나야, 결혼 참 잘했다....

토요일 아침 8시, 온 가족이 기절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서로 뺨을 때리며 억지로 눈을 떴다. 적당히 민망하지 않을 복장을 갖추고 머리에 물 묻히고 아저씨를 기다리기 시작.
-9시에 시작해서 몇시에 끝난대?
-견적에는 6시간 걸린다는데
-뭐어? 여보짱은 1시에 나가야한다 하지 않았어?
-두 명이 올 수도 있고, 어디까지나 견적이니까.
-아저씨 밥은 어떡하냐. 안 배고플까?
- 알아서 하겠지.
띵동
인터폰 화면에 비친 방문자를 보고 우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아.... 한 명이네.....

작은 체구에 미소가 단련된 친절한 아저씨가 가져오신 슬리퍼로 갈아신으시며 집을 둘러 보셨다.
-욕실이랑 세면대도 빌리겠습니다. 두 대 동시에 진행 할게요.
-마침 비도 오고 하니까 창문 청소도 좀 해드릴게요. 고압 청소기라 금방 되거든요.
아! 감사합니다. 말투부터 싹싹함이 뭍어난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나는 불현듯 예전에 마마토모들이랑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사소한 대화였지만 나 혼자 상당한 문화충격을 받고 (그러나 티 낼수 없어서 몰래) 놀랬던 일이 있었다.
한 마마토모가 그랬다. 예전에 뭘 수리한다고 업자가 왔었는데 화장실을 빌리는 거야. (그게 뭐 어떻지?)
그러자 다른 마마토모가 그랬다. 헐. 왠일이야. 너무 싫었겠다.... 그 둘은 번갈아, 가자마자 미친듯이 닦았어. 그 분 완전 무례하다. 요즘 세상에 비상식적이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등등 큰 일이라도 당한 듯 대화를 나눴다. 평소 남을 업신여기거나 신랄하게 말하는 친구들도 아니고 오히려 배려깊고 경우에 어긋나는 일이 없어 항상 배울 점이 많았기 때문에 그녀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집에 돌아가 곰곰히 되새겨 봤지만 늘 마마토모를 통해 새로운 매너를 배우고 일본 문화를 알게 된게 무수히 많았어도 이 감각만큼은 이것이 일본 상식일지언정 절대 닮고 싶지 않았다.

영화 그린북의 한 장면이 떠올라 자꾸 오버랩 되었다. 백인 주인공이 흑인 돈 셜리 박사를 만나기 전 평범한 미국의 차별주의자로 살아가고 있던 영화 초반. 집 수리를 하러 온 흑인에게 부인이 음료수를 대접하는 걸 못마땅 해 하는 것도 모자라 그들이 가고 난 후 입을 댄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하는 장면이 있었다. 다시 부인이 한숨을 쉬며 줏어 놓았을 때 얼마나 다행이던지. 비약하고 있고 촛점도 다르다는 걸 알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걸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나자마자 부리나케 아저씨께 말씀드렸다.
-참!! 저희 집 화장실 편하게 쓰셔도 되요!!
-아.... 정말입니까? 너무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집에 오신 업자 분들은 화장실 쓰지 않는게 일반적이란 말을 들어서 좀 놀랐거든요. 제가 자란 모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루랑 한국말로 계속 말 하고 있어서 아저씨는 내가 외국인이란 걸 알고 계셨다.)
-아... 요즘 코로나 때문에 편의점 화장실이나 공중화장실도 금지 된 곳이 많아서 화장실이 필요할 때마다 집에 들렀거든요. 오늘도 참았다가 집에가서 화장실도 쓰고 점심도 먹고 다시 다른 현장으로 향하려던 참이었어요. 정말 타스카리마쓰. (살았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다.)
-세상에!!! 그 때마다 댁에 가신다고요? 사람 사는 집에서 화장실도 못쓰다니.. 인권문제예요. 사람이 사람한테 전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뭐... 그게 실례가 되기도 하고... 저희가 또 쓰면 저희가 청소를 하고 나와야 하니 귀찮아서 안 쓰는 업자도 있고 그렇습니다.

6시간 견적서를 주시면서 6시간 화장실을 참을 각오도 하고 계셨던 걸까? 우리 아들이 장래 어떤 일을 하게 될 지 모르는데 이런 근무 환경 있어도 되는 걸까. 이게 서비스일까? 예의일까? 매너일까? 위생도 감염예방도 프라이버시도 다 중요한 거 맞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하고 살아야 하고 사람이랑 살았을 때 가장 사람답고 행복하지 않나... 순간 타인과 화장실을 함께 쓸 수 없는 사람은 평생 해외여행 한 번 안 가고 (화장실 깨끗하지 않은 나라가 얼마나 많은데!) 제 집에서 나오지 말고 살려는 것과 똑같은 생각이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오버를 떨었다.

케군은 1시에 병원예약이 있어서 집을 나갔고 30분 뒤 아저씨는 ‘작업은 마무리 되었고요 마지막으로 화장실 잠시 빌리겠습니다.’ 하시며 정말 깨끗히 (그 한 번으로 뭐 얼마나 더러워질 수 있겠는가) 쓰시고 현관에 서셨다. 뭐하시는 거지? 기다리고 계시는 듯해서 가까이 가니 현관에 선 채로 정산하시려고 좁은 두 손 안에 계산서며 볼펜, 카드기를 가득 안고 계셨다. 종도 아니고... 머슴도 아니고... 나는 일본에서 아무리 살아도 매번 마주치는 이런 상황이 너무 불편하다. 왜 이렇게 을의 태도를 바짝 엎드려 보여주시는 건지.
-아저씨 이리 와서 앉으세요.
깨끗히 닦은 테이블에 아저씨를 모셔왔다.
얼음 동동 띄운 보리차를 컵 잔에 받쳐 내 왔다.
우리는 비지니스 관계이고 나는 부탁했고 아저씨는 공급하셨고 우리는 카드를 결제하고 사인을 해야 하니까.
마치, 내게 봉사하고 나는 부린 것 같은 태도로 이야기 하는게 싫다. 꼭 택배 아저씨들이나 배달 하시는 분이 오면 우리집 현관에 발로 아무렇게나 툭 쳐서 세워두는 스톱퍼를 정성스럽게 손으로 접으시려고 한다. (일본은 발을 쓰면 예의에 어긋난다는 이미지가 있다. 근데 이건 원래 발로 만지는 물건이자나.) 스톱퍼에 손을 뻗으실 때마다 난 펄쩍뛰며 하지마세요!!!! 그냥 두세요!!! 하며 내가 먼저 발을 뻗는다. 이런 눈치게임에 익숙한 일본인들은 암묵적 룰로 으레
1. 배달부:스톱퍼에 손을 뻗는 시늉을 한다
2. 주인 : 당신의 정성은 알았으니 만류한다
3. 배달부:못 이기는 척 손을 거둔다
이런 귀찮은 과정을 반복하는 지도 모르지만 눈치 드럽게 없는 일본사람 중에서는 손으로 접으면 접는대로 멍-때리고 보고만 있겠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런 종류의 서비스는 제발 하지말자. 다른 걸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거잖아. 과해...과해..

보기에도 더러운데 모든 배달부가 손으로 접으려 하는게 저놈


마스크를 살짝 들어 보리차를 원샷 한 아저씨와 (저도 집 안이지만 마스크 썼어요. 아저씨 보호ㅇㅂㅇ)
계산서에 싸인을 하는데
-이렇게 깨끗한 집은 몇년만이에요. 정말 오랜만에 방문합니다.
하셨다. 인사치레겠지 에구,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는데 아저씨의 말씀이 이어졌다.
-에어컨 커버 뜯어보고 에어컨 제조년도가 2011년이길래 깜짝 놀랐어요. 9년 쓴 에어컨이 이렇게 깨끗할 수가 없거든요. 사실 보통은 6시간 걸리는데 너무 순조로워서 빨리 끝났어요.
-아... 그...그래요? 거실에 있는 에어컨은 2년 전에 청소 했거든요. 그래서 깨끗한가 봐요.
-네, 남편분께 그 얘긴 들었는데 2년을 썼다 해도 2년 동안 저렇게 깨끗하게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보기에만 예쁘게 해 놓은 집은 많지만 안 보이는 곳 구석구석 깨끗하기란 어렵거든요. 그건, 에어컨 열어보면 보여요.
요리 하실 때 항상 렌지후드 환풍기 켜고 요리 하시죠?
(어머, 그걸 어떻게!!) 잠깐 요리 할 땐 귀찮다고 안 켜는 분들 많으신데 그러면 기름이 공기중에 넓게 퍼져서 가구며 바닥 에어컨 안 까지 들러붙어요. 그럼 기름 위에 먼지도 잘 붙고요. 기름요리가 아니어도 냄비를 끓이면 여러가지 물질이 기체화 되서 공기중으로 퍼지거든요.
(세에상에! 대박 나비효과. 도데체!!! 도데체!!!!
왜 꼭 이런 때에 케군은 없는거야....)

매일 베란다며 각 방 창문 자주 열어 환기 시키시죠?
(어머, 이건 또 어떻게!!)
창문 꼭 닫고 여름엔 냉방 겨울엔 난방 트는 집에 가 보면 창틀 밑이 하얗게 변색 되있고 에어컨 안에 곰팡이가 껴 있어요.
아까, 제가 방 에어컨 청소 끝내고 거실로 왔을 때 방 바닥 닦으시던데 혹시... 제 발자국 남았나요?
-아!!!! 아니요!!! 그냥 어제부터 신경 쓰였던 얼룩이 있기도 하고 창문 열어놓으니까 빗물이 튀어서 겸사겸사 닦았는데 타이밍이 안좋았네요. 죄송해요!!! 제가 이게 그냥 보이면 닦는 병이 있어서!!!!
-그러시구나. 근데 에어컨 열었을 때 그렇겠구나 싶었습니다. 평소에 바닥에 먼지 쌓아두지 않는 집이 에어컨이 깨끗해요. 왜냐면 공기가 깨끗한 집이라는 뜻이거든요. 공기청정기에 의존하기만 하고 먼지 청소를 안 하면 에어컨도 공기청정기 필터가 더러워지기만 해서 제 기능도 못하거든요. 악순환만 이어지죠.
(아니... 아니 왜.... 이런 때에 케군은 어디 간 거니!!!! 왜 이거 안듣는 거니!!!! )
칭찬들을 땐 뻔뻔하게 넙죽 고맙다고 하는 나인데. 그 날은 정말 진심으로 쑥쓰러워 어쩔 줄 몰랐다. 내가 칭찬받으려고 혹은 남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일에 폭풍칭찬 받아서 당황 했던 것 이다. 아저씨가 가시고도 두고두고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 날 이후로 창 틈의 먼지나 배수관, 가구의 홈 사이사이에 쌓인 먼지를 닦아 낼 때마다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라는 사명감이 솟아올랐다.

아저씨는 집으로 가실 때 마중나온 하루에게 한 마디 하셨다.
-꼬마야, 넌 좋겠다. 깨끗한 집에 살아서.
하루는 배시시 웃었다. 나는 속으로 이제 치우라고 말 할 때 왜 그래야 하는 지 확실한 이유를 깨우쳐 주신 아저씨에게 엄청난 감사를했다. (잔소리의 근거 +1을 얻었습니다.)
그 날 오후 할아버지랑 통화하는 하루가
-할아부지!!! 오늘 엄마가 칭찬받았어!!! 엄청 많이!! 우리집이 되게 깨끗하다고 엄마 잘 했대!!
엄마가 칭찬 받은 일이 감동적이었나보다. (오예, 할애비한테도 내 행실을 알린 내새킹)

집에 온 케군에게 열렬히 오늘 들었던 일을 온 힘을 담아 계속 얘기했더니.
케: ふーん 후움~~ 
케:へ〜〜〜〜〜 헤에~~~
이게 다였다....

아...... 진짜 ....
다른 사람 다 몰라도 되니까 니가 알아주지 않을래..
얘만 알아주면 되는 거였는데....

근데 아저씨랑 케군에게 말하지 않을 비밀 한가지.
이건 내가 깨끗한 게 아니라.. 한국인은 원래 이렇다는 거. 일본 와서 싹싹하네 깨끗하네 칭찬받지만 한국에 사는 언니들 집에 가보면 내가 보고 배울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SS언니 집은 낮이고 밤이고 발라당 넘어질 정도로 바닥이 반짝이고 삼시세끼만 봐도 결혼도 안한 공효진이 놀러와서 쉴 새없이 툇마루를 걸레질 하는데 시청자들은 그걸 보며 속이 시원하다 느낀다는 거. 어릴때 엄마랑 같이 계곡에 놀러가면 엄마는 계속 텐트 안을 걸레질 해서 놀러 온 사람이 왜 저러는 걸까 생각했었다. 부산에 어학연수 간 적이 있다던 일본마마토모가 한국 아줌마 흉내내준다면서 했던 제스추어가 앉아서 한 쪽 다리만 무릎을 세워 바닥에 걸레질 하면서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이었다 (개빵터짐) 이 정도면 먼지 못 참고 걸레질하는 건 한국인의 종특아닌가 싶다.
미니네 집이 하도 깨끗해서 갓 결혼한 새댁이 왤케 청소를 잘해? 물으니 면봉으로 문지방 틈새도 파내는 엄마 밑에서 자랐거든요. 하더라 ㅎㅎㅎ 이런 내 종특 케군이랑 아저씨한텐 비밀

깨끗한 거실에서 잠들기 전 차 한 잔 마시는게 행복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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