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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군의 미쉐린 몸매를 보호해줘야겠네.
유카타처럼 모든 체형을 가려주는 옷이 없는데 울룩불룩 한 살들이 만화처럼 출렁이는 중년이 됐다. 내가 연애하던 그 분 어디갔지? 하지만 난 연애시절부터 예상했었다. 시어머니를 처음 만난 날 어머님과 케군 얼굴이 찍어낸 듯 똑같고 젓가락이 가는 음식이 똑같았다. 케군의 체형은 어머님 체형을 따라가겠구나 예감이 왔다. 어머님 젊은 시절 사진이 여배우 뺨치게 아름다우셨다. 사람이 식성은 못 이기고 먹는 음식은 그 사람을 만든다. 자극적이고 고기맛을 좋아하는 케군은 그렇게 다시 태어나서 제2의 어머님을 똑닮은 체형이 되어 갔다.
내가 비만형이 되지 않은 건 그저 운 좋게 너무 짜고 매운 걸 좋아하지 않은 식성 덕분인지도 모른다. 나는 얼굴이 이모들 사이에 끼어있으면 아주 늦둥이 자매라고해도 믿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엄마랑 이모들 판박이지만 체형이 아빠랑 닮았다. 아빠는 술을 잘 못 먹었고 안주나 간식도 좋아하지 않았다. 음식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식성을 내가 닮았다. 최초로 식탐에 굴복한 시기가 일본에 와서 빵과 단 음식에 노출되면서였다. 그 이전까지 나는 원래 평생 먹어도 살이 안찌는 사람인 줄 알았다. 먹으면 찌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냥 달지 않으면 많이 안 먹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루는 나랑 케군 중 어떤 식성을 닮았을까.
생선이랑 단 거 좋아하는 걸 보면 나 같기도 하다가 고기랑 소스에 환장하는 걸 보면 케군 같기도 하다가 아예 음식에 관심없는 부분도 있고 아리송하다.
우리집은 여유가 없고 끼니 말고 집어먹을 간식 같은 건 전혀 없는 환경이어서 살이 찔 만큼 단 음식을 먹을 수 없었지만 케군은 늘 과자나 고칼로리 음식이 널린 집에서 느슨한 어머님 (본인이 드시고 싶기때문에) 과 함께 계속 잘 먹고 컸다. 케군의 초등학교 때 사진을 보면 거대한 덩치에 코딱지만한 가방을 매고 단체사진에 찍혀있다. 키가 크고 살집이 있어 초등학교 모자가 코스프레처럼 우스꽝 스러울 정도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유도를 시작하고 운동으로 살이 쫙쫙 빠졌다. 얘는 그때 이성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시점에서 밴드부에서 드럼을 치기 시작한 것도 여자애들한테 인기 좀 얻어보려고 했다. 가위 바위 보에서 져서 드럼을 맡았다. 이긴 놈들은 기타와 보컬을 맡을 수 있었다. 왜냐면 좀 더 무대 앞에 서서 돋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이 없었다면 날씬하고 턱선이 날렵한 케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앞 뒤로 유년기와 중년은 다시 빵빵하게 지방이 차 올랐다. 그러고보니… 케군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반짝 몸매 좋은 청년기에 번식에 성공했구만.
만약에 하루가 케군을 닮았다면 지금쯤 소아비만으로 향하고 있었을텐데 하나의 복병이 편식이다. 나는 사실 하루의 편식이 그나마 비만을 막아준 고마운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많다.



음식이 지상 최대 관심사인 케군이 이 여관을 선택한 것은 바로 저녁 메뉴를 위해서였다.
얘는 방에 사우나가 있는지 침실이 몇갠지 이런 건 기억도 못하고 있었다. ㅎㅎ 그저 술 종류랑 무슨 메인이 나올건지 고기는 소인지 돼지인지 이 생각 뿐이었다.
아무튼 케군이 고른 밥은 대단하고 맛있었다. 만약에 내가 신이 되서 케군 직업을 고를 수 있다면 고든 램지로 환생시켜주고 싶다.


하루가 맛있게 먹은 와규.
애들 먹는 문제는 이러나저러나 사실 걱정이 따른다. 잘 먹으면 소아 비만을 걱정해야하고 못 먹으면 영양 성분을 걱정해야 하고. 공평한 세상이다…?


채소를 다 경계하는데 감자랑 당근은 쬐금 먹어 줌.
구황작물에는 그나마 당분이 있어서 먹고 다른 건 섬유가 씹혀서 삼킬 수가 없다. 이건 심리적인 연하 장애이다. 채소를 삼키면 역류한다. 그래서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나도 경험이 있다. 난 어렸을 때 사과를 못 먹었다. 씹으면 나오는 그 섬유질들이 혀 안에 거슬거슬 느껴지는 것이 좀 토할 거 같았다. 그것뿐만 아니라 밥상에서 몇가지 반찬에는 헛구역질을 했는데 엄마는 그때마다 저 기집앤 비위가 약하다고 자주 말했다. 그래도 딱히 편식하는 애로 기억되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어느 날 깨달았다. 한국 밥상은 다 같이 반찬을 공유하니까 내가 뭘 먹고 뭘 안 먹었는지 눈에 띄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을. 제 앞의 밥 한공기가 뚝딱 없어져있으면 밥 잘 먹은 셈 쳤다. 사실 나는 매 끼니 김치, 멸치, 빨간 소세지, 김, 계란 말고는 먹는 게 없었는데 들키지 않았던 것 뿐이다. 그리고 김치, 멸치, 계란이 없는 집은 없다. 편식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하등 불편이 없었다. 완전 범죄 아닌 완전 편식 후후후



음식에 대한 오만가지 생각과 함께 저녁을 마치고 큰 대중탕도 들어가 봤다. 층 전체에 다다미를 깔아놓고 휴식하는 공간이 크고 좋았다. 여탕에 들어가니까 노천탕에 활짝 핀 장미꽃을 빽빽히 수면 위에 띄워놔서 환상적이었다. 근데 장미 향이 문학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그다지 좋지는 않다. 나만 그런가 좀 지독한 냄새처럼 느껴지는 건..

잠을 참으며 하루가 엄마한테 사진을 찍자 그런다.
한 동안 부끄럽다고 카메라 들이대면 도망가고 인상 찌푸리더니 그 시기는 이제 지나갔나 봐?
다 씻고 나와서 이제 얼굴 못 생겼어~ 엄마 안 찍을래. 거절하는 나한테 “아니야!! 엄마 예뻐! 똑같애!” 정색을 한다. 진짜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말투로 하나 안 하나 똑같은데 엄만 왜 맨날 그렇게 오래 화장을 하는 거냐고 묻는다. 너무 얼굴이 진지하다.
이렇게 달콤한 사랑 고백이 없다.





하도 엄마 예쁘다하니 진짜 그런 줄 알고 그냥 사진도 찍게 된다. 열 살 남자아이는 아직도 너무 귀여워서 미칠 거 같아 다행이다.

아침 일찍 혼자 일어나 여탕에 먼저 다녀왔고

남자들을 깨워 조식을 먹으러 갔다

엄청 진한 코우치현 계란이 있었다.
껍질에서 나오는 노른자가 무슨 CG같았다.
여….영롱해….!
(두근두근 설렘)


아침 밥에 계란 말이를 집어 온 하루.
우리 시어머니는 계란을 싫어하셨다.
케군은 계란을 그다지 안 좋아한다.
나는 계란 광이다.
하루는 계란을 좀 좋아한다.
아… 얘는 누구 식성을 닮았을까.
또 내 징글맞은 추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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