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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이었다. 집에서 저녁을 먹다가 하루가 눈물을 울먹거리며 유치원 이야기를 했다.
-엄마.. 이제 도시락 안 쌀래...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마이짱이랑 리노짱이 도시락통 그거 가져오지 말래.
하루 도시락통은 스텐레스로 된 길쭉한 모양이다. 캐릭터가 그려진 애들 도시락통은 아니긴 하지만.. 기름 때가 잘 닦이고 길어서 일렬로 밥 반찬을 넣으면 흔들려도 엉망이 되지 않아 애정하는 아이템인데! (게다가 이거 돈 좀 주고 산 유행템인디)
- 하루쿤 벤또 무카시노 벤또 데쇼?
(하루거 옛날 도시락 통이지?)
손나노 못떼 코나이데~ (그런거 가져오지 마)
즈루이요~ 소오다 소우다~(혼자만 나빠. 그래그래)
밥 먹다 같은 그룹 여자친구들이 으쌰으쌰 이런 분위기를 몰아갔다고 한다. (즈루이요는 왜? ㅋㅋ)
그 뿐만이 아니었다.
-엄마, 오늘도 마이짱한테 혼났어. 내가 일부러 그런거 아닌데 풀 혼자 독차지했다고 그러고
-엄마, 오늘은 마이짱이 구몬 얏떼 나이또 아토데 타이헨나 코토니 나루요? (구몬 안 하면 나중에 커서 큰일난다) 래.
마이짱이 주도적으로 택택대기 시작하면 리노짱도 덩달아 하루를 혼내키듯 하루종일 땍땍 거렸다고. 유치원 이야기를 하면 얼굴에 그늘이 가득했다.
구몬 안 다니면 큰일난다니 이건.. 백프로 엄마 흉내다. 마이짱은 매일 같이 엄마로 빙의해서 하루를 혼내키는 것 같았다. 그룹이 바뀐지 얼마 안되서 여자 둘은 무뚝뚝하고 뭘 해도 아무 반응없는 타쿠미 군을 스킵하고 모든 화살을 하루에게 집중 시키는 것이었다. 이걸 선생님한테 말할까 말까... 미치겠네. 나의 육아멘토 시어머님한테 조언을 구해봤지만 어머님도 나 못지 않게 방도는 모르겠고 그 기집애들이 괘씸하기만 하신지
-하루야, 누가 또 그렇게 말하면 너나 가져오지 말라고 해. 아니다. 그런 말은 사람을 상처주는거니까 하지말라고 해. 아니다. 선생님 어디 옆에 누구 없든? 아니다. 무시해 무시. 걔네들이랑 놀지마.
당장 분풀이 할 만한 멘트들만 돌아왔다. (어머님ㅋㅋ 독하게 쏘아댈 성격이었으면 처음부터 당하지 않았을 거에요 )
되 받아칠 궁리보다 좀 더 다른 방법이 없는지 생각하다 그래, 하루가 도시락통을 좋아해주면 누가 뭐래든 상관없어 지지 않을까? 하루는 마이웨이~ 마이페이스 스러운 점도 있으니까.

어느 날 도시락 통에 메모를 붙여서 보냈다.
“나는 길쭉이 도시락군이야~ 맛있게 먹어! 하루야 사랑해”
이름까지 붙였고 눈도 입도 달렸으니 이게 귀여워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지!! 어떠냐!!!
그 날 도시락을 비우고 돌아 온 하루는
-엄마!! 나가이 벤또쿤이 있었어!! 내 친구야?
너무 사랑스러운 듯이 다 먹은 도시락통을 한참 끌어안았다. 그 후로도 몇 일 계속 길쭉이 도시락 친구가 말을 걸어줬고, 마이짱이 도시락에 딴지 걸때마다 안돼!!! 내 친구야!!! 나한테 소중한거야! 라고 하루는 딱 잘라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도시락이 어쨌단 소린 들리지 않았다.
근데 도시락은 그렇다 쳐도 한 동안 마이짱의 ‘훈육’은 계속 되어서 점점 심해지면 엄마들끼리 대면이라도 해야하나 걱정과 고민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야 요즘은 마이짱이 속상하게 안 해?
-가끔 하긴 하는데, 맞다. 저번에 밥 먹는데 갑자기 마이짱이 하루쿤 이쯔모 고멘네? 라 그랬어.
(하루군 맨날 내가 좀 미안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익숙한 뉘앙스에 나는 진심으로 빵터졌다.
마이짱도 여자구나. 여자가 원래 그렇지. 이게 여자지.
자기도 집착하는 거 은근히 알고 있었던 거지. 아이고 배야. 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하루는 뭐라고 했어?
-이이요. 라고 했어.
(응. 괜찮아.)
ㅋㅋㅋㅋㅋㅋ벌써 여자를 겪고 있구나. 많이 겪어 둬. 애미는 눈물 좀 닦을껰ㅋㅋㅋㅋ언젠가 면역이 생기길 바래. 이 이야기를 들은 직후 부터 나는 고민을 끝냈다.
하루가 여자에 익숙해졌는지 빗나간 애정표현을 바로 잡았는지 진실은 모르겠지만 요즘은 절친이 되었다!!! (개깜놀)
-오늘은 뭐하고 놀았어?
-어 마이짱이랑 국기 도감 봤어.
-마이짱? 마이짱 좀 나쁘게 말하는 친구 아니야?
-아니야!!! 마이짱 착한 친구야!
어 그래. ㅋ 감싸고 도는 반전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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