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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하는 여자

코리아밍 아웃

Dong히 2020. 2. 27. 16:39

한국어 수업 할 땐 이미 한국어를 배우고 싶을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아요! 라는 분들이 날 찾아온 거기 때문에 놀랄 것 없지만 학생과 강사로 만나는 자리 아닌데서 깜짝 깜짝 놀라는 일들이 있다.

오전부터 점심시간에 걸쳐 딱 3시간 일하는 파스타집에 조금 말 걸기 어려운 베테랑 주부가 있다. 같은 파트타임이지만 점장보다 더 경력있는 그녀는 말 수가 적고 지시가 간결하며 목소리 톤이 낮고 특히 나한테 웃지 않는다.(내가 싫은걸까!!!!!!) 그래도 나는 피하지 않고 꿋꿋하게 말 거는 편인데 (일종의 자학?) 두드려라 그러면 언젠간 마음을 열거야라는 근거 없는 믿음과 사실 어딘가 깔려있는 재수없는 자신감도 좀 있는 거 같다. 아르바이트를 11월부터 시작했으니까 4개월 째가 되어가는 어느 날.
출근했더니 철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그리고 무뚝뚝한 야마다상이 서 있었다. 어디선가 불안한 예감이..? 유일하게 열쇠 들고 있는 직원이 안 온거다. 정규직아 자니? 자고 있는 거니? 전화 연결이 안 된다. 오고 있는 거라고 말해 줘. 그 때 야마다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한테 먼저 말 걸어 주실 줄은 몰랐는데 헥헥 기대된다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걸까? 설레는 내 귀에 너무 의외의 말이 들려왔다.
야마다(이하 야): 혹시 연락쵸 무로바도 대요?
내가 지금 무슨어를 들은 거지?
야: 저는 한국말을 조금 배웠어요. 잘은 모태요.
한국어다! 이거슨, 너무나 자연스런 억양의 한국어다!
너무 놀라서 마스크 안의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동 :너무너무 잘 하시는데요??? 어머어머어머어머!!
그녀는 한국 유학이 전무한 상태로 (여행만 3번?) 독학으로 한국어를 마스터한 것이다. 한국인이 알바생으로 들어온 이후로 나한테 언제 말을 걸어야 하나. 어떻게 친해 질 수 있을까. 타이밍을 재다 어색한 분위기만 만들거나 내 앞에선 긴장해서 무뚝뚝한 얼굴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어우 이 부끄럼쟁이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정규직 (의 열쇠)을 기다리면서 한 시간이나 한국어로 수다를 떨었다.
동: 직원 분은 자주 이렇게 늦어요?
야: 네, 스무살이에요. 잠이 많은 나이에요.
(ㅋㅋㅋㅋㅋㅋ 너무 착한 표현아닙니까)
야: 참 궁금한 게 있오요. 호타테가 한국말로 뭐에요?
동: 가리비에요.
(왜 호타테가 궁금하셨을까. ㅋㅋㅋㅋㅋ)
야: 저는 오사카 사람이지만 도쿄 말을 흉내내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도 표준어 억양이 어려워요. 예를 들면 치카^테츠(지하철 카를 올려 말함) 하면 들켜요 ㅋ 그래서 도쿄에선 치카테츠-(평평한 억양)로 말해요.
동: 아 진짜요? 그 두개가 다른 거 전 처음 알았어요. 안들려요 전 ;ㅂ; (꿀 정보... 긴 한데 다시 들어도 구분 안감)
동: 전 목소리가 다른 한국 사람에 비해 얇고 높은 편이라 일본어 선생님이 넌 일본어가 잘 어울리겠다. 라고 하신거에요. 그래서 배워보기 시작했어요.
야: 한국 사람 목소리가 낮아요?
동: 네네. 한국사람들은 아나운서도 그렇고 낮은 목소리로 뉴스를 읽어요. 낮은 목소리를 지적이라고 느끼거든요.
야: 높으면요?
동: 좀... 머...머....머리가....나빠..보이거나..가벼워 보여요. 신뢰감이 없어 보인달까? (그래서 난 내 목소리를 싫어함)
야: 아 그렇구나 ㅋㅋㅋㅋ
동: 그래서 한국어 할 때 목소리를 좀 낮게 하시면 되게 잘 하는 거 같애요! 그리고 야마다상 목소리가 원래 낮으셔서 한국말 지금 너무 멋있어요. ㅎㅎ
야: 그렇구나!
동: 일본사람들은 목소리가 높으면 친절하다고 인식하잖아요. 낮으면 화가 난 거라고 많이 느끼죠?
야: 아 어쩐지!! 점장이 가끔 야마다상 지금 뭐 기분 안 좋아요? 하고 물어봐요 ㅋㅋㅋ 저 몰랐어요!
(일본인에게 일본인의 특징 말하면 자각하지 못한 일들이라 반응이 정말 재밌다.)
야: 한국에 여행갔을 때 던킨 도너츠에 갔는데 직원이 커피요- 하면서 스윽 내밀어서 웃지도 않고 진짜 무섭고 화난 거 같았거든요. 근데 금방 익숙해 졌어요. 한국에서는 별 일 아닌 거 같더라고요? ㅎㅎ 다 이런 거였구나.
동: 맞아요 ㅋㅋ일본에서 전국체인에서 그렇게 했으면 재교육 끌려갔겠죠?
실제로 지난 달 우리 가게에 물을 퉁명스럽게 내려놔서 너무나 공포스러웠다고 본사에 클레임이 들어 와 단체 톡방에 범인 찾기? 가 한 판있었다. (점장이 당시 상황을 설명듣고 싶을 뿐이니 당사자는 개인톡으로 연락 주세요. 라고 상냥하게 범인 색출)

그 때 야마다상 핸드폰으로 한창 잠 잘 나이인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너무 미안하다고 지금 택시 잡고 있다고 넙죽 사과하는 모양이었다.
야마다 상은 성모마리아 같은 자상하고 은혜로운 목소리로 -아니에요. 너무너무 괜찮으니까 서두르지 말고 조심히 오세요~ 정말 조심히 오세요.
마치 아기 다루듯 온화하게 전화를 끊었다.
동: 전.. 정말 일본인의 이런 점이 존경스러운 거 같아요. 어차피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할 수 없잖아요. 이미 벌어진 일... 그러니까 서둘러서 오다가 사고 나지 말라고 이야기 해 준다는게 대단한 거 같아요. 한국사람들 중에는 화를 내고 겁을 주고 고치려 드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야: 이미 일어난 일은 어떻게 할 수 없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 분이 서둘러 오다가 다치면.. 전.. 그걸 책임 질 수 없어요... ;ㅂ;
아!!! 아~~ 아~~~ 아.. (일본사람이 그런 점도 있었지 참 ㅋㅋ그 걱정이 더 컸구낰ㅋㅋㅋㅋㅋㅋ)
둘이 무언의 폭풍공감으로 시간 차를 두고 빵- 터졌다. 그리고 우리는 알죠. 우리가 책임 질 것도 아닌데 조급하게 만들고 화를 내고 시간과 수고를 들여 누군가를 설득할 필요가 없는거죠. 상냥한 일본인 그리고 무서운 일본인.

헐레벌떡 뛰어 온 직원은 너무 괴로운 얼굴로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나와 야마다상에게 몇 번을 고개숙였다. 일본 생활 13년째. 나도 여기 사람 다 됐다보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니 인생이잖아요) 야마다상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 해서 저는 즐거웠어요. (저랑은 상관없죠. 회사가 당신을 알아서 하겠죠.)
한국이었으면 누군가는 밥이라도 한끼 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들어 줄 수도 있을텐데. 꼰대라는 소릴 뒷담화로 들을 것을 각오하며. 여기선 나도 다정하지만 차가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밤이 아까운 스무 살의 기분을 잊었을 뿐 나는 나의 세계에서 오늘은 야마다상을 만나며 내일은 내일의 야마다상들과 함께 따스함을 나눠갈거야. 저 따뜻한 사람입니다. 그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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