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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마카오 사이를 왕래하며 일본사람과 연애하던 미니가 평생 생각해 본 적 없던 일본으로 시집을 왔을 때 미니 눈에 도쿄는 어딜 봐도 우중충했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난 이게 왤케 웃겨)
중국어 영어에 능통한 한국인이 일본어 못해서 일본에서 주눅들은 얼굴을 할 때가 생기다니 이건 지구적 차원에서도 인재낭비고 내가 생각해도 쌩뚱맞아 죽겠다.
-생각해 봐요 언니 내가 얼마나 우울했겠어요 근데 사람들은 맨날 도쿄 갬성이다. 일본 늑낌있다. 좋겠다. 부럽다. 하나도 이해가 안 가는 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계속 웃김)
덧: 그 후 미니는 일본 온지1년만에 일어 마스터하고 현지 대기업에서 산전수전 다 겪음. 이런 행동파 두뇌 가까이서 처음 본다... 

청운의 꿈을 안고 자발적으로 일본행 비행기를 탔던 사람들 눈에는 폴라로이드 필터 씌운 것처럼 보였던 도쿄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 눈엔 전혀 다를 수 있었다.
콩깍지 벗으면 팍팍하고 냉소적이고 불편하고 그저그런 도시일 뿐이니까 당연한데 말이다.

-미니야 나도 15년을 살아보니 지긋지긋하고 어떨땐 정이 뚝뚝 떨어질때도 있어 ㅎㅎ 그래도 처음 왔을 때 그 설레임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긴 해… 자발적으로 벗지않은 콩깍지랄까.

비나이다비나이다족제비신님께비나이다

-그렇게 약발이 떨어진 거 같을 때? 있지 있지. 지난 주에 그래서 동네친구 불러서 도쿄 산책을 했거든 사진 볼래?

그 날은 즉흥적으로 추짱이랑 카야바 커피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대학 친구들이랑 마지막으로 가고 오랫동안 못갔지만 계속 생각이 났던 곳이었다. 버스로도 전철로도 너무 애매한 곳이라 섣불리 다른 사람들에게 가자 하기도 그렇고 혼자 나서기엔 귀찮은 마음이 자꾸 방해를 했었다.

주택가 낡은 목조 건물이 바로 여기.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윽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외관에서부터 발사 뿜뿜.

이 노란 간판. 그리웠다. 옛날 생각이 미리보기 처럼 마구 밀려오네.

작은 역 대합실 같이 올망한 문과 1층 테이블들을 지나

월요일 아침 10시. 아무도 없으리라 확신하며 2층으로 올라갔다.

헤헤 예뻐. 햇살도 너무 좋다.
어리고 예쁘고 어려서 예쁘고 어린데 예쁘기까지 한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더운 공기를 맞은 터라 둘이 입을 맞춰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느닷없는 레모네이드 합창에 셋은 하핫! 하고 함께 웃었고, 결계가 풀린 틈을 타 내가 스몰토크의 물꼬를 텄다. 나는 요즘 영어 공부도 좋지만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서양문화도 너무 좋더라. 그냥 나이가 들어 주책맞고 뻔뻔해진 것 뿐일 수도 있다.
-제가 8년 전에 여길 오고 정말 오랜만이거든요. 2층에 원래 책꽂이 같은 거 있지 않았어요?
-네? 8년 전이라고요?
-이젠 결혼하고 애 낳고 8년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답니다.
-네? 애요?
마스크 덕분에 난이도가 더해진 나이 때려맞추기를 눈치게임마냥 시작했다. 한국 너무 좋아하고 한국말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하길래
-이름이 뭐예요?!
기습 질문을 하니까, 이…이름??!! 이름 모라요!!
자기이름도 모른다는 귀여운 대답이 돌아왔다. ㅋㅋㅋ
아아.. 나마에!? 이름!?? 아는 건데 막상 들으니 못알아들었었나보다. 손을 파닥이며 아까워하는게 정말 기특했다. BTS라고 안하고 ‘방탄’ 좋아해요라고 한국사랑을 인증했다. 그녀는 지민이 최애였고 나는 진이라고 대답했다.
-진이랑 그럼 비슷한 나이에요?
(아 나이 맞추기 아직 안 끝났구나?)
-송구하죠!! 진이 열살은 어리죠! 아들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구 있어요.

스물 세살 직원은 역시…한국인은 미의 나라라며 그렇게 안보인다며 (나이를 알게 되 시원한 표정추가) 진심으로 나를 좋게 봐 주었다.
나도 그냥 뻔뻔하게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열심히 팩을 해 보아요! 너스레를 떨었다.

직원분이 사진 예쁘게 찍으라며 테이블 가까이 스타치스 화병을 옮겨 주셨다.

매거진 일본갬성삘충전 5월호

그리고 인물사진을 좋아하는 추짱이 일할 때 쓰는 카메라를 꺼내서 아무도 없는 월요일 오전 카페를 아주 요긴하게 오지게 너무 잘 즐겼다.

이 필터야!!! 이걸 다시 눈깔에 씌워!!

아침 햇살에도
한 낮의 부산함에도
노을이 지는 시간에도
어둑한 저녁시간이 되어도 좋을 것 같은 자리다.

 

오랜만의 갈증을 해소하고 기념사진도 남겼다.
설정한다고 맨날 추짱한테 혼나지만 이런 거 밖에 할 줄 모르는 구린 나.

알아서 찍어주는 센스 터지는 추짱

같이 걸어서 센다기 근처로 갔다.
아직도 오전이야. 이렇게 행복할데가.

지도 못읽고 갔던 길도 기억못하는 나에겐 위대해 보이기만한 추짱을 따라 졸래졸래 걸었다.
야나카 커피에서 센다기로 어떻게 가?
거기서 그 하기소 (밥집)까지 어떻게 가?
어차피 말해 줘도 모르기 때문에 설명을 바라는 질문은 아니다. 그냥 길고양이 마냥 기웃대며 추짱을 따라갔다.

따라가도 모름.
다시 혼자 절대 못감.
아무튼! 오늘은 모든 걸 추짱이 프로듀싱한 추투어!

2층 주택을 개조해서 1층엔 카페
2층엔 전시나 리셉션룸을 운영하는 곳이라고 한다.

색감… 너무 이쁘다. 센다기스러워.
나만큼이나 빨빨거리고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동갑내기 동네친구가 있다는 건 복권당첨 아니냐….

어떻게 이런 델 알고 있었어. 나는 니가 자랑스럽다.

알고보니 HAGISO의 하기상이 만든 이 곳은 카페운영 말고도 인테리어 사업, 푸드연구 사업, 일반인이 참여하는 수업 (목공예), 건축업, 여러가지 다방면에 걸쳐 각각 또 되게 이쁜 스타일로 전개하고 있었다.

나는 무리없는 수준의 챌린저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막 대담하게 저지르진 못함) 다진 고등어와 강황을 버무린 샌드위치를 시켜봤다.

칠리소스와 고추가루를 드문드문 찍어먹는다는게 내 안의 한국인 소울이 맘에 들어했다.

고등어는 생각보다 비리지 않고 참치 식감이었고 노란색에 비해 향신료 맛은 진하지 않았다. 진짜 맛있었다…….. 도전 성공!

이렇게 찍히면 추짱이 여기 쳐다보지말고 자연스럽게 걍 가만히 있으라고 아무거또하지말라고 짜증냄.
(ㅋㅋㅋㅋㅋㅋㅋㅋ)

야무딱지게 파인애플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마시고 나왔다.

그런데 우리의 눈에 띈 하기소 안내 팜플릿에 한국인이 있었다. 뭐눈엔 뭐만 보이는 법. (이럴때 쓰는 말 아닌거 같은데.. 이상하게 입에 붙네ㅋㅋㅋ)
스루키 라는 카타카나만 보고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직원이 주문 디저트를 가져다 줄때 슬그머니 물어봤다.
-이 분, 일본 분이신가요?
-아뇨 일본 사람은 아니세요.
라며, 한국인이란 국적도 궂이 밝히지 않은 직원의 배려에 살짝 감동했다. 본인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것도 개인 정보라고 해석할 수 있으니까.
-그럼, 혹시 한국사람인가요? 왜냐면 ‘슬기’라는 이름이 한국에 꽤 있어서. 그.. 제가 아는 사람도 그렇거든요.
괜히, 이래저래 꼬치꼬치 묻는게 촌스럽게 느껴져서 갑자기 핑계가 길게 붙었다.
-아 맞아요!! 한국분이신데 이 이름이 많이 있군요. 그렇구나!!! 나중에 만나면 얘기해 드려야겠어요!

그 말에 조금 위화감을 느낀 나는 인터넷으로 괜히 찾아보게되었다. 아… 어릴때 일본으로 부모님을 따라 와서 일본어가 더 자연스러운 분이셨다. 그래서 한국사정이나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랬구나… 디자이너에 음식 연구가에 너무 멋진 일을 많이 해서 괜히 추짱이랑 마음이 너무 좋다며 그런 말을 나눴다. (누가 보면 우리가 키운 줄)

위에는 뭐지?

조명 이뻨

와! 작은 교실처럼 룸이 두개 있었다.

이런데서 뭘 배우면 그게 뭐든 나 잘 할 거 같아….
그냥 그런 그짓말이 절로 나왔다.

여름냄새 나기 시작하는 센다기를 걸으며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처음 보았던 파스텔톤 도쿄를 추억했다. 추짱은 덴샤가 달리는 곳은 다 좋다고 했다. 나는 모든 자판기가 그렇게 예뻐 보이던 것을 떠올렸다.
고향을 잃어가는 우리가 어딘가에 매달리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콩깍지 벗지 말자. 미니 콩깍지도 챙겨야겠다. 기다려. 조금씩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이쁘게 씌워줄게.

그리고 언젠가 콩깍지 따위 필요없어질 만큼 살아내면 몇번이고 아무렇지 않게 이사를 다닌 엄마의 말이 와 닿게 될거야. “거기나 여기나 사람사는데는 다 똑같다.” 발악을 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아니라. 우리는 그렇게 지금의 삶을 계속해서 사랑하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해.

덧, 추투어 고마워~
도쿄가 좋은 이유는 좋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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